<이슈&인물> 새 생명 주고 떠난 김창민 감독

비참한 죽음 뒤 충격적 사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한 영화감독의 죽음 뒤에,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단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그의 죽음은 ‘집단폭행’으로 인한 억울한 희생이었다.

고 김창민 감독은 지난해 11월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기증을 통해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을 나누고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선택에 깊은 감동을 표했지만, 그가 왜 뇌사 상태에 이르렀는지는 한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질질 끌고
다니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망 약 5개월이 지난 뒤였다. 김 감독이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다른 손님들과의 시비 끝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특히 당시 현장에는 아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충격은 더욱 커졌다. ‘아이 앞에서 벌어진 집단 구타’라는 점에서 공분이 확산됐다.

비극은 지난해 10월20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의 한 24시간 식당에서 벌어졌다. 김 감독은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유가족에 따르면 아들이 갑자기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해 늦은 시간에도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것이었다. 평범한 외식이었다. 하지만 식사 도중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인근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일행과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일단 상황은 한차례 가라앉는 듯했지만, 식당 밖에서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후 김 감독이 자리로 돌아와 식탁 위에 있던 식사용 나이프를 집어 드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일행이 이를 제지하며 충돌이 격화됐고, 결국 폭력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은 상대 일행에게 주먹으로 가격당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증언은 사건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상 속 김 감독은 여러명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위협을 받는다.

한 남성이 뒤에서 목을 조르는 이른바 ‘백초크’를 걸었고, 김 감독은 식당 안에서 이미 의식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김 감독이 두 손을 들며 저항하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해자들은 그를 강제로 끌고 이동했다.

CCTV 사각지대로 향하는 동안에도 폭행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김 감독은 골목까지 약 10m가량 끌려간 뒤에도 주먹과 발로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쓰러진 이후에도 폭행이 이어졌다. 김 감독이 뒤늦게 의식을 되찾은 뒤 “그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에는 최소 4명에서 많게는 6명 이상의 일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목격자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둘러싸고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수준이었다”고 증언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일부 일행이 이를 말리기는커녕 웃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김 감독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고, 약 1시간이 지난 뒤에야 병원으로 이송됐다. 폭행 직후 쓰러진 김 감독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건 현장 인근에는 대학병원이 있었음에도, 실제 이송까지 약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아들 앞에서 벌어진 ‘집단 폭행’
현행범인데 귀가…부실 수사 논란

그 사이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119구급대에 의해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김 감독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의료진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이송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외상성 지주막하출혈, 즉 뇌출혈이었다.

유가족은 “조금만 빨리 병원에 도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며 골든타임을 놓친 점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건의 참혹함은 이후 공개된 응급실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사진 속 김 감독의 눈두덩이와 콧등, 관자놀이 곳곳에 검붉은 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왼쪽 귀 안쪽에는 피가 고여 있었고,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 사진은 당시 병원으로 급히 달려온 아버지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감독의 아버지 김상철씨는 “의식이 없는데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며 “억울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통도 느꼈을 것이고, 아들 걱정도 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치명적 구타의 흔적이었다.

김 감독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사고 약 보름 뒤인 11월7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기적을 기대했지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유가족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장기간 연명 상태를 유지할 경우 장기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김 감독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것이다. 그의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은 각각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됐다. 총 네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가족들은 “본인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사람”이라며 그의 생전 성격을 떠올렸다. 김 감독과 함께했던 지인들도 비슷한 기억을 전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한 목사는 “자신이 힘들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했던 사람”이라며 “누구에게든 100%를 내주던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비극적인 죽음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은 또 다른 삶을 이어주는 결정이 됐다.

김창민 감독은 오랜 시간 영화 현장에서 묵묵히 경력을 쌓아왔다. 2013년 영화 <용의자>에서 소품 담당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대장 김창수> <마약왕> <마녀>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소방관> 등 다수 작품에서 작화팀으로 참여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연출자로서도 활동했다. 2016년 단편 <그 누구의 딸>로 경찰 인권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구의역 3번 출구>를 연출했다. 특히 <그 누구의 딸>은 성범죄자의 딸이 사회적 시선을 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주목받았다. 그는 연출자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에 있었다.

골든타임 놓쳐
범인도 놓쳐

유작이 된 작품 <회신>은 전주국제단편영화제와 서울한강국제영화제 상영이 예정돼있었지만, 고인은 영화제 측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며 상영 철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작품은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유가족은 “오랜 시간 힘들게 버티며 기반을 쌓아왔고, 이제 막 인정받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며 “완성된 시나리오도 여러 편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감독 죽음의 진상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와 대응이 부실했다는 것이다.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 있던 가해자들을 즉시 체포하지 않았다. 대신 인적사항만 확인한 뒤 귀가 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피해자인 김 감독이 스스로 구급차에 올라탔다는 이유 등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현장에는 폭행 장면이 담긴 CCTV가 존재했음에도, 초기 대응은 그 심각성에 비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의 핵심 쟁점은 ‘가해자 특정’ 과정이다. 경찰은 사건 직후 확보한 식당 내부와 인근, 골목 CCTV를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에는 단 한 명만 가해자로 특정해 입건했다. 하지만 이후 공개된 영상과 유족 측 주장,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는 최소 4명에서 많게는 6명 이상의 일행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CTV에는 김 감독이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린 채 끌려가는 장면까지 담겼다. 그럼에도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일부 인물에 대해 “싸움을 말렸다”는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명백한 집단폭행을 단독 범행으로 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서 경찰은 재조사를 진행했고, 그제야 또 다른 인물이 가해자로 추가 특정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입건된 인원은 2명에 그쳤다. 유족 측은 “CCTV상 최소 6명이 있었는데도 단 2명만 입건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일행은 김 감독을 둘러싸고 위협하거나 폭행 상황을 방조한 정황이 있음에도, 공동상해 또는 방조 혐의 적용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 측 변호인 역시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다른 일행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라고 지적했다.

“양아치
같은 놈”

심지어 초기 수사에서 피해자인 김 감독이 ‘특수협박 혐의’로 입건됐던 사실도 논란을 키웠다. 경찰은 김 감독이 식당에서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는 종업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사건 초기에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판단했다.

물론 이후 폭행의 강도와 결과가 명확해지면서 사건의 중심은 가해자 쪽으로 옮겨갔지만, 수사의 시작점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가해자들에 대해 여러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일부 영장을 반려했고, 이후 법원은 두 차례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특히 법원은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 자체가 구속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약 5개월 만에 가해자 2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이 직접 움직였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사건을 넘겨받은 뒤 형사2부장을 팀장으로 검사 3명, 수사관 5명으로 구성된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과학수사 기법과 의학적 분석을 포함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초기 수사의 미흡이 있었다”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 가해자들이 엄정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건이 알려지며 여론이 크게 들끓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사건 이후 힙합 음원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해당 곡에는 “순수했던 나는 없어졌어 벌써” “양아치 같은 놈이 돼” 등의 가사가 담겨있었고,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 특히 이 음원이 고 김창민 감독 사망 약 4~5개월 뒤 발표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반성은커녕 상황을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음원은 일부 플랫폼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들의 사건 이후 행적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주민들과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사건 이후에도 별다른 제약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1시간 이송 지연 ‘뇌사 판정’
장기기증 4명 살리고 떠나

한 명은 배달 업체 운영을, 또 다른 한 명은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헬스장에 나타나 운동하거나 러닝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문신 때문에 평소에도 눈에 띄던 사람들인데 사건 이후에도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온라인상에서는 가해자들의 발언을 둘러싼 주장까지 확산됐다. 일부는 가해자가 주변에 “한 대 치니까 쓰러지더라” “내 주먹 아직 녹 안 슬었다”는 식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공분이 커졌다.

가해자들의 신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조직폭력배 연루설도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특정 조직 소속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한 매체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해당 조직과 가까운 관계일 뿐 실제 조직원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유족의 분노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 감독의 아버지는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 전화 한 번 없고 사과 한마디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편 가해자 중 한 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뒤늦게 사과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김창민 감독님과 유가족에게 죽을 죄를 지은 것을 안다”며 “유가족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수사기관을 통해 여러 차례 사과와 합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신문조서에도 관련 내용이 기록돼있을 것”이라며, 직접 사과할 기회를 얻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어 “어떤 말로도 유가족의 상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지만, 고인을 해할 의도는 없었고 싸움을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면서도 “지금은 유가족의 아픔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유족 측의 입장은 달랐다. 유족은 “언론을 통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직접 연락이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연락처를 몰랐다는 설명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며, 가해자가 실질적인 사과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가해자들과 유족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문제는 가해자들이 불구속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족은 “가해자들이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 가족들이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결국 경찰은 유족 보호 조치로 긴급 호출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버튼을 누르면 위치 정보와 함께 즉시 신고가 접수되는 장치지만, 유족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제서
사과를?

특히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당시 현장에 김 감독의 발달장애 아들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검찰은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아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듣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던 조사다.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피해자 측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취한 조치로 풀이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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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경제는 물론 외교까지 흔들고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초조함이 우리나라에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 되는 ‘실용 외교’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낮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공습의 여파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폭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응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오가는 물류 허브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끝날 듯 안 끝나는 원유 이동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출렁였고 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하는 등 협박에 가까운 말로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주변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는 등 확전 태세를 보였다. 지난 2월28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달 초 미국과 이란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이라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만큼 계속 주도권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 자유 항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통행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선박을 멈춰 세운 이란에 반발해 군사작전을 기획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의 탈출을 돕는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착수 첫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무력을 행사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불똥은 우리나라 선박에도 튀었다. 지난 4일 오후 8시40분경 호르무즈 해협의 아랍에미리트 움알쿠와인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옛 현대상선) 소속 선박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 해협서 선박 사고 “이란 공격” VS “관련 없다” 폭발과 화재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HMM에 따르면 나무호는 예인선을 통해 두바이항으로 옮겨졌다.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권, 소방청 감식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조사 결과 5월4일 미상의 비행체가 HMN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CTV 영상에 해당 비행체가 포착됐으나 발사 주체, 정확한 기종 및 물리적 크기 등을 확인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나무호 폭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동맹의 전쟁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호 폭발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반면 이란 측은 나무호 사건에 선을 그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피해 사건에 이란군이 연루됐다는 모든 의혹을 강력히 거부하며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언급했다. 이란대사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발령된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지정된 항로를 따르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관계 당국과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격이냐 결함이냐 또 “군사 및 안보적 긴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선포된 요구사항과 작전상의 실태를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며 “이 같은 고려 사항을 무시한 채 해당 구역에서 통행이나 활동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선박 측으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정부는 지난 6일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이 종료됐기 때문에 (참여) 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해양 자유 구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서도 검토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무호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가 또다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글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직접 호위 작전에 나서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군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도 못 돼 또 한 번의 ‘트럼프발 호르무즈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신중한 정부 넘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지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동맹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 각국에 관세 폭탄을 던질 때부터 시작된 균열이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혈맹’이라고 불리던 한미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거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놓고 화두로 올렸다. 관세를 부과하고 분담금을 더 내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압박했다.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으로 보상하라고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말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정 장관이 지난 3월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구성을 언급했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확인한 영변과 강선 외의 장소다.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은 4월 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일부 제한했다. 정 장관은 구성이 과거 미국 싱크탱크나 국내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언급됐던 장소라며 정보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정쟁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정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고 국가 안보의 금도를 넘어섰다”며 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안보 사안에 대해 숭미주의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맞섰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트럼프 노골적 참전 요구 청구서 받아든 이 선택은?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 사법 체계를 흔드는 듯한 행보도 잇따라 나왔다. 김범석 쿠팡 의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관련 논란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3300만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조사를, 방 의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미국 정계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쿠팡 ‘감싸기’를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게 골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김 의장의 안전을 보장해야 안보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한미 간에 감정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지금까지 쿠팡의 동일인은 법인이었는데 김 의장(개인)으로 바뀌면서 법적 책임이 대폭 늘었다. 실제 쿠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시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인데 그를 한국법상 총수로 지정한 것은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방 의장을 비롯한 하이브 관계자 3명의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 경찰청에 오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하이브 상장 과정에서 방 의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받는 인물에 대해 특정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택 기로 앞으로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방향은 ‘국익’ ‘실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등 안보 독립을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는 오랜 시간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합류일까, 관망일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