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러나 동시에 원료가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팔아야 살아남지만, 원료를 사오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는 영업도 잘해야 하지만 구매도 잘해야 한다. 결국 경쟁력은 판매와 확보, 두 축에서 동시에 결정된다.
현재 우리는 중동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총성이 울리지 않는 대신 유가가 오르고, 미사일 대신 물가가 치솟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료 확보’다. 그래서 그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7일 한 사람이 중동으로 떠났다. 대통령비서실장 강훈식이다.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로서 강 비서실장의 임무는 명확하다. 원유와 나프타, 즉 산업을 움직이는 최소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는 순간 한국 경제도 흔들린다. 원유의 60% 이상, 나프타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공급선이 막히면 공장은 멈추고 물가는 폭등한다.
그래서 이번 출장은 외교가 아니라 생존이다.
중동 전쟁은 일시적 소강 국면에 들어간 듯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파키스탄이 제안한 ‘2주간 휴전안’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유예다. 2주라는 시간은 종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충돌을 준비하는 협상 기간일 뿐이다.
이런 국면에서 원료를 먼저 확보하는 국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그러나 늦게 움직이는 국가는 가격을 떠안는다. 강 비서실장의 중동행은 대응이 아니라 선점이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길이 막히기 전에, 물량을 먼저 쥐는 것이다. 지금의 국가는 설명하는 조직이 아니라 확보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이번 특사 파견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다. 대체 공급선 확보, 운송 안정성 확보, 가격 충격 완화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복합 임무다. UAE를 통해 이미 일부 물량을 확보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를 잇는 새로운 공급망을 설계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국가 생존 구조의 재설계다.
더 중요한 것은 방식의 변화다. 과거라면 장관이 협의를 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움직였다. 그는 해외 의사결정 라인과 협상하고,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을 동시에 엮어 계약을 만들어낼 것이다. 국가는 더 이상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
강 비서실장은 이미 국가 간 계약을 증명한 인물이다. 그때 그의 역할은 ‘영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구매’다. 방향은 바뀌었지만 방식은 같다. 계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팔던 사람이 이제는 확보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작년 10월 노르웨이에서 1조3000억원 규모의 천무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는 단순한 방산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직접 계약을 만들어낸 사례였다. 그때 그는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였다. 현지 정부와의 신뢰 구축, 산업 협력 설계, 정치적 보증까지 결합된 결과였다.
그 성과는 올해 2월 더 확장됐다. 스웨덴과 덴마크로 이어지는 북유럽 시장,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까지 연결되며 한국 방산은 개별 수출을 넘어 권역 단위 시장으로 진입했다. 한국은 제품을 파는 나라를 넘어 계약을 설계하는 나라로 이동했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의 방향이다.
그리고 지금, 같은 방식이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강 비서실장의 이번 중동 출장은 그 연장선이다. 다만 수출이 수입으로, 무기가 에너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국가가 직접 산업의 생존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의 출발점이다. 나프타는 화학, 플라스틱, 의약품, 포장재로 이어진다. 하나가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국가 경제를 지키는 방어선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동 전쟁의 여파로 한국이 주요국 중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의존, 공급망 집중, 제조업 구조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기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경고다.
이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명확하다. 물량 확보, 가격 완화, 공급망 다변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강 비서실장이 있다. 매일 아침 70여 개 품목의 가격을 점검하고, 이상이 발생하면 즉시 대응하는 방식은 행정의 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책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로 평가된다.
강훈식이라는 인물의 선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충분히 정치적 확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6·3 지방선거 충남도지사 출마라는 현실적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에 남았다. 정치적 상승보다 국가 운영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지금 이 순간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선택은 개인의 결단을 넘어 권력의 방향을 보여준다. 권력이 경력을 위해 쓰일 때 국가는 흔들리지만, 실질적 성과를 위해 작동할 때는 신뢰가 쌓인다. 이 대통령은 국내를 붙들고, 강 비서실장은 해외로 뛰는 역할 분담이 유지될 때 국가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권력은 자리보다 기능으로 증명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변하고 있다. 기다리는 나라에서 확보하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외교를 기다리던 시대에서, 정부가 직접 계약을 만들어내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과 외교, 정치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비서실장의 중동행은 단순한 출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전쟁의 시대에 국가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총을 들지 않아도 전쟁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다.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어제는 팔아야 살아남았다. 그래서 강 비서실장은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였다. 그리고 지금은 다르다. 먼저 확보해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구매사원 1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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