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더 이상 의료의 한 분야가 아니다. 뇌는 국가 전략의 전선이다. 치매와 뇌졸중은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의 문제며, 고령 사회에서 뇌 건강은 곧 성장률이다. 인지 능력은 생산성이고 기억은 자산이며 판단은 국가 경쟁력이다. 뇌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복지 지출에 잠식된다. 이제 뇌는 치료 대상이 아니라 전략 자원이다.
한국의 치매 환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연간 수십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설계는 제자리고, 데이터는 쌓이는데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좌표다. 한국은 가장 빠르게 늙어가면서도, 가장 늦게 설계하는 나라가 될 위험에 놓여 있다.
현장의 데이터는 이미 축적되고 있다. 대형병원 신경과 중환자실과 뇌졸중 집중치료실에는 방대한 임상 기록이 쌓인다. 질환은 단순 사건이 아니라 혈관·면역·대사·심장 기능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스템 붕괴로 해석된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데이터다. 그러나 이 정보는 병원 담장을 넘지 못한다. 국가 전략 자산으로 묶는 설계가 없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는 뇌졸중을 단순 혈관 질환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전신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한번의 뇌 손상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가족 돌봄 구조와 노동시장, 복지 체계를 동시에 흔든다. 그는 뇌 질환을 의료 사건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리스크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뇌를 이해하는 방식이 곧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의 진료실에서 우리는 또 다른 간극을 본다. 의료는 증상을 정밀하게 수치화하지만 보험은 이를 지급 기준에 맞춰 단순화한다. 병원은 진단하고 보험은 계산하며 행정은 따로따로 처리한다. 데이터는 정밀해지는데 제도는 단순하다. 개별 기록은 축적되지만, 국가 차원의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록은 쌓지만 구조는 쌓지 못한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구조다. 우리는 예산을 늘리면서도 전략을 설계하지 않는다. 연구는 부처별로 나뉘고 데이터는 규제 장벽에 갇히며 장기 프로젝트는 정권 주기에 묶인다. 실패는 감점이 되고 도전은 위험이 된다. 이런 체계에서 30년 전략은 태어날 수 없다.
뇌과학은 산업의 뿌리다. Eric Kandel은 기억의 분자적 원리를 밝혀 철학과 과학의 지형을 바꿨고, May-Britt Moser와 Edvard Moser는 공간 인식 알고리즘을 규명해 자율주행과 로봇 기술의 토대를 놓았다. 뇌과학은 의료를 넘어 인공지능, 반도체, 국방 기술과 연결된다. 문제는 인재가 아니라 설계다.
의료는 증상을 다루지만, 뇌과학은 원리를 다룬다. 수십억개 뉴런의 연결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계산과학의 시대다. 고해상도 뇌지도와 장기 추적 데이터, 실패를 전제로 한 20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단년도 평가와 성과 지표에 묶여 있다. 단기 설계에서 장기 돌파는 나오지 않는다.
미국은 뇌 데이터를 안보 인프라로 격상했고, 중국은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군사 기술과 결합하며 ‘인지 우위’를 말한다. 일본은 고령화 대응 전략을 뇌질환 산업과 연결해 장기 설계를 이어간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부처 단위 과제로 관리한다. 강대국은 체계를 설계하고 우리는 과제를 관리한다. 체계를 설계하는 국가는 미래를 통제하고, 과제를 관리하는 국가는 예산을 소진할 뿐이다.
콜롬비아대 교수 Rafael Yuste는 뇌를 ‘21세기 전략 자원’으로 규정한다. 뇌 회로를 해독하는 순간 인간 행동의 알고리즘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뇌 데이터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인지 주권을 잃게 된다는 그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다. 데이터 주권 없이는 기술 주권도 없다.
그렇다면 K-브레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반도체를 말하지만, 신경반도체 전략은 모호하다. AI를 말하지만, 생물학적 알고리즘에 대한 장기 투자는 미약하다. MRI·유전체·임상 데이터를 통합하는 국가 플랫폼은 초기 단계에 머문다. 구호는 있지만 설계는 없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뇌 데이터 통합 플랫폼’은 부처 사업으로는 불가능하다. 대통령 직속 K-브레인 전략위원회를 설치해 보건·과학·산업·금융 데이터를 통합하는 초부처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5년 예산이 아니라 30년 단위 국가 계획으로 설계하고 정권과 무관하게 유지될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뇌 전략은 의료 정책이 아니라 산업·안보·국가 경쟁력의 핵심 어젠다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뇌과학을 안보와 산업의 핵심 전략으로 격상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연구 과제로 쪼개 관리한다. 뇌과학 전략은 국가 설계의 문제다. 데이터를 연결하지 못하는 국가는 지식을 잃고 기술을 잃는다. 기술을 잃는 순간 시장을 잃고 판단의 주도권까지 내준다.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뇌과학은 학회에서 끝난다. 구조를 설계한 국가는 세계 표준을 만든다.
지금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뇌 기술을 수입하는 나라가 된다. 뇌를 전략으로 보지 못하는 정치, 산업으로 설계하지 못하는 관료, 장기 투자로 밀어주지 못하는 시스템. 오늘의 무관심은 내일의 종속으로 돌아온다. 그 대가는 30년 뒤에 청구된다. 그때는 따라잡는 전략조차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K-브레인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국가가 설계하지 않으면 시장이 설계하고, 시장이 설계하지 못하면 타국이 설계한다. 그 순간 우리는 기술을 사는 나라가 아니라 판단을 빌리는 나라가 된다. 판단을 빌리면 결국 결정권도 빌려야 한다. 그 순간 주권은 우리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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