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푸틴의 종전 카드, 트럼프 평화안과 재편되는 유럽 질서

우크라이나 전쟁 3년 차, 상황이 다시 급격히 출렁이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면 즉시 전투를 멈출 것”이라는 조건부 종전 의사를 밝히면서 전쟁의 향방은 돌연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평화안을 “향후 협정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하며 협상 모드로 선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 ‘유화 제스처’ 속에 감춰진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우크라이나군 철수 요구, 젤렌스키 대통령 배제, 점령지 인정, 전략적 안정과 핵실험 카드까지, 푸틴은 외교·군사·국내정치·정보전이 결합된 복합 전략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푸틴의 전략이 유럽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미국 내 트럼프식 외교의 방향을 좌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지인과 대화하면서 푸틴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푸틴의 조건부 휴전 전략

푸틴의 발언은 단순한 조건부 휴전을 넘어 전장의 힘을 외교 테이블로 끌어오는 전형적 전쟁과 외교 병행 전략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CSTO 정상회의 직후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위치에서 철수하면 전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반대로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경고했다.


휴전 제안과 군사 압박을 동시에 제시한 것이다.

이 발언은 휴전의 진정성이 아니라 먼저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한 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적 의도로 보인다. 그는 전황 보고에서도 포크로우스크·미르노흐라드·볼찬스크 등 주요 격전지에서 포위가 완성됐다고 강조하며 러시아군의 군사적 우세를 과시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손실과 탈영 증가를 부각한 것도 정보전에 가깝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흔들고, 미국과 유럽 내부의 전쟁 피로감을 자극해 정치적 압박을 키우려는 계산이며, 결국 ‘조건부 종전 선언’은 휴전 제스처라기보다 향후 군사 공세의 명분을 쌓는 데 더 방점을 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평화안의 진짜 핵심

푸틴은 트럼프 평화안이 향후 종전 협정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강조한 핵심은 평화안 자체가 아니라, 영토 문제의 처리 방식이었다. 그는 미국 문서를 정식 합의안이 아닌 ‘쟁점 목록’으로 규정하면서도 논의할 가치는 인정했다. 그러나 협상의 중심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데 있다고 못 박았다.

푸틴에게 이 두 지역은 이미 헌법에 편입된 ‘국가 영토’이며, 그는 트럼프 평화안을 이용해 이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절차로 연결하려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고 러시아가 설정한 전선을 국제 기준으로 굳히기 위한 설계다. 푸틴에게 실질적 목표는 영토 확정에 있다.

결국 트럼프 평화안은 중립적 해법이 아니라, 러시아가 만든 영토 현실을 제도화하는 도구에 가깝다. 푸틴의 진짜 목표는 크림반도·돈바스의 공식 승인과 우크라이나군 철수를 통한 전선 고정이며, 그는 전투 중단을 조건으로 내세운 완충지대 구상을 활용해 전쟁에서 얻은 이익을 장기적으로 봉인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이 지점에서 트럼프 평화안이 ‘중립적 제안’이 아니라, 러시아가 형성한 전선을 제도화하려는 장치라고 본다.

젤렌스키 배제 의도 노출

푸틴이 이번에 반복한 핵심 메시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젤렌스키의 임기 만료와 계엄령 하의 선거 미실시를 근거로 현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법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이들과의 종전 협정은 국제적 승인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이 발언은 단순한 공세가 아니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 재편을 요구하는 압박이다. 푸틴은 협정 체결 의지를 언급하면서도 현 지도부와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협상 가능한 새로운 파트너를 세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평화안의 ‘협정 후 100일 내 선거’ 조항이 겹치며, 푸틴의 정당성 부정 논리와 트럼프식 조기 선거 요구는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정치체제의 재구성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푸틴은 이 조항을 이용해 자신이 원했던 협상 파트너 교체 요구를 국제 협상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위트코프 논란과 유럽 반발

미국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러시아 우샤코프 보좌관의 통화 녹취 유출은 이번 국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녹취에는 위트코프가 러시아 요구에 공감하거나 조언하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는 보도가 나오며,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의원들은 위트코프를 중립적 중재자가 아니라, 사실상 러시아의 파트너에 가깝다고 비판했고, 일부는 이번 사건이 미·러 간 공모처럼 보인다고까지 지적했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로서는 미국 특사의 기울어진 태도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의회는 트럼프 평화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키며 러시아에 유리한 합의를 거부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불신과 유럽의 반발이라는 ‘정치적 마찰’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미·러 협상이 속도를 내더라도 동맹 조율에서 쉽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대표단 방러의 의미

푸틴이 미국 대표단의 방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 국면을 미·러 직접 협상 구도로 전환하려는 의지 표명이다. 그는 대표단 구성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강조하며 미국 내 트럼프의 위상을 부각시켰고, 위트코프 편향 논란에도 미국이 여전히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푸틴에게 미국 대표단 방문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트럼프의 대러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며,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미·러 양자 협상으로 끌어내 유럽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큰 틀의 방향을 정하면 유럽은 뒤에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전략적 안정성과 핵군축 문제를 함께 묶어 논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협상 범위를 확대했다.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만료, 핵실험 가능성, 유럽 안보 보장 등을 패키지로 제시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핵·미사일 통제 및 유럽 안보 재편과 연결하려는 계산이며, 유럽 공격 의사가 없다는 발언 역시 실질적 평화 약속이 아니라,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에 가깝다.

푸틴의 전장·외교 병행술

푸틴의 발언을 관통하는 핵심은 전장·외교·내부 정치를 동시에 활용하는 ‘3중 레이어 전략’이다. 그는 전장에서 포위·진격·우크라이나군 손실을 과시하며 전쟁 우위를 강조하고, 이를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병력 손실과 탈영 사례를 반복해 서방 여론에도 ‘러시아 우세’ 이미지를 심어 협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트럼프 평화안 논의를 수용하는 듯하면서도 전략적 안정성·핵군축·유럽 안보 보장 같은 대형 의제를 패키지로 묶어 미국을 중심 무대로 끌어오고, 유럽에겐 공격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활용해 내부 분열을 자극한다.


푸틴은 유럽을 하나의 단일 파트너가 아닌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의 집합으로 만들며, 러시아와의 타협 가능성을 열어두는 세력에게 명분을 주려 한다.

또 그는 젤렌스키 정당성을 부정하며 협상을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 재편과 연결시키고 있다. 전쟁 이후 조기 선거를 포함한 트럼프식 해법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정치체제 자체를 흔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 파트너가 등장할 때까지 전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러시아가 완충지대를 만들고 점령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 하면서 NATO 동진을 역으로 차단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유럽이 미·러 협상의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는 점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

평화 아닌 승리 고착 전략

필자는 푸틴의 조건부 종전 선언이 ‘평화를 향한 문’이 아니라, ‘전쟁 결과를 영구화하려는 문턱’에 가깝다고 본다.

푸틴의 ‘조건부 종전 선언’은 표면상으로는 협상의 문을 연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군 철수, 전투 중단, 미국 평화안 논의, 유럽 공격 포기, 전략적 안정 논의 준비 등 그의 발언은 하나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타협과 평화의 언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언어들을 모두 모아 보면, 그 방향은 전쟁 종식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얻은 성과를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전략으로 수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이제 동부 전선에서의 군사력 대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식 외교의 성격, 유럽 내부의 정치적 균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정치체제 문제, 그리고 핵군축과 유럽 안보 조약 개편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재단되고 있다.

푸틴은 바로 그 구조의 중심에 서서 전쟁의 종식을 말하면서도, 전쟁의 결과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착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종전의 문은 열린 듯 보이지만, 그 문이 향하는 방향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다. 그 문 너머에는 유럽 안보 체제의 새로운 시작점, 그리고 러시아가 설계한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지인은 필자와 헤어지면서 “푸틴은 언제나 ‘종전’이 아니라 ‘전선 고착’을 주장했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고착점이 마련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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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