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푸틴의 종전 카드, 트럼프 평화안과 재편되는 유럽 질서

우크라이나 전쟁 3년 차, 상황이 다시 급격히 출렁이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면 즉시 전투를 멈출 것”이라는 조건부 종전 의사를 밝히면서 전쟁의 향방은 돌연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평화안을 “향후 협정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하며 협상 모드로 선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 ‘유화 제스처’ 속에 감춰진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우크라이나군 철수 요구, 젤렌스키 대통령 배제, 점령지 인정, 전략적 안정과 핵실험 카드까지, 푸틴은 외교·군사·국내정치·정보전이 결합된 복합 전략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푸틴의 전략이 유럽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미국 내 트럼프식 외교의 방향을 좌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지인과 대화하면서 푸틴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푸틴의 조건부 휴전 전략

푸틴의 발언은 단순한 조건부 휴전을 넘어 전장의 힘을 외교 테이블로 끌어오는 전형적 전쟁과 외교 병행 전략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CSTO 정상회의 직후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위치에서 철수하면 전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반대로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경고했다.

휴전 제안과 군사 압박을 동시에 제시한 것이다.

이 발언은 휴전의 진정성이 아니라 먼저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한 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적 의도로 보인다. 그는 전황 보고에서도 포크로우스크·미르노흐라드·볼찬스크 등 주요 격전지에서 포위가 완성됐다고 강조하며 러시아군의 군사적 우세를 과시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손실과 탈영 증가를 부각한 것도 정보전에 가깝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흔들고, 미국과 유럽 내부의 전쟁 피로감을 자극해 정치적 압박을 키우려는 계산이며, 결국 ‘조건부 종전 선언’은 휴전 제스처라기보다 향후 군사 공세의 명분을 쌓는 데 더 방점을 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평화안의 진짜 핵심

푸틴은 트럼프 평화안이 향후 종전 협정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강조한 핵심은 평화안 자체가 아니라, 영토 문제의 처리 방식이었다. 그는 미국 문서를 정식 합의안이 아닌 ‘쟁점 목록’으로 규정하면서도 논의할 가치는 인정했다. 그러나 협상의 중심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데 있다고 못 박았다.

푸틴에게 이 두 지역은 이미 헌법에 편입된 ‘국가 영토’이며, 그는 트럼프 평화안을 이용해 이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절차로 연결하려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내고 러시아가 설정한 전선을 국제 기준으로 굳히기 위한 설계다. 푸틴에게 실질적 목표는 영토 확정에 있다.

결국 트럼프 평화안은 중립적 해법이 아니라, 러시아가 만든 영토 현실을 제도화하는 도구에 가깝다. 푸틴의 진짜 목표는 크림반도·돈바스의 공식 승인과 우크라이나군 철수를 통한 전선 고정이며, 그는 전투 중단을 조건으로 내세운 완충지대 구상을 활용해 전쟁에서 얻은 이익을 장기적으로 봉인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이 지점에서 트럼프 평화안이 ‘중립적 제안’이 아니라, 러시아가 형성한 전선을 제도화하려는 장치라고 본다.

젤렌스키 배제 의도 노출

푸틴이 이번에 반복한 핵심 메시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젤렌스키의 임기 만료와 계엄령 하의 선거 미실시를 근거로 현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법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이들과의 종전 협정은 국제적 승인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이 발언은 단순한 공세가 아니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 재편을 요구하는 압박이다. 푸틴은 협정 체결 의지를 언급하면서도 현 지도부와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협상 가능한 새로운 파트너를 세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평화안의 ‘협정 후 100일 내 선거’ 조항이 겹치며, 푸틴의 정당성 부정 논리와 트럼프식 조기 선거 요구는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정치체제의 재구성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푸틴은 이 조항을 이용해 자신이 원했던 협상 파트너 교체 요구를 국제 협상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위트코프 논란과 유럽 반발

미국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러시아 우샤코프 보좌관의 통화 녹취 유출은 이번 국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녹취에는 위트코프가 러시아 요구에 공감하거나 조언하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는 보도가 나오며,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의원들은 위트코프를 중립적 중재자가 아니라, 사실상 러시아의 파트너에 가깝다고 비판했고, 일부는 이번 사건이 미·러 간 공모처럼 보인다고까지 지적했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로서는 미국 특사의 기울어진 태도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의회는 트럼프 평화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키며 러시아에 유리한 합의를 거부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불신과 유럽의 반발이라는 ‘정치적 마찰’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미·러 협상이 속도를 내더라도 동맹 조율에서 쉽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대표단 방러의 의미

푸틴이 미국 대표단의 방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 국면을 미·러 직접 협상 구도로 전환하려는 의지 표명이다. 그는 대표단 구성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강조하며 미국 내 트럼프의 위상을 부각시켰고, 위트코프 편향 논란에도 미국이 여전히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푸틴에게 미국 대표단 방문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트럼프의 대러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며,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미·러 양자 협상으로 끌어내 유럽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큰 틀의 방향을 정하면 유럽은 뒤에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전략적 안정성과 핵군축 문제를 함께 묶어 논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협상 범위를 확대했다.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만료, 핵실험 가능성, 유럽 안보 보장 등을 패키지로 제시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핵·미사일 통제 및 유럽 안보 재편과 연결하려는 계산이며, 유럽 공격 의사가 없다는 발언 역시 실질적 평화 약속이 아니라,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에 가깝다.

푸틴의 전장·외교 병행술

푸틴의 발언을 관통하는 핵심은 전장·외교·내부 정치를 동시에 활용하는 ‘3중 레이어 전략’이다. 그는 전장에서 포위·진격·우크라이나군 손실을 과시하며 전쟁 우위를 강조하고, 이를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병력 손실과 탈영 사례를 반복해 서방 여론에도 ‘러시아 우세’ 이미지를 심어 협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트럼프 평화안 논의를 수용하는 듯하면서도 전략적 안정성·핵군축·유럽 안보 보장 같은 대형 의제를 패키지로 묶어 미국을 중심 무대로 끌어오고, 유럽에겐 공격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활용해 내부 분열을 자극한다.

푸틴은 유럽을 하나의 단일 파트너가 아닌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의 집합으로 만들며, 러시아와의 타협 가능성을 열어두는 세력에게 명분을 주려 한다.

또 그는 젤렌스키 정당성을 부정하며 협상을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 재편과 연결시키고 있다. 전쟁 이후 조기 선거를 포함한 트럼프식 해법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정치체제 자체를 흔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 파트너가 등장할 때까지 전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러시아가 완충지대를 만들고 점령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 하면서 NATO 동진을 역으로 차단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유럽이 미·러 협상의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는 점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

평화 아닌 승리 고착 전략

필자는 푸틴의 조건부 종전 선언이 ‘평화를 향한 문’이 아니라, ‘전쟁 결과를 영구화하려는 문턱’에 가깝다고 본다.

푸틴의 ‘조건부 종전 선언’은 표면상으로는 협상의 문을 연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군 철수, 전투 중단, 미국 평화안 논의, 유럽 공격 포기, 전략적 안정 논의 준비 등 그의 발언은 하나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타협과 평화의 언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언어들을 모두 모아 보면, 그 방향은 전쟁 종식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얻은 성과를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전략으로 수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이제 동부 전선에서의 군사력 대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식 외교의 성격, 유럽 내부의 정치적 균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정치체제 문제, 그리고 핵군축과 유럽 안보 조약 개편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재단되고 있다.

푸틴은 바로 그 구조의 중심에 서서 전쟁의 종식을 말하면서도, 전쟁의 결과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착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종전의 문은 열린 듯 보이지만, 그 문이 향하는 방향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다. 그 문 너머에는 유럽 안보 체제의 새로운 시작점, 그리고 러시아가 설계한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지인은 필자와 헤어지면서 “푸틴은 언제나 ‘종전’이 아니라 ‘전선 고착’을 주장했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고착점이 마련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skkim5961@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