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세상읽기 ‘삼기점’, 원운동서 직선운동으로

1980년 정월대보름,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가 들판에서 불붙은 깡통을 돌리던 순간은 단순한 쥐불놀이가 아니었다. 처음엔 팔 전체를 원으로 크게 움직여야 깡통이 돌았다. 하지만 속도가 붙자 팔은 더 이상 원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직선으로 흔들기만 해도 깡통은 원을 스스로 그렸다.

외형은 원이었지만, 그 원을 유지시키는 힘은 직선이었다. 그 순간 필자에게 다가온 느낌은 단순한 기교의 변화가 아닌 ‘겉은 원이지만, 본질은 직선’이라는 원운동 원리의 깨달음이었다.

당시 필자는 이 전환의 순간을 ‘삼기점’이라 명명했고, 아이디어 노트에 기록했다. 이후 이 개념은 정치, 경제, 사회, 문명 전환을 꿰뚫어 해석하는 필자만의 고유한 렌즈가 됐다.

원운동의 표면성과 직선운동의 내적 동력

원운동은 완전한 운동이 아니다. 직선으로 뻗으려는 관성과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잠정적으로 타협한 결과일 뿐이다. 즉, 원은 형태고 직선은 힘이다. 이 구조는 세상이 굴러가는 진짜 원리를 보여준다. ‘푸코’의 관점에서 원운동은 규율·제도·관성의 반복 장치며, 직선은 그 반복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여는 힘이다.

‘들뢰즈’의 사유로 보면, 원은 영토화된 질서고, 직선은 그 질서를 벗어나는 탈영토화의 흐름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러’가 말한 기술철학적 프로세스의 외부화도 같은 구조다. 안정적 구조 속에 축적된 긴장이 어느 순간 직선적 돌파로 문명을 바꾼다.


필자가 45년 전 들판에서 본 원운동 역시 외형만 안정된 것이었다. 그 원을 떠받치던 힘은 이미 방향을 바꾸려는 직선이었다. 삼기점은 바로 이 내부 변화가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원의 형태는 남아 있지만, 본질적 힘은 이미 다른 궤도를 향해 있다.

정치의 삼기점, 반복의 원 넘어 이탈하는 국민의 직선

정치는 가장 안정된 원처럼 보인다. 선거는 일정 주기로 반복되고, 여야와 진보·보수의 구도는 회전하듯 반복된다. 언론은 이 회전을 해설하면서 정치의 원을 세상에 알린다. 그러나 정치를 실제로 움직이는 힘은 원이 아니다. 국민의 삶에서 솟아오르는 직선적 가치가 정치를 변화시킨다.

“우리 삶은 나아지고 있는가?” 이 단순한 직선적 질문 하나가 정치의 모든 원을 무력화하기도 하고, 새 축을 형성하기도 한다. ‘라투르’가 설명하듯, 국민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정치 흐름을 직접 바꾸는 존재다. 과거의 정치는 원의 규칙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늘의 정치는 직선적 변화의 방향성을 요구한다.

정치의 삼기점은 바로 이 순간이다. 국민의 직선이 정치의 원을 재편하는 순간, 정치는 새로운 운동으로 넘어간다. 원 안에 머물려는 정치세력은 더 빠른 자기회전만 반복하고, 국민은 그 원을 떠나 직선의 궤도로 이동한다.

경제의 삼기점, 순환경제에서 속도와 흐름의 경제로

경제는 오랫동안 순환의 원으로 설명됐다. 생산·소비·투자·성장의 순환은 산업시대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경제는 순환이 아니라, 흐름과 속도의 직선 구조다. 데이터는 왕복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자본은 국경을 초월해 계단식으로 확장된다.


AI는 반복을 더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다시 말하면 직선적 사고를 구현한 기술이다. ‘들뢰즈’ 관점으로 보면, 산업경제는 영토화된 원의 경제였고, 디지털경제는 탈영토화된 흐름이다. 자본은 연결·속도·의미를 기반으로 이동한다.

정책은 여전히 순환경제의 원으로 움직이지만, 시장은 이미 속도의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괴리가 더 벌어지면 경제의 삼기점이 발생한다. 과거의 질문이 ‘얼마나 크게 돌릴 것인가’였다면, 오늘의 질문은 ‘어디로 얼마나 빨리 갈 것인가’다. 경제의 흐름이 원에서 직선으로 이동한 것이다.

사회의 삼기점, 원형 질서의 붕괴와 직선적 삶의 등장

과거 사회는 하나의 원으로 살았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에 들어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은퇴하는 일정한 궤도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더 이상 원으로 묶이지 않는다. 각자 다른 욕망과 세계관을 따라 직선처럼 각자도생한다.

현상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지향성을 가진 신체적 존재로 각자의 신체와 의식은 고유한 방향성을 갖는다. 하지만 제도는 원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연공서열, 정년제, 획일적 입시제도 등은 모두 과거 원형 사회가 남긴 유물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이미 직선적 존재다. 그들의 삶은 구심력이 아니라, 관성과 속도, 자기 결정을 중시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원형사회에서 직선사회로 넘어가는 삼기점 위에 있다. 이를 읽지 못하면 갈등과 단절은 깊어지고, 읽어낸다면 사회는 새로운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철학의 삼기점, 원에서 직선으로, 직선에서 흐름으로

삼기점은 철학사에서도 반복되는 구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회귀하는 원으로 이해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목적을 가졌다. ‘뉴턴’은 이 세계를 직선의 법칙으로 재해석했다. “외부 힘이 없으면 직선 운동을 지속한다”는 그의 법칙은 근대철학 전체를 바꿨다.

그러나 현대철학은 이 대립을 넘어간다. ‘하이데거’는 운동을 물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드러남 방식’으로 봤다. ‘들뢰즈’는 세계를 고정된 원이나 단순 직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흐름’으로 봤다. ‘푸코’는 운동을 ‘권력의 재배치’로 봤고, ‘라투르’는 ‘네트워크의 재조립’으로 설명했다.

삼기점은 이처럼 원·직선·흐름의 세계가 교차하는 자리다. 세계는 원이라는 표면 아래에서 직선적 변화가 구조를 다시 만들어내고, 흐름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문명사의 삼기점, 역사철학이 말해온 전환의 반복

문명사는 원과 직선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만들어왔다. 농경문명은 계절의 원을 따라 움직였고, 산업문명은 증가, 확장, 생산이라는 순환과 직선을 중심에 두었다. 20세기 중반 정보혁명은 또 하나의 직선적 돌파였다. 인간의 기억과 계산이 기술로 외부화되면서 문명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한 번의 삼기점을 통과하는 중이다. AI·데이터·로봇·클라우드는 인간의 사고·감정·행동까지 흐름의 속도에 편입시키고 있다. 문명은 원→직선→흐름이라는 패턴을 반복하며 진화한다.

원형 문명은 안정적이나 변화에 취약하고, 직선 문명은 빠르지만 균형이 부족하며, 흐름 문명은 새로운 가능성이 많지만 예측하기 어렵다. 문명사의 삼기점은 바로 이 패턴이 재편되는 순간이며, 다음 궤도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다.

삼기점 위에 놓여 있는 시대

세상은 언제나 삼기점을 넘어 새로운 궤도로 도약해왔다. 농경사회는 계절의 원으로 살았고, 산업사회는 기계의 회전으로 살아냈으며, 디지털 문명은 흐름과 속도의 직선적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 전환들은 단절이 아니라, ‘형태의 변이’이며, 원에서 직선으로, 직선에서 흐름으로 이어지는 문명적 연속선 위에 있다.

지금 한국 사회도 정확히 이 삼기점 위에 놓여 있다. 정치에서는 국민의 직선이 낡은 원형 구조를 흔들고 있다. 경제에서는 속도와 연결이 기존 순환 시스템을 재편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직선적 삶이 원형 규범과 충돌하고 있다. 문명 전체에서도 흐름과 데이터가 기존의 원형·직선형 질서를 넘어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직선의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 아니다. 삼기점 이후의 세계는 원·직선·흐름이 혼합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점이다. 원은 질서의 안정성을, 직선은 변화의 방향성을, 흐름은 가능성의 확장을 제공한다. 이 세 요소가 섞여 새로운 시대의 구조를 만든다.


삼기점 읽는 자가 시대 앞질러 미래 연다

‘들뢰즈’의 배치(assemblage), ‘하이데거’의 구성, ‘라투르’의 재조립된 사회가 바로 이런 구조를 설명한다. 오늘의 삼기점에서 중요한 주체는 읽는 자다. 원만 보는 자는 과거에 갇히고, 직선만 좇는 자는 방향을 잃고, 흐름만 강조하는 자는 뿌리를 잃는다.

그러나 삼기점을 읽는 자는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묶어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 수 있다.

45년 전 겨울 들판에서 깡통이 그렸던 원은 단순한 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 즉 겉은 원이지만, 그 원을 지탱하는 본질은 언제나 직선이라는 진실을 압축해 보여준 장면이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정치·경제·문명도 동일한 구조 속에 있다. 외형은 여전히 원을 말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직선이 움직이며 다음 세계를 준비하고 있다.

삼기점을 읽는 개인은 인생의 궤도를 바꿀 수 있다. 삼기점을 읽는 조직은 낡은 구조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 삼기점을 읽는 국가는 시대를 앞서가며 다음 문명을 향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삼기점을 읽는 자가 시대를 앞질러 가고, 미래는 결국 그런 자에게 먼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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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