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이 다른 대단지 어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단지 아파트의 인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타 중소형 단지 대비 부대시설 및 조경이 잘 갖춰져 있고, 주로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 아파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대단지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은 뚜렷하다. 대단지는 소규모 단지 대비 관리비가 낮고, 다양한 커뮤니티시설 및 조경 공간이 조성되기 때문에 주거 만족도가 높다. 이 같은 장점은 활발한 거래로 이어져 불황기에는 가격 방어가 가능하고, 활황기에는 가격 상승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불황기에
가격 방어

지난해 2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35대 1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0가구 이하 아파트보다 3배 넘게 높은 것으로, ‘대단지 프리미엄’을 토대로 가격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2000가구 이상 아파트 청약은 총 10개 단지, 6907가구(특별공급 제외)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 단지에는 1순위 청약통장 24만1076개가 몰리며 평균 34.9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2000가구 미만 아파트 1순위 평균 경쟁률인 10.84대 1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2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규모에 따른 우수한 상품성을 갖추고, 지역 대표 랜드마크로 떠올라 아파트값 상승률도 비교적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라며 “이른바 규모의 경제 덕분에 아파트 유지보수 비용도 입주민 다수가 분담해 내는 만큼 관리비도 소단지 대비 저렴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500가구 이상 아파트값이 6.83% 상승할 때 1000~1499가구는 3.96%, 700~999가구는 3.54%, 500~699가구는 2.74% 오르는 등 단지 규모가 클수록 가격 상승률이 높았다. 올해 상반기에도 2000가구 이상 아파트 8곳이 분양을 마쳤거나 청약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전북 전주서 분양된 ‘더샵라비온드(총 2226가구)’는 836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2만1816명이 몰리며 평균 26.10대 1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2000세대 이상 매머드급 단지 주목
대형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로 우뚝

또 다른 전문가는 “2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는 단지 규모가 커 교육과 여가, 생활 편의 등을 단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며 “랜드마크 단지는 가치 상승 측면서도 여력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몇 년간 주택시장에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불면서 수요자들이 조경·커뮤니티시설·특화 설계 등의 우수한 상품성과 주변 생활 인프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2000세대 이상 매머드급 대단지 아파트는 높은 희소성으로 지역 랜드마크로 거듭날 가능성이 커 더욱 높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분양(예정) 중인 경기·인천 대단지.

▲평촌 어바인 퍼스트 더샵=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 들어설 예정인 대단지 아파트 ‘평촌 어바인 퍼스트’가 지역 내 최대 규모의 주거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1, 2단지 3850세대와 3단지 304세대 규모로 조성되며, 총 4154세대를 자랑한다. 안양 동안구서 최대 규모로, 주변 주거 단지와 함께 약 8800세대 규모의 신 주거 타운을 조성하며 안양의 대표 주거 단지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1~2인 가구에 특화된 소형 평형대 전용 39타입을 193세대 한정으로 주변 고분양가 대비 합리적 분양가에 분양전환을 진행한다. 단지 내부는 지상에 차 없는 설계로 안전성을 높였다. 중앙광장과 테마쉼터, 커뮤니티 가로, 어린이놀이터 등 다양한 조경 공간이 마련돼 여유롭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

피트니스센터, 실내골프장, 사우나장, 도서관, 키즈룸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함께 조성돼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우수한
상품성

단지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호원초등학교가 위치해 자녀의 안심 통학이 가능하다. 호계중, 신기중 및 평촌 학원가와도 가까워 교육 여건이 우수하다. 홈플러스, AK플라자,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호계종합시장 등 다양한 생활 편의시설이 인접해 있어 입주민의 편의성을 더한다.

인근에 인덕원~동탄 복선전철(2027년 완공 예정)과 GTX-C 노선이 지나며, 호계사거리역(가칭, 예정)이 가까워 이동이 편리하다. 이 외에도 금정IC,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도로망이 잘 구축돼 있어 출퇴근과 차량 이동이 수월하다.

▲계양 롯데캐슬 파크시티= 롯데건설이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동서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 단지인 ‘계양 롯데캐슬 파크시티’의 분양을 진행 중이다. 총 3053세대로 구성된 단지는 중소형부터 대형 평형까지 다양한 타입을 갖추고 있다.

1단지 지하 2층~지상 26층, 20개 동, 총 1964세대와 2단지 지하 2층~지상 25층, 10개동, 총 1089세대로 총 3053세대를 공급한다. 현재 전용 59㎡, 85㎡, 108㎡ 일부 타입에 ‘5% 계약금’ 조건을 내걸고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입주는 2027년 11월 예정.

아파트 전 세대는 남향 위주의 배치와 넓은 동 간 간격으로 설계돼 채광과 환기에 탁월하다. 여기에 가장 선호도 높은 전용면적 59㎡와 84㎡, 108㎡ 총 7가지 타입으로 선택의 폭이 넓다. 그중에서도 전용 108㎡ 타입은 면적이 크게 나온 만큼 가족 규모의 제한이 적고, 내부에는 드레스룸, 팬트리, 붙박이장 등 수납공간이 넉넉하며 와이드한 거실로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단지 안에는 입구정원, 포켓정원, 중앙광장, 수공간 등의 테마정원, 놀이터, 운동시설 등 조경시설과 실내 골프클럽, 피트니스클럽, 키즈카페, 도서관, 독서실 등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된다.

관리비도
저렴하다

단지 주변에 홈플러스, 이마트, 도서관 등 생활 편의시설이 구축돼있다. 도보 거리에 효성서초, 효성초, 북인천여중, 명현중, 효성고 등이 위치해 우수한 학군을 형성하고 있다. 축구장 11개 규모의 초대형 공원인 이촌공원과 천마산 둘레길, 천마산 어린이물놀이장 등이 있어 그린라이프도 실현할 수 있다.

단지 반경 600m 내에 청라연장선의 전철역이 있고, 봉오대로가 단지 앞을 지나고 있어 경인고속도로 서인천IC가 인접해 있다. 현재 인천 1호선 작전역, 서울지하철 2호선 효성역 연장(예정) 및 GTX D·E 노선과의 연계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인근의 계양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김포공항 및 인천공항, 서울 등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인천광역시는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의 신속한 추진에 힘쓰고 있는 만큼 교통 여건은 더욱 개선될 수 있다. 해당 사업은 총사업비 1조3780억원을 들여 인천 청라서 신월IC까지 총 15.3㎞ 구간에 지하고속도로를 신설하는 사업으로, 인천 등 수도권의 교통 혼잡을 줄이고 단절된 도심을 이어 인천 지역 균형발전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분양 관계자는 “인천광역시는 광역 교통망 개발과 신도시 조성을 통해 인구 303만명을 목표로 대규모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인데, 특히 계양구는 인천 북부 첨단산업의 메카로 꼽힌다”며 “계양 롯데캐슬 파크시티는 넉넉한 대형 평수는 물론, 입주민의 생활 편의를 높일 단지 시설, 우수한 입지와 교통 환경을 갖춘 단지라 침체 속에서도 성황리에 분양 중이며 마감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교육·여가·편의…단지서 모두 해결
3배 넘게…‘프리미엄’ 가격도 강세

인천 타 지역에 비해 서울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실수요자가 끌리는 요인이다. 계양 롯데캐슬파크시티는 인천 1호선 작전역까지 차로 5분, 버스로 15분 내외가량 소요된다. BRT(간선급행버스)로 한번에 화곡역까지 40분대로 이동할 수 있다. 롯데건설이 입주 시점에 입주자들에게 순환 셔틀버스 3대를 기증할 예정이며 버스를 이용하면 출퇴근이나 통학이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교통 인프라는 더욱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분양 관계자는 “4차 국가철도망계획에 대장홍대선(홍대입구역-부천 대장)을 착공한 후 청라연장선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반영돼있고 인천시도 5차 국가철도망계획에 청라연장선 착공을 구체화해 줄 것을 제안한 상태”라며 “청라연장선이 들어설 경우 단지 앞에 효성역이 위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링턴 스퀘어 산곡역= 2475가구의 단일 브랜드 타운을 이루는 랜드마크 ‘해링턴 스퀘어 산곡역’이 분양한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1동 일대(부평 산곡 재개발 정비사업)에 들어서며, 지상 최고 45층 총 2475가구로 조성된다. 이 중 1248가구가 일반분양 예정이다. 시공은 효성 그룹의 계열사인 효성중공업과 진흥기업이 맡았다.

전용면적별 분양 가구수는 ▲39㎡A 17가구 ▲39㎡B 35가구 ▲59㎡A 318가구 ▲59㎡B 387가구 ▲74㎡A 86가구 ▲74㎡B 119가구 ▲84㎡A 84가구 ▲84㎡B 68가구 ▲84㎡C 88가구 ▲84㎡D 41가구 ▲96㎡ 5가구다.

소형부터 중대형까지 다양한 면적대로 구성했다. 전용면적 39㎡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1~2인 가구의 선호도가 기대된다. 84㎡는 타입에 따라 4베이, 알파룸, 3면 발코니 구조 등을 선보여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 전용면적 96㎡은 4베이 구조에 알파룸, 드레스룸 등 보다 넓은 넉넉한 실내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피트니스, G·X룸, 실내 골프연습장, 사우나, 작은 도서관, 키즈카페, 소셜키친 등의 커뮤니티시설도 선보인다.

7호선 산곡역이 약 150m 거리에 위치한 초역세권에 자리한 점이 단연 특징이다. 7호선 이용 시 가산디지털단지까지 30분대, 강남까지도 1시간 내에 도달 가능하다. 산곡역서 GTX-B(예정) 개통이 예정된 부평역(수도권1호선·인천1호선)까지도 약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경인고속도로(부평IC)를 통해 차량으로 서울 접근도 수월하며,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중동IC) 이용 시 수도권 곳곳으로의 이동이 용이하다.

다양한
면적대

단지는 산곡초와 산곡초병설유치원을 품고 있으며, 산곡중, 청천중, 세일고, 인천외고, 명신여고 등으로 도보 통학할 수 있다. 단지 맞은편에 롯데마트가 위치해 있고, 산곡역과 대로변에도 병원, 식당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단지 북측 공병단 부지는 대형 복합 쇼핑몰로 개발(계획)이 추진 중이다. 단지 북측으로 장수산과 원적산공원이 위치해 있다.

정주 여건도 꾸준히 개선돼 신주거타운 형성에 따른 기대감도 높다. 산곡6구역, 한양아파트2단지, 산곡3구역 등 곳곳에서 정비사업이 추진 중이라 단지 주변은 1만5000여가구의 신흥 주거 타운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3보급단과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부지도 공원과 녹지 등으로 개발 예정이라 주거 인프라는 꾸준히 개선될 전망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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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