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제발 더 이상 안 된다

다시 만난 제왕적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불법 계엄령에 친위 쿠데타까지. 대통령이 된 후로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나라에 아예 기름을 붓고 불까지 질렀다. 윤 대통령의 파면만이 온 나라, 온 국민이 살길이다. 현재로선 간절히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12·3비상계엄 사태는
사람·제도 모두 문제

어김없이 겨울의 끝에선 봄이 오고 있다. 희망과 새로움을 품어야 할 때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시대착오적 불법 계엄의 충격과 불안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대로 멈춰 서 있다. 또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던, 온 세계가 경이로움에 가득 차 찬사를 보냈던 이 나라 민주주의는 지난해 12월3일 밤, 잘못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탄핵 국면에 극단적인 이념 갈등과 법치 훼손, 시민사회 분열로 민주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사회·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후퇴했다는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결과 보고서도 뼈아프다.

심지어 2년째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천만다행인 것은 민의의 보루인 국회가 전광석화처럼 결집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아직 비상계엄에 대한 사법기관의 심판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더 튼튼하고 더 완벽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해야 할 때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첫걸음을 떼야만 한다.


그러나 극우와 보수가 혼재되면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 여당이 극우 집단을 옹호하며 보수 지지층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도 보수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수가 법치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집단인 반면, 극우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강한 행정력이나 폭력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보수가 극우에 편승하는 것이다. 극우화가 심화하면 민주주의가 훨씬 더 퇴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현행 권력 구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낡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현명치 못한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앉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의 선의에 기대어 현 대통령중심제를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모험이라고 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봄이 왔것만 대한민국은 ‘그대로’
잘못된 지도자 뽑아 순간 ‘와르르’

불법 비상계엄은 사람과 제도 모두가 문제라는 사실을 또다시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이어가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개헌을 통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할 때다.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개헌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제왕적 대통령제’ ‘의회 독재’ ‘지방 분권’ 등 권력이 집중됐다는 지적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제6공화국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정치체제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및 국회 국정감사권 부활, 언론 검열 폐지 등 민주주의 요소를 골자로 지난 40여년간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럼에도 지난 20여년간 국내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지속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여야 할 것 없이 개헌 카드를 꺼내던 것인데 이는 소위 ‘87 체제’가 현시대와는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 않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 개헌이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개헌이 국가 운영 체계를 바꾸는 중대한 문제다 보니 국민 숙의 과정이 필요한 사항인 데다, 매 선거 때마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한쪽의 일방적 추진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다시금 논의가 불붙고 있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정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전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대부분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독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점 또한 87 체제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 산다

대통령의 권한 범위 문제와 함께 비상계엄 사태가 민주주의 체제 유지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며 현재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 여론 또한 개헌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차치하고 대한민국은 1987년 개헌 이후 38년 동안 단 한 번도 개헌을 해보지 못했다. 김종필 전 총리가 내각제를 지속해서 요구했던 김대중정부 이후 모든 정권마다 개헌에 대한 논쟁은 있었다. 그러나 늘 마지막은 지금 헌법 그대로 귀결됐다.

개헌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모든 국가가 한국처럼 헌법을 고치지 못한 것도 아니다. 독일은 우리와 달리 1949년 이후 66회, 1990년 통일 이후에만 31회나 개헌을 했다.

독일의 경우 개헌 과정을 통해 국가 과제를 재선정하고 국민 통합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난 38년 동안 개헌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여야 입장이 서로 바뀌게 되면서 개헌에 대한 정치적 견해도 덩달아 바뀌는 데서 기인한다. 즉, 역지사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 시절에는 개헌을 주장하다가도 여당이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또 다른 면에서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국정 위기의 돌파 수단으로 개헌에 정략적 접근을 하기도 했다. 결국 정치인들이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가 아니라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만 몰두했던 원인이 컸던 셈이다.

특히 대선 국면서 후보들이 저마다 개헌을 약속해 놓고, 선거에 이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곤 했다. 이는 집권여당이 된 후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엄청난 권력의 달콤함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회피 명분으로 짧은 5년 임기 중 개헌하려면 국정이 블랙홀에 빠진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난 정권들 모두 개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후반이면 늘 스스로 레임덕 블랙홀로 빠졌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개헌과 레임덕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셈이다.


반면,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된 정당은 5년만 버티면 된다. 차기 대선에는 기필코 ‘우리가 정권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임기 내내 국정 발목 잡기에만 매달리는 일도 반복됐다. 5년마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정치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적자생존 원칙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글 체제로 굳어졌다.

미성숙 정치
적대적 대결

49%의 국민이 등을 돌려도 51%만 지키면 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몰두해, 국민 통합의 정치가 아닌 갈등과 분열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 상대를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타도의 대상인 적으로 보는 미성숙한 정치, 적대적 대결만 있을 뿐 경쟁적 협조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생중계하듯 정치의 모습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시대다. 갈등 조정이 아닌 갈등을 부추기는 국회 모습은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 투영돼 나타나고 있다. 우리 국민의 거의 전부인 92%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실태 조사도 나왔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 갈등이 이념과 결합하고, 여기에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더 해져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신뢰의 위기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정치가 하루빨리 국민적 신뢰를 되돌리는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대통령에 대한 권력 분산, 조화로운 사회와 정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개헌을 그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제도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필자는 내각제까지 검토해볼 수 있을 만큼 여건이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의 신념을 가지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9년, 일기에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남겼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직접 뽑고 싶어하는 국민을 도저히 설득하기 어렵다면 통일·외교·안보·국방은 대통령이 맡고, 경제·사회·문화는 국회서 추천하는 총리가 내각제처럼 운용하는 실질적인 ‘책임총리제’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개헌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앞당길 수 있었던 계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8년 전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을 심판하고자 국회는 여야가 함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연인원 170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새로운 국가 설계⋯반드시 개헉해야
여야 바뀌면 개헌 입장도 또 바뀌어

국회, 시민단체, 국민이 공감대를 이뤘고 헌법재판소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다. 촛불 혁명이었다. 촛불 혁명에 담긴 국민의 요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라는 것이고, 그 방법은 개헌이었다.

새롭게 들어선 정부와 정치권은 협치를 통해 촛불 정신을 담아내는 개헌을 실현했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촛불 혁명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다시 미래보다는 적폐 청산이라는 과거에 매몰됐고, 촛불 혁명이라는 연대 정신을 살리지 못했다. 결국 어렵게 얻은 정권도 5년 후 도로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쩌면 8년 전보다 더 좋은 개헌의 기회가 지금일 수도 있다. 다시 찾아온 ‘개헌의 적기’다. 개헌은 힘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또는 미래를 새로 설계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대비해 선(先) 개헌 후(後) 대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탄핵과 조기 대선, 개헌은 각자 별개의 사안으로 각각의 일정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개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으로, 탄핵이든 사법 위험성이든 과거 문제와 결부시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일이다.

만일 여야 어느 쪽이든 정략적으로 개헌에 접근하게 된다면, 이번 개헌의 기회도 날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역대 정권을 통해 경험했듯이 진정성 없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정략적으로 꺼내 드는 개헌은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윤 대통령 탄핵이 가시화되면서 조기 대선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조기 대선이 구체화될수록 개헌은 후순위로 밀리고, 정치권의 모든 관심이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쏠린다는 점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8명의 대통령이 모두 다 불행했다.

만일 이번에도 아무런 변화와 개선 없이 대선을 치르고 또 5년 동안 여야가 죽기 살기식 싸움만 일삼는다면, 불행한 대통령 한 명 더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국민은 정치권을 향해 더욱 강하게 개헌을 압박해야 한다. 국민의 압박에 못 이겨 대선에 나선 모든 후보가 스스로 임기 단축까지 제안하며, 반드시 개헌하겠다 약속할 정도로 말이다.

제7공화국 
시대 열어야

8년 전처럼 대통령 탄핵과 파면, 조기 대선에서 그치지 말고 이번에는 국민이 힘을 모아 헌법 개정까지 쟁취하는 역사를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다. 권력자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투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이다. 우리의 헌법은 국민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2025년 봄, 국민의 뜻을 담아 개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제7공화국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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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