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재진행형’ 광주교대 채용 사태

총장 말 한마디에 또 재조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돌고 돌아 제자리로.’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지방 교육대학서 일어난 채용 논란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처음 문제 제기 이후 학내서 해결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총장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관심에도 큰 변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유가 뭘까? 왜 사태는 끝나지 않는 걸까?

지난해 5월 광주교육대학교(이하 광주교대)는 2학기 교수 초빙 공고를 올렸다. 1·2차 전형을 거쳐 같은 해 7월 김모씨가 미술교육과 교수로 최종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 직후 2차 전형에 올랐던 5명의 지원자 가운데 1명이 김 교수의 개인전 실적과 채용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일요시사> 1454호 <단독> 광주교대 ‘맞춤형 채용’ 의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42740 기사 참고).

명분도 없고

전공 적부·연구 발표실적·연구 내용 등의 심사 기준서 광주교대가 지원자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수 초빙 분야를 ‘서양화’로 한 당시 미술교육과 채용 전형은 총 250점 만점으로, 전공 적부·연구 발표실적·연구 내용 등이 150점을 차지한다. 평가에 따라 지원자의 당락이 갈릴 수 있는 배점이다. 

광주교대는 채용 과정서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를 평가해 수·우·미·양·가로 구분, 점수를 매긴 후 합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를 최종 합격자로 결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중 전공 적부 심사는 초빙 분야와 지원자의 학위논문·학력·경력 등이 일치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정량평가가 가능한 항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작가에 따르면 일부 심사위원이 김 교수의 전공 적부 심사서 상향 평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교수가 미술교육과 교수 초빙 분야인 서양화를 전공한 것은 석사까지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김 교수에게 주어져야 하는 점수는 ‘미’인데 두 단계 높은 ‘수’를 맞았다는 게 핵심이다.


일정 기간에 진행한 개인전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연구 발표실적‧연구 내용 심사서도 석연찮은 구석이 드러났다. 김 교수는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이 시작되기 전 3개월 동안 개인전을 5번이나 진행했다. 특히 신작이 70% 이상 포함된 전시만 개인전으로 인정된다는 심사 기준을 봤을 때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개인전이 집중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지원자였던 조모 작가는 김 교수의 개인전서 ▲자기 표절 ▲중복 전시 ▲허위 전시 등의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술관에 대관료를 지불하고 진행하는 대관전을, 미술관서 비용을 부담하는 초대전으로 둔갑시킨 의혹도 있다고 덧붙였다.

심사 기준에 따르면 초대전은 대관전에 비해 배점이 높다. 광주교대서 개인전 심사 항목으로 명시하고 있는 ‘현장사진’을 평가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광주교대는 첫 문제 제기 이후 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연구윤리위원회를 가동해 조사에 들어갔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연구의 진실성 검증을 통해 교직원과 연구원, 학생, 교원 신규채용 지원자 등의 연구 부정행위를 판단한다. 윤리규정에 따라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저자 표시 ▲부당한 중복 게재 등을 연구 부정행위로 판단해 제재를 ‘권고’할 수 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예비조사를 진행해 본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외부위원 3명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된 본조사위원회는 ▲개인전 전시 실적 중복 의혹(부당한 중복 게재 혐의) ▲자기 표절 의혹(변조 혐의) ▲현장 사진에는 없는 작품이 도록에 수록됐다는 의혹(위조 혐의) 등 3개 안건을 두고 검증을 진행했다.

본조사위원회는 논의 끝에 ‘임용 취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김 교수가 제출한 7회의 개인전 실적 중 2회의 전시를 ‘부당한 중복 게재’로, 자기 표절 의혹이 있는 작품을 ‘변조’로 판단한 것이다.

두 번 진행했지만 같은 결론
조사위원만 바꿔서 무슨 의미?


‘2023학년도 2학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초빙 공고’에 명시된 ‘지원 자격 등 임용조건에 하자가 발견되거나 제출한 서류에 허위 사실이 발견되거나 학위논문, 연구 실적물 등이 연구윤리에 저촉됐을 때는 심사서 제외되거나 합격 취소 또는 임용 후에도 임용을 취소할 수 있음’이라는 기타 사항에 근거한 결정이다(<일요시사> 1462호 <단독> 광주교대 채용 논란 그 이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42112) 기사 참고). 

지난 2월 연구윤리위원회는 제보자와 김 교수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재조사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진행한 첫 번째 조사의 결과가 유효하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김 교수의 임용을 취소해야 한다는 권고도 그대로 유지됐다. 학교로 공이 넘어간 것이다.

지난해 7월 이후 올해 2월까지 7개월 동안 이어진 논란이 일단락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난 5월 상황이 반전됐다. 허승준 광주교대 총장이 재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광주교대 연구윤리 규정 제24조(결과에 대한 조치) ‘총장은 보고받은 조사 내용·결과의 합리성과 타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연구윤리위원회에 추가적인 조사의 실시 또는 조사와 관련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연구윤리위원회는 이를 수용해 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에 따른 지시로 추정된다.

문제는 재조사 지시 배경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연구윤리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2024. 03. 26.)에 대한 조치’ 문서를 보면 허 총장은 지난 5월20일 ▲피조사자의 민원을 수용해 전면 재조사 실시 ▲조사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본조사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문서에는 ‘피조사자가 제기한 민원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일면 타당하고, 조사 결과가 피조사자의 신분상에 심각한 불이익을 야기한다고 볼 때 조사 결과를 다각도로 면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재조사가 불가피함’이라고 명시돼있다. 또 본조사위원회를 전원 외부 인사로 위촉하라는 내용도 확인된다. 

하지만 조 작가는 연구윤리위원회의 재조사가 결정된 이후 근거를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광주교대 미래교육혁신원 관계자 역시 재조사 배경을 묻는 <일요시사>에 “그 부분까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 말을 아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번 재조사가 앞서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연구윤리위원회와 같은 안건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지난달 10일 예비조사를 진행해 본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교육혁신원 관계자는 “현재 본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외부위원을 섭외하는 중이다. 본조사위원은 7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시기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외부위원을 포함해 9명의 연구윤리위원이 두 번이나 같은 결론을 내린 사안으로 재조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같은 안건으로 진행되는 연구윤리위원회서 앞서 나온 결정과 다른 판단이 나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근거도 없고?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채용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국감을 통해 교육부에 질의가 들어가는 등 정치권도 나섰기 때문이다. 한 의원실은 허 총장이 ▲김 교수의 연구 윤리 부정행위에 대한 임용 취소 권고를 뭉개고 있는 점 ▲명분도 증거도 없이 재조사를 지시한 점 등에 대해 총장을 비롯한 교무처장, 교무팀장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주교대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나 감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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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