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싫어도 만나야 정치다

여야 협치 복원의 길

정치가 타락하면서 국민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고 있다 ‘정치 실종’에 살고 있는 국민이 절망하고 있는 즈음. 22대 국회가 지난 2일 개원식을 여는 동시에 첫 정기국회 막을 올렸다. 해병대원 특검법과 방통위원장 탄핵 등 각종 정쟁이 격화되면서 의원 임기 시작 96일 만에야 지각 개원식을 개최한 것이다.

특검과 탄핵 남발

그동안 민생 챙기기는 뒷전이고 싸움질만 하던 국회의원들은 늑장 개원에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파안대소로 기념촬영까지 했다.

지각 개원식에 이어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지난 1987년 6공화국 출범 이후 대통령의 개원식 첫 불참이다. 국회는 정쟁으로 역대 가장 늦게 개원하고, 현직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했다. 퇴행적인 한국 정치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대통령의 불참은 그동안 거대 야당이 수많은 특검법과 탄핵안으로 대통령을 구석에 몰아넣었기 때문일까?

여야는 역시 ‘네 탓’ 공방이다. 대통령실은 “국회를 정상화하고 초대하는 것이 맞다”고 했고, 야당은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고 맞받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대통령도 참석했으면 국민이 보기에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모두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입법부 존중이라는 대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연금·의료·교육 등 윤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는 야당 주도의 국회 도움 없이는 생각할 수가 없고 정국 구도를 무시한 채 야당과 각 세우기만 전념한다면 국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답답하다.

대통령이 국회를 인정하지 않고 국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경우, 차기 대통령도, 22대 국회도 빈손으로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 권력과 의회 권력의 정면충돌로 치닫는 양상으로 작금의 ‘비정상 국회’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국회의 근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법 폭주라고 할 수 있다. 개원도 하지 않고 정권을 공격하는 입법과 탄핵소추, 청문회를 남발하며 국회가 처리해야 할 직분을 내팽개쳤다.

나아가 22대 여소야대 정국의 국회가 극단의 대치 상황을 보인 데는 국민의힘, 민주당 등 여야 모두 책임이 크다. 절대다수 의석을 지닌 민주당은 새 정부의 정부 조직개편안부터 제동을 거는 등 과도한 입법권을 행사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예고한 상황에서도 쟁점 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거대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앞세우는 불리한 지형 속에서 리더십 위기와 정치력 부족으로 좀처럼 협치의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초보’라고는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유연성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지난 22대 총선 참패 직후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회담한 데 이어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절대 협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야권발 특검·탄핵 남발 우려
정기국회 시작부터 정쟁 몰이


하지만 지난달 29일 회견에선 “지금 국회는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이 대표의 회담 제안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협치를 강조했던 태도에서 크게 후퇴한 발언이었다.

이런 탓에 윤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탄핵을 입에 달고 있다. 이는 거대 의석수를 내세운 횡포에 가깝다. 물론, 협치를 외면한 윤 대통령의 정치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민주당의 근거 없는 ‘계엄령 주장’과 같은 당 전현희 의원의 ‘대통령·김건희 여사에 대한 살인자 발언’ 등은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버렸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은 이유가 없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고 국민은 윤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지지하거나 동의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망신이나 봉변을 당할 일을 걱정한 모양인데, 그 또한 의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수반으로서 윤 대통령은 참을 수 없는 모욕 정치에도 협치와 통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국정 파트너인 야당을 끊임없이 설득해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국민을 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밉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은 국민을 위해선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22대 첫 정기국회 회기 시작과 동시에 야당은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방통위 파행 등의 공세를 바짝 당길 태세다. 하지만 지나치면 역풍도 감수해야 한다. 정부여당과 협의 없는 단독 통과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결국 야당 단독 통과 – 대통령 재의요구 – 재표결 및 폐기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예산안을 놓고 지나친 힘겨루기는 자제해야 한다. 예산 통과가 해를 넘겨 ‘준예산 사태’라도 빚어지면 서민들에게 직격탄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회가 정쟁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국가채무가 1126조원을 넘은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새해예산안 심의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과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의정 갈등 해소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수출은 다행히 회복세를 보이지만 내수가 부진한 탓에 민생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 급증 등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정부여당은 민생 저출생, 의료개혁, 미래 먹거리, 지역 균형 등 6개 분야 170개 주요 법안 추진을 다짐하고 있다. 민주당은 경제 살리기, 나라 바로 세우기, 미래 예비, 인구 대비 등 165개 입법과제를 선정했다.

여야, 정부 모두 말잔치에 그치지 않고 비쟁점 법안들은 우선 처리하는 협치의 정신을 살려야 할 것이다. 연금개혁, 저출생 대응, 의료체제 안정 등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시급한 민생 과제다.

한·이 회담 무슨 얘기?
아쉬움과 기대감 교차


특히, 정부는 677조원에 달하는 새해예산안과 저출생 문제 및 연금개혁 등 민생을 위한 예산과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와 등을 돌려서도 안 된다. 현실은 야당이 압도적 다수인 국회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소야대 정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행 대치 양상을 보이는 여야 간 정쟁은 정기국회의 순조로운 진행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야당이 추진하는 ‘2특검 4국조’가 국회 파행을 부를 수 있다.

2특검(특별검사)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4국조(국정조사)는 채 상병 순직 은폐,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특혜,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 기도, 동해 유전 경제성 부풀리기 의혹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말한다. 여당이 이 모두를 거부하고 있는 만큼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22대 첫 정기국회는 민생에서 시작해 분야별 개혁으로 보폭을 넓혀가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민생과 개혁만큼은 여야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여야 협치의 시작

22대 국회는 개원 이후 지금까지 민생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제로 국회를 만들어 왔다. 밀린 숙제가 많은 만큼 이제 와서 법안 몇 개 뚝딱 해치운다고 당장 ‘일하는 국회’가 될 리는 만무하다.


협치를 내세운 여야 대표들의 당내 조율과 설득도 중요하지만, 특히 또 다른 정치 초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실과 충분히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야 협상을 주도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표 역시 정기국회 첫날부터 ‘예산 시정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외친 것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여야 대표 회담에서 합의한 협의정신을 하루 만에 거스르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탓이다. 정부도 필요한 개혁 과제에 대해 여야 구분 없이 적극적인 설명과 협의·설득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2일 국민의힘 한 대표와 민주당 이 대표의 국회 회담에선 8개 합의사항을 발표됐다. 발표문에 아주 눈길을 끌 만한 획기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22대 국회 개원 이후 줄곧 이전투구만 벌였던 여야 관계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했다고 평가한다.

이날 여야는 민생 공통 공약을 함께 추진할 협의기구를 운영키로 했다. 여야 대표 회동 발표문에 포함된 ▲반도체 및 AI 산업, 국가 기강 전력망 확충을 위한 지원 방안 마련 ▲가계와 소상공인 부채 부담 완화가 포함됐다.

또, ▲육아휴직 확대를 위한 입법 지원 ▲가짜 영상 성범죄 대처 방안 수립 등은 비정치적 이슈였던 만큼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신속히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사안들이다.

11년 만에 열린 야야 대표 회동 합의문과 같이 민생 과제들을 시원히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두 대표는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민생 우선’을 강조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민생정치를 구현할 의지가 있다면, 두 대표는 여야 협의기구에 힘을 실어주고 정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특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의 뜨거운 쟁점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문제는 이번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추후 검토 과제로 남겼다. 다만 이 대표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금투세를 일정 기간 대폭 완화해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 만큼 향후 타결 가능성은 남아 있다.

또 의료 대란과 관련해 여야가 함께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한 것도 사태 해결에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사 파업 초기부터 진작에 여야가 공동 보조를 취했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두 대표가 지구당제 도입을 적극 협의키로 한 것은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지구당 부활 도입의 경우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정당정치 활성화’라는 명분이 있는 반면 구태 정치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채 상병 특검법’과 가장 민생과 밀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에 대해선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한동훈·이재명 대표는 1차 회담의 성과를 기반으로 2차, 3차 회담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

22대 총선 후 4개월여가 지나서야 완성된 여야 새 지도체제가 협치 분위기를 이어갈 열쇠는 다름 아닌 ‘신뢰’다.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회담에서 경험했듯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꺼낸 후 상호 불신만 키우고 돌아서는 빈손 회담이 또 연출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보여주기 식 이벤트로 국민의 짜증만 키울 뿐이다.

이번 여름의 폭염과 고물가, 고금리에 지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기업의 고용·투자 확대를 뒷받침할 대책 마련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만남의 의미가 있다. 이번 여야 대표 회담이 비록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것이 마중물이 돼 민생 협치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민생정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협의를 이어간다면 의외의 결실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여야가 양보와 타협 정신을 통한 협치(協治)의 복원을 기대해 본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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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