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혈세로…’ 진도군 퍼준 7700만원의 비밀

뭘 챙겨주려고 취임 한 달 만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랏돈은 그 쓰임새에 한 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할 때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지방 장애인 관련 센터에 지급된 보조금 7700만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지자체의 수장은 왜 보조금을 주기로 결정했을까?

전남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센터) 사태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시작된 사안은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센터 측은 소송서 패하자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직장 폐쇄를 강행했다. 피해자 박주연씨는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와 센터, 그리고 진도군을 상대로 외로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 없어지고
군은 손 놓고

박씨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 사이 전라남도 인권센터는 박씨를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인정했다. 박씨가 당한 폭언과 욕설, 지속적인 업무 배제 등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점을 두 차례에 걸쳐 확인해준 것이다. 하지만 박씨에게 돌아온 것은 정직 3개월의 징계와 해고 처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박씨의 사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박씨가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라남도 진도군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서도 1심 재판부는 원고(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박씨에 대한 진도군지회의 해고처분은 절차적·실체적 위법이 있다는 판단이다. 

센터 사태에 대한 국가기관의 판단은 박씨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센터 사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씨는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진도군의 소극 행정을 지적했다. 진도군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진도군은 센터 사태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입장이다. 국가기관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와 관련해 꾸준히 진도군의 역할을 주문했다. 박씨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전라남도 인권센터는 2021년 3월 진도군수에게 “센터에 대해 정기적인 지도‧점검을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고 주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10월 역시 진도군수에게 “사회복지시설 내 직원에 대한 괴롭힘 및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해고처분 등으로 볼 여지가 큰 센터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지도·감독의 방법과 관련 적용 법조 등을 면밀히 검토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다”고 결정했다. 

1월에 소급 적용 불가
7월에 6300만원 지급

다만 박씨의 손해배상소송 1심 재판부는 진도군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박씨는 진도군이 센터에 대한 지도·감독 의무를 갖고 있고 전라남도 인권옴부즈맨, 도민인권보호관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할 것을 권고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손해배상소송 1심 판결문을 종합하면 재판부는 진도군의 ▲공문 발송 ▲주의 당부 등의 조치 ▲조치 계획 제출 등의 행위 한 부분을 근거로 적절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박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또 7월(2022년)부터 센터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한 부분도 판결에 작용했다. 

박씨 변호인은 “공문 발송 등의 행위만 보고 진도군이 지도·감독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 것은 재판부서 좁게 해석한 게 아닌가 싶다”며 “공문을 보내는 행위를 넘어 진도군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 실제 센터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씨 역시 진도군의 소극 행정을 지적했다. 국가기관서 한 목소리로 진도군의 역할과 책임을 주문했는데 최소한의 대응으로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구제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는 진도군이 적극적으로 행정력을 발휘한 사례가 뒤늦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진도군서 센터에 지급하는 보조금 문제다. 센터는 매년 전라남도와 진도군으로부터 1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해왔다. 지난해 진도군 예산 내역에 따르면 센터에 배정된 예산은 1억4260만원이다. 전라남도서 2860만원, 진도군서 1억14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공문 발송
소극 행정

하지만 전라남도는 지난해 1월 센터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전라남도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른 문제해결 촉구 통보’ 공문을 보내 “귀 센터서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지 않음에 따라 문제 해결 시까지 도비보조금을 미교부할 예정임을 알려드린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령 조항과 행정처분 여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도군도 지난해 2월 센터에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보조금 교부조건 및 소급적용 불가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 따르면 진도군은 “센터 운영비 등 1개월분 보조금 교부결정 시 보건복지부, 법제처 관련 법 해석 및 검토 후 보조금 추가 교부결정 예정으로 교부 조건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보조금을 조건부로 지급하겠다고 한 것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보조금 교부결정 전 추진한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비 진행이 불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건복지부나 법제처의 관련 법 해석에 따라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어도 그 이전(2022년 2월1일~보조금 교부 결정 전)에 진행된 사업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해당 공문은 지난해 1월26일 센터 관계자에게 안내한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진도군은 이 같은 결정을 뒤집었다. 같은 해 2~6월분의 보조금을 소급 적용해 지급한 것이다. 당시 진도군이 지급한 보조금은 6336만1000원이다. 미리 지급한 1380만원을 합치면 센터에 지급된 보조금은 7716만1000원이다.

센터는 해당 보조금을 각각 지난해 1월26일(1380만원), 7월29일(6336만1000원)에 수령했다.

돈 줄 때는
적극 행정?

<일요시사>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센터 측은 이 중 총 7700만7463원을 지출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부분은 ‘인건비’였다. 센터장을 포함한 직원 3명에게 총 5113만4930원을 지급했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직원 1명당 약 283만원씩 지급받은 셈이다. 


인건비 외에 ▲제수당(기본급을 제외한 모든 수당) 600만1680원 ▲퇴직 적립금 441만6396원 ▲사회보험 부담금 572만6830원 ▲수용비 및 수수료 24만3570원 ▲공공요금 84만1257원 ▲제세공과금 172만5890원 ▲차량비 695만6910원 등의 항목에 지출했다. 차량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직원과 관련된 비용이다. 

진도군이 센터 보조금을 소급 적용해 한꺼번에 지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진도군은 지난달 <일요시사>의 질의에 “전라남도서 센터에 대한 도비 보조금이 미교부 결정되면서 진도군은 자체 예산만으로 운영비 지원이 가능한지 변호사 자문을 구했는데 해석이 각각 달라 명확한 판단을 위해 법제처에 법률해석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이어 “상급기관의 법령 해석에 걸리는 시간이 장기간 소요되면서 특별한 행정처분 없이 장애인을 위한 공익적 기능을 가진 시설을 운영하고도(센터 관계자가) 갑질의 가해자일지라도 객관적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다투고 있는 상황서 보조금 미교부에 따른 피해를 센터 종사자가 부담하는 부적정을 해소하려 했다”고 밝혔다.

진도군의 설명은 이후 행보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7월부터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진도군의 설명대로 공익적 기능을 가진 시설이라 센터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서도 운영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다면 7월부터는 왜 딱 끊었냐는 것이다. 

보조금 70% 인건비로
“공지 안하고 진행해서”


진도군은 “이용자 대부분이 중증장애인이므로 센터의 사업과 장애인콜택시, 교통약자 바우처택시와 사업 내용이 유사해 대체 활용이 가능하다. 또 사업의 동시 추진에 따른 효과성 저하와 중복 지출로 인한 예산 낭비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서 직장 내 갑질이라는 공익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기 때문에 (2022년)7월분부터는 보조금을 일체 지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대체 사업도 있고 센터 내부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보조금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6개월분을 더 지급한 뒤 보조금을 끊은 것만 제외하면 전라남도의 도비 미교부 배경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진도군의 행보를 두고 ‘때늦은 적극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씨는 “3년 동안 국가기관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는데 진도군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조금을 끊는 과정에서야 직장 내 괴롭힘을 언급했다. 진도군의 설명대로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뜻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진도군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비쳤을 때 센터서 집회를 갖는 등 항의한 적 있다. 그 당시 집회 이후 보조금이 소급 적용됐다. 내가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 촉구 등 진도군 앞에서 집회한 게 몇 번인데 진도군은 어떤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일각에선 진도군의 보조금 소급 적용이 센터 직원에 대한 ‘보답’ 차원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군수가 취임 이후 한 달 만에 보조금 소급 적용을 결정하면서 그 이면에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던 것.

센터 관계자가 선거 과정서 김 군수를 지원했고 김 군수가 당선 이후 보조금을 소급 적용해 우회로 대가를 지급했다는 의혹이다. 

보조금의 70%가량이 인건비로 지급되는 지출 구조상 소급 적용은 센터 직원에게 득이 될 수밖에 없다. 김 군수가 센터 직원을 챙겨주기 위해 무리하게 소급 적용을 지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센터는 지난해 7월 이후 운영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가 지난 2월 ‘직장 폐쇄’라는 초유의 행보를 보였다. 

3년 만에
조치했나?

김 군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인건비를 챙겨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선거 관련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 사람들 잘 알지도 못한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보조금을 끊을 당시 센터에 ‘운행 중지’ 공지를 하지 않고 돈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공지를 하고 돈을 끊어야지 그냥 뚝 끊어버리면 어쩌나”며 “그래서 그 부분은 담당부서에서 잘못했다고 판단해 (지난해)7월에 취임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한 것이다. (지난해)7월 보조금을 끊기 전에는 먼저 공지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