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보도 이후…4년 만에 복직 박주연씨

문턱 넘었더니 또 다른 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년 만에야 제자리를 찾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서 시작된 걸음은 전국을 오갔다. 평범했던 한 사람이 투사로 변신해 누빈 현장은 이미 셀 수 없는 정도에 달했다. 법정 공방이 계속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쳤고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럼에도 박주연씨는 멈추지 않았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이동지원과 안내 보조 등 생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도에 지부를 두고 다시 지부가 시·군에 둔 지회서 운영한다. 지회장이 센터장을 맡는 경우가 많으며 운영비는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한다.

끝나지 않은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장애인이동센터)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의 진도군지회서 운영한다. 운영비는 전남도와 진도군서 일정 정도씩 부담한다. 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센터장 1명, 상담 업무와 차량 예약, 회계 등을 담당하는 사무원 1명, 운전을 맡는 운전원 1명 등 일반적으로 3명이 한 팀이다. 

박주연씨는 2015년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입사했다. 만일 박씨가 현재까지 무탈하게 일했다면 올해로 10년차가 된다. 하지만 박씨의 직장 생활은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폭언, 욕설 등 직장 내 괴롭힘이 계속됐고 참다못한 박씨는 2019년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아갔다. 진정한 고난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도 인권센터는 박씨의 상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두 차례에 걸쳐 판단했다. 그러면서 진도군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에 관리·감독 강화, 재발방지 대책 등을 주문했다. 하지만 박씨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데 이어 결국 해고당했다. 


여기에 보조금을 유용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박씨의 마음을 다잡게 했던 건 돈이었다. 박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여기서 멈추면 저는 보조금을 횡령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싸웠다.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박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손해배상청구‧해고무효 소송을 진행하는 등 전선을 넓혔다. 국가위원회는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을 권고했고 법원은 잇따라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와 갈등을 빚으면서 몸과 마음이 전부 망가졌다. 이 과정서 발병한 ‘적응장애’가 업무상 질병이라는 판정도 받았다. 

박씨는 처음부터 핸디캡을 안고 시작한 상황이었다. 박씨가 근무하던 장애인이동센터는 이른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곳이다. 박씨가 해고되기 직전까지 센터장 1명, 사무원 1명, 운전원 2명 등 총 4명으로 운영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오롯이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해고, 가산수당, 노동시간 등의 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며 사업주가 직원과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으면 근로기준법 준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2019년 7월부터 시행 중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조차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예외다.

노동계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을 구제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민주노총은 22대 국회 개원 첫날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 3대 입법 과제 추진을 요구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배제는 한국 노동의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만들어내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씨 역시 법 개정을 촉구했다. 인권기관, 법원 등에서 모두 박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박씨는 자신을 부르는 노동현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4일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5인 미만 직장인 성토대회 아우성’에도 참가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박씨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73조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에 대해 왜 차별받아야 하는 건가”라며 “이런 차별은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며 국가가 근로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 범죄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울먹였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고발
노동현장 누비며 목소리 냈다
 

또 “이제라도 5인 미만이라는 제도적인 허점을 개선하고 차별 없는 직장서 근로자와 사용자가 함께 인권을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줄 것을 거듭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박씨가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와 갈등을 빚는 과정서 가장 분노한 부분은 진도군의 대응이었다. 전남도 인권센터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장애인이동센터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태에 대해 진도군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진도군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부분의 책임을 운영 주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로 넘겼다.

하지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운영비가 진도군의 보조금서 나오는 만큼 관리·감독 역할은 물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씨가 진행한 손해배상청구·해고무효 소송 판결문 곳곳에도 진도군의 장애인이동센터의 관리·감독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결에서는 진도군의 방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진도군이 장애인이동센터 사건과 관련해 공문 발송 등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관리·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골자다.

그럼에도 박씨는 “진도군은 선택적으로 개입했다. 책임질 상황이 오면 ‘개입할 수 없다’고 뒷짐을 지면서도 또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를 울렸다”고 주장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지회, 진도군 등이 박씨 사건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장애인이동센터는 한 차례 폐쇄됐다. 전남도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보조금을 끊겠다고 했고 진도군 역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

그사이 진도군이 보조금 소급 지급 문제를 두고 갈팡질팡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모든 우여곡절을 넘고 넘어 박씨는 지난 6월3일, 다시 장애인이동센터에 출근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 등과 박씨가 밀고 당기는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일단 박씨는 다시 센터 문턱을 넘은 상태다.

2019년 1월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된 시기로 따지면 5년, 2020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이후로는 4년 만이다.


박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곳에 돌아오기까지 숱한 싸움을 거쳤기에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든, 센터 운영 면에서든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투쟁의 시간

일단 해고 기간 동안 받지 못한 임금 문제를 비롯해 엉성한 복직 절차 등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장애인이동센터가 한 차례 폐쇄됐다가 운영이 재개되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현재 장애인이동센터서 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씨뿐이라 업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첩첩산중을 넘은 뒤 또 다른 산을 만난 격이지만 “그래도 이 자리 자체가 내게 굉장히 절실했고 소중했기에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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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