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해진 안철수, 보선행? 대선행?

보선 완행이냐 대선 직행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이 국민의당과 같은 실용정치의 노선을 타면서 야권 재편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정치권에선 재편 이후 안철수 대표의 서울시장행도 점쳐진다. 양당은 과연 내년 재보궐선거 전에 손을 잡을 수 있을까.
 

▲ ▲악수 나누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최근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이 ‘중도로의 확장’을 선포하면서 국민의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의 노선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은 탈진영적 중도정치를 지향한다. 특정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일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탈 진영적
중도정치

안 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당시 국민의당은 양당체제 타파를 내세우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중도 세력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후 정치권에는 이례적인 ‘녹색돌풍’이 불었다. 국민의당은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신생정당이 원내 38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안 대표는 2017년 대선서 패배했고, 2018년 바른정당과의 합당 전후로는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같은 해 그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3위로 낙선한 뒤,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창업주’가 떠난 바른미래당 내부에선 안철수계·유승민계·손학규계 간의 당권 싸움이 계속됐다. 제3지대에 대한 민심의 실망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안 대표는 다시 녹색돌풍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21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당명은 국민의당으로, 노선 역시 중도실용으로 정했다. 정치권에서는 녹색돌풍이 ‘오렌지돌풍’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안 대표 역시 국민의당의 낮은 지지율에 쉽게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2016년에도 3월 초까지 한국갤럽 지지율이 8% 나왔고 다른 여론조사기관에서는 2%, 3%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것이 중도층, 무당층의 특성”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21대 총선은 지난 총선과 달랐다. 양 진영의 극단적 대립이 이어졌고, 중도 세력이 설 곳은 없었다. 총선 당시 통합당에 비호감을 느낀 중도층은 국민의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을 택했다.

통합당 중도 확장 국민의당 노선 겹쳐
양당 ‘정책공조’ 넘어 선거연대까지?

무엇보다 과거 국민의당의 대표지지 세력이었던 호남 민심이 이탈한 상태였다. 지역 기반이 없는 정당은 현 정치구도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결국 국민의당은 정당 득표율 6.8%를 기록하면서, 원내 비례대표 3석에 그쳤다. 이는 당초 당이 목표했던 20%에 크게 미달한 성적이었다.

안 대표의 긴 정치 공백과 잦은 창당에 의한 피로감이 국민의당 흥행 실패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안 대표의 계속된 탈당과 창당은 그의 최대 강점이었던 신선함과 참신함을 앗아갔다. 아울러 그의 메시지나 정책이 기존 정당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목됐다.

총선 전 당내에선 안 대표의 영향력이 이전과 다름을 감지하고, 선거연대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이 야권 대열에 합류해야 21대 총선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 ▲발언하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하지만 안 대표는 독자노선 의지를 꺾지 않았다. 안철수계 인물들의 통합당행이 계속됐지만, 그는 “어떤 길을 가시든지 응원하고 다시 개혁의 큰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씁쓸한 내색을 감췄다.

하지만 안 대표가 2월 귀국 직후부터 21대 총선까지 내세운 메세지는 일관적였다. 그는 중도실용 정치를 강조하며, 편을 가르는 정치판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국민의당은 비록 3석에 그쳤지만, 안 대표에게 선거만을 위한 연대와 통합은 없었다.

외로운 중도 노선을 걷고자 한 그의 약속은 지켜졌다.

다만 그는 범보수 세력들과 정책연대를 이어왔다. ‘국민 미래포럼’이 대표적인 공동 연구모임이다. 지난 6월부터 국민의당은 통합당과 이를 진행하며, 당 차원의 보폭을 맞추고 있다.

긴 공백
잦은 창당

일각에선 포럼이 야권 연대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포럼서 ‘국민의당을 포함한 보수 야당’ ‘우리 보수 야당’이라는 표현으로 양당의 정책 노선이 동일함을 시사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오는 9월, 임시국회에 앞서 당의 방향성을 담은 ‘37대 정책’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이 앞서 ‘10대 정책’을 내놓은 만큼, 양당은 9월 정기국회 중 함께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권 원내대표는 “지금은 수해 상황으로 미뤄지고 있지만 정책 연대와 관련해 통합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와 미팅을 해왔다”며 앞으로 정책 공조를 이어갈 예정임을 밝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좌클릭 행보 덕에 야권 재편의 시기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80석의 슈퍼 여당의 거침없는 행보가 범야권을 위협하고 있는데다, 김 위원장의 관점과 국민의당의 노선이 비슷해 범야권의 통합행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해석이다.

통합당의 좌클릭 역시 안 대표로서는 환영할 대목이다. 지금까지 통합당의 극우적 색채는 통합당과의 합당에 부담으로 작용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최근 통합당은 극우세력과는 선을 긋고 중도층 끌어안기에 나섰다.

통합당은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꼽히는 8·15 광화문 집회의 태극기부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김 위원장은 5·18 묘역서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극우와의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문병희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통합당은 기본소득제 도입을 앞세운 새로운 정강·정책을 공개했다.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경제민주화, 양성평등과 같은 어젠다를 내세우며, 중도로의 확장에 무게를 실었다.

권 원내대표 역시 김종인 비대위의 좌클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통합당을 실용정당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것을 저희가 감지했다. 통합당과 손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인 연대 메시지를 냈다.

정부여당 향해
공격수위 높여

이미 통합당에는 안철수계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돼있는 만큼 양당의 연대 흐름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안 대표의 측근이었던 김수민 전 의원은 당의 홍보본부장을 맡아 당명 개정 작업 등 당의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김삼화 의원 역시 통합당의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으로 임명된 상태다.

양당의 기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금지 및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이다. 두 당은 탄핵소추안을 공동으로 결의해 밀어 붙였다. 이 외에도수해로 인한 산사태 피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태양광 사업과 관련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안 대표가 최근 정부여당을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면서 통합당보다 더 강경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 대표는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크게 상처받은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신문도 안 보고 여론 청취도 안 하느냐”며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서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통합당은 외연확장을 위해 국민의당에 계속 ‘러브콜’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안 대표가 내년 4월 재보궐선거나 2022 대선서 통합당과 손을 잡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중도 실용 이미지의 국민의당이 가지는 상징성은 3석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책을 통한 ‘좌클릭’보다는, 국민의당과 합쳐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는 분석이다.

‘좌클릭’ 빨라진 야권 개편
안, 이어지는 러브콜 응답할까?

정치권에선 통합당과 국민의당이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 합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내년 재보궐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다음 대선까지 승기를 이어가기 위해 양당이 연대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양당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됐다.

국민의당에게는 ‘원맨 정당’이라는 평가로부터 벗어나 다음 대선까지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다. 통합당으로서는 중도 이미지가 강한 안 대표가 매력적이다. 통합당 총선백서특위 부위원장을 지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대표가 통합당의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면 결과를 떠나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서 한 번 낙선을 경험했던 만큼 2022 대선후보로 직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울러 당장 선거보다는 혁신 경쟁과 야권 파이를 키우는 작업을 강조해왔다. 당이 새로운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한 후, 야권이 제대로 혁신할 때 비로소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

안 대표는 야권의 중도화를 이뤄, 합리적 개혁 보수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있다. 그렇게 야권 전체의 파이가 커져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안 대표의 영향력은 이전 같지 않다. 안 대표가 내놓는 정책들은 거대 양당의 물살에 묻히고 있다. 여전히 안 대표의 정치 노선에 회의심을 갖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안 대표가 지금까지 이어진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과거와 전혀 다른 안철수를 보여줄 시기가 된 것이다.

양당의 주도권 싸움 역시 안 대표에게 큰 과제다.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계속해 지지부진 하다면, 합당 과정 속 그가 주도권 싸움서 밀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선거 때마다 후보로 꼽히는 안 대표지만, 현재와 같이 당 지지율이 5% 내외를 유지한다면 만년 후보로만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현 시점서 안 대표에게 필요한 건 이슈 선점과 메시지 홍보다. 체급 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도 필요하다. 다만 이는 거대 양당의 어젠다에 묻힐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당이 SNS, 유튜브 등 국민들과의 소통창구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안 대표가 최근 진중권 전 대표와 유튜브 채널서 정부·여당의 문화를 공개 비판한 영상이 크게 이슈가 된 것도 좋은 예다.

각자도생?
결국 연대?

안 대표는 야권의 혁신적 재편이 이뤄진 후에 시장 선거를 바라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지금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대선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든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울 때다. 그게 가장 중요하기에 그에 전념하려 한다. 다시 말해 민심을 얻는 게 먼저다. 선거부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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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