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배우 이정현이 행복감을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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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 유튜브 채널의 진행자는 이정현을 ‘와 언냐’라고 불렀다. 20년전 부채를 들고 한 손가락을 마이크로 사용하며 무대를 지배한 테크노 여전사였던 가수 이정현. 숱한 세월을 돌고 돌아 배우 이정현은 영화 <반도>서 좀비와 싸우는 여전사로 변신했다. <반도>에 입성하기까지 고점과 저점을 롤러코스터 타듯 반복한 이정현의 배우로서의 태도를 엿보았다.

장선우 감독의 연출작 영화 <꽃잎>으로 데뷔한 이정현은 무대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여전히 유쾌하고 강렬한 음악들이 이정현을 통해 불렸다. 1020 사이서 ‘탑골 테크노 여전사’라 불릴 정도로 그의 퍼포먼스는 세대를 뛰어넘는다. 

그런 그녀에게도 침체기가 있었다. 한동안 활동이 미비했다. 그러다 우연히 박찬욱 감독을 알게 됐고, 박 감독의 형인 박찬경 감독의 연출작 <파란만장>에 출연하면서 다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범죄소녀>와 <명량>에 이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연기자로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배우의 궤도에 오른 이정현의 선택은 <반도>였다. 

<부산행> 이후 4년, 폐허가 된 한국서 두 딸과 김 노인(권해효 분)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민정을 연기했다. 맑고 귀여운 이정현과는 다른 여전사 이미지. 평소 얼굴과 전혀 다른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이정현의 선택은 성공적인 결과로 보인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연예계 생활을 했다는 그의 배우관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가 흥행 중이다.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 코로나 때문에 관객들이 올까라는 생각을 했고, 또 이렇게 개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랐어요. 극장이 활기를 찾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제작이 중단된 영화도 많아서 앞으로 영화를 못 찍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됐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면?

▲ 즐거운 오락영화. 여름에 가족단위 혹은 친구들이랑 오셔서 재밌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일반관도 좋지만, 특수관 관람을 추천해요. ‘작년에 영화 <반도> 봤는데’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추억으로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 <반도> 내에 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전사가 없다. 민정에 대한 전사를 어떻게 썼나?

▲ 그렇게 많은 전사를 쓰지는 않았어요. 짐승 같은 의지력을 발휘하면서 변했다고 생각해요. 좀비들이 그렇게 들끓고, 미쳐버린 군부대서 살아남은 사람이잖아요. 한정된 공간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충분히 매섭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초반부에 등장하는 남편이 너무 못생겼던데.


▲저는 그런 스타일 좋아해요. 남성스럽고요. 엄청난 학벌을 가진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감독님은 제 남편 캐스팅하고 딱이지 않냐며 좋아했어요. 저도 좋았고요. 

- 원래 좀비 영화를 좋아하나?

▲ <월드워 Z>나 <새벽의 저주>와 같은 좀비물을 좋아했어요. 

- <반도>는 좀빔물이라기 보다는 체험형 액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 장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 기존 좀비 영화와는 다른 질감이에요. <부산행> 4년 뒤 이야기잖아요. 인간의 변화된 모습을 그리는 것이 신기했어요. 실제로 궁지에 몰리면 사람이 그렇게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4년 동안 지저분해지고 더 무서워지고요. 촬영 현장서 너무 신기해서, 한 시간 일찍 가서 분장하는 것도 지켜보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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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스팅 전에 연상호 감독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 감독님의 애니메이션 팬이었어요. <부산행>도 정말 좋아했고요. 먼저 연락와서 정말 기뻤어요. 한 번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님이었어요. 사실 카체이싱 같은 경우는 ‘어떻게 촬영하지?’ 싶었는데, 이미 CG 작업을 다 해놓으셨더라고요. 굉장히 안전하고 빠르게 큰 에너지 소모 없이 한 번에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으셨어요. 액션도 하나도 안 다치고요. 한국 영화 시스템에 정말 많이 놀랐어요. 

- 모성애가 강조된 부분이 있다. 그것이 후반부 신파로 간다. 스토리 구조가 단순하다는 의견도 많은데. 

▲ 정확한 의도는 감독님이 아실 것 같아요. 모성애로 인해 전투력이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아이 설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강인해지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에 아이가 없었다면, 631부대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게 이해가 됐어요. 

- 강동원 배우는 액션 중에 좀비들의 침이 얼굴에 떨어져서 힘들었다고 하던데, 좀비 액션 중에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 저는 좀비를 계속 쳐내는 액션이었어요. 침이 튀지도 않았고요. 좀비분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편했어요. 

- 아역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10대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그 때와 지금 아역배우의 현장은 어떻게 차이가 있나?


▲ 정말 많이 달라졌죠. 제가 연기할 때만 해도 필름 시대여서 NG가 나면 난리도 아니었어요. 감독님도 정말 무서웠고요. 요즘에는 12시간 안에 다 촬영을 해야 되잖아요. 그 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무한대로 기다린 적도 많았어요. 

가수하다가 15년 만에 영화 현장에 돌아왔는데, 현장 편집이라는 것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게 현장서 편집이 안 되니,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사라졌죠. 

-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면서 활약했다. 최근에 싹쓰리와 같은 복고 스타들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탑골 레이디가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무대에 다시 설 계획은 없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무대에 설 계획은 있어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단체로 들어와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새 앨범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좋은 기회 있으면 할 수도 있죠. 

- 탑골 레이디가가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나?

▲ 어쩜 그렇게 센스가 있죠?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댓글 보면 정말 재밌고, 신기하고, 이렇게 뒤늦게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돼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어린 팬들도 많이 생겼어요. 


- KBS2 <편스토랑>서 보면 요리를 정말 잘 하더라. 4구를 동시에 돌리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요리를 잘하나. 

▲ 저희가 대가족이에요. 가족이 모이면 스무명씩 모여요. 엄마는 예전부터 음식 만들고 주는 걸 좋아했어요. 김장 때도 3~400 포기씩 해서 남들 주고 그랬어요. 왜 저렇게 고생해서 살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맛있는 음식해서 친구들과 수다떨고 하는 게 큰 행복이었어요. 제가 우여곡절이 좀 있었잖아요. 탑을 찍었다가 내려갔다가, 한류시장서 정점 찍었다가 다시 내려가고 그랬는데요. 정서적으로 힘들었었어요. 그러다 취미를 찾은 거죠. 목요일이면 <한국인의 밥상> 보는 게 낙이었어요. 

- 박찬욱 감독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하 <앨리스>)도 박 감독의 추천 때문이라고. 

▲ <앨리스>는 제가 노개런티만 찍으니까, 소속사서 미리 거절했던 작품이에요. 한두 달 정도 있다가 박찬욱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건네주셨어요. 캐릭터가 잘 맞는다고요. 그 영화는 제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잖아요. 배우로서 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였죠. 

- <반도>는 대자본 멀티캐스팅이고, <앨리스>는 저예산 단독 캐스팅이다. 두 가지 작업에 차이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둘 다 재밌어요. 뭐 하나는 못 뽑겠어요. <반도> 촬영장 가서 다른 배우들 연기하는 것 보는 것도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나오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CG 작업을 통해 나온다는게 신기한 경험이었죠. <앨리스>는 제작비가 7000만원이었어요. 그 작품에는 제 의사도 많이 들어갔고요. 감독도 신인이었고, 스태프들은 재능기부였어요. 그때 열기가 좋았어요. 별다른 생각없이 시나리오 하나로 모여서 하는 에너지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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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자로서 궤를 타기까지 박 감독의 영향이 꽤 크다고 여겨지는데, 이정현에게 박찬욱은 어떤 사람인가. 

▲ 제가 배우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자신감을 많이 주신 분이에요. 제가 연기를 안 하는지 아셨대요. 작품이 안 들어와서 못한 거였는데. 연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파란만장>을 주셨어요. 그 이후로 많은 작품을 추천해주셨고, 제가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면 상의를 하는 정신적인 멘토예요. 저 결혼할 때 감독님이 축사도 해주셨어요. 저로서는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죠. 

-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은?

▲ 정말 따뜻한 사람이에요. 디렉팅도 명확하고요. 스태프들을 조용히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으시죠. 커트 계산도 정말 빠르고요.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박찬욱 감독님이 어른스러운 멘토면, 연 감독님은 친구 같은 멘토예요. 

- 연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렸는데, 이정현의 40대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나이가 있어서 애기도 낳아야 하는데, 내년에는 아이도 낳고 싶어요. 40대는 안정적인 배우로 꾸준히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야망을 가지면 너무 힘들어요. 된 적도 없고요. 뭔가 기대를 해서 된 적이 없어요. 내려놓으니까 많이 행복해졌어요. 잘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정서에 좋더라고요. 또 <파란만장>을 찍으면서 많이 내려놨어요. 어렸을 때는 에너지도 넘치고 작은 일에 감동하고 쉽게 들뜨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기복이 없어졌어요. 지금 너무 행복한 거 같아요. 

- 마지막으로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 윤가은 감독님이에요. 정말 좋아해요. <우리들>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꼭 이렇게 얘기하면 제안이 안 들어오던데. 계획대로 항상 안 되니까요. <우리들>도 좋았는데 사실 <콩나물>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한 번은 그 따뜻한 영화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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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