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5.04 11:18
전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과 문화의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 판소리의 고장이며, 유네스코 음식 창의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체험을 즐기며 알차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에 전주만한 곳이 있을까?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옥마을부터 가지만, 이번에는 국립무형유산원으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2014년에 문을 열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먼저 무형 유산에 대해 알아보자. 유네스코는 무형 문화유산보호협약 2조에서 무형 문화유산을 ‘관습, 표현, 표상, 지식 그리고 이를 전달하는 도구, 사물, 공예품, 문화 공간을 모두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구전 전통과 표현, 공연 예술, 의식, 축제, 전통 공예 기술 등이 무형 유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 문화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택견, 아리랑, 김장 문화, 농악 등이 있다. 무형 문화유산은? 동서학동에 자리한 국립무형유산원은 이 무형 유산을 정리·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공간이다. 국립무형유산원에 들어선 이들은 예상보다 큰 규모에 깜짝 놀란다. 건물은
금강이 서해를 만나 어우러지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솔숲에서 한결 순해지는 서천 장항은 바다를 만나고, 누리고, 배우는 여행지다. 장항 앞 바다가 기벌포해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항스카이워크와 장항송림산림욕장 곁에 둥지를 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덕분이다. 여기에 서천 명품 한산모시를 감상하고, 전 세계 5대 기후대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국립생태원, 동백꽃 위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마량리 동백나무 숲까지 더하면 여행길이 한층 풍성해진다. 바다+질문+공간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우리나라 해양 생물자원에 대한 수집, 보존·관리, 연구, 전시, 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그 가운데 일반 관람객을 위한 전시 공간이 ‘씨큐리움’이다. 바다(Sea), 질문(Question), 공간(Rium)의 합성어로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는 전시·교육 공간’이라는 의미다. 씨큐리움에는 7000점이 넘는 해양 생물 표본이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 유리로 만든 타워형 씨드 뱅크(Seed Bank)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바다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 표본 5000여 점
겨울이면 바빠지는 곳이 스키장이다. 하얀 설원을 달리고 싶은 사람들은 주말이 기다려지게 마련이다. 정선 겨울 여행은 스키장의 신나고 즐거운 시간과 더불어 한때 스키장보다 북적이고 휘황찬란하던 탄광의 흔적을 만나는 시간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하이원리조트 입구에 사북석탄유물보존관(탄광문화관광촌)이 있다. 정선은 1950 년대 초 함백탄광이 문을 연 뒤 1960년대 초부터 사북탄좌, 원동탄좌에 이어 1963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영업을 시작했다. 석탄 산업은 1966년 태백선이 고한까지 개통되고, 사람이 몰리면서 호황을 누렸다. 그중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23개 광구(3609ha)를 소유한 동양 최대 민영 탄광으로, 1985년에는 전국 석탄 생산량의 13%를 차지했고, 재직 광원만 6300명에 이르며 정점을 찍었다. 사북석탄유물보존관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48m 수직갱 타워가 보인다. 수갱 타워 혹은 권양기라 불리는데, 지상과 지하 갱도로 광부와 석탄을 옮기던 시설이다. 전시관 입구에는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라는 투박한 글씨와 환하게 웃는 광부의 얼굴 그림이 있다. 사북석탄유물보존관은 옛 동원탄좌의 행정동 건물 전체가 전시관이다. 검고
경북 영천은 가족과 함께할 때 진가를 보여주는 여행지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보현산천문과학관부터 가족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시안미술관, 말을 타고 숲을 거닐어보는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까지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시안미술관. 화산면에 자리한 시안미술관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창작 공간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시안미술관을 ‘가족끼리 협동하는 장소’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하는 장소’라고 표현할 정도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시안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2004년. 운동장은 넓은 잔디밭으로 변신했다. 예술성 있는 작품에 관람객의 참여가 더해져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탄생했다. 햇살 좋은 날이면 삼삼오오 잔디밭에 모여 피크닉을 즐긴다. 누구나 참여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웃는 얼굴 수백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크레용과 아크릴물감으로 웃는 얼굴을 그리면, 미술관 벽면에 붙여주는 스마일 프로젝트다. 이처럼 5분 만에 공동 작품에 참여할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본격적인 체험을 즐기기 위해서는 주말에 찾는 것이
태백에는 50여개 광산이 있었다. 태백에서도 철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탄광 마을로, 한때 인구가 5만 명에 이르는 도시였다. 태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석탄이다. 한때 태백은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톤을 생산했다.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태백에는 50여개 광산이 있었다. 당시 철암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 철암역. 석탄으로 번성하던 시절을 웅변하듯 4층 건물이 우뚝 섰다. 석탄산업의 상징 철암역은 1940년 묵호-철암 구간 철도가 개통하면서 영업을 개시했다. 현재 역사는 1985년에 지은 것이다. 장성탄전서 생산된 무연탄 수송이 주 업무였지만,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무연탄과 경석을 주로 수송한다. 철암역은 역사보다 그 옆에 자리한 선탄장이 더 유명하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70년이 넘는 역사가 녹아든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상징이다. 하천 바닥에 지지대 위로 세운 ‘까치발 건물’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기의 이국적 풍경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 시설이자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시설로 평가받아,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됐
간이역을 찾아가는 여행은 느림을 즐기는 여정이다. KTX는커녕 새마을호도 서지 않는 호남선의 간이역 연산역을 찾아간다. 빠르게 지나칠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자그마한 역에서 발견한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했다. 자세히, 오래 보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하루 10회 정차 논산 연산역은 상·하행을 포함, 하루에 10회 정차한다. 대전과 논산 사이에 있어 대전으로 통학하거나 장사하러 가는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타고 다닌 적도 있었다. 지금은 도시로 떠나고, 자동차로 다니느라 기차 타러 올 사람이 없다. 덕분에 연산역의 시간은 자연의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흐른다. 연산역의 재미는 두 가지다. 등록문화재 48호로 지정된 급수탑을 구경하고, 철도 문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연산역 급수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급수탑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다른 지역 급수탑은 보통 콘크리트로 만든 데 반해, 연산역 급수탑은 화강석을 쌓고 철제 물탱크를 얹었다. 1911년 호남선 대전-강경 구간이 개통하면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급수탑을 세웠으니, 100년이 지났
장항선이 지나는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간이역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오랜 세월 그 소임을 다하고 은퇴한 임피역이다. 1924년 군산선 간이역으로 문을 연 임피역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다. 임피·서수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으로 운반,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거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합실 벽의 안내문이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힘들게 수확한 쌀을 빼앗긴 농민들은 깻묵과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달랬고, 역사 옆 미곡 창고에서 노동자들이 배고픔을 참고 쌀가마니를 실어 날랐다.” 실적이 좋았는지 임피역은 1936년에 보통역으로 승격하고, 역사도 새롭게 지었다. 이때 지은 건물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지금에 이른다. 임피역사는 화장실까지 포함해 2동으로, 목조건물 벽면은 모르타르로 마감했고 맞배집 형태다. 정면 출입구와 반대편 개찰구 위에 직선으로 박공을 설치하고, 철로 변 대합실 출입구 상단에 차양을 달아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대합실과 사무실 사이에는 난방시설을 갖추고, 지붕에 굴뚝도 만들었다. 수탈의 역사 임피역은 서양 간이역과 일본 가옥 양식을 결합한 역사적·건
오래된 역에는 지난한 세월이 묻어난다. 빛바랜 낙엽 위로 사연이 겹겹이 쌓이고, 옛 역사와 녹슨 철길에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자리한 구둔역은 설립 80년을 목전에 뒀다. 퇴역한 노병처럼 주름 깊은 은행나무 한 그루, 엔진이 식은 기관차와 객차 한 량, 역 앞을 서성이는 개 한 마리가 구둔역의 친구다. 구둔역은 간이역의 흔적을 뒤로한 채 폐역이라는 명패를 달고 겨울 벌판에 섰다. 80년을 목전에 1940년 4월, 중앙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연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지켜봤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몇 차례 지나가던 간이역은 청량리-원주 간 중앙선 복선화 사업으로 종전 노선이 변경되면서 2012년 폐역의 수순을 밟았다. 최근에는 추억의 간이역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첫사랑이 담긴 촬영지로 세간에 알려졌다. 목조 양식의 구둔역은 역사와 광장, 철로, 승강장까지 등록문화재 296호로 지정됐다.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 승강장에 서성거리다 철길을 걷는 동선이 모두 근대문화를 더듬는 행위와 연결된다. 천장이 나무로 된 대합실, 사무실, 숙직실 등이 남
경주에 ‘감포 깍지길’이 있다. 감포항을 중심으로 해안과 마을 등을 잇는 길이다. 이 가운데 4구간 ‘해국길’은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한 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600m 정도로 길지 않지만, 이름처럼 벽마다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골목은 감포항 앞에 자리한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벽에 조그만 간판이 있고, 주변 상인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국 골목-해국 계단-옛 건물 지하 창고-다물은집-한천탕-우물샘-소나무집 순으로 걸으면 된다. 골목은 밖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좁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에, 몸을 옆으로 돌려야 통과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길바닥에는 거친 시멘트를 발랐다. 골목 양옆으로 작은 집들이 있는데,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설 법한 대문이 달렸고 창문은 도화지 만하다. 골목을 따라가는 벽마다 해국이 그려졌다. 색깔이며 모양이 전부 다르다. 하얀 해국도 있고, 보랏빛을 뽐내는 해국도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색깔이 바랜 해국도 눈에 띈다.
수원 행궁동은 수원 화성 일대의 장안동, 신풍동, 북수동, 남창동, 매향동, 남수동, 지수동 등 12개 법정동을 일컫는 이름이다. 220여년 전 화성이 축성될 당시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 행궁동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지만,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엄격한 개발 규제로 시간이 멈춘 듯 쇠락했다. 이런 행궁동에 주민, 시민 단체,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벽화를 그리면서 골목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원 화성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행궁동 골목은 벽화마을과 공방거리, 수원통닭거리, 지동시장 등 특색에 따라 다양하다. 수원 화성을 구경하다가 골목으로 빠지면 볼거리, 먹거리, 살 것이 가득하다. 행궁동 골목은 수원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이어져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수원 화성행궁은 행궁동 골목 여행의 출발점이다. 먼저 화성행궁에 들러보자. 화성행궁은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인 현륭원을 자주 찾던 정조가 머물던 임시 궁궐이다. 정조는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어드렸다. 봉수당에는 정조와 혜경궁홍씨의 모습을 복원해놓았다. 행궁 가장 오른쪽에 다소 떨어진 건물이 화령전으로, 정조의 어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고 집의 형태가 달라졌어도, 골목은 그대로 남아 추억을 환기하는 곳이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의 오래된 동네, 서촌이 그렇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을 일컫는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을 끼고 청와대까지 곧장 이어지는 효자로 왼편, 즉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청운동·효자동·창성동·통의동·신교동·통인동·옥인동·체부동·누상동·누하동·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나고 자란 곳이 있어 세종마을이라고도 부른다. 경복궁 동쪽인 북촌이 역사적으로 왕족과 사대부의 거주 공간이었다면, 서촌은 의관과 역관 등 중인의 생활공간이었다. 서촌에 산 이들 중 우리가 알 만한 인물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박노수와 이상범, 이중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의 집터와 옛집이 지금도 서촌에 있다. 오래된 동네, 낡은 골목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의 향수를 자극한다. 최근 서촌의 인기가 부쩍 높아진 데는 낡고 오래됐어도 정겹고 편안한 이곳의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
미로예술시장은 이름에서 연상되듯 미로 같은 골목이 특징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상점들이 튀어나온다. 여심을 저격하는 귀여운 물건이 가득한 가게, 젊은이가 좋아하는 주점,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공방, 벽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골목미술관 등 인상적인 곳이 눈에 띈다. 길을 헤매다가 마음에 쏙 드는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에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기도 한다. 1950년대 오일장에서 시작해 원주 상권의 중심이 된 원주중앙시장은 1970년대에 지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1992 년 화재를 겪은 뒤 재건축을 계획했으나 IMF로 무산되고,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찾는 이가 급격히 줄었다. 중앙시장, 자유시장, 중원전통시장 등의시장이 연결되고, 유동 인구가 많은 원도심 중심에 있어 1층 상가는 장사가 잘 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은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건물의 묵은 때를 벗겨 예술의 숨결을 더하고, 불편한 골목을 미로 찾기 하듯 재미로 승화시키자, 젊은이들이 일부러 찾는 시장이 됐다. 2층 상가에는 청년 상인이 운영하는 카페, 핸드메이드 공방, 캐릭터숍, 맛집, 주점, 전통 공방, 도자기
무등산은 빛고을 광주를 품은 ‘어머니의 산’이다. 가을이면 어머니 가슴처럼 따사로운 능선에 억새가 핀다. 무등(無等)에는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발 1187m로 풍기는 느낌에서 ‘무등’의 가치가 빛난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를 껴안은 산 가운데 높이 1000m대는 무등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등산은 2013년 국립공원 21호로 지정됐다. 가을 무등산 산행은 억새 덕분에 발걸음이 들뜬다. 10월에 접어들면 정상 주변으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난다. 긴 숲길을 무념무상 걸으며 피로감이 덜한 것도 불현듯 억새와 마주할 광경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억새 산행은 오르는 길, 고개, 능선에 따라 다채롭다. 가장 일반적인 출발 포인트는 두 곳. 증심사 지구에서 출발해 중머리재와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 원효사 지구 원효분소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오른 뒤 장불재를 돌아오는 코스다. 증심사 지구 중머리재 코스는 산행 초입에 사찰, 미술관 등 볼거리가 곁들여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산 중턱인 중머리재를
주남저수지는 동판저수지와 산남저수지, 주남저수지를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쓴다. 주남저수지가 403ha, 동판저수지가 399ha, 산남저수지가 96ha로 총면적 898ha에 이르며, 세 저수지는 수문으로 연결된다. 주남저수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재앙이 되기도 했고, 선물이 되기도 했다. 주남저수지 일대는 낙동강의 배후습지다. 배후습지는 홍수에 따른 범람원으로 자연제방 너머 생성된 습지를 말한다. 배후습지의 퇴적물은 실트, 점토 등으로 입자가 고와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면 마을과 농경지가 침수되어 큰 피해를 봤다. 자연과 공존 일본인이 설립한 촌정농장은 1920년대 들어 주남저수지 일대를 농경지로 개간하면서 농업용수 공급과 홍수조절을 목적으로 9km가 넘는 제방을 쌓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주남저수지다. 당시는 인근 마을 이름을 따 용산 늪(주남저수지), 산남 늪(산남저수지), 가월 늪(동판저수지)이라 했고, 주남저수지라 부른 것은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주남저수지는 1980년대 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가창오리 10만여마리가 군무를 펼치는 철새 도래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철새 탐조와 낚시를 즐기
보령은 머드축제로 여름마다 들썩이는 곳이다. 하지만 보령의 진수는 여름보다 가을에 가깝다. 억새와 단풍, 제철 해산물 등 가을 여행의 대표 주자가 여럿이다. 오서산 억새는 첫손에 꼽는 가을 여행지다. 오서산은 서해와 가까운 산 가운데 가장 높다. 까마귀가 많아 붙은 이름인데, 내륙 가운데 솟아 고기잡이배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서해의 등대산’이라 불린다. 해발 790.7m로 그 위용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데, 직접 올라보면 강원도의 1200~1300m 고봉 못지 않다. 강원도의 산은 해발 500~600m가 출발점이지만, 바다와 접한 오서산은 그 높이가 곧 산의 기세다. 이맘때는 억새꽃이 장관이고, 정상에 오르면 서해를 볼 수 있어 더 특별하다. 오서산 억새는 보통 10월 초순에 피어 중순을 지나며 절정에 이른다. 산행은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 보령시와 홍성군의 경계가 되는 산답게 등산로도 여럿이다. 보령시 성연주차장이나 오서산자연휴양림, 홍성군 상담주차장 등에서 출발한다. 보령의 성연주차장 방면은 성골에서 시루봉을 지나 정상에 오르거나, 용못에서 신암터와 북절터 혹은 성연소류지 거쳐 문수골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산행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민둥산은 가을에 찾아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억새 명소이기 때문이다.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일렁이는 억새 군락은 단풍과 함께 가을 정취를 전하는 대표적인 풍경이다. 민둥산은 7부 능선을 넘으면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구릉지다. 멀리 정상을 바라보는 이 지점부터 억새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초가을에 이삭이 패기 시작한 억새가 10월 중순이면 드넓은 평원을 하얗게 뒤덮는다. 다 자란 억새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억새의 바다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지억산, 함백산, 지장산, 가리왕산, 태백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함께한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한낮의 억새가 만추의 서정을 전한다면, 황금빛으로 물든 해질녘 억새는 아련한 슬픔마저 느껴진다. 민둥산 산행은 일반적으로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시작한다. 경사가 완만한 3.2㎞와 가파른 2.6㎞ 중 택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밋밋한 정상 부근과 달리 능선에는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경사도 급한 편이다. 오르막을 한참 걸어 숨이 턱에 찰 때쯤 능선에 올라서면, 조망이 트이며 시원한 바람
가을 여행의 주인공은 단풍이라지만,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것은 갈대 아닐까.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를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면 가을이 왔음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갈대 하면 떠오르는 전남 순천만과 충남 서천 신성리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다. 올해는 전남 해남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해남 서쪽에 자리한 고천암호는 국내에서 가장 광활한 갈대밭을 보여준다. 여느 갈대밭과 달리 차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해남은 맛 여행지로도 국내 어느 고장에 뒤지지 않는다. 이 무렵이면 고소한 기름기를 잔뜩 머금은 삼치회가 미식가들의 젓가락을 분주하게 만든다. 가을 분위기 가득한 갈대밭 드라이브와 푸짐한 삼치회 한 상은 최고의 가을 여행을 위한 소품이 된다. 해남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는 땅끝마을이지만, 이맘 때 해남 여행의 첫머리에 두어야 할 곳은 고천암호다. 해남군 화산면을 중심으로 해남읍과 황산면 일대에 자리한 고천암호는 1988년 고천암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생겼다. 호수와 간척지 등을 합쳐 넓이 2400만여㎡(726만여평), 둘레 14km에 달한다. 특히 해남읍 부호리에서 화산면 연곡리까지 펼쳐진 갈대밭은 국내 최대 규모로
제주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을 3개나 품은 곳이다.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로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으며, 2010년에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수월봉, 우도 등 12개 명소가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지질공원 타이틀을 달았다. 전 세계인이 인정한 경이롭고 매혹적인 대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섬. 화산이 빚은 자연의 걸작 속으로 특별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그 아래 형성된 성산리·오조리의 역사, 문화, 생활 풍습 등을 엿보는 도보 여행 코스다. 성산갑문 입구에 있는 오조리 주차장에서 출발, 내수면을 따라 마을과 성산일출봉을 두루 거쳐 돌아오는 7㎞ 남짓한 원형 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리며(성산일출봉 등반 시 40~60분 추가), 길이 평탄해서 걷기 좋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식산봉(食山峯)이 모습을 드러낸다. 왜적의 침입이 잦은 시절, 오름에 낟가리를 쌓아 군량미가 가득한 것처럼 속여서 식산봉으로
높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산책하기 좋은 9월이다. 수원에서 요즘 가장 걷기 좋은 곳은 수원 화성이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계획도시 수원 화성은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탄생시킨 계획도시다.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은 처음엔 일반인과 같이 ‘묘’에 불과했다. 정조는 즉위한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해 묘를 묘에서 ‘원’으로 원에서 ‘능’으로 마침내 승격시켰다. 조선 땅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진 융릉(사도세자의 능) 자리에는 수원부가 있어 많은 백성들이 살았다. 정조는 수원부와 마을을 통째로 옮길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이사할 비용까지 챙겨주었다고 한다. 이전한 곳에 성벽을 쌓은 것이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정약용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정도의 다양한 왕릉과 역사가 전해진다. 구리 동구릉은 조선왕조 500여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왕릉이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건원릉을 조성한 뒤 능이 하나씩 늘어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 수릉을 조성하면서 동구릉이 되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 동구릉은 가히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4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성되다 보니 왕릉이 변하는 과정이나 문석인과 무석인, 병풍석과 혼유석 등 조형물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봉분 하나에 한 분을 모신 단릉,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 봉분이 2기인 쌍릉, 정자각 하나를 중심으로 봉분이 다른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 등 형태도 다양하다. 건원릉과 휘릉, 혜릉은 단릉이고, 수릉은 합장릉, 원릉과 숭릉은 쌍릉, 현릉과 목릉은 동원이강릉이다. 경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봉분 3기가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이다. 먼저 동구릉역사문화관에 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