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다시 즐기기 ②수원 화성

높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산책하기 좋은 9월이다. 수원에서 요즘 가장 걷기 좋은 곳은 수원 화성이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계획도시

수원 화성은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탄생시킨 계획도시다.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은 처음엔 일반인과 같이 ‘묘’에 불과했다. 정조는 즉위한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해 묘를 묘에서 ‘원’으로 원에서 ‘능’으로 마침내 승격시켰다. 조선 땅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진 융릉(사도세자의 능) 자리에는 수원부가 있어 많은 백성들이 살았다. 정조는 수원부와 마을을 통째로 옮길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이사할 비용까지 챙겨주었다고 한다. 이전한 곳에 성벽을 쌓은 것이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 책임을 맡았다. 1794년에 착공해 1796년에 완공했다. 둘레 약 5.7km, 성벽 높이 4~6m에 땅속 깊이 1m로 기초를 다졌다. 동서남북에 놓인 창룡문·화서문·팔달문·장안문과 군사를 지휘하는 서장대와 동장대, 5개 포루, 봉돈, 치(치성), 공심돈, 수문, 각루, 노대, 적대, 암문 등 성벽과 모든 건물을 불과 2년9개월(장마 등 공사를 못한 기간을 제하면 약 2년6개월)에 완공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수원 화성 여행의 첫걸음은 화성행궁에서 시작한다. 행궁을 둘러본 뒤 화성열차를 타고 동장대(연무대)로 이동한다. 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머물거나 나들이할 때 묵는 임시 궁궐인데, 화성행궁은 화성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정조를 위해 지은 궁궐이다.


한국전쟁으로 부서져… 완벽 복원
수원 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남문을 정문으로 삼는데, 정조가 한양에서 올 때 북문에 먼저 닿아 장안문이 정문이 되었다. 문 밖으로 항아리처럼 둥글게 옹성을 쌓아 견고함을 더했다. 장안문에서 서쪽으로 가면 화서문을 지나 팔달산 정상에 세운 서장대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지나 동문인 창룡문에 닿는다. 남문인 팔달문 밖에는 팔달문시장, 수원영동시장, 지동시장 등이 발달했다. 이 중 팔달문시장은 정조가 팔도의 장꾼을 불러들여 만든 시장이라 특별하다.

축성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각종 기계를 발명한 점도 인상적이다.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을 발명해서 활용했다. 실학사상에 입각, 겉모양보다 실용적인 면에 치중한 부분도 눈에 띈다. 공격용 대포를 넣는 포루의 지붕이 말을 타거나 긴 창을 들고 갈 때 부딪힐 위험이 커, 성벽 안쪽의 지붕을 직선으로 마감한 것이 그 예다.

장안문은 크고 위엄이 있고, 화서문은 전쟁을 겪고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서 보물로 지정됐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고 동장대 앞에서는 활쏘기 체험이 가능하다. 전쟁으로 부서지고 도시화로 훼손되기도 했지만, 수원 화성은 지금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곳이다. 여름에는 저녁 산책하기가 좋고, 봄가을로 화창한 날에는 멋진 피크닉 장소가 된다.

한국전쟁으로 부서진 화성을 완벽하게 복원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은 데는 <화성성역의궤>의 힘이 크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해서 의궤를 만들었다. 화성 축성 전 과정과 공사 일정, 공사 책임자, 각 건물에 대한 설명 등을 그림과 글로 남긴 종합 보고서가 <화성성역의궤>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1시에 무예24기 시범 공연이 펼쳐진다. 정조 시대에 완간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 무술을 무예24기라 한다. 공연 중에는 마상 무예를 제외한 도·검, 창·봉, 맨손 무술 등을 실감나게 선보인다.

4월~10월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벌어진다.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국왕 호위 전담 부대) 군사들의 수위 의식과 훈련 모습을 되살렸다. 공연 중 정조와 혜경궁 홍씨로 분장한 배우가 객석을 돌며 일일이 악수하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관람객의 반응이 좋다.


과거 모습 재현

화성행궁과 창룡문 중간쯤 자리한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고, 축성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상설 전시를 하는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에서는 축성 과정과 도시의 발전, 축성에 참여한 인물, 8일간 이어진 정조의 행차, 장용영의 모습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전시한다.

화성행궁 앞 너른 광장은 평소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리는 등 자유롭게 이용하고, 10월에 열리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는 화려한 행사의 장으로 거듭난다.

광장 한쪽에는 2015년 10월에 개관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있다. 외관이 깔끔하고 현대적이며 내부로 들어가면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띈다. 현대산업개발에서 건물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했다.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PLAYART_게임으로 읽는 미술’ 등 흥미로운 전시가 자주 기획된다. 오는 10월16일까지 가상현실을 테마로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상현실’ 전시가 열린다.

월화원은 효원공원 서편에 조성한 중국식 전통 정원이다. 경기도와 광둥(廣東) 성이 우호 교류 발전 협약을 체결하고 상대 도시에 전통 정원을 짓기로 한 약속에 따라 호수를 파고 흙을 쌓아 산을 만들고,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을 세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광둥성의 어느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월화원을 짓기 전에 광저우(廣州)에 한국식 정원을 만들었는데, 담양 소쇄원을 모델로 했다.

월화원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면 나혜석거리가 시작된다.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유화를 전공했다. 조선 여성으로 처음 유화 개인전을 열고, 시와 소설,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과 여권 신장에 힘썼지만 본인은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수원 중심가에 조성된 나혜석거리에는 그의 동상과 글, 조형물이 설치됐다. 낮보다 밤에 찾는 이가 많은 화려한 거리다.

 

=== 여행 정보 =======================================

당일 여행 코스
- 문화 유적 답사: 수원 화성→화성열차→화성행궁→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수원화성박물관→나혜석거리
- 명소 탐방 코스: 수원 화성→화성행궁→공방거리→수원영동시장→월화원→나혜석거리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성행궁→화성열차→수원 화성→수원화성박물관→행궁동 벽화골목→수원통닭골목→방화수류정 야경
둘째 날: 수원화성홍보관→공방거리→팔달문시장→월화원→나혜석거리

여행 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수원시청 www.suwon.go.kr
- 수원문화재단 www.swcf.or.kr
-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http://sima.suwon.go.kr
- 수원화성박물관 http://hsmuseum.suwon.go.kr

○ 문의 전화
- 수원시청 관광과 031)228-2409
-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 장안문관광안내소 031)251-4514
- 팔달문관광안내소 031)228-2765
- 서장대관광안내소 031)228-2764
- 연무대관광안내소 031)228-2763
- 화성행궁관광안내소 031)228-4480
- 창룡문관광안내소 031)228-4678
- 수원화성박물관 031)228-4242
-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031)228-3800

○ 대중교통 정보
[기차] 부산역-수원역, KTX 하루 4회(10:15~20:20) 운행, 약 2시간 5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광주-수원,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5~34회(06:00~23:00) 운행, 약 3시간 소요.
         *문의: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코버스 www.kobus.co.kr


○ 자가운전 정보
영동고속도로 동수원 IC→창룡대로→정조로→화성행궁 광장→화성행궁 주차장

○ 숙박 정보
- 수원호텔꼬모: 팔달구 효원로219번길, 031)233-8966, http://hotelcomo.co.kr (굿스테이)
- M스토리호텔: 팔달구 효원로291번길, 031)225-2347 (굿스테이)
- 호텔 테이트: 팔달구 권광로180번길, 031)222-6100, www.hoteltate.com (굿스테이)
- 테마모텔: 장안구 파장천로, 031)271-6927 (굿스테이)

○ 식당 정보
- 화춘옥: 수원갈비, 팔달구 창룡대로41번길, 031)223-2425
- 가보정: 한우양념갈비, 팔달구 장다리로, 1600-3883, http://kabojung.co.kr
- 본수원갈비: 갈비, 팔달구 중부대로223번길, 031)211-8434
- 진미통닭: 프라이드·양념통닭, 팔달구 정조로800번길, 031)255-3401

○ 축제와 행사 정보
- 수원화성문화제: 2016년 10월7~9일, 화성행궁 광장·수원천·연무대 일원, 031)290-3596, www.swcf.or.kr/?goPage=104

○ 주변 볼거리
수원광교박물관, 지도박물관, 수원월드컵경기장 축구박물관, 수원박물관, 수원팔색길, 팔달문시장, 수원영동시장, 지동시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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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