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향기 물씬나는 골목길을 찾아서 ④경북 경주

경주에 ‘감포 깍지길’이 있다. 감포항을 중심으로 해안과 마을 등을 잇는 길이다. 이 가운데 4구간 ‘해국길’은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한 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600m 정도로 길지 않지만, 이름처럼 벽마다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골목은 감포항 앞에 자리한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벽에 조그만 간판이 있고, 주변 상인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국 골목-해국 계단-옛 건물 지하 창고-다물은집-한천탕-우물샘-소나무집 순으로 걸으면 된다. 골목은 밖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좁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에, 몸을 옆으로 돌려야 통과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길바닥에는 거친 시멘트를 발랐다. 골목 양옆으로 작은 집들이 있는데,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설 법한 대문이 달렸고 창문은 도화지 만하다.

골목을 따라가는 벽마다 해국이 그려졌다. 색깔이며 모양이 전부 다르다. 하얀 해국도 있고, 보랏빛을 뽐내는 해국도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색깔이 바랜 해국도 눈에 띈다. 깊어가는 가을, 해국 그림 앞에 진짜 해국이 한 무더기 피어 여행객을 반긴다.

골목 따라 벽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바닥에 커다란 딱정벌레가 그려진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오르면 교회와 놀이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감포항과 동해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커다란 해국이 그려진 계단이다. 해국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으로,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계단을 지나 골목을 따라가면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건물이 보인다. 갈색 문을 단 이 건물 벽에는 ‘옛 건물 지하 창고’라는 안내판이 있다. 대피소 겸 지하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2~3분 거리에 ‘다물은집’이라는 일본식 가옥이 있다. 원래 해국길 주변은 1920년대 개항한 뒤 일본인 이주 어촌이 형성된 곳으로,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다물은집은 일본 어민이 촌락을 이룬 흔적이다. 해국길을 걷다 보면 옛 일본 가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국밥집, 약국, 세탁소 등으로 사용된다.

“이승에서 들려줄 수 없는 이 사랑을 다음 생에서 꼭 갚을 게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선택하고, 당신 나라를 선택하고, 우리 아기를 선택할 거에요. 지금까지 내 나라가 당신과 당신 나라에 준 많은 고통들, 제가 다 짊어지고 갈게요. 쪽지 편지 하나를 남겨둔 채 그녀와 아이는 사라졌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종무의 가슴을 때린다.”

옛모습 그대로

벽에 주인석의 소설 ‘감포 깍지길’ 한 대목이 적혀 있다. 다물은집 건너편에 자리한 건물은 우뚝 솟은 굴뚝이 시선을 붙잡는다.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건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남짓 가면 오래된 우물 터가 나온다. 두레박이 있고 우물 속에 물도 찰랑이지만, 마실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한다.

해국길 건너편 감포항에서 북쪽으로 10여분 올라가면 송대말등대가 있다. 송대말은 ‘소나무가 우거진 대의 끝부분’이라는 뜻. 이름처럼 절벽 끝에 용틀임하듯 휜 소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푸른 동해가 흰 파도를 일으키며 넘실댄다. 소나무 숲을 지나 절벽 가까이 내려가면 새하얀 등대 2기가 보인다. 왼쪽 관리소 건물 위에 있는 것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본떠 지은 새 등대고, 그 옆에 1955년 무인 등대로 세운 옛 등대가 있다. 등대 아래로 검은 갯바위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멋지다. 바위에서는 낚시꾼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구불구불 이어진 낮은 건물 사이 골목길
시내와 문화재, 모두 즐기는 경주 여행

송대말등대에서 나와 경주 문무대왕릉과 감은사탑을 보고, 경주 시내를 여행하는 코스로 잡으면 된다. 문무대왕릉은 삼국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묻힌 곳. 일출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문무대왕릉에서 경주 시내로 가는 길에는 ‘신라 탑의 전형’이라 불리는 감은사탑이 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감은사탑의 완벽한 조형미가 보는 이를 매료한다.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경주의 여행지를 꼽으라면 동궁과 월지 아닐까. 동궁은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 월지는 동궁 안에 있는 연못이다. 그동안 안압지, 임해전지로 불리다가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동궁과 월지를 비롯해 첨성대와 대릉원 주변에 해가 지고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면,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 아름답다.

분황사도 운치 있다. 검은 돌을 쌓아 만든 분황사 모전석탑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탑이다. 이맘때면 주위의 단풍과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주교촌마을도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기와지붕과 돌담이 어우러진 마을을 걷다 보면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할 수 있다. ‘최 부잣집’으로 불리는 경주교동최씨고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마당 한쪽에 있는 목재 곳간은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목재 곳간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다채로운 먹거리

경주는 국내 최고의 관광지답게 다채로운 먹거리가 여행객을 즐겁게 한다. 감포항에서는 복어회를 맛보자. 복어회를 주문하면 회부터 탕, 튀김까지 코스로 나온다. 경주 향토 음식 브랜드 ‘별채반’은 놋그릇에 음식을 담아 1인상으로 제공해, 나홀로 여행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교동최씨고택 옆 골목의 ‘교리김밥’은 달걀지단을 듬뿍 넣은 김밥으로 유명하다. 성동시장의 우엉김밥,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출연한 뒤 주가가 오른 ‘명동쫄면’의 유부쫄면도 별미다.

 


=== 여행 정보 =======================================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해국길→송대말등대→감포항
-둘째 날: 문무대왕릉 일출→감은사지→경주 시내(동궁과 월지, 대릉원 등)

관련 웹사이트 주소
-경주문화관광 http://guide.gyeongju.go.kr
-경주愛(경주시 공식 블로그) http://gyeongju_e.blog.me 

-경주교촌마을 www.gyochon.or.kr

문의 전화
-경주시청 관광컨벤션과 054)779-6078 
-경주역 관광안내소 054)772-3843
-동궁과 월지 054)772-4041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20여 회(05:15~22:0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서울역-경주역: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 환승, 하루 8회(05:30~21:20) 운행, 환승 포함 3시간30분~4시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7회(06:10~23:55) 운행, 약 4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1회(07:00~23:59) 운행, 약 4시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경주고속버스터미널 054-741-4000/ 경주시외버스터미널 1666-5599, www.gyeongjuterminal.co.kr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서라벌대로→울산·불국사 방면→영불로→토함산터널→경감로→감포항 방면→감포항

숙박 정보
-베니키아 스위스로젠호텔: 경주시 보문로, 054)748-4848, www.swissrosen.co.kr (베니키아)
-힐튼경주: 경주시 보문로, 054)745-7788, www.hiltongyeongju.co.kr
-지지호텔: 경주시 태종로699번길, 054)701-0090, www.hotelthedy.com
-락희원민박&게스트하우스: 경주시 지영길, 054)744-6295, www.luckywon.kr

식당 정보
-은정횟집: 참복회, 감포읍 감포로6길, 054)744-8600
-전통맷돌순두부: 맷돌순두부찌개·파전, 경주시 숲머리길, 054)743-0111
-별채반 교동쌈밥: 곤달비비빔밥, 경주시 첨성로, 054)773-3322
-교리김밥: 김밥, 경주시 교촌안길, 054)772-5130
-명동쫄면: 쫄면, 경주시 계림로93번길, 054)743-5310


주변 볼거리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계림, 경주 황룡사지,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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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