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간이역 여행 ④태백 철암역

탄광 도시 철암의 ‘그때 그 모습’을 만나다

태백에는 50여개 광산이 있었다. 태백에서도 철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탄광 마을로, 한때 인구가 5만 명에 이르는 도시였다.

태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석탄이다. 한때 태백은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톤을 생산했다.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태백에는 50여개 광산이 있었다. 당시 철암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 철암역. 석탄으로 번성하던 시절을 웅변하듯 4층 건물이 우뚝 섰다.

석탄산업의 상징

철암역은 1940년 묵호-철암 구간 철도가 개통하면서 영업을 개시했다. 현재 역사는 1985년에 지은 것이다. 장성탄전서 생산된 무연탄 수송이 주 업무였지만,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무연탄과 경석을 주로 수송한다.
 

철암역은 역사보다 그 옆에 자리한 선탄장이 더 유명하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70년이 넘는 역사가 녹아든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상징이다.

하천 바닥에 지지대 위로 세운 ‘까치발 건물’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기의 이국적 풍경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 시설이자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시설로 평가받아,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됐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주먹다짐을 벌인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선탄장 건너편에 자리한 마을 풍경도 독특하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어디쯤에서 멈춘 듯, 2~3층 건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다. 호남슈퍼, 한양다방, 젊음의 양지, 진주성, 봉화식당, 산울림, 페리카나 등 선술집과 식당, 치킨집 간판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재단장해 박물관이며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남쪽 신설교에서는 철암천 변을 따라 선 ‘까치발 건물’ 11동을 볼 수 있다. 까치발 건물은 주민에 비해 부족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려고 하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로 지지대를 만들어 넓힌 집으로, 탄광촌의 상징물과 같다.

물속에 기둥을 박아 세운 수상 가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철암역 건너편 미로마을도 가보자. 거미줄처럼 연결된 1km 골목에 광산 근로자들의 생활상을 담은 벽화가 있다.

태백산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태백석탄박물관에선 국내 석탄 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광물, 화석, 기계 장비, 광부들의 생활용품 등 석탄 관련 유물과 모형을 전시한다.

특히 박물관 지하의 8전시실에는 채탄 과정, 지하 작업장 사무실에서 작업을 지시하는 모습, 여러 가지 갱도 유형 등을 전시, 광산의 위험성과 광산 노동자들의 힘겨운 생활을 느낄 수 있다.
 

태백에는 아이들과 함께 돌아볼 만한 곳이 많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생대층에 건립된 고생대 전문박물관으로 고생대 삼엽충, 두족류와 공룡 화석, 자체 제작한 영상물, 입체 디오라마 등을 전시한다. 지하 1층에는 화석 발굴 현장, 화석 탁본, 30억년 지층 파노라마 등 다양한 체험전시실도 운영한다.
 


용연동굴은 국내 동굴 중 가장 높은 해발 920m 지점에 있다. 총 길이 843m로, 1억 5000만~3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 내부에는 다양한 석순과 종유석, 석주 등이 즐비하다. 모양에 따라 드라큘라 성, 조스의 두상, 등용문 등 재미있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고원 도시 태백

태백의 웬만한 고원지대는 1000m가 훌쩍 넘는다. 그중에서도 고원 도시 태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매봉산(1303m) ‘바람의 언덕’이다. 고산준령을 배경으로 고랭지 배추밭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배추를 볼 수 없다. 대신 산꼭대기에 늘어선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의 언덕서 내려오는 길, 매봉산 아래 있는 ‘삼대강 꼭짓점’에 들러보자. 한강과 낙동강, 동해로 흘러가는 오십천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여기에 떨어진 빗물이 서쪽으로 흘러가면 한강이 되고, 남쪽으로 가면 낙동강,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된다.

태백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는 땅이다. 4대강 가운데 두 강이 한 고장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연못은 낙동강 1300리(약 525km)의 시작점이다.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 낙동강의 근원지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둘레 100m 소(沼)에서 하루 5000톤의 물이 쏟아져 나오고, 연못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됐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낙동강 근원지, 황지연못
긴 겨울을 나는 광부의 국물 자작한 음식 유명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울창한 숲 속, 푸른 이끼 가득한 바위 웅덩이서 하루 2000~3000톤의 물이 샘솟는다. 오랜 세월 물줄기가 흘러 2m 정도 되는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파였다. 이끼 가득한 암반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가 신비스럽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에도 들러보자. 드라마서 모우루중대와 해성병원 의료봉사단이 머물던 우르크 태백부대를 메디큐브와 막사 등으로 조성해 복원했다. 태백부대 옆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우르크발전소가 있는데, 송중기가 송혜교의 신발 끈을 묶어준 곳이다.

태백은 여느 산악 도시에 견줘 유난히 맛집이 많다. ‘맛 고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고깃집이 자주 눈에 띈다. 황지자유시장 골목을 비롯해 태백시에 한우 식당이 40여개 있는데, 이름에 대부분 ‘실비’가 들어간다.

태백 사람들은 소 갈비살을 즐겨 먹는데, 석탄을 캐던 지역답게 연탄불로 굽는다. 숯보다 화력이 센 연탄이 육즙을 꽉 잡아주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 고기 맛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다. 된장소면도 별미. 고기를 먹고 나서 멸치 국물로 끓인 된장찌개에 소면을 푹 담가 먹는다.

맛 고을


물닭갈비도 맛있다. 춘천식 볶는 닭갈비와 달리 갖은 재료를 쇠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전골처럼 국물이 자작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광부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겨울이 긴 태백의 기후와도 무관하지 않다. 매봉산에서 찬 바람을 맞고 내려와 먹어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황지연못→용연동굴→철암역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매봉산 바람의 언덕→검룡소→황지연못
- 둘째 날: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태백석탄박물관→철암역

관련 웹사이트 주소
- 태백문화관광 http://tour.taebaek.go.kr
-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www.paleozoic.go.kr
- 태백석탄박물관 www.coalmuseum.or.kr

문의 전화
- 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1
-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033-581-8181
- 태백석탄박물관 033-552-7720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역-태백역: 무궁화호 하루 4회(07:05~23:25) 운행, 약 4시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태백: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0여 회(06:00~23:0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부산-태백: 동부버스터미널에서 하루 6회(07:28~18:41) 운행, 약 5시간 소요.
       대구-태백: 북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4회(06:00~19:4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부산동부버스터미널 1688-9969/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 1666-1851/ 버스타고 www.bustago.or.kr/ 태백시외버스터미널 033-552-3100)


자가운전 정보
- 서울 출발: 경부고속도로 신갈 JC→영동고속도로 여주 JC→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영월→태백
- 부산 출발: 남해고속도로 대저 JC→중앙고속도로 대동 JC→경부고속도로 동대구 JC→중앙고속도로 영주 IC→봉화→태백
- 대구 출발: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 IC→봉화→태백

숙박 정보
- 오투리조트: 태백시 서학로, 033-580-7000, www.o2resort.com
- 메르디앙호텔: 태백시 황지연못길, 033-553-1266
- 카스텔로호텔: 태백시 연지로, 033-553-2211, www.castellohotel.co.kr
- 태백산민박촌: 태백시 천제단길, 033-553-7440, minbak.taebaek.go.kr

식당 정보
- 현대실비: 한우, 태백시 시장북길, 033-552-6324
- 시장실비: 한우, 태백시 시장북길, 033-552-2085
- 황소실비: 한우, 태백시 태백로, 033-553-0304
- 황지검정콩수제비: 수제비, 태백시 황지남3길, 033-553-7742
- 부산감자옹심이: 감자옹심이, 태백시 시장안1길, 033-552-4498
- 김서방네닭갈비: 닭갈비, 태백시 시장남1길, 033-553-6378

축제와 행사 정보
해당 시기 축제 없음

주변 볼거리
추전역, 태백고원자연휴양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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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