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2011년은 사회 전반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나꼼수’ 열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무상급식 투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낳았다. 또 자살한 60대 여성의 사체를 성폭행한 고등학생의 범행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지하철의 막말녀, 막말남 등장과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성문제를 되짚어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2011년을 뒤돌아봤다. ‘가카’와 정권의 실정에 ‘똥침’ 쏘는 ‘나꼼수’와 ‘더반의 여신’ 나승연 국민적 관심·공분 이끌어낸 <도가니> 공지영 작가와 ‘고공농성’ 김진숙 <대한민국 뒤흔든 ‘나꼼수’ 4인방> 2011년 대한민국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열광했다. 팟캐스트 방송 부동의 1위에 이어 토크콘서트 전석매진 기록까지…. 4명의 나꼼수 출연자(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일요시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2011년 스포츠계를 뜨겁게 달군 10인을 선정했다. 프로야구와 축구, 농구의 구기종목과 수영·피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은 멋진 활약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갖은 루머와 은퇴, 사망 소식 등으로 팬들을 안타깝고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2012년에는 좋은 소식만 가득하길 바라며 멋진 활약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야구 5명, 축구 2명, 농구·수영·피겨 각 1명 선정 대박 치며 일본 진출한 이대호, 국내 복귀 이승엽 <105억 대박 터뜨린 이대호> 이대호는 올 시즌 국내무대에서 0.357의 타율과 27개의 홈런, 176안타, 113 타점을 기록하는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2006년 타격 3관왕과 2010년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 등 엄청난 기록을 남겼던 해에 비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2위, 최다 안타 1위의 성적이 무난하게 느껴질 선수, 그가 바로 이대호다. 2001년 2차 1지명 투수로 입단한 이대호는 타고난 힘과 유연성으로 어느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능곡지변(陵谷之變)’이란 말이 있다. 이는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변하여 다시 언덕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사가 극심하게 뒤바뀔 때 사용하는 말이다. 2011년 정치권에 능곡지변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토끼가 껑충껑충 뛰듯이 정국이 극심하게 출렁였던 신묘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일요시사>가 ‘송년기획’으로 2011년 정치판을 쥐락펴락 뒤흔들었던 10대 인물을 선정해봤다. 기성정치판에 성난 민심 ‘안철수 신드롬’으로 분출 분당승리로 한나라 아성 깬 손학규 일순 대권 탄력 <신드롬에서 기부까지 안철수> 2011년 정치권은 ‘총체적 예측불허’로 요약될 수 있다. 변화무쌍하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형국이 연출되면서다. ‘안철수 신드롬’이 그렇고 ‘디도스 파문’이 그랬다. 특히나 올 한 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커지며 정치권은 계속해서 요동쳤다. 정국을 뿌리째 뒤흔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단연 화제의 인물 1순위로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2011년 한해가 저물었다. 늘 그랬듯 재계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꼭 나쁜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얼룩덜룩한 각종 비리와 의혹 사이로 마음이 따듯해지는 감동도 전해졌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의문이 있는가 하면 가슴 먹먹한 사연도 있었다. 그야말로 ‘희노애락’이 한데 버무려진 한해였다. 지난 2011년 한해 신문지면을 수놓은 사건과 이슈들을 재계를 호령하는 총수들을 중심으로 풀어봤다. 최태원, 정몽구 통 큰 기부…이건희, 발로 뛰어 이윤재, 담철곤 철창…허창수, 재계서 죄인 취급 <5000억원 통 큰 기부 정몽구>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올해 재계 대표급 ‘좋은 회장님’에 등극했다. 지난 8월28일 5000억원 상당의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그룹 사회공헌재단인 해비치 재단에 출연한 것을 두고서다. 기부액은 저소득층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된다. 사방에서 갈채가 쏟아졌다. 정 회장의 기부가 이처럼 환영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국내 재벌들의 기부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연말연시나 재난 때 적지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2011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1년, 국내 사정은 한마디로 그리 좋지 않았다. 유럽 금융위기 등 해외발 경제악재 여파가 한반도까지 덮쳐 온 나라가 곡소리로 가득했다. ‘불황터널’ 들어간 서민들 피눈물 ‘뚝뚝’ 온나라 곡소리에도 정치권은 ‘티격태격’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난 정치인들은 ‘밥그릇’을 두고 싸우기 바빴고, 서민을 외면한 MB정부 사람들은 손가락질 받으며 욕먹기 바빴다. 특히 안철수-박원순 투톱의 등장은 정치권을 더욱 요동치게 했다. 각종 논란 ‘발칵’ 재계는 내수부진, 유가인상, 환율하락 등으로 고전했다. 그저 한숨만 내쉬다 한해를 보냈다. 여기에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들의 옥죄기까지 겹치면서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재벌가 ‘돈 다툼’도 잊을만하면 불거졌다. 이 와중에도 국민들을 경악케 한 굵직한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며 습관처럼 서두에 꺼내는 말이다. 으레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2011년 연예계 역시 다사다난했다. 2011년 연예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축하받은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우중충한 한 해를 보낸 연예인도 적잖았다. 지난 1년간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가요계 휘청휘청 서태지-이지아 비밀결혼 ‘발칵’ 속았네… <수십억원대 탈세 의혹 강호동> 강호동(41)은 지난 9월 탈세 의혹이 불거진 뒤 비난여론이 크게 일자 즉각 잠정은퇴를 선언, 칩거에 들어갔다. 강호동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를 비롯해 KBS <1박2일> SBS <강심장> 등 지상파 3사를 모두 오가며 국민MC로 활약해 왔던 터라 전 국민이 깜짝 놀랐다. 강호동은 당시 탈세 논란이 단순 의혹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잘못을 인정하며 잠정은퇴를 선언해 물의를 일으키고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다른 스타들과 대조를 이뤘다. 국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석에 국민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다. 벅차오르는 기분에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다. 재벌 총수들도 일이 손에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50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면서 총수의 재산 환원이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데다 이명박 대통령이 에둘러 압박을 가한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의표시’가 필수인 상황이다. 이에 총수들은 고민이 많은 표정이다. 지분을 내놨다 자칫 경영권이 희석될 수 있다. 정 회장의 기부로 ‘시세’가 1000억대로 오른 것도 부담이다. 어설프게 기부를 추진했다간 티도 안 날 뿐더러 경영권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추석이 마냥 즐거울 수만 없는 이유다. 정몽구 회장, 기부왕 등극·실적 1위로 편안한 명절 이건희 회장, 상생안 질타로 이번엔 제대로 내놔야 “공생발전의 시대적 요구가 왔을 때 선순환으로 바꾸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역시 총수가 앞장서야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아버지 우산 속에서 날고 기었던 그들. 한때 ‘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역대 대통령 아들들이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홀로서기에 나선 그들은 지금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대통령 아들들의 근황과 사업 성적표를 공개한다. 절반가량 개인사업 ‘사장님’…일부는 샐러리맨 정계·학계·시민단체서 활동…직업 없는 백수도 1∼17대 역대 대통령은 총 10명이다. 이들의 아들들은 모두 16명. 이중 개인사업을 하는 ‘사장님’은 7명이다. 나머지는 정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남의 회사에서 일하거나 ‘백수’인 경우도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1∼3대)은 자녀가 없다. 대신 2명의 양자를 들였다. 강석씨와 인수씨다. 자유당 2인자였던 이기붕 국회의장의 장남 강석씨는 이 대통령의 83세 생일이던 1957년 3월26일 양자로 입적됐다. 그러나 4·19 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 선언을 한
14명 대부분 남편 내조에 전념 대외 직함 맡아 활발한 활동도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역대 대통령의 딸들은 지금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총 10명의 대통령들은 모두 14명의 딸을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내로라하는 집안으로 시집가 남편 내조에 전념하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녀가 없다. 대신 2명의 양자를 입양했지만 양녀는 들이지 않았다. 윤보선 대통령은 2녀가 있다. 장녀 완구씨의 남편은 형법학자로 고려대 법대학장과 학술원회원 등을 지낸 남흥우 새한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다. 차녀 완희씨는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장남 준호씨의 부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두 딸은 두말할 나위 없이 유명하다. 전 한나라당 대표로 차기 대권 유력주자인 근혜씨는 혼자 살고 있다. 서영(박근영에서 개명)씨는 1982년 풍산금속 창업주의 아들과 결혼했다가 1년도 채 안 돼 이혼하고 2008년 10월 14살 연하의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재혼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외동딸 종혜씨는 1979년 외교관이었던 서대원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국정원 1차장을 역임한 서씨는 경기고교장과 서울대학장을 지낸 서장석씨의 아들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외동딸 효선씨는 윤상현 한나라당
박민찬 풍수지리 신안계형물학 원장에 따르면 풍수지리학은 현재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양택풍수만 행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양택과 음택 모두 연구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특허권, 지적재산권, 저작권 등을 세계 저작권협회에 등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 노래인 ‘아리랑’을 중국이 먼저 등록해 중국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연구내용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일본이 현재 장미꽃에 대한 로열티를 확보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풍수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해 로열티를 확보해야 한다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박 원장은 풍수지리학자들은 역학적 조사를 통해 풍수로 잘 사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과학자들은 앞서 본문에서 설명한 정자실험 방식으로 풍수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노벨상까지 노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봉주. 당시 남아공의 투과니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와 2위가 3초밖에 차이나지 않은 것은 처음일 정도로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후 이봉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다른 선수와 부딪혀 넘어지는 불운을 겪으며 24위에 그쳤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14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28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인 2009년 이봉주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인 2010년 3월 자신의 마라톤 인생 얘기를 담은 자서전 <봉달이의 4141>를 출간한 그는 손기정 기념재단의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그는 미국 유학과 함께 지도자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봉주…은퇴 후 학업 및 지도자 준비 심권호…방송 해설자 등 다방면 매력 뽐내 이봉주와 더불어 애틀란타 올림픽 때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은 또 한 선수가 있다. ‘작은 거인’ 심권호. 크지 않은 몸집이지만 성실한 모습과 부단한 노력으
1996년 제26회 애틀란타 올림픽. 한국은 7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 10위의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당시 7명의 금메달리스트 중 유독 주목받는 선수가 있었다. 훤칠한 이목구비와 시원한 경기운영으로 한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사람. 바로 유도의 전기영이었다. 업어치기의 달인 한 게임 빼고 모두 한판승 세계선수권 3연패 쾌거, 동급 최강자 등극 충북 청주 출신인 전기영은 청주 대성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유도에 입문하게 된다. 유도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전기영은 청석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대회 6관왕을 달성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경기대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동 체급 내 최강자의 반열에 오른다. 국내에 더 이상의 적수가 없던 전기영은 세계무대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는 1993년 2월 파리오픈 78kg급에서 라이벌이었던 윤동식을 꺾으며 우승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전기영은 이어 1993년과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유도영웅이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요시다 히데히코와 맞붙어 요시다를 두 번 모두 제압하며 세계 최강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금메달 따면 본전 못 따면 이변 이미 두
1996년 프로야구에는 투타에 걸쳐 새로운 기록이 많았다. 당시 ‘괴물신인’로 불렸던 박재홍은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프로야구 15년 사상 첫 ‘30-30’(30홈런, 30도루) 기록을 달성 한 것이다. 박재홍 최초의 ‘30-30’ 진기록 정명원 PO 최초 ‘노히트 노런’ 현대와 LG의 프로야구 경기가 펼쳐진 잠실구장. 3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현대의 ‘괴물신인’ 박재홍은 여느 때처럼 호흡을 고른 뒤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투수 김용수를 응시했다. 김용수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몸쪽 높은 포크볼. 특별히 선호하는 코스나 구질이 따로 없는 박재홍은 그대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볼은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비거리는 120m. 3점 홈런이자 자신의 시즌 30호 아치였다. 박재홍이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30-30클럽’에 가입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마운드에서도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현대 유니콘스 정명원이 4사구 3개만 내주고 삼진 9개를 뽑
한 중견 연기자는 “연예인들은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인기의 부침에 따라 수입과 위상의 변화가 불가피하는 연예계 속성을 알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자세를 견지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충고한다.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과 연예계를 지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어 성공을 하려고만 할뿐 연예계에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신적인 태도나 자세 등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는 단순히 연예인을 이윤창출도구로만 파악하지 말고 연예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해야한다. 연예인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문제 있는 태도 역시 개선돼야한다. 근거 없는 악성루머의 유포나 사이버테러는 연예인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연예인들도 정신적, 육체적인 질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등 태도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엄청난 연예인들이 이미지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거나 지인
양현석… 빅뱅, 2NE1등 가수 발굴 이주노… 댄스 아카데미에서 후배양성 양현석은 현재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연예기획자로 바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YG엔터테인먼트를 차려 지누션, 원타임,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 국내 최고의 스타들을 보유한 대형 기획사로 성장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지난 2010년 3월 양현석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결혼도 발표했다. 그의 배우자로 알려진 사람은 그룹 스위티 출신의 이은주다. 이은주는 YG 소속 가수로 양현석과는 12살 띠 동갑 차이이며 전 젝스키스 멤버인 이재진의 여동생으로도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현석은 2010년 8월 이은주와의 사이에 딸을 얻었고 현재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또 다른 스타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이주노는 은퇴 후 자신의 특기인 ‘춤’을 살려 댄스스쿨 강사, 댄스 팀을 결성하는 등 계속적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 90년대 중반 인기 그룹 영턱스클럽을 발굴하며 음반 제작자로도 성공적인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이주노는 댄스아카데미인 DM SKOOL을 운영하며 댄서를 꿈꾸는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고 최근에는
서태지는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2년 데뷔 당시 한국에서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풍의 음악으로 나타나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현재는 탤런트 이지아와의 소송문제로 인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북공고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던 서태지. 이미 데뷔 전 그룹 시나위에서 김종서와 함께 베이스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며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었다. 이후 서태지는 91년 당시 최고의 춤꾼으로 활약하던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게 돼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을 결성,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랩 댄스곡’ 풍의 데뷔곡 난 알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현란한 안무로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혜성같이 가요계에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서태지에게는 ‘10대들의 대통령’ ‘X세대 문화의 상징’ 등 수 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여진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당시 많지는 않았고 당시 음악관계자들조차
배우 이전의 문성근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8년의 사회 경험 쌓았다. 이것이 ‘영화계 현안’으로 그의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스크린쿼터’였다. 처음에는 연기에 몰입할 생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거리를 뒀다. 영화계에서 ‘쿼터’를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해 “문화는 약하니까 지켜달라”는 논리에 그는 펜을 들었다. 그는 쿼터라는 게 수출입과 독과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 결국 <씨네 21> 독자투고란에 글이 실렸고, 시위 연단에 오르게 되었다. 이어 올해 3월 초 그는 조선일보사옥 앞에 섰다. 그의 피켓에는 ‘길 위에서 꽃 한 송이 올립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장자연님’ 이라고 적혔다. 시위의 출발선은 ‘스크린쿼터’ 100만 국민의 뜻 모으려 거리로 그는 “한 인간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생명을 끊었는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라도 권력이 감추는 진실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는 동료연예인들에게 성상
문성근. 그는 수많은 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쥔 ‘명배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TV 속의 그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런 그가 최근에는 길거리에서 ‘민주-진보 단일정당’을 외치고 있다. 배우인 그가 이제 아예 정계로 방향을 틀어버린 걸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나는 배우다”라고. 그러나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이후 그의 행보는 여전히 심상치 않다. 유쾌한 민란 도모중인 문성근 100만 서명운덩 주도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 뜻 이어 민주진보진영 단일화 배우 문성근은 1953년 통일운동가였던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8년 동안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1985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그의 첫 영화인 <그들도 우리처럼>으로 제 27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과 제 1회 춘사영화예술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어 그는 각종 상을 휩쓸며 국민배우로 성장해 나갔고,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도 진행했다. 한참이나 시간
당시 TV에 방영된 아가동산의 생활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종교의식 장면은 교주를 신처럼 받드는 사이비종교의 전형이었다.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 그녀는 행사 때마다 공주를 연상시키는 차림새였다. 신도들에게도 항상 색동옷과 족두리, 원색의 유니폼을 입혔다. 나이든 신도들도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아가동산 신도들이 무대에 앉아있는 교주를 에워싸고 강강술래 춤을 추고 있다. 아가동산의 종교의식은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춤과 노래로 가득 찼다. 종교의식다운 엄숙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주 김씨의 등장에 신도들은 열광했다.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이다. 손만 잡아줘도 감격한다. 교주와 함께 춤을 춘 소녀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가동산 신도들 대부분 사회적으로 소외돼있는 노약자와 부녀자다. 아가동산의 모든 일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루 16시간의 고된 노동에 이어 밤마다 되풀이되는 행사, 신도들은 교주에게 푹 빠지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당시 탈출 신도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책을 봐도 눈에 안 들어온다. 워낙 심적 통제가 심하다”고 밝혔다. 외출도 늘 함께였다. 아가동산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하얀 공주 옷을 입은 여자 교주를 ‘아가야’라고 부르며 따르는 신도들이 여신도와 어린아이를 때려죽이고 암매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아가동산 사건. 이 사건은 1996년 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건 중 하나다. 아가동산을 탈출한 일부 농장 주민이 살인 및 사기혐의로 교주 김기순씨 등을 고발하면서 밝혀졌다. 1989년 아가동산 창시자…신도 30여 명이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고발 조세포탈·폭행·횡령 혐의 유죄…살인·사기 혐의 무죄 선고 받아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씨는 원래 1978년 전라북도 이리시(현재의 익산시) 주현동 주현교회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교부 목사의 신도였는데, 당시 이교부 목사는 신흥 종교 ‘삭발교’의 창시자였다. 하지만 이 목사가 이른바 나체 댄스 사건(1978년 12월 3일부터 1979년 1월 11일까지 이 목사가 자신의 신도들과 함께 나체 춤을 추면서 예배를 본 사건)에 연루, 구속되어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김씨는 이 목사가 맡고 있던 조직을 이탈하기에 이른다. 1982년 아가농장 설립 그 후 김씨는 서울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