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풍 몰고 온 4·11 총선] ⑧ 정치야망 드러낸 경제인 성적표

국회 간 회장님…회사로 돌아간 회장님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4·11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19대 총선에선 기업 출신 후보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특히 중량감 있거나 상징적인 인물 영입은 없었다. 경제계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18대 총선과는 딴판이다. 이는 여야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성장’ 아젠다가 사라지며 경제계 출신 인사들이 등원할 여지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건 여야를 합쳐 모두 20여 명. 이들은 과연 어떤 성적표를 받았을까. <일요시사>가 집중 분석해봤다.

종전 비해 상대적으로 중량감 있는 후보 많지 않아
여야 경제민주화 내세우면서 등원여지 줄었다 평가

4·11 총선이 종료됐다. 이번 총선에선 경제인 출마자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경제’와 ‘복지’가 이번 총선 최고 화두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종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량감 있는 후보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기업인 출신들은 그다지 선전하지 못했다. 많은 기업인 출신 예비후보가 공천을 신청했지만 줄줄이 낙천자가 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행 티켓을 손에 쥔 이들은 새누리당 10명, 민주통합당 7명, 자유선진당 1명, 무소송 1명 등이었다.

지난 총선에 비해
중량감 후보 적어

먼저 새누리당이 내세운 후보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서울 동작을) ▲김호연 새누리당 의원(충남 천안을)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울산 북구)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성남 분당을) ▲박덕흠 대한전문건설협회장(충북 보은·옥천·영동) ▲유경희 유한콘크리트산업 대표(서울 도봉갑) ▲권은희 헤리트 대표(대구 북구갑) ▲강은희 위니텍 대표(비례 5번) ▲조현룡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최연혜 전 철도공사 부사장(새누리당, 대전 서구을) 등이다.


이에 맞서 민주통합당은 ▲이계안 민주통합당 의원(서울 동작을)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부산 남구갑)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대표(서울 서초갑) ▲이상직 이스타항공 회장(전주 완산을) ▲이재한 한용산업 대표(충북 보은·옥천·영동) ▲차영 전 KT 마케팅 전문임원(서울 양천갑) ▲배영애 전 동도백화점 대표(경북 김천) 등을 내세웠다. 또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유선진당에서, 석호익 전 KT 부회장(경북 고령·성주·칠곡)이 무소속으로 각각 출마했다.

새누리당 후보 가운데서는 모두 7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그 중 가장 중량감 있는 기업인 출신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다. 정 의원은 이번에 당선되면서 7선에 성공한 중진 정치인이지만 현대그룹 오너가 출신의 ‘기업인’으로 분류된다.

정 의원은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카드 회장을 지낸 현대그룹 전문경영인 이계안 민주통합당 의원과 대결을 벌여 화제가 됐다. ‘고용주-전문경영인’ 대결구도인 셈이었다. 이들 후보는 개표 초반 ‘접전’을 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표차가 벌어졌고 결국 6.8% 차이로 정 의원이 당선됐다.

빙그레의 오너인 김호연 새누리당 의원 역시 기업인으로 분류된다. 1992년부터 빙그레 회장을 지내온 김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충남 천안을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박상돈 후보에 밀려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한나라당 천안을 당협위원장을 맡아 국회 입성을 노렸고, 2010년 7·28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박완주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약 1900여 표 차이로 밀리면서 금배지를 반납하게 됐다.

이들 다음으로 무게감 있는 기업인 출신 후보는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다. 2009년에도 재·보궐 선거에서 울산 북구 후보로 나왔다 고배를 마신 바 있는 박 전 사장은 이번에 야권연대로 경선을 통과한 김창현 통합진보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박 전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미 위스콘신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정부와 금감위를 거쳐 2008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됐다.

본선행 티켓잡기
치열하게 전개돼


김병욱 민주통합당 후보를 10%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된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도 눈에 띄는 기업인 출신이다. ‘아래아한글’로 유명한 한컴이 부도 위기에 직면해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헐값에 넘어갈 지경이 되자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한컴 경영권을 인수하고 전하진 후보를 대표로 추대했다. 네띠앙 사장을 거쳐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해외 마케팅 벤처기업 지오이월드를 막 설립했던 전 전 대표는 회사를 아내에게 맡기고 귀국해 한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지역구에 출마한 박덕흠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은 또 다른 기업인 출신 후보인 이재한 한용산업 대표를 제치고 당선됐다. 박 회장은 서울시 토목직 9급 공무원을 하다 퇴직한 뒤 토목업에 뛰어들어 국내 전문건설업계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박 회장에 패한 이 대표는 같은 지역구 5선 의원인 이용희 의원의 아들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KT그룹 여성 임원 2호인 권은희 헤리트 대표는 이명규 무소속 후보를 따돌리고 대구 북구갑에서 당선됐다. 권 대표는 경북대 전자공학과 학사,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사를 마친 후 1986년 KT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2007년 KTH 파란사업부문장으로 KT의 포털사업을 총괄했다.

새누리당 10명 중 7명·민주통합당 7명 중 1명 당선
정몽준·이계안 ‘고용주·전문경영인’ 대결구도 화제

권 대표와 함께 ‘양(兩)은희’로 불리는 강은희 위니텍 대표는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 자격으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5번을 받았다. 강 대표는 지난 1997년 대구에서 통합재난관제시스템 업체인 위니텍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09년 5대 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철도 관련 공기업 출신 가운데 경남 의령·함안·합천에서 후보로 나온 조현룡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금배지를 달았으나 최연혜 전 철도공사 부사장은 민주통합당 박범계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외에 MBC아나운서 출신으로 KT마케팅 임원을 역임한 차영 후보는 출구조사 1위로 기대를 모았지만 새누리당 길정우 후보에게 불과 1412표 뒤져 낙선했다. 또 유경희 유한콘크리트산업 대표도 안철수 원장이 지지한 인재근 민주통합당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선 기업인출신들은 그야말로 죽을 쒔다. 이상직 이스타항공 회장이 유일하게 당선됐다. 이 회장은 광우병 촛불 사태 여파로 물러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회장은 현대증권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주)케이아이씨 대표를 시작으로 10여 개 기업을 M&A하면서 이스타항공그룹을 일궈낸 인물이다.

경제 출신 당선자
역할에 관심 집중

역시 펀드매니저 출신인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대표도 서울 서초갑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1967년생으로 1993년 신영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맨이 된 이 대표는 마이애셋자산운용과 CJ자산운용을 거쳐 2009년 4월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부산 남구갑 후보로 나섰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영입한 인물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정부가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측근 인사가 한국거래소 이사장직에 도전했다 실패했는데 이때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된 사람이 이 전 이사장이다. 당시 정부 의중과 상관없이 취임한 이 전 이사장은 결국 중도 사퇴했고 총선에 나섰지만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2위인 새누리당 유상곤 후보와 불과 1만2000표차로 당선됐다. 성 회장은 자수성가형 CEO가 많은 건설업계에서도 가장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최종학력을 갖고 맨손에서 시작해 대아건설과 경남기업 등을 거느린 자산 규모 2조원대 그룹 총수에 올랐다.

석호익 전 KT 부회장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새누리당 공천이 취소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이완영 새누리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행시 21회 출신으로 서울체신청장,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등의 경력을 자랑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서민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 출신 당선자들의 역할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이들은 과연 19대 국회에서 어떤 목소리를 얼마만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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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