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파란만장' 박근혜 60년 인생사 탐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26 1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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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여왕으로…33년 만에 궁궐로 돌아가요

[일요시사=경제1팀] '공주'가 '여왕'이 됐다. 33년 만에 '궁궐'로 돌아간다. 대통령의 딸도, 퍼스트레이디도 아닌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 자격이다. 대통령의 맏딸이자 5선 국회의원으로 마침내 대권을 향한 꿈을 이룬 박근혜 당선인.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굴곡진 그녀의 60년 인생을 <일요시사>가 집중 조명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학교 교사 출신 육영수씨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2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9살이 되던 해인 1961년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2년 뒤인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큰 영애'로 불리며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박 당선인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가혹한 운명의
퍼스트레이디

박 당선인은 이 시기부터 각종 외교행사에 참석했다.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의 방한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등장했고 1968년 9월에는 대통령 부부의 호주 방문에 동행했다. 196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당시 세계 최대의 유조선인 '유니버스 코리아호'의 진수식에서 샴페인을 떠드리기도 했다.

성심여중에 입학한 박 당선인은 성심여고까지 재학하는 동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1974년 서강대 이공학부(전자공학 전공)를 4년 평균 학점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그해 8월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갑작스런 서거로 귀국한 박 당선인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뒤 일주일도 안 돼 퍼스트레이디 직무대행을 했다.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박 당선인의 첫 일정이었다. 박 당선인은 당시 일기에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적었다. 그녀의 나이 22세의 일이었다.

1974년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은 박 당선인은 새마을운동 정신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어가자는 의미의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영세한 기업과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방문할 때 수행하기도 했다. 1979년 주한미군 철수를 두고 미묘한 시점에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철수 계획이 취소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극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머니를 잃은 지 5년 뒤 10·26 사태로 아버지를 흉탄에 잃었다. 삽교천 준공식 행사에 참석한다고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에 비보를 전해들은 박 당선자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전방은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요람에서 당선까지' 박근혜 당선인의 발자취
부친 서거 소식에도 "전방 이상 없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권력의 대이동이 시작되자 박 당선인은 지만, 근영 두 어린 동생과 함께 1980년 18년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집으로 옮겼고, 이어 성북동 자택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박 당선인은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으로부터 9억원(후에 3억원은 돌려줌)을, 1982년에는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평 규모의 성북동 자택을 받았다. 박 당선인은 2년 뒤 성북동 집을 팔아 장충동에 집을 샀고, 1990년 다시 그 집을 팔고 현재 삼성동 자택으로 이사했다.

이후 18년 동안 박 당선인은 육영재단과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 1994년 인수한 정수장학회 운영에 몰두했다. 1980년 영남대 이사장직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남긴 육영재단 이사장직도 맡았다. 일기와 독서, 시 작성, 단전호흡, 불교경전 읽기 등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며 '훗날'을 준비했다. 1990년 아버지 일대기를 다룬 책 <겨레의 지도자>를 출간했고, 영화 <조국의 등불>을 제작하며 아버지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박 당선인이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7년 발생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자서전에서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혼자 편하게 살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라고 회고했다. 마침내 1997년 12월10일, 대선을 8일 앞둔 시점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지지 선언을 통해 '정치인 박근혜'로서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박 당선인은 2000년에는 선출직 부총재 경선에 참여해 최병렬 후보에 이어 2위에 올라 부총재로 당선됐다.


'천막당사' 배수진
'선거의 여왕' 애칭

2001년 이회창 총재가 당 개혁안을 거부하자 이에 반발해 탈당하고 2002년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이던 2002년 5월12일에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특별기를 타고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들어갔다. 2박3일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나 1시간 동안 단독회담을 한 적도 있다. 들어올 때는 김 위원장의 배려로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들어왔다.

2002년 11월 16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한나라당과 합당한 박 당선인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과 '차떼기 사건'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쳤다. 당 대표 첫날 명동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고 조계사에서 108배를 한 데 이어 영락교회에서 반성의 기도를 올렸다.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 5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완승을 이끌어내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박 당선인이 당 대표로 있던 2년3개월간 한나라당은 4번의 재보궐선거를 모두 승리했다. 2006년 5월20일 박 당선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서울 신촌로터리 지방선거 유세 도중 오른쪽 뺨이 면도칼에 의해 11cm나 찢기는 테러를 당했다. 의사들은 5mm만 더 찔렸더라도 경동맥을 스치며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간 박 당선인은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 지지층을 단결,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 광역단체장 석권을 만들어냈다.

이후 2007년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던 박 당선인은 2006년 6월16일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 경쟁에 돌입, 서울시장으로서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이명박 후보와 경쟁했다. 박 당선인은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전화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 후보에게 패했다. 박 당선인은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 이 후보를 지원해 '아름다운 패배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친이' '친박'계 간 갈등이 본격화 된 것. 18대 총선 때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친이계와 정면 대립했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맞서 본회의장에서 직접 연설을 하며 원안을 고수했다. 친박계 정치인들의 한나라당 복당을 꾸준히 요구해 친박계 60여 명의 복당이 관철되기도 했다.

18년간의 '공주' 생활과 18년간의 '칩거' 생활
1997년 정치권 등장, 2012년 대통령 당선

박 당선인은 2011년 말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보선 패배, 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한나라당이 휘청거리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중도적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며 쇄신작업을 진행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새누리당은 선거전 초반 부정적 여론을 극복하고 4·11 총선에서 152석으로 1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 당선인은 지난 7월10일 "국민 한분 한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18대 대선에 출마했다. 8월20일 김문수 경기지사, 안상수 전 인천시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태호 의원 등과 벌인 당내 경선에서 84%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며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박 당선인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에게 우위를 지키며 대선 레이스를 달려왔다. 중간 중간 과거사 논란·정수장학회 문제·경제민주화 갈등 등의 악재가 돌출됐지만 지지율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고비라 평가되던 문재인·안철수 간 단일화도 박 당선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 당선인은 마침내 지난 1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 첫 과반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 당선인은 1577만3128표를 얻어 문재인 후보(1469만2632표)를 3.6%p(108만496표) 차이로 눌렀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부녀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오르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신뢰의 정치로
대선 승리


박 당선인은 지난 20일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내년 2월25일 공식 취임 전까지 정권 인수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주말 인수위원회 구상을 마친 뒤 이번 주께 인수위원장과 위원 인선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약 두달 여간 정권 인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벌이게 될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은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으로 결정됐다. 내년 1월 중순까지는 국무총리 후보자를 먼저 지명한 뒤 상의를 거쳐 1월 말쯤에는 각부 장관 후보들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 임기는 2018년 2월24일까지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박근혜 당선인 프로필>

출생 1952년 2월2일
본적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5-2
혈액형 B형
신장 162cm
특기 피아노연주
취미 산책, 문화유산답사
좌우명 바르고 현명하게 살자

학력
1970년 성심여고 졸업
1974년 서강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7년 대만 중국문화대 명예 문학박사
2001년 대만 중국문화대 대학원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2008년 한국과학기술원 명예 이학박사
2008년 부경대 명예 정치학박사
2010년 서강대 명예 정치학박사


경력
1974~1979년 퍼스트레이디 대리
1974년 재단법인 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 이사장(현)
1993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현)
1994~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
1994년 한국문인협회 회원(현)
1997년 한나라당 고문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
1998~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운영위원, 한나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
2003년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2007년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11~2012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새누리당)
2012년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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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쪼개는 민주당발 음모론

민주당 쪼개는 민주당발 음모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공소 취소’ 논란이 뜨겁다. 진위는 사라지고 무수히 많은 뒷말과 갈라치기만 남았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청 모두 “황당하다”는 입장이지만 ‘스피커’로 불리는 외부 인사가 계속해서 당을 흔든다면 그 목적을 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대형 폭탄이 떨어졌다. 소위 말하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위급 검사’ 다수에게 “내 말이 곧 대통령의 뜻이다. 나는 대통령이 시키는 것만 한다. 공소 취소해 줘라”라고 주장했다는 것.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저널리스트’를 운영하는 MBC 기자 출신 장인수씨는 친청(친 정청래)·친문(친 문재인) 성향으로 알려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단독”이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안으로 겨눈 칼날 왜? 장씨는 “검찰은 이 메시지를 ‘아, 이재명정부가 우리랑 거래하고 싶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여기까지는 팩트”라고 부연했다. 검찰과 정부가 보완수사권·검찰개혁 수위 등을 놓고 일종의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장동·위례·백현동 개발 및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위증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 5개 재판을 받았으나 대통령 당선 뒤 중단됐다. 장씨는 “이미 검찰은 이재명정부 말기 혹은 퇴임 후에 이 대통령을 털 생각을 하고 있다. 직권남용이라는 죄목까지 정해놨다”며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나 국무회의 생중계에서 지시하는 사안들을 직권남용으로 걸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임은정 동부지검장의 인천세관 마약 사건 수사팀에 백해룡 경정을 배치하라고 지시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자 김어준씨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건 사실이 아닐 것이라 본다. 이 대통령이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을 통해 절차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누굴 만나서 부탁할 일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도 “어떤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냈다면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직후 해당 발언은 ‘공소 취소 거래설’로 압축돼 여의도 전역에 퍼졌다. 코너에 몰렸던 국민의힘은 이를 ‘공소 취소 거래 게이트’로 규정하고 이 대통령에 대한 특검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특검을 통해 이 추악한 뒷거래 시도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며 “이 황당한 ‘사법 거래설’이 세간에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명백하다. 최근 친명(친 이재명)계 주도로 이른바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이 결성됐고, 심지어 민주당은 오늘 그 빌드업의 일환으로 억지스러운 ‘국정조사 요구서’까지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주당과 친명계는 아수라장”이라며 “정권의 사법 거래 의혹을 두고 여권 내부에서 서로 삿대질해대는 참담한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혹평했다. 정부 고위급 관계자의 수상한 거래? “사법 농단 탄핵감” 국민의힘 맹공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 역시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와 검찰 수사권 문제를 맞바꾸려 했다면 이는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라며 “관련자 처벌은 물론이고 사실로 확인될 경우 관련 정도에 따라 대통령 탄핵까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곧바로 받아쳤다. 대표 친명계인 한준호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음모론도 모자라 탄핵까지, 정말 선을 넘었다. 참담하다’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근거로 대통령 탄핵까지 입에 올리는 발언이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서 흘러나온다”며 “사실 확인도 없는 이야기로 음모론을 키우고 급기야 탄핵까지 거론하는 행위는 국정을 흔드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직접적으로 여권 세력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검찰개혁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소 취소 거래설 자체를 감히 꺼낼 수 없다”며 “이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공소가 취소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윤석열 검찰 세력도, 국민의힘 윤 어게인 세력도 그렇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대통령을 쥐고 흔들려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공소 취소 사건의 고위급 검사로 지목된 이들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고위급 검사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공개하며 “장관님께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종종 건의사항을 보내고 있는데, 가장 최근 문자를 받은 것은 지난 12월”이라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검사들에게 특정 사건 관련 공소 취소에 대해 말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최근 제기된 황당한 음모론으로 인해 진지하게 숙의돼야 할 검찰개혁 논의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며 “다시 건설적인 개혁의 논의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의혹이 제기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어디서 문제가 됐는지 조사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중요한 검찰개혁 문제가 엉뚱한 데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 말씀을 국민이 합리적으로 잘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치명타 여권 인사들은 불씨를 댕긴 장씨를 향해 “출처를 밝히라”며 근거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장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긴급 라이브’ 공지를 띄우고 “방송 후 한준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저잣거리 소문만도 못한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제 취재 내용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흔들릴 수 없는 팩트”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의원은 ‘누가 말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 무슨 근거로 확인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공개하라’고 하는데 고민해 보겠다”며 “공개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죄송하지만 출처를 밝힐 수 없다. 출처를 밝히지 않기로 약속하고 취재했다”며 한 발 물러섰다. 공소 취소를 지시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신원도 “그 사람을 저격하기 위해 해당 취재 내용을 밝힌 것이 아니”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공소 취소에 대한 사실관계는 사라지고 진영 논리와 경쟁구도만 남았다. 또다시 ‘정청래 VS 청와대’ ‘친명 VS 친청’ 프레임이 굳어지면서 오는 8월 치러질 전당대회를 향한 당권 경쟁이 벌써 과열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평소 김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를 “민심의 척도”로 강조하는 등 김씨와 우호적인 관계였던 만큼 친청·친문계의 모든 행동이 ‘김민석 총리 당대표 차출설에 대응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김 총리를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는 총리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거부하거나 이 대통령의 순방 기간에 벌어진 중동 사태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대응을 두고 “국무회의도 없었다”며 국정 공백을 지적했다. 이에 총리실은 “대통령 순방 중에 정부는 중동 상황 발발 직후부터 매일 오후 비상 점검을 위한 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후에는 대국민 브리핑을 진행해 왔다”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검찰개혁 뒷다리만 최근에는 ‘KTV 이매진(KTV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이재명 대통령의 싱가포르·필리핀 국빈 방문 출국길 영상을 논란 삼으면서 직접적으로 정부와 각을 세웠다. 해당 영상에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 정 대표 지지자들이 ‘딴지일보’ 게시판을 통해 “의도적 삭제”라고 반발한 것. 김씨는 자신의 방송을 통해 “대통령과 당 대표자의 악수 장면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실수일 수 있다”면서도 “그런 실수가 민주정부 정권 재창출을 막으려는 악의적인 시도에 이용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몇 차례 마찰이 있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조금씩 갈라지던 민주당 지지층이 이번 사태를 통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누적된 갈등이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 공소 취소라는 민감한 소재에 대통령을 엮었다는 점이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김씨와 정 대표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민주 진영에 내분을 일으켜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설명이다. 기존 지지자와 더불어 ‘뉴이재명’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전통 민주당 당권파와 다른 양상을 띠면서 표심이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녔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투쟁 전선이 넓어진 것 역시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과 ‘당심(당원의 의중)’이 대척점에 서면서 모든 사안이 권력투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공취모(이재명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를 중심으로 움직임에 나섰지만, 외부에서 여론을 흔드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현 정부에 오히려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의 뜻’인지 ‘참칭’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통령 직접 개입이라는 최대 해석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정치적 파장이 큰 주장일수록 더 엄격한 증거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이렇게 음모론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김어준 VS 청와대’ 유튜버에 휘청 8월 전대 앞두고 사방서 권력투쟁 정 대표는 “당에서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갈등 진화에 나섰다. 그는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 치하도 아니고 가장 민주적인 이정부에서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다”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실제로 있는 일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소 취소는 거래로 될 일이 아니”라며 “합법적인 방법인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윤석열 정권 치하에서 벌어진 조작 기소 사실이 드러나면 상응하는 조치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대표와 김씨가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갈등 진화에도 민주 진영 커뮤니티는 이미 격양된 사용자들의 게시글로 도배가 됐다. “이 대통령이 보완수사권을 갖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유튜버가 정부를 흔드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대해진 유튜브 권력을 규탄하기도 했다. 정부의 검찰개혁인 이른바 ‘정부안’에 반대하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공소 취소 거래설을 퍼뜨린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친명·친청계 유튜버들이 이번 사태에 대거 참전해 분석에 나섰고, 해당 주장은 게시글로 가공돼 또다시 커뮤니티로 퍼지는 순환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이번 논란에 대해 공식 대응을 삼가고 있다. 해명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사사건건 대응한다면 오히려 국정 운영에 힘만 빠진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종의 ‘프레임 작전’이라며 상대방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거래설 제기’가 정말인지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별도 방송을 확인한 결과 어디에서도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찰과 공소 취소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말은 없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검찰개혁-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를 추적했다. 노 의원은 “네이버 기사 검색 결과에 따르면 가장 먼저 거래설을 띄운 건 <조선일보>”라며 “장씨의 주장 전체를 거래설 제기로 인식케 하는 교묘한 프레임이라 할 만하다. 이후 나온 보도들에서는 대놓고 거래설 제기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배후는 누구? 이어 “장씨가 거론한 ‘거래’는 ‘우리랑 거래하자는 거구나’라는 검찰의 일방적 반응을 전하면서 말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논란의 문장 자체를 ‘거래 시도’로 해석한다면 해석하는 쪽과 다퉈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장씨를 향해 “섣부르고 무책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면서도 “프레임에 갇혀 지금처럼 우리끼리 싸우면 별것도 아닌 것만 나와도 수습하기 어렵다. 잠시 숨을 고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칼 빼든 민주당 “법적 조치 나서겠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소 취소설을 제기한 MBC 기자 출신 장인수씨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공소 취소 거래설에 대해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2일 민주당 국민소통위원장인 김현 의원과 허위조작 정보 대응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김동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씨를 정보통신망법 제70조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발언이 ‘대통령과 정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주장’이라는 게 주요 골자다. 앞서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은 장씨와 더불어 김어준씨를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사세행은 “김씨는 장씨 발언 내용에 대해 방송 이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장씨의 발언을 사전에 승인하고 그대로 방송에 출연시켰다”며 “장씨와 함께 공동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 정 장관의 검찰개혁 업무 특히 공소청법 및 중수청법 입법 추진을 심대하게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