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된’ 재벌 후계자 자질 논란

설익은 왕자님 새파란 공주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재벌가 2·3세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을 지칭하는 ‘금수저’라는 신조어 역시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가 2·3세 대다수는 별다른 능력 검증을 거치지 않고 회사를 물려받는다. 경영 일선에 나서는 연령대마저 낮아지면서 30대 초반부터 그룹 내 요직에 이름을 올린 경우도 심심치 않다.

지배구조 개편작업과 함께 재벌가 2·3세의 경영참여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금껏 재벌가 후계자들은 평균적으로 20대 후반에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말단 직원의 임원 승진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다

지난 9월 한국CXO연구소가 발표한 ‘2015년 100대 기업 임원 숫자와 평균 연령 현황분석 결과’에 따르면 재벌기업 다수에 젊은 임원들이 포진해 있다.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회사 임원으로 떠올라 승계구도의 중심에 서는 모습도 빈번해지는 양상이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1982년생)와 이만득 삼천리 회장의 삼녀인 이은선 삼천리 이사(1982년생),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의 장남인 김요한 서울도시가스 부사장(1982년) 등이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임원 직함을 달았다.

정몽준 전 회장의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중공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정기선 상무는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입사해 반년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승계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2014년 임원이 됐다. 상황을 봐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은 확실시된다. 어려운 회사 사정을 고려할 때 그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임창욱 명예회장이 199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상그룹에서는 총수일가 3세인 임상민 상무(1980년생)가 주목의 대상이다. 언니인 임세령 상무와 함께 회사 내에서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임씨는 대상홀딩스 지분 36.71%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 2·3세 초고속 승진 잔치
30대에 임원…경영능력 ‘글쎄’

중견기업에서 총수일가 2·3세 임원을 찾는 일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식음료업계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올해 창립 65주년을 맞은 주류업체 보해양조는 지난 11일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창업주인 고 임광행 회장의 손녀이자 보해양조 최대주주인 임성우 창해에탄올 회장의 장녀 임지선씨(1985년생)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임 부사장은 대표이사 재임기간 ‘부라더시리즈’를 선보여 주류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대표이사에 선임된데 이어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임씨의 승진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경남지역에 거점을 둔 주류업체 무학 역시 일찌감치 3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최재호 회장의 아들 최낙준씨(1988년생)는 지난 3월 무학에 입사하자마자 등기임원에 오르며 상무를 달았다. 최 상무는 미국 유학 후 경남은행 재무기획부에서 약 1년간 근무하다 올해부터 회사로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또 다른 주류업체 국순당도 지난 4일 창업주인 고 배상면 회장의 장손이자 배중호 대표의 아들 배상민 상무(1981년생)를 영업총괄본부장으로 선임했다. 배 상무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다국적 컨설팅업체에서 근무하다 2012년 국순당에 입사했다. 사내에서는 기획, 구매 부서를 거쳐 영업총괄본부장을 거쳤다.


조만간 2·3세의 경영 참여가 예상되는 기업도 눈에 띈다. 이재현 회장의 경영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CJ그룹은 오는 15일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이후에 정기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벌써 부사장
비판적 시각

일각에서는 선고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오쇼핑 과장(1985년생)과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사원(1990년생)의 경영참여가 구체화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나이가 어린 데다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흥미로운 점은 30대 초중반에 불과한 재벌 2·3세들의 기업 내 요직 진출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이들이 구설수에 휘말릴 경우 잡음이 훨씬 크게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남다른 출신배경과 사회 통념에 대한 이해부족 탓으로 돌려도 큰 무리는 없다.
 

지난해 끝자락을 뜨겁게 달군 ‘땅콩회항’ 사건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개인의 잘못을 넘어 회사 이미지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허탈한 직원들
상대적 박탈감

최근 몇몇 대기업에서는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한창이다.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재벌가 2·3세들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30대기업 자산승계율은 40%를 웃돌고 있으며 지분 승계가 종료됐거나 진행 중인 재벌기업들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30대 초중반에 불과한 재벌가 2·3세들의 경영 참여를 대중들이 그리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난 24일 경제개혁연구소가 내놓은 재벌의 경영권 승계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가구전화 및 휴대전화 설문방법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 과반 이상의 사람들은 재벌 2·3세의 경영권 승계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정적이라는 응답자가 54.8%인데 반해 긍정적인 답변은 34.4%에 불과했다.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선 “총수일가가 경영을 독점하는 것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것(39.6%)”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경영권과 재산을 물려받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도 25.2%였다.

반면 경영권 승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경영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라는 응답이 35.5%였다. 이어 “전문경영인보다는 주인이 있는 기업이 보다 성장가능성이 높기 때문(24.4%)”이 뒤를 이었다.

갈수록 빨라지는 경영승계 속도
“원만” “경험부족” 평가 엇갈려


이처럼 2·3세대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는 것은 이들의 능력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재벌가 2·3세는 조기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20대 중반에 입사한 후 초고속으로 승진해 임원 배지를 달고 경영자의 지위에 오른다. 평사원을 거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설령 밑에서부터 차근히 단계를 밟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통솔력을 갖추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험 부족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로 연결된다. 재벌가 2·3세가 임원에 임명된다는 것은 핵심 의사결정권자로 발돋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의 의사결정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선대와 달리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전세대가 개척자 정신으로 회사를 일궜다면 2·3세는 선대의 의지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빈번하다. 대다수 재벌 2·3세들을 잡초 근성이 부족한 온실 속의 꽃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와 달리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책임감이 희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평범한 직장인들이 꿈꾸기 힘든 자리에 어렵지 않게 도달하는 2·3세들은 애초부터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언급했다.

예전부터 재벌그룹의 최대 난제는 대외적인 정세 변화가 아닌 ‘오너리스크’란 말이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창업주가 일신상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후임자의 능력 부족으로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이 회사 내부에서 사그라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금수저니…’
대중의 시선

물론 30대 젊은 임원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다만 실무 경험이 미천한 재벌가 2·3세에게 애초부터 큰 기대를 갖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심각한 구직난과 대비되는 그들만의 세상에 씁쓸함이 더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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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