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는’ 조석래·이재현 역할론 막전막후

회장님에 기회를…무르익는 석방 분위기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경제인 사면은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그들이 취한 엄청난 폭리 규모는 서민들이 평생을 일해도 모으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가 다반사다. 그만큼 반대 여론이 거세다. 다만 이들에게 무작정 법의 잣대를 내세우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 이들의 허물을 덮어줘야 할 필요성마저 부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잡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벌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를 뜻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면을 단행했다. 주로 연말·연초나 국경일, 석가탄신일, 성탄절 등 특정 계기가 있을 때마다 특별사면을 해왔던 게 관례. 다만 특별사면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최근에는 횟수가 이전보다 현격히 줄어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비춰지곤 한다. 일단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법의 심판대에 오른 기업 총수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추측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건강 안좋고
나이도 많아

지난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및 피고인들의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또한 조현준 사장에게는 징역 5년에 벌금 150억원, 이상운 부회장에게는 징역 6년과 벌금 2500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조 회장은 분식회계 5010억원, 탈세 1506억원, 횡령 690억원, 배임 233억원, 위법 배당 500억원 등 총 7939억원의 기업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검찰은 조 회장이 가짜 기계장치,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조세권을 무력화했다고 보고 있다. 효성의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회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유용하고 회사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행동을 단순히 법적 잣대로 처리하기에 애매하다고 말하고 있다. IMF 당시 효성은 누적된 부실자산으로 생존의 기로에 섰지만 일부 계열사를 정리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정리를 반대한 까닭이다. 대신 그룹 내 우량계열사와 합병해 부실을 떠안아야 했다.

재계 관계자는 “IMF 당시 부실 계열사 정리를 하지 못한 효성의 속사정에는 외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다보니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소재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효성그룹의 위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조석래 회장의 선고는 내년 1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형량이 확정되더라도 수감생활을 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조석래 회장은 2010년 담낭암이 발생해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복귀까지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부정맥과 전립선암까지 발견돼 형 집행정지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판결 예고…집유 가능성 높아
‘필요하다면’ 바로 사면 필요성도 제기

효성의 변호인단은 “조 회장이 담낭암에 전립선암까지 추가로 발병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고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비슷한 처지다. 지난 10일 서울고법에서는 1600억원대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검찰은 2심과 같은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 이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으로 향했다.
 

건강문제로 구속집행정지 중인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법정에 선 뒤 14개월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990년대 중·후반 비자금 1600여억원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2013년 7월 구속기소된 이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원심에서 횡령으로 인정한 600억원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2심까지 배임 혐의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적용해왔지만 “배임에 따른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형법을 적용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법상 배임죄는 금액에 관계없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특경법에 따른 배임죄는 5억∼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에 처해진다. 이 회장의 배임 혐의 액수는 323억원이다. 이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범죄 정황이 드러난 이상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될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효성그룹과 CJ그룹이 입는 타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두 사람이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통상 특별사면을 앞둔 시점이 되면 어떤 인물이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제인들은 특별사면이 이뤄질 때마다 요주의 대상이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8월 행해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도 대기업 총수 일부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엄벌이냐 선처냐
난처한 회장님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 및 범위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법무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지난 8월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사면 기준 및 대상자 명단을 정리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재벌 총수 사면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특사 명단 포함 여부를 두고 이름이 오르내린 재계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집행유예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을 제외한 대다수는 특사에 포함되지 못했다.
 

재계에서 특별사면에 민감한 건 그만큼 재벌 총수 사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회장 특별사면 소식이 전해진 8월13일 SK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뛰어올랐다. SK이노베이션(6%), SK하이닉스(3%), SK(2%) 등 당일 SK관련주 가운데 SK텔레콤(-1.38%)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미뤄둔 대규모 투자와 경영공백 우려감 등이 일거에 날아간 까닭이다.

SK그룹 관련주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큰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인수합병과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경영 의사 판단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 회장이 복역 중이던 2년7개월간 M&A 시장에서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두 그룹이 흔들리면 경제가 휘청
죄는 미워도…대내외 역할론 부상

반면 김승연 회장의 사면을 내심 기대했던 한화그룹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 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완전한 경영복귀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현재 김 회장은 공식적인 대표권이 없으며 해외출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룹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해외 사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크다. 이라크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북미 태양광 시장 진출, 국내외 태양광 셀 생산 구축 등 해외에서 굵직한 사업을 벌이는 만큼 아쉬움은 배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특별사면의 영향력은 업계 전반의 분위기마저 바꿔놓고 있다.

광복 70주년 특사는 4대강, 호남고속철사업 등 입찰담합 대형 건설사에 부과된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 등 행정처분마저 해제했다. 행정처분 사면 조치에 해당되는 건설사는 78곳에 이르렀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시공능력평가 30위 내 업체가 26곳, 100위 내 업체가 53곳이다.

이 조치로 공정위에서 이미 입찰담합으로 적발돼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을 받은 건설사들에 내려진 영업정지, 업무정지, 자격정지, 경고 처분이 일순간 해제됐다. 또 현재 공정위의 담합 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인 사업에 대해서도 특별조치 이후 일정기간 내에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할 경우 입찰참가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사면으로 그동안 국내외 사회간접자본(SOC)시장에서 위축됐던 국내 건설사들의 위상이 다시 올라갈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경쟁사들의 마타도어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해외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받는 불이익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특사 한다면…
즉각적인 효과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프로젝트 수주경쟁에서 중국 등 다른 건설사들이 한국기업의 입찰제한 처분 사실을 발주처에 제보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속출했다”며 “사면 덕택에 수주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년 초 특별사면이 이뤄질 가능성을 벌써부터 언급하기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앞서 광복절에 특별사면이 있었던 만큼 내년 초 특별사면이 또 다시 행해지기란 힘들다는 게 주된 요지이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은 오는 2017년 대선 직후 성탄절 또는 2018년 신년, 2018년 차기 새통령 취임 등을 계기로 특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설사 특사가 이뤄진다 해도 법정 형기를 마치지 않은 기업인까지 포함 시킬지는 미지수이다. 재벌 스스로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기업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실행되느냐 역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특별사면을 상당히 자제해왔다. 김영삼(9차례), 김대중(8차례), 노무현(8차례), 이명박(7차례) 등 전임 대통령들이 10차례 가까이 특별사면을 시행한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하더라도 단 2번에 그쳤다. 무분별한 특별사면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대선 당시 언급한 내용을 지금까지는 충실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조 회장과 이 회장이 명단에 포함되리란 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에 휩싸인 이들에 대한 사면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복절 특별사면이 결정될 즈음 여당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경제인 사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국민의 삶이 힘든 시점에서 국민대통합과 경제회복을 위해 매우 시의 적절한 결정”이라면서 “국가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사의 긍정적인 영향을 언급한 바 있다.

특별사면이 결정되더라도 경제인 포함 여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다만 이전부터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폭적인 사면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당 측이 누누이 밝혀왔던 점은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한 가닥 희망의 끈이나 다름없다.

결과는 언제쯤?
빠르면 내년 초

올해 3%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사실상 물 건너간 가운데 내년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대로 예측했지만 대다수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전망치를 내리거나 2%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결국 현재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역량이 극대화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서민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의 의중이 명확히 부각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현실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밉던 곱던 간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작정 간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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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