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분쟁 2라운드 '장남의 반란' 관전포인트

더이상 물러날 곳 없다 ‘배수의 진’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훗날 조선 3대 임금으로 등극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숱한 피를 재물로 삼았다.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권력마저 빼앗았다. 최근 롯데그룹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왕위 쟁탈전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방원과 조선, 신동빈과 롯데그룹의 관계는 묘하게 닮아 있다. 차이라면 장애물을 철저히 없앤 이방원과 달리 신동빈은 정적에게 도발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이 또 한 번 내홍에 휘말렸다. 돌이켜보면 지난 8월 발생한 형제 간 왕위계승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당시보다 더 큰 규모의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차남이 우위를 점한 사실은 변함없다. 다만 아버지의 후광을 기으로 장남이 이전보다 면밀히 준비해 온 만큼 섣부를 판단은 금물이다. 차남의 우군을 자처했던 세력이 판도를 좌지우지할 키를 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자신하는 동생
출렁이는 롯데

분쟁의 시작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그룹 지분 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를 장악하고 동생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을 향해 칼끝을 겨누면서 비롯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4일 일본 광윤사 긴급 주주총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시켰다. 이사회에서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주식 1주를 사들여 과반 지분도 확보했다.

정혜원 SDJ코퍼레이션 상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자격으로 지금부터 롯데그룹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개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의 약 1/3에 이르는 종업원지주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산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신동주의 난’ 노림수 혹은 무리수 
‘정점’광윤사 장악…신동빈 해임

승부의 관건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드러났듯이 종업원지주회가 어느 쪽에 힘을 싣느냐로 귀결된다. 현재 종업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의 2대주주(27.8%)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정리된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위에서 군림해온 신 총괄회장 일가의 사실상 가족회사다. 신동주 전 부회장(50%), 신동빈 회장(38.8%), 신격호 총괄회장(0.8%),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10%) 등이 100% 소유하고 있다.

또한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주주이다. 롯데홀딩스는 지분 구조는 광윤사(28.1%), 종원원지주회(27.8%), 관계사(20.1%), LSI(10.7%), 오너일가(7.1%), 임원지주회(6.0%), 롯데호텔(5.5%), 롯데재단(0.2%) 등으로 이뤄졌다.

지금껏 종업원지주회의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측근이 맡았고 롯데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주총에서 돌연 종업원지주회는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개별 구성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에 따라 움직인다. 종업원들이 개별적으로 주식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개별 의결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당으로 보상받는다.


게다가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이사장 한명에 의해 행사된다. 의결권을 행사하기 전 이사회 개최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사회 구성이나 구체적인 이사회 결의 방식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결국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확보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종업원지주회를 끌어들이는 게 숙제다. 그리고 종업원지주회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SDJ코퍼레이션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은 “종업원지주회를 설득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의 경영실패 사례 등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이번엔 다르다’
의결권 미지수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준비가 이전보다 착실해진 만큼 이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종업원지주회 지분이 신동빈 회장에게 무작정 쏠린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최대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상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종업원지주회를 자신의 우호 지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종업원지주회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 지분 상당수를 종업원들에게 일정부분 나눠준 형태로 출범했다.설립 과정을 감안하면 종업원지주회가 무작정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싣는다고 보기 힘든 셈이다. 오히려 회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배당으로 분배하는 만큼 주총 때 최대주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삼성전자 전체 주식의 3% 남짓을 소유한 이건희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어찌 본다면 비슷한 맥락이다. 압도적으로 주식을 많이 보유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다.
 

물론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의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종업원지주회는 경영권의 향방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입장에 놓인다. 다만 지금까지 행보를 비춰볼 때 종업원지주회는 그리 능동적인 집단은 아닌 듯한 인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업원지주회는 설립 취지로 보자면 신동주 전 회장에 가깝지만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선 전례가 있다”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력이 종업원지주회에 어느 선까지 미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홀딩스 최대주주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종업원지주회에 기대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광윤사 등기이사 해임 건이 롯데그룹 후계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 역시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전면에 내세운 안건이 롯데그룹의 중국시장 공략 실패다.

지난 1997년 부회장 승진한 이래 신동빈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지난 2008년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2009년 두산 주류부문, 2010년 필리핀 펩시 공장,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수, 올해 더 뉴욕 팰리스 호텔까지 연이어 인수하면서 신동빈 회장은 빠르게 롯데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 사이 롯데그룹의 자산도 급증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2011년 이후 4년간 롯데그룹의 총 자산은 약 20%, 매출액은 약 40% 늘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성공리에 안착한 건 아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겪은 손실은 신동빈 회장의 그간 행적을 희석시킬 만큼 커다란 악재였다. 이를 두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손실 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으며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사재를 털어서라도 물어내라며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 세력의 결집력이 과연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롯데그룹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신동빈 회장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고 보긴 힘들고 그렇다고 확실한 우군을 확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영권 다툼에서 한차례 패배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비슷한 형태로 또 한 번 고배를 마실 수 있다는 견해가 부담스럽다. 달리 말하자면 신동빈 회장이 지난 8월과 동일한 수순으로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동주 뜨니
주가는 하락

아직까지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배신했던 종업원지주회의 신임을 엊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지주회의 의중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확인됐고 불과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었던 만큼 판세 뒤집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 측은 종업원지주회를 확실한 우호세력으로 바라보는 인상이 짙다. 이 경우 자기주식+우호지분은 50%를 상회한다.


신동빈 회장 측이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만 보유한 가족회사에 불과하다”며 “신동빈 회장의 이사 해임이 그룹의 경영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승부 키는 종업원지주회
각자 설득 작업에 나서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빠르게 회사를 수습하고 나선 신동빈 회장의 행보가 긍정적으로 비춰진다는 것도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부담요소다.

비록 장남은 아니지만 신동빈 회장은 주주들에게 자신의 경영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에서 정통성을 지닌다. 지난달 17일 국정감사 증인 출석 당시 “이사회에 막강한 권한을 줬다”며 “이사회가 결정하면 저를 해임할 수도 있고 해직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정통성을 자신했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다시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주주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순 지분율을 넘어 ‘경제적 가치’라는 낯선 개념까지 강조하며 ‘소유=경영’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킨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광윤사 지분율이 50%고 롯데홀딩스에 대한 경제적 지분 가치가 36.6%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분 가치가 이렇게 높은 대주주를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 신동주 전 부회장의 실제 지분은 28.1%에 국한된다. 그가 주장한 경제적 지분가치는 의결권 없는 주식 비중을 배제했을 뿐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호텔롯데의 상장과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 방안을 발표하며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416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전문가들도 기존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게다가 형제 간 분쟁이 롯데그룹 관련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신동빈 회장에게 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처음으로 부각됐던 지난 7월말 롯데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하자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반등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벌써부터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오너리스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버지 선택은?
신격호에 주목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소송의 뜻을 밝힌 지난 8일 이후 롯데쇼핑은 4.09% 주가가 하락했다.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 롯데 그룹주들도 같은 기간 각각 3.77%, 2.77%, 2.07% 주가가 떨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롯데그룹 주가에 좋이 않은 영향을 주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최근 이미지 쇄신에 노력하는 롯데그룹의 행보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똘똘 뭉친 신동주 사람들

롯데그룹 경영권 쟁탈전이 또 한 번 부각되면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신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이다.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최근 국내에 설립한 SDJ코퍼레이션의 고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민 고문 옆에는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와 조문현 법무법인 두우 대표 변호사가 함께 했다.

산업은행 총재와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던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오랜 시간 교류해 온 인물로 꼽힌다. 최근에는 나무코프, 티스톤 파트너스 등 사모펀드 업계에서 활약해왔다. 주목할 점은 그가 금융계 전문가로서 정·관계에 막대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민유성 주도…가신들 모습 드러내
닻 올린 SDJ 실무진 10여명 구성

실제로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에게 고교 동창인 두 변호사 친구를 소개해 이른바 ‘신동주 자문단’을 구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민 회장의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인사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신동주 사단은 이들 외에도 실무진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닻을 올린 SDJ코퍼레이션이 규모를 키울 경우 운영진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SDJ코퍼레이션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최근 한국에서 설립한 회사로 향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국 내 전초기지가 될 법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로 올랐고 전자와 생활제품 무역업 및 도소매 등을 사업 목적으로 등록했다.

더불어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주주총회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소베 테츠를 신임 이사로 선임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공동전선도 분명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광윤사 주총에서 신임 이사로 선임된 이소베씨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로 20년 이상 보필한 최측근으로 꼽힌다. 그가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이사회로 선임되면서 광윤사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 전 부회장의 무게감도 더욱 커지게 됐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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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