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재건’ 박삼구 잃어버린 6년 풀스토리

먼길 돌아 제자리 “화해만 남았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갈림길을 두고 원하든 원치 않던 선택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 무작정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란 보장은 없다. 탁월한 선택으로 칭송받던 결단이 엄청난 고통을 주는가 하면 그릇된 선택이 ‘신의 한수’로 둔갑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중분해 된 그룹을 찾고자 긴 시간 험준한 길을 돌아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전남 나주 출신의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했다. 1971년 금호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면서 어느덧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11위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또 한 번 대담한 도박을 단행한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이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재계 순위는 11위에서 8위, 다시 7위로 뛰어올랐다.

덩치불리기 후유증
유동성 위기 몰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자 현금 유동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약 3년이 흐른 2009년에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돈줄이 말라버린 탓이다.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각각 4조6000억원과 1조6000억원 수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축이던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각각 6800억원, 8500억원, 6900억원에 불과했다. 


과도한 빚은 머지않아 골칫덩어리로 되돌아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면서 전체 지분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2009년 말까지 인수 당시 주가 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될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대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3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풋백옵션 행사하며 대우건설을 3만원에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무려 4조2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 이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우건설은 형제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9년 당시 불거진 경영권 분쟁에서 심각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갈등의 시작은 역시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박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에 나서자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마저 묵살하자 이후부터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이 커졌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업계 불황 등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지난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박 회장은 같은 해 7월 ‘지분공동보유’ 규칙을 깬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채 본인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진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 방도마저 찾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된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나마 다행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후 금호그룹 재건에 나선 박 회장에서 두 가지 요건은 결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한다.

시간 돌린다면…
꺾지 않은 의지

급하게 남은 자산을 수습하고 그룹 재건 의지를 천명한 박 회장은 일단 사재 333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경영 일선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를 중심으로 내실 다지기에 힘을 쏟는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어림짐작으로 약 6년이다.


그 사이 옛 영광의 한축이던 금호산업이 다시금 매물로 나왔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금호산업을 주의 깊게 바라본 건 비단 박 회장만이 아니었다.

지난 3월2일 금호산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호반건설과 사모펀드 4곳(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자베즈파트너스, IMM PE)을 입찰적격자로 선정했다. 매각대상은 채권단이 금호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감자·출자전환으로 갖게 된 지분 57.5%, 약 1955만주였다.

대우건설 인수 삐거덕 승자의 저주 현실로
배탈난 무리한 투자…형제간 우애까지 금가

당시 채권단이 금호산업 매각대금으로 설정한 금액은 약 1조원 수준이었고 실제 인수금액 역시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측됐다. 매각 소문이 흘러나온 직후 7000억∼8000억원으로 예상되던 금호산업에 1조원이라는 금액이 매겨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금호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반증한다. 호반건설이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호반건설은 지난해 도급순위 15위를 기록한 알짜 중견건설사로서, 도급순위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금호산업(20위)보다 우위에 있다. 금호산업에 대한 호반건설의 의지는 지난 3월25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대한상의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상열 회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우리의 자산이 2조원 가량인데 채권단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1조원 조금 안되는 수준이라고 들었고 이를 두고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단독입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호산업에 대한 의지는 호반건설보다 박 회장이 훨씬 굳건했다. 금호산업은 박 회장에게 그룹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시점에서 두 회사는 경영권이 분리됐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결점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한축을 담당해왔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30.08% 보유한 상태였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단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는 금호산업 인수가 아시아나항공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산하 계열사의 경영권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찾는다
인수금은 어떻게?

결국 금호산업 인수전은 좌충우돌 끝에 박 회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난달 24일 채권단이 제시한 금호산업 지분 50%+1주를 박 회장이 7228억원에 인수키로 동의한 것이다. 지난 4월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던 호반건설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인수전 중간에 이탈한 상태였다.

이제 자금을 조달해 채권단에게 쥐어주면 6년 만에 다시 그룹의 주인이 된다. 다만 박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매각에 동의한 채권단도 박 회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인수 대금 7228억원을 12월30일까지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박 회장 자금 여력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박 회장은 3년 전 우선매수청구권을 받기 위해 금호산업에 2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현재 박 회장의 가용 자산이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보유분을 포함한 금호산업 지분 9.9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IB업계에서는 3개월 전 되찾은 금호고속을 다시 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 주식 100%(1000만주)를 칸서스HKB 사모 펀드에 3900억원을 받고 재매각한다고 밝혔다. 칸서스HKB는 칸서스자산운용이 8월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고속을 매각한 대금으로 금호산업 지분을 살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출자 전환 주식 매각 준칙에 따라 계열사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라 이마저 녹록지 않다.
 

칸서스자산운용이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자 받아 박 회장의 재무적 투자자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인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바 있는 칸서스자산운용은 박 회장과 지역 연고가 같은 김영재 회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과 사실상 동맹관계인 칸서스자산운용이 백기사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칸서스자산운용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박 회장과 함께 인수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된 빚잔치 시련의 회생기
금호산업 재인수 마무리 단계


여기서 최근 박 회장의 지원군으로 또 다른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던 금호석유화학이다. 최근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사이에 어딘지 모를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24일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했던 어음대금 90억원과 이자 30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금호피앤비화학은 소송을 취하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이고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이다.

금호그룹은 계열 분리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대상으로 각각 90억원, 3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CP)을 매입토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초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CP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어음금 청구 소송을 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소 제기 이후 CP 대금을 갚았으나 금호산업은 금호석화와 금호피앤비화학 등을 상대로 상표권 지분이전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법원은 금호산업이 제기한 상표권 소송 1심에서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양측에 모두 공동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해 사실상 금호석화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1건의 소송취하로 둘 사이 쌓인 앙금이 전부 해소됐다고 보는 건 확대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금호산업이 어음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석유화학에서 소송을 취소한 과정은 상표권 소송 판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던 모습은 일정부분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상처가 너무 깊다
동생과 화해 수순

하늘 높이 치닫던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원대한 이상은 산산조각난지 오래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거대한 채무만 남긴 채 남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형제 간 우애마저 쉽사리 회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의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룹 재건이라는 큰 목표아래 일정부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영광을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만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남들에겐 큰 교훈이 된 셈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