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하림 세무조사 막전막후

‘메가톤 세풍’ 10원까지 탈탈 턴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몸집불리기에 열을 올리던 '하림그룹'이 연이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팬오션' 인수, 담합 의혹 등으로 불거진 잡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더해지면서 더욱 골치 아파진 형국이다. 단순 세무조사로 치부하기에는 적지 않은 의문이 따른다. 하림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초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덩치 키우기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에 사세확장을 노리고 공격적인 M&A를 거듭하다 몰락하는 광경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 소식을 접한 대다수 관계자들이 무리한 투자로 바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데…

정작 하림의 문제는 팬오션이 아니라 국세청 세무조사인 듯한 분위기다. 기업의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자칫 잘못하면 기업의 투명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위기로 봐도 무방하다.

하림그룹은 닭가공업체 ‘하림’, 사료전문업체 ‘제일사료’, 양돈 전문업체 ‘팜스코’, 홈쇼핑업체 ‘엔에스쇼핑’ 등 총 85개사 계열사를 휘하에 두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 자산규모는 약 4조8000억원. 지난 6월 팬오션을 약 1조원에 인수하면서 덩치가 한층 커졌다.

1966년 범양전용선으로 출발해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한 팬오션은 탱커·벌크선·자동차 운반선·LNG선 등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철광석·석탄·곡물·비료·원목 등의 벌크선 화물 운송에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2004년 STX그룹에 인수된 시점부터 2013년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평가다.


팬오션이 보유한 자산 약 4조원을 흡수한 하림의 자산규모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9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이다. 큰 변동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동안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던 하림은 내년부터 대기업에 포함된다. 내년 초 재계순위 30위권으로 도약이 점쳐진다.

팬오션 인수의 기쁨도 잠시, 최근 하림은 특별세무조사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팬오션을 품는 과정에서 개운치 않던 뒷맛이 세무조사를 거치며 무시할 수 없는 후폭풍으로 변해버린 양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고강도 특별조사 시작
재계 30위권 앞두고 '몸집불리기' 탈났나

최근 국세청은 조사4국 요원 70여명을 투입해 전북 익산 하림 본사를 조사했다. 하림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 2012년 정기세무조사 이후 약 3년 만이다.

당시 광주국세청은 거래, 세무, 회계내역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일정 매출액 이상 법인에 대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기세무조사 형식이었다.

이번에는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을 추궁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하림은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이자 핵심 계열사인 ‘올품’과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올품의 내부거래 비율은 2013년 21.2%(매출액 3464억4000만원 중 736억9000만원), 2014년 21%(매출액 3466억2000만원 중 729억5000만원)에 이른다.
 

올품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고리의 중심에 서있다.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올품이 부각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료값 담합 여부 역시 세무조사의 핵심 사안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문용 하림 대표는 지난달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국감에서 사료값 담합과 관련해 '리니언시(자진신고감경제도)' 혜택을 받았음에도 담합 사실을 부인해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이날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사료담합을 집충 추궁했다.

하림은 13일 황 의원 측에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사료업체들 사이에 합의가 없었고 경쟁제한성도 없었다는 점을 입증할 예정”이라고 답변서를 보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하림은 공정거래위원회 사료담합 조사 과정에서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50% 감경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리니언시란 담합행위를 한 기업들에게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제도로서,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 100%,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 감면 혜택을 준다.

뭔가 걸렸다?
시한폭탄 작동

실제로 지난 7월 2일 공정위는 배합사료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하려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카길애그리퓨리나' '하림홀딩스' 'CJ제일제당' 등 11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773억34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하림에 내려진 과징금은 총 87억원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지난 2006년 10월부터 2010년 11월 사이 총 16차례에 걸쳐 가축 배합사료 가격 인상폭과 적용시기 등을 담합했다. 황 의원은 “내년이면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소속되는 하림이 국감에서 위증을 한 셈”이라며 “이달 초 열리는 종합감사에서 하림 대표를 다시 증인으로 채택해 따져 묻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치킨프랜차이즈에 대한 세무조사가 원재료 제공 업체인 하림으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세무조사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단 이번 경우는 3년 전과 조금 다른 양상이다.

통상 기업은 5∼6년 주기로 정기세무조사를 거치는데 3년만에 다시 세무조사를 받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대기업 집단에 속하게 되는 하림에 대한 국세청의 전방위 압박이자 팬오션 인수와 관련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재조명 받는 사안이 팬오션 인수건이다.

팬오션 인수 과정에서 하림은 적잖은 걸림돌을 헤쳐나가야 했다. 기존 팬오션 주주들과의 갈등이 수면위로 부각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인수에 앞서 하림은 법원에 팬오션이 제출한 변경회생계획안의 무상감자 내용을 두고 올해 초 지분율 72.87%에 달하는 기존 팬오션 주주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2013년 9월 출자전환으로 주가대비 60% 이상의 손실을 감수했던 팬오션 소액주주들은 하림에 인수되기 전 팬오션이 제시한 1.25 대 1의 무상감자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회원수 4500여명 규모인 ‘팬오션 소액주주 권리찾기’는 헐값매각에 항의하며 당시 팬오션 관리인이었던 김유식 대표를 대검찰청에 고발한다. 하림이 인수할 경우 불매운동을 비롯한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마저 내비쳤다.


급 사세확장
승자의 저주?

그러나 하림 역시 팬오션을 포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현실에서 곡물 운송 인프라를 구축한 팬오션을 품에 앉으면 운송비 절감을 포함한 각종 혜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팬오션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회장은 지난 7월 25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전경련 CEO 하계포럼에서 “곡물사업은 굴곡이 없는 미래사업”이라며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에 집중하는 만큼 곡물사업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오래전부터 곡물사업을 염두한 만큼 하림의 팬오션 인수에는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기대심리가 작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의 불씨는 세무조사와 함께 과도한 빚보증 문제로 연결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림은 계열사와 타법인(협력업체) 등 6곳에 채무보증을 실시했다. 이를 두고 IB업계에서는 하림의 자회사 채무보증 규모가 지나치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보증 규모가 커질수록 재무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사업의 성패가 모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며 “지급보증을 받은 기업의 경영이 악화돼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지급보증액은 고스란히 보증을 선 기업으로 전가된다”고 말했다


'국세청 중부수' 조사4국 출격
오너 등 경영진 검은돈 추적?

현재 하림의 채무보증 잔액은 총 1105억원으로 자기자본 2025억원의 절반을 넘어선 54.56%에 해당한다.

자본잠식에 빠진 계열사 ‘하림USA’에 831억원의 채무보증을 섰고 또 다른 계열사인 ‘그린바이텍’에는 104억원 빚보증을 했다. 이외에도 협력사인 농업회사법인 ‘브리딩팜’(3억원), ‘파인환경기술’(18억원), ‘하림인증대리점’(1억원), ‘위탁계약농가’(145억원) 등 타법인 채무보증이 170억원에 달한다.
 

팬오션 인수가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신용등급마저 빨간불이 켜졌다. 해운업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는데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가 불확실해 재무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림이 팬오션을 인수하는데 투입한 자금은 1조79억5000만원에 달한다. 6000억∼7000억원으로 예상되던 매각금액은 지난해 11월 매각 방식이 ‘8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2100억원)’으로 바뀌면서 1조원대로 대폭 상승했다.

매각대금은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JKL파트너스가 1700억원을 부담하고 1579억5000만원은 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체 조달할 계획이다. 하림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6800억원이다. 하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으로 충당이 가능하더라도 자칫 그룹 전반에 재무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림은 8000억원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마어마한
세금폭탄 예고

하림의 장기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을 각각 ‘A-’, ‘안정적’으로 기재했던 나이스신용평가가 최근 장기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포함한 것도 단순히 지나치기 힘들다. 염성필 나이스신평 평가전문위원은 “해운사업의 실적 변동성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발현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회사의 직·간접적인 재무적 지원 부담 발생 가능성, 회사에 대한 그룹의 지원여력 축소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닭고기 가공업체의 변신

닭고기 회사의 갑작스런 해운회사 인수.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 소식이 알려지자 이구동성으로 나온 반응이다. 닭고기를 팔기 바쁜 중소기업에게 1조원이라는 여력이 있을지 의문부호가 따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하림과 닭고기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닭고기 회사라는 이미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4조8330억원에 달하는 하림의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1조4000억원을 기록한 사료 부문이었다. 그 다음이 닭고기(1조1000억원)에서 파생된 매출이다.

팬오션 인수가 사료 부문의 매출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곡물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팬오션이 힘을 빌려 곡물 유통사업에 투자되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앞장서 팬오션 인수를 진두지휘 한 것도 사료부문의 중요성을 감안한 움직임이다.

하림 내부에서도 팬오션 곡물 유통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제조원가의 50%를 차지하는 사료값를 절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7월 신설된 팬오션의 곡물사업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림그룹 계열사 물량을 운반할 전망이다.

게다가 곡물운송사업은 출혈경쟁이 심해진 육계시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도 제격이다. 통상 사료의 주원료인 곡물은 닭을 키우는 데 투자되는 비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매년 하림은 1억4000만달러의 곡물을 수입하는데 수입 곡물가격은 실제 곡물가가 60%, 운송비가 40%를 차지한다. 팬오션의 곡물유통사업이 안착할 경우 곡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운송비가 큰 폭으로 절감될 수 있다.

육계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운송비를 조금만 절감해도 큰 이득을 볼 것”이라며 “팬오션 곡물사업부가 빠르게 자리 잡을수록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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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