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하림 세무조사 막전막후

‘메가톤 세풍’ 10원까지 탈탈 턴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몸집불리기에 열을 올리던 '하림그룹'이 연이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팬오션' 인수, 담합 의혹 등으로 불거진 잡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더해지면서 더욱 골치 아파진 형국이다. 단순 세무조사로 치부하기에는 적지 않은 의문이 따른다. 하림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초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덩치 키우기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에 사세확장을 노리고 공격적인 M&A를 거듭하다 몰락하는 광경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 소식을 접한 대다수 관계자들이 무리한 투자로 바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데…

정작 하림의 문제는 팬오션이 아니라 국세청 세무조사인 듯한 분위기다. 기업의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자칫 잘못하면 기업의 투명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위기로 봐도 무방하다.

하림그룹은 닭가공업체 ‘하림’, 사료전문업체 ‘제일사료’, 양돈 전문업체 ‘팜스코’, 홈쇼핑업체 ‘엔에스쇼핑’ 등 총 85개사 계열사를 휘하에 두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 자산규모는 약 4조8000억원. 지난 6월 팬오션을 약 1조원에 인수하면서 덩치가 한층 커졌다.

1966년 범양전용선으로 출발해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한 팬오션은 탱커·벌크선·자동차 운반선·LNG선 등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철광석·석탄·곡물·비료·원목 등의 벌크선 화물 운송에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2004년 STX그룹에 인수된 시점부터 2013년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평가다.


팬오션이 보유한 자산 약 4조원을 흡수한 하림의 자산규모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9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이다. 큰 변동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동안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던 하림은 내년부터 대기업에 포함된다. 내년 초 재계순위 30위권으로 도약이 점쳐진다.

팬오션 인수의 기쁨도 잠시, 최근 하림은 특별세무조사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팬오션을 품는 과정에서 개운치 않던 뒷맛이 세무조사를 거치며 무시할 수 없는 후폭풍으로 변해버린 양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고강도 특별조사 시작
재계 30위권 앞두고 '몸집불리기' 탈났나

최근 국세청은 조사4국 요원 70여명을 투입해 전북 익산 하림 본사를 조사했다. 하림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 2012년 정기세무조사 이후 약 3년 만이다.

당시 광주국세청은 거래, 세무, 회계내역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일정 매출액 이상 법인에 대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기세무조사 형식이었다.

이번에는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을 추궁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하림은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이자 핵심 계열사인 ‘올품’과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올품의 내부거래 비율은 2013년 21.2%(매출액 3464억4000만원 중 736억9000만원), 2014년 21%(매출액 3466억2000만원 중 729억5000만원)에 이른다.
 

올품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고리의 중심에 서있다.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올품이 부각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료값 담합 여부 역시 세무조사의 핵심 사안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문용 하림 대표는 지난달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국감에서 사료값 담합과 관련해 '리니언시(자진신고감경제도)' 혜택을 받았음에도 담합 사실을 부인해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이날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사료담합을 집충 추궁했다.

하림은 13일 황 의원 측에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사료업체들 사이에 합의가 없었고 경쟁제한성도 없었다는 점을 입증할 예정”이라고 답변서를 보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하림은 공정거래위원회 사료담합 조사 과정에서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50% 감경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리니언시란 담합행위를 한 기업들에게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제도로서,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 100%,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 감면 혜택을 준다.

뭔가 걸렸다?
시한폭탄 작동

실제로 지난 7월 2일 공정위는 배합사료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하려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카길애그리퓨리나' '하림홀딩스' 'CJ제일제당' 등 11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773억34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하림에 내려진 과징금은 총 87억원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지난 2006년 10월부터 2010년 11월 사이 총 16차례에 걸쳐 가축 배합사료 가격 인상폭과 적용시기 등을 담합했다. 황 의원은 “내년이면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소속되는 하림이 국감에서 위증을 한 셈”이라며 “이달 초 열리는 종합감사에서 하림 대표를 다시 증인으로 채택해 따져 묻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치킨프랜차이즈에 대한 세무조사가 원재료 제공 업체인 하림으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세무조사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단 이번 경우는 3년 전과 조금 다른 양상이다.

통상 기업은 5∼6년 주기로 정기세무조사를 거치는데 3년만에 다시 세무조사를 받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대기업 집단에 속하게 되는 하림에 대한 국세청의 전방위 압박이자 팬오션 인수와 관련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재조명 받는 사안이 팬오션 인수건이다.

팬오션 인수 과정에서 하림은 적잖은 걸림돌을 헤쳐나가야 했다. 기존 팬오션 주주들과의 갈등이 수면위로 부각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인수에 앞서 하림은 법원에 팬오션이 제출한 변경회생계획안의 무상감자 내용을 두고 올해 초 지분율 72.87%에 달하는 기존 팬오션 주주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2013년 9월 출자전환으로 주가대비 60% 이상의 손실을 감수했던 팬오션 소액주주들은 하림에 인수되기 전 팬오션이 제시한 1.25 대 1의 무상감자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회원수 4500여명 규모인 ‘팬오션 소액주주 권리찾기’는 헐값매각에 항의하며 당시 팬오션 관리인이었던 김유식 대표를 대검찰청에 고발한다. 하림이 인수할 경우 불매운동을 비롯한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마저 내비쳤다.


급 사세확장
승자의 저주?

그러나 하림 역시 팬오션을 포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현실에서 곡물 운송 인프라를 구축한 팬오션을 품에 앉으면 운송비 절감을 포함한 각종 혜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팬오션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회장은 지난 7월 25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전경련 CEO 하계포럼에서 “곡물사업은 굴곡이 없는 미래사업”이라며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에 집중하는 만큼 곡물사업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오래전부터 곡물사업을 염두한 만큼 하림의 팬오션 인수에는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기대심리가 작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의 불씨는 세무조사와 함께 과도한 빚보증 문제로 연결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림은 계열사와 타법인(협력업체) 등 6곳에 채무보증을 실시했다. 이를 두고 IB업계에서는 하림의 자회사 채무보증 규모가 지나치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보증 규모가 커질수록 재무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사업의 성패가 모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며 “지급보증을 받은 기업의 경영이 악화돼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지급보증액은 고스란히 보증을 선 기업으로 전가된다”고 말했다


'국세청 중부수' 조사4국 출격
오너 등 경영진 검은돈 추적?

현재 하림의 채무보증 잔액은 총 1105억원으로 자기자본 2025억원의 절반을 넘어선 54.56%에 해당한다.

자본잠식에 빠진 계열사 ‘하림USA’에 831억원의 채무보증을 섰고 또 다른 계열사인 ‘그린바이텍’에는 104억원 빚보증을 했다. 이외에도 협력사인 농업회사법인 ‘브리딩팜’(3억원), ‘파인환경기술’(18억원), ‘하림인증대리점’(1억원), ‘위탁계약농가’(145억원) 등 타법인 채무보증이 170억원에 달한다.
 

팬오션 인수가 자칫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신용등급마저 빨간불이 켜졌다. 해운업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는데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가 불확실해 재무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림이 팬오션을 인수하는데 투입한 자금은 1조79억5000만원에 달한다. 6000억∼7000억원으로 예상되던 매각금액은 지난해 11월 매각 방식이 ‘8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2100억원)’으로 바뀌면서 1조원대로 대폭 상승했다.

매각대금은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JKL파트너스가 1700억원을 부담하고 1579억5000만원은 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체 조달할 계획이다. 하림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6800억원이다. 하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으로 충당이 가능하더라도 자칫 그룹 전반에 재무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림은 8000억원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마어마한
세금폭탄 예고

하림의 장기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을 각각 ‘A-’, ‘안정적’으로 기재했던 나이스신용평가가 최근 장기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포함한 것도 단순히 지나치기 힘들다. 염성필 나이스신평 평가전문위원은 “해운사업의 실적 변동성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발현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회사의 직·간접적인 재무적 지원 부담 발생 가능성, 회사에 대한 그룹의 지원여력 축소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닭고기 가공업체의 변신

닭고기 회사의 갑작스런 해운회사 인수.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 소식이 알려지자 이구동성으로 나온 반응이다. 닭고기를 팔기 바쁜 중소기업에게 1조원이라는 여력이 있을지 의문부호가 따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하림과 닭고기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닭고기 회사라는 이미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4조8330억원에 달하는 하림의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1조4000억원을 기록한 사료 부문이었다. 그 다음이 닭고기(1조1000억원)에서 파생된 매출이다.

팬오션 인수가 사료 부문의 매출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곡물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팬오션이 힘을 빌려 곡물 유통사업에 투자되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앞장서 팬오션 인수를 진두지휘 한 것도 사료부문의 중요성을 감안한 움직임이다.

하림 내부에서도 팬오션 곡물 유통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제조원가의 50%를 차지하는 사료값를 절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7월 신설된 팬오션의 곡물사업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림그룹 계열사 물량을 운반할 전망이다.

게다가 곡물운송사업은 출혈경쟁이 심해진 육계시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도 제격이다. 통상 사료의 주원료인 곡물은 닭을 키우는 데 투자되는 비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매년 하림은 1억4000만달러의 곡물을 수입하는데 수입 곡물가격은 실제 곡물가가 60%, 운송비가 40%를 차지한다. 팬오션의 곡물유통사업이 안착할 경우 곡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운송비가 큰 폭으로 절감될 수 있다.

육계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운송비를 조금만 절감해도 큰 이득을 볼 것”이라며 “팬오션 곡물사업부가 빠르게 자리 잡을수록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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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