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오락고수 집결지 ‘정인오락실’ 가보니…

마우스? 조이스틱 협객들의 한판 승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골목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은 전국구 오락실로 유명해 오락실계의 성지로도 불린다. 정인오락실의 게이머들은 주로 고시생, 학생, 노동자들로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동전 몇 푼만 있으면 1∼2시간 동안 게임을 이어가는 건 기본. 몇몇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은 인터넷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한다. <일요시사>가 그곳을 찾아가봤다.

노량진에는 각종 학원가 및 고시원이 즐비해 있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시생이거나 공시생이다. 이들은 시험준비에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합격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량진에는 시험이 아닌, 다른 경쟁도 존재한다. 바로 오락실 게임 경쟁이다. 세계적인 종합격투기 UFC처럼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옥타곤이 노량진 골목에 숨어있다.

과거 전성기를 누렸던 오락실. 요즘은 동네에서도 오락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오락실은 ‘멸종’ 위기다. 특히 PC방의 등장은 이를 가속화했다. 넘쳐나는 PC방에 비해 오락실은 문을 닫고 있는 형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는 오락실이 있다. 바로 노량진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이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락실계의 ‘성지’로 통한다. 먼 길을 찾아오는 성지 순례객도 있다. 오락실 향수에 젖은 고수 게이머들로 가득찬 정인오락실에 들어가봤다.

향수 부르는
추억의 오락실

오락실 문 앞에는 선물 뽑기, 인형 뽑기, 완력 테스트기, 농구 게임 등이 있었다. 겉모습은 일반 오락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간판에 있는 게임 캐릭터가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줬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


파리 날리는 일반 동네오락실과 달리, 이곳의 모습은 매우 활발하고 열정적이었다. 게임할 자리가 없어 서서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찬찬히 이들 틈에서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조이스틱의 화려한 움직임이 그들의 ‘스킬’을 대변했다. 조이스틱을 잡은 왼손과 버튼을 누르는 오른손은 매우 재빠르게 움직였다. 실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오락실을 한바퀴 쭉 둘러보니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킹 오브 파이터, 94∼2002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시리즈’ 등으로 압축됐다. 다른 게임도 있지만 역시나 주력 게임은 ‘대전 액션게임’이다.

계속 구경을 하던 중, 드디어 자리가 났다. 반대쪽에 앉은 게이머는 매우 작은 체구로 게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킹 오브 파이터즈’ 오락 기계에 미리 준비해둔 동전을 넣고 대결을 신청했다.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놀았던 초등학교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주력 캐릭터 3개를 고르고 게임에 임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힘 한 번 못써보고 캐릭터 하나가 쓰러졌다.

‘오랜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다시 두 번째 캐릭터로 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 번째 캐릭터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며, 상대방 캐릭터 하나에 세 캐릭터가 몰살당했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게임 패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노량진 골목에 위치…전국구 최강 오락실
전국서 모인 최고 실력 챔피언급 플레이

자존심을 구긴 채, 아쉬운 마음을 붙잡고 ‘아도겐’으로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로 자리를 옮겼다. 구경꾼들이 많아 부담이 컸지만, 이내 동전을 넣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름대로 기술을 써가며 버텨봤지만, 기량 차이가 뚜렷했다. 이렇게 또 패배하며 2패의 전적을 안고 붉어진 얼굴로 구경꾼들 사이로 돌아갔다.

사실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한때 하루 종일 조이스틱을 잡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인오락실 게이머들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실력은 ‘최상급’이었다. 구경꾼들이 쉽게 동전을 넣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서 계속 구경만 하고 있던 A씨에게 말을 건넸다. 왜 계속 구경만 하냐고. 그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말했다. 패배가 두려운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면 쪽팔리다”고 일축했다.

멍하니 서서 게임을 지켜보던 A(27)씨는 사실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흔히 ‘공시생’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공시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다. 공시생들은 학원과 독서실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종종 푼다고 한다.

게임마다 다르지만 보통 100원에서 300원이다. 1000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1시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자신보다 기량이 높은 실력자와 붙었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현란한 조이스틱
화려한 기술 연발

노량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고시생, 공시생들만 있는 건 아니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도 오락실 안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펌프’였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춘 화려한 발동작을 볼 수 있었다.

여고생 B(18)양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고등학생들도 많이 찾는 일종의 아지트다. 방과 후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고 노래방 기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건전한 행동이라고.

그런데 기자가 오락실에 들어올 때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오락실 게임 협객임이 분명해 보였다. 목장갑을 끼고 조이스틱을 잡고 있던 그는 갈색 안전화를 신고 남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인상착의를 보아 하니 일용직 노동자였다. 나이도 꽤 많아 보였다. 그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게임이 끝난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게임을 마친 그는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주변 게이머들에게 물어보니 오락실에서 꽤나 유명한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실력과 더불어 매너도 좋다고 전해진다.

정인오락실은 예전 오락실 모습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유명하다.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차별점도 있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유명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을 실시간으로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중계하고 있다.

생중계 장면은 오락실 좌측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이 방송 화면은 각종 이벤트 시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전해진다. 마니아들은 게임 방송을 꾸준히 시청하며 자신의 실력을 보완하기도 한다.

보통의 오락실의 경우 스틱 게임보다는 리듬 게임이나 슈팅 게임 등 체감형 기계들을 앞으로 뺀다. 반면 정인오락실은 옛 오락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최신 기계들을 구석으로 넣고 고전 스틱 게임을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 기계 앞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추억의 80∼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응답하라 1990
20세기 오락실


정인오락실 내 리듬 게임은 단 세 대다. 펌프인 ‘FIESTA EX’와 ‘EZ2DJ’의 구버전인 BE, 신작 AE가 놓여있다. 리듬 게임은 일반 오락실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인오락실의 사정은 다르다. 오락실계의 효자로 알려진 ‘코인 노래방’은 총 12대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기계가 많았다. 근처 고시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나 스틱 게임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철권’이다. 정인오락실에는 철권 시리즈가 알차게 들어가 있다. 철권 시리즈의 요금은 300원이다. 단 ‘철권6’의 플레이 요금은 200원이다. 타 오락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가장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건 ‘킹 오브 파이터즈’일 것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기계 앞에 모여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요금은 100원이다.

무려 20년 넘게 오락실계의 왕좌로 군림하고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고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게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세월이 멈춘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플레이 요금은 역시나 100원이다.

정인오락실은 노량진동의 고시생, 공시생 및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의 놀이터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격투 게임 마니아들의 성지임과 동시에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끝없는 매치’ 서 있는 구경꾼이 더 많아 
역사 속으로…PC방에 밀려 ‘멸종’ 위기


한국 오락실의 역사는 1980년대 초반 흑백 오락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락실 기계는 나무로 처리돼있었고 흑백 게임이었다. ‘벽돌깨기’와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 두 게임이 한창 인기였다.

벽돌 깨기는 조이스틱이 아닌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서 바를 좌우로 이동시키는 독특한 조작 방식이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흑백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니터에 노랑, 빨강, 파랑의 셀로판지를 붙이기도 했다.

80년대 초반은 오락실 붐의 시작이었다. 흑백 오락기와 함께 컬러 오락기가 하나둘 늘었기 때문이다. 방구차, 팩맨, 갤러그, 개구리, 엑스리온, 너구리, 뽀빠이, 킹콩, 타잔 등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게이머들은 쾌재를 불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갤러그’는 단연 지존이었다. 특유의 ‘뿅뿅’ 총알 쏘는 소리는 오락실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했다. 유독 갤러그 기계는 여러대 설치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갤러그는 그 자체가 오락실을 대표했다. 남녀불문 손 쉬운 플레이로 국민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팩맨은 입이 달린 노란색 덩어리가 작은 노란색 덩어리들을 먹고 다니는 게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오락실 게임 중 하나다. 움직일 때 ‘파쿠파쿠’ 소리를 내 ‘파쿠맨’이었고 표기는 ‘Puck man’이었다. 하지만 욕설 같다는 문제가 미국에서 제기돼 ‘Pac man’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방구차는 방구같은 매연을 내뿜어서 쫓아오는 다른 차들을 못 움직이게 만들고 코스상의 깃발들을 모조리 먹는 것이 포인트인 게임이다. 중독성 강한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아이들까지 이 배경음악을 알 정도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퀄리티 높은 그래픽에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게임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너무나 많은 게임이 나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 중에서 특히 ‘버블보블’의 인기는 갤로그 이후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새로운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다.

어느 오락실에 들어가나 버블버블 효과음이 가장 먼저 들려왔다. 원제는 ‘버블보블(Buble Boble)’이지만 한국에서는 ‘보글보글’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여러 개의 속편이 나왔지만 최초의 버블보블만한 게임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오락실의
어제와 오늘

80년대 후반에는 그래픽과 사운드가 더욱 향상됐다. 이 시기의 메이저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사실 테트리스는 당시 나온 게임들과 비교해 그래픽과 사운드는 별로였지만 중독성 면에서는 최강이었다. 러시아풍의 멜로디도 매력 중 하나였다.

90년대 들어서 더욱 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무장한 게임들이 나왔다. 대전 격투 액션게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지금의 오락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87년에 나온 ‘스트리트파이터’의 속편으로 제작됐지만 철저하게 대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방향키와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액션은 모든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기초가 됐다. 이후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 등의 대전 격투게임이 잇따라 나왔다.

본격적인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시대는 90년대 중후반에 터졌다. 그리고 ‘킹 오브 파이터즈’와 ‘철권’이 대전 격투게임의 양대산맥으로 자리 잡게 된다. 킹 오브 파이터즈는 ‘94’ 시리즈를 시작으로 인기를 누려 ‘98’ 시리즈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동전 있으면 1∼2시간 훌쩍
스트레스 날릴 최적의 장소

‘철권’은 한국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주목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3D 대전 격투게임을 대표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리듬&댄스 게임 시대가 도래했다. ‘비트매니아’라는 게임은 대전 격투게임 일색이던 오락실의 판도를 180도 뒤집었다. 특히 ‘DDR’이 대히트를 치며 국내 오락실은 리듬&댄스 게임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리듬&댄스 게임에 밀려 기존의 게임들은 사라져갔고 리듬&댄스의 시대도 저물었다. 그러면서 오락실 전체가 자연스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98년,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면서 ‘PC방’이 생겼다. PC방은 게임방으로서 오락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때부터 오락실은 점점 줄어들고 PC방이 급증했다.

현재까지도 많은 게이머들 PC방을 찾는다. ‘온라인 게임’을 ‘e스포츠’라고 부를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러나 여전히 조이스틱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도 옛 오락실을 추억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추억의 오락실 게임
‘뿅뿅’ 스마트폰서 부활

추억의 오락실 게임이 스마트폰에서 부활하고 있다. ‘벽돌깨기’ ‘1942’ 등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 모바일 타이틀로 부활하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존의 게임성을 계승 발전시킨 친숙한 플레이 방식과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시켜 남녀노소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그래픽은 물론 게임 내에 등장하는 기기들도 당시 실존했던 캐릭터들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해 신구세대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복고 바람 타고 모바일 재탄생

오락실 게임의 간단하고 쉬운 플레이 방식이 모바일 게임에 적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많은 게임들이 오락실 게임의 방식을 차용했다.

‘애니팡’이 대표적이다. 애니팡은 퍼즐게임의 원조인 ‘비주얼드’가 뿌리다.

고전 게임의 원리에 다양한 아이템과 소셜 요소를 집어넣어 현대인의 손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아예 고전게임의 IP(지적재산권)를 직접 들여와 게이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경향도 있다.

한 모바일게임 업체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과거 그들이 즐겼던 오락실 게임들이 모바일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최근 사회의 복고트랜드와 맞물려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