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놈의 ‘값싸고 질좋은’ 타령

  • 서영욱 syu@ilyosisa.co.kr
  • 등록 2013.12.13 18: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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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경제2팀] 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을 겪었을 때 정부가 내세웠던 주장 중에 하나가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청문회 때 한 국회의원이 “싸고 질 좋은 소고기가 있으면 어디 한 번 가지고 와보라”고 호통쳐 두고두고 회자됐던 사례도 있다.

소고기 수입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정부가 공기업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나 민영화로 변경시키려 할 때 항상 내세우는 논리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도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수서발KTX 법인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코레일과의 경쟁으로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1일 서승환 국토부장관도 담화문을 통해 “철도경쟁체제의 도입은 국민에게 ‘값싸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독점으로 인한 공기업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난달 27일,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의정서와 관련해 철도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운영주체가 누구든 간에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공급한다면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을 텐데 이것이 왜 민영화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서 철도노조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격경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냐’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4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정유업계를 들여다보면, 금일(13일) 정유3사는 경유값 담합으로 법원에게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정유업계는 이미 가격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은 주유소마다 다른 기름값을 보고 결정을 하지, 절대로 'SK에너지냐, GS칼텍스냐' 회사를 보지 않는다.


주유업계 뿐만 아니라 가격담합 의혹은 너무나도 많다. 통신3사가 59, 69 등 동일한 요금제를 내놓고 있고, 최근에는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커피값 담합, 농심 등 식품업계의 라면값 담합, 대한한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값 담합, 하다못해 동네 치킨 가격까지 경쟁사들끼리 가격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징후 등 관련사례는 손꼽을 수 없을 만큼 포착됐다.

심지어 정부는 서로 경쟁을 하라는 대상을 잘못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코레일은 수서발KTX와 경쟁을 벌여 가격을 낮추라고 하는데, 코레일 이사회를 통과한 수서발KTX의 코레일 지분은 41%, 영업흑자를 달성했을 경우에는 지분을 늘려 계열사로 확정지을 수 있다고 한다. 체질 개선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자해 자회사를 만들고 그 자회사와 경쟁하라는 꼴인데, 철도노조는 그것이 과연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정부와 공기관, 지자체 등을 제외하고 어떤 민간에게도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또 하나의 공기업이라는 소린데, 코레일이 수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고, 정부가 최근 적자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까지 한 상황에서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힘들다.

철도산업 특성상 경쟁자체가 불가능하리라는 점도 있다. 고속버스라면 가능하다. 동부고속과 중앙고속이 서울~부산간 요금을 놓고 경쟁을 벌일 수는 있다. 하지만 코레일이 누군가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면 서울~부산간 노선을 새로 깔던가, 현재 KTX노선에 다른 업체가 들어와야 경쟁이 가능하다. 코레일과 수서발KTX는 이미 시종착역이 달라 경쟁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노조는 누누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이 받을 수 있다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는 또 다른 업체가 들어와야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누구와 경쟁을 벌여 어떻게 값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의혹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서영욱 기자 <syu@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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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