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근친강간 피해녀 충격인터뷰

‘예쁜동생’ 30년 성노리개 삼은 ‘짐승오빠’

[일요시사=사회팀] 인터넷에 충격적인 자신의 과거를 폭로한 여성이 있다. 친오빠에게 수십년간 성폭행을 당해온 안모(40)씨.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5세 많은 큰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을 뿐 아니라 결혼 후에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숱한 자살시도, 정신과 치료 등 끔찍한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야만 했던 안씨. 결국 그가 <일요시사>를 통해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친오빠로부터 수십 년간 성폭행 당했습니다.”

안씨는 전남 목포의 한 평범한 가정의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안씨 위로는 3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유독 5세 차이의 큰오빠는 어릴 적부터 막내 동생 안씨를 예뻐했었다. 옛날 사람치고는 대졸학력을 보유하는 등 꽤 교육수준이 높았던 안씨의 어머니는 일찍이 교편생활을 해온 터라 가사를 잘 돌보지 못했다.

결국 안씨의 실질적인 부모님은 큰오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큰오빠는 안씨가 유치원생이었을 때부터 씻기기, 등하교시키기, 옷 갈아입히기를 전담해왔고 그 과정에서 안씨의 몸을 습관적으로 만지곤 했다.

오빠 횡포 알고도
눈감아준 가족들

성에 무지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안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큰오빠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그대로 감내해야만 했다. 안씨가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설 즈음, 안씨의 큰오빠는 본격 성기삽입에 돌입했고, 안씨에게 일반 부부관계보다 더한 횟수로 성폭행을 일삼았다. 안씨는 아무 반항도 못한 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안씨가 반항을 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씨의 큰오빠는 학창시절부터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우등생이었다. 안씨의 부모님은 그런 장남에게 모든 기대를 걸며 신뢰했다. 그로인해 가정의 최고 권력은 자연스럽게 큰오빠가 쥐게 됐으며, 그가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둘러도 부모님은 눈감아주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큰오빠가 부모님의 기대대로 의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신임과 권위는 날로 높아져만 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씨는 숨소리조차 마음대로 내뱉지 못할 만큼 위축돼 있었고, 큰오빠의 만행은 의대생이 되서 더 심해졌다. 성폭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큰오빠의 욕구분출은 더 대담해졌다. 그러나 안씨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큰오빠에게 모진 일을 당하는 지옥 같은 성장기를 보내면서도 부모님에게조차 입도 벙끗 하지 못했다. 안씨는 고등학생이었을 때 익명으로 담임선생님에게 “저 임신한 것 같아요”라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은 장난으로 치부됐고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5세 많은 큰오빠로부터 수십년간 성폭행 당해
지속된 성관계로 대학생 때 임신 후 낙태 고통

대학에 진학하면 더 이상 이런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안씨는 일부러 광주 집을 떠나 타 지역의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안씨가 다니던 대학은 집이랑 불과 1시간 남짓의 거리밖에 되지 않아 주말마다 집에 들러야 했다. 매번 집에 올 때마다 큰오빠의 성폭행은 어김없이 이뤄졌고, 간혹 안씨가 반항을 하면 ‘갈보X’ ‘미친X’ ‘잡X’ 등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폭행을 휘둘렀다.

안씨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는 큰오빠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그는 연고도 없이 부산에 내려가 미혼모보호시설로 피신했다. 그러나 피신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찾아왔고, 엄마의 뜻에 따라 안씨는 강제로 낙태를 하게 됐다. 이후 친척집, 친구 자취방, 고시원 등을 전전하다 26세에 중매로 외과의사인 전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렇게 큰오빠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안씨는 잠시 동안 안락한 결혼 생활을 누렸지만 임신중절의 후유증에 따른 것인지 임신이 잘 되지 않았고, 수차례의 시험관아기 시술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혼 6년 만인 2002년 쌍둥이를 갖게 됐다. 이후 2006년 가을, 안씨의 아이들이 5세가 되던 해 안씨의 큰오빠는 짐승 같은 짓을 또 한 번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는 아이들이 자고 있을 시간인 늦은 밤에 안씨의 집에 찾아와 안씨의 남편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안씨를 짓이기고 폭행하며 수차례 성폭행했다. 안씨는 강하게 반항했으나 아이들이 깰까 두려워 소리 한번 못 지르고 그 자리에서 당하고 말았다. 

개인이익 추구하려
성폭행·협박 일삼아


그러나 안씨의 큰오빠가 다시 성폭행을 저지른 것은 단순한 욕구충족이 아니었다. 당시 큰오빠는 목포에 개인종합병원을 지으려고 하던 차였고, 유망한 외과의사가 필요했다. 그때 그는 실력 있는 외과의였던 안씨의 전 남편을 미리 점찍어 뒀지만 안씨의 전 남편은 의료보험사기전과가 있던 큰오빠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고, 이에 격분한 큰오빠는 안씨를 성폭행하며 “네 남편을 설득하라”고 협박한 것이다.

며칠 뒤 큰오빠는 안씨의 집에 재방문했고 아이들이 거실에 놀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부엌에 가 있던 안씨에게 다가가 성기를 만지며 치욕을 안겨줬다. 자신의 끔찍한 과거를 전 남편이 알게 될까 두려웠던 안씨는 무턱대고 전 남편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들은 목포로 이사를 한 뒤 노예처럼 생활해야 했다.

전교 1등 우등생…의대 진학 후 병원 개업
수도 없이 자살 시도…고통 심해 입원치료
모친·다른 두 오빠 등 가족들 함구로 일관

큰오빠는 안씨의 전 남편에게 외과수입을 모두 주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약속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터무니없는 월급을 주며 강제 노역을 시키듯 혹사시켰다. 게다가 5억에 달하는 보증서를 서류철 밑에 살짝 끼워 넣어 강제 보증을 세우기도 했으며 사람들에게 “오고 갈데없는 이(안씨의 전 남편) 구제해줬다”는 등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결국 안씨의 전 남편은 4개월 만에 심장 부정맥이 왔고 안씨도 큰오빠의 횡포에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지면서 둘은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

안씨는 우연히 만난 현 남편과 재혼을 했지만,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수도 없이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곁에서 안씨를 지켜보며 함께 고통을 느꼈던 현 남편은 안씨의 과거를 접한 뒤 경악을 금치 못하며 큰오빠를 형사고소 했고, 안씨가 전 국민에게 충격적인 과거를 폭로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수십년에 걸친 이 강간사건은 결국 불기소로 처리되며 안씨는 잊지 못할 두 번의 상처를 입게 됐다.

가해자 ‘의기양양’
피해자 ‘전전긍긍’

<일요시사>는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안씨의 글을 접한 후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겼고, 그가 겪었던 지우지 못할 실질적인 고통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안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피해자 안씨는 조심스러운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하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다.

다음은 피해자 안씨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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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빠를 강간으로 고소했을 때 기소의견으로 장담했던 형사가 돌연 불기소로 말을 바꾼 이유는.

▲최초에 강간으로 큰오빠를 고소했지만 약 2주 후 큰오빠 내외로부터 공갈협박죄로 맞고소를 당했습니다. 맞고소를 당한 이유는 현 남편이 큰오빠에게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 동생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금전적 보상도 같이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죠. 설상가상으로 강간사건과 관련해서는 수사관과 검찰 측이 자꾸 떠넘기기 식으로 사건을 지지부지 끌며 불기소 처분하려 했습니다. 한 수사관은 큰오빠에게 “얼굴도 예쁘고 배울 만큼 배운 동생이 나이 든 사람(현 남편)과 재혼하는 게 불쌍하지 않냐. 기부한다 생각하고 합의금을 줘라”라고 했으며, 제게는 “말로만 사과 받아서 뭐 할 거냐. 돈이라도 받아야지”라며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이어 그는 제게 “강간사건은 100% 불기소로 처리된다. 치과의사 살인사건도 증거 없으니 무죄로 풀려나지 않았냐”라며 사건 이송요청서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했습니다. 이후 검찰에서는 “직접증거가 없어 강간사건을 불기소 처리했다”고 딱 잘라 말했고, 담당 검사는 “기소의견으로 송치한다고 3번이나 올렸는데 수사과장의 결제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내부적으로 이미 불기소 결정이 났다고 했습니다.

-수사 과정 혹은 진술 중에 불이익을 당한 적은 있는지.


▲현직 경찰과 변호사, 검사 등 모두 처음에는 기소의견으로 송치 가능하다고 장담했으면서 돌연 말을 바꾸며 사건을 정리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고, 수사과장이 의도적으로 결제를 안 해줬다는 점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수사 당시 큰오빠가 적극 협조 했는지.

▲담당 형사로부터 큰오빠가 거짓말탐지기와 대질심문을 계속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한 가지도 안 하려 했다고 하더군요.

-큰오빠가 저지른 성폭행에 대한 증거물은 있나.

▲증거가 있다면 큰오빠가 현 남편에게 남긴 녹취록과 공인녹취서가 있습니다. 내용은 “잘못했습니다. 선생님(현 남편)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3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게 알려지면 저는 더 이상 사회생활 못합니다. 가족도 여럿 죽습니다. 살려주십시오.(중략) 동생 앞에서 할복이라도 하겠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야하는데 몸이 아파서 못 가는 겁니다.(큰오빠는 현재 대장암 2기임) 난 가진 것도 없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빌다시피 말했더군요. 이 때 남편은 큰오빠에게 “당신에게 딸이 있었다면 딸한테도 이런 짓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다”라고 직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가족들이 모른 척 눈감아준 이유는.


▲큰오빠가 집안의 기둥이었어요. 부모님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었죠. 아무도 큰오빠의 말에 대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큰오빠는 부모에게까지 미친X이라고 욕했던 사람이에요. 예전에 엄마에게 큰오빠의 만행을 털어놓았지만 엄마는 별 반응이 없으셨고, 단지 “미안하다. 엄마가 못 지켜줬다. 어쩐지 걔(큰오빠)가 네 방에서 나올 때마다 XX가 벌떡벌떡 서 있더라”며 터무니없는 위로를 해줬습니다.

-큰오빠의 배경은 어느 정도 인지. 그의 배경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나.

▲큰오빠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목포에 큰 종합병원이 있다는 것 밖에 모르겠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오빠의 배경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단지 추측일 뿐이지 자세한 건 알지 못합니다.

-가족들도 최종 학력이 꽤 높은 편인데 재력가 집안이거나 전통이 있는 집안이라 쉬쉬한 것은 아닌지.

▲엄마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셨고, 아빠는 전남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오셨습니다. 둘째 오빠는 조선대를 졸업한 후 행정공무원직을 하고 있고, 막내오빠는 경찰대를 졸업한 후 경찰 간부로 있어요. 재력은 중상위층 정도 됩니다.

-다른 오빠들은 몰랐나. 알았다면 왜 도와주지 않았나.

▲당시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다들 방관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아고라 청원에 글을 남긴 후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누구 하나 제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어요. 아마도 큰오빠가 사전에 가족들에게 제 전화는 받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 같습니다.
 
-성폭행 후유증은 얼마나 심했나. 재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이혼 후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현 남편이 내 상태를 눈치 채고 우연히 만남을 갖게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현재 자살 고위험군으로 6개월 이상 진단 및 입원치료를 권고 받았습니다. 담당의 말로는 내 성정체성이 아주 미약하다고 하더군요.

-큰오빠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큰오빠는 첫 결혼 실패 후 재혼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장성한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딸은 없습니다.

-피해자의 아이들은 알고 있나.

▲아직은 모릅니다. 아니 알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에게는 그저 미안할 뿐이에요.

-큰오빠가 전 남편에게 가했던 횡포는.

▲저를 강간하고 협박하면서 “목포에 집 사준다” “외과 수입은 모두 가져라”라고 약속했는데 첫 달 외과 수입이 7000만원이 넘었는데도 1000만원만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습니다. 그런데 목포에 집은커녕 큰오빠의 계략으로 빚보증만 5억원을 남긴 채 암흑 같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야 했어요. 큰오빠는 성실하게 일했던 전 남편을 무시하고 모멸감을 줬으며 빚보증만 떠넘겼어요. 그는 결국 심장 부정맥만 안게 됐습니다.

-왜 지금에 와서야 과거의 일을 폭로했나.

▲가스 틀고 자살시도, 자동차 문 닫은 후 히터 켜고 자살시도, 손목에 식칼을 긋는 등 저의 숱한 자살시도를 곁에서 지켜본 현 남편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저를 추궁했어요. 제가 대답하길 꺼려하자 남편은 말하지 않으면 병원에 입원시킨다고 해서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제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남편이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촉구했고, 아고라 청원에 호소글을 남기자고 저를 설득했어요. 이 일을 알고도 큰오빠는 시종일관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되레 억울해했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엄마는 도리어 제게 “미친X, 혀 깨물고 죽어버려라” “증거도 없으면서 오빠 등 처먹으려 하냐”며 온갖 욕설과 문전박대로 일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 오빠한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고, 엄마와 오빠들에 대한 증오로 청원글을 남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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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음 아고라 청원 사이트에는 안씨의 글이 삭제돼있는 상태다. 안씨 부부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타인에 대한 무분별한 권리침해라고 일관했다. 안씨는 어떤 부분이 권리침해라며 사측을 추궁하고 나섰지만 애매한 답변만 돌아올 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에 안씨 측은 이의제기로 소명했지만 다음 측은 그 글을 다시 게시하려면 한 달 가량이 소요된다며 책임을 미뤘다.

철저한 수사·처벌로
두 번의 상처 없어야

지금도 안씨는 정신과 치료와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상태다. 어릴 때부터 감당해야만 했던 끔찍하고 무서운 기억들이 그의 가슴과 머릿속 등 온몸을 후벼 파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되레 당당하고 피해자는 손가락질 받아야만 하는 성범죄.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강간사건에 가해자에 대한 강력처벌과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로 피해자가 두 번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안씨 큰오빠 입장은?

“성폭행·낙태 사실무근”

 

목포 친동생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씨의 큰오빠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목포 소재의 S병원 의사인 안모씨는 지난 14일 병원 사무장 장모씨를 통해 동생과 관계된 이모씨(현 남편)와의 녹취록 등을 제시하며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씨가 작성한 회견문에는 “동생이 대학생 때 낙태한 것은 학원에서 알게 된 타 학생과의 관계 때문이었고, 2006년 광주의 동생 집에도 2∼3번 방문했는데 모두 부모님과 동행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어 “2006년 동생 집을 다녀간 이후 그 가족들과 전혀 만남이 없었고 동생 아이들도 자신을 본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안씨의 여동생은 지난 9월 전남 목포경찰서에 강간으로 친오빠 안씨를 고소했지만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기로 했다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그러다 이 사실이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자 고소사건을 종결하려던 경찰이 고소인의 반발로 보강 수사를 시작했다. 고소 사건을 넘겨받은 전남지방경찰청은 한 점 의혹 없이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씨의 큰오빠는 이 사건으로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윤리위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산부인과 의사의 시체유기사건과 을지병원 교수의 전공의 폭행사건, 의사가 포함된 수억대 보험사기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의사협회는 중범죄자에 대해 복지부에 의사면허 취소 등 강경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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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