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5년 말하지만 100년 설계하는 중국

우리는 왜 아직 1년도 설계 못하나

중국은 5년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설계하는 시간은 100년이다. 우리는 5년을 말하지만 실제는 1년도 설계하지 못한다. 이 차이가 오늘의 격차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은 1953년 제1차 계획으로 시작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산업 기반을 세우기 위한 국가 설계였다. 계획경제에서 개혁 개방으로, 고속성장에서 기술 자립으로 내용은 바뀌었지만, 형식은 단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5년 단위 설계라는 틀은 국가 운영의 뼈대가 됐다. 중국은 정책을 바꿔도 프레임은 바꾸지 않았다.

제1차부터 제5차까지는 중공업과 국유 산업 중심 체제 구축이었다. 제6차부터 제10차까지는 수출과 제조업 확장을 통한 세계 시장 진입이었다. 제11차부터 제13차까지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전환으로 이동했다. 단순한 GDP 증가가 아니라 산업 고도화와 기술 축적이 목표가 됐다.

그 축적이 오늘의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제14차(2021~2025)는 기술 자립, 공급망 안정, 탄소중립 준비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 제15차(2026~2030)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6G, 첨단 바이오, 전략 제조업. 여기에 국가 실험실 체계와 R&D 확대, ‘리틀 자이언트’ 혁신기업 육성이 결합된다.

단기 성장률보다 산업 구조 전환이 우선순위다. 성장은 결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5개년 계획이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완성과 2049년 건국 100주년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5년은 단위일 뿐, 실질적 설계는 세기 단위다. 중국은 15차 이후의 15차를 이미 계산하고 있다. 심지어 2100년 이후를 언급한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본질은 시간에 대한 태도다. 시간을 길게 잡는 국가만이 구조를 바꾼다.

물론 지방정부 부채, 부동산 거품, 인구 감소, 미중 기술 봉쇄라는 구조적 리스크도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 장기 설계가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계가 있는 국가는 위기를 조정하지만 설계가 없는 국가는 위기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중국이 1당 체제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장기 전략의 핵심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제도화된 합의다. 독일도, 일본도, 미국도 정권이 바뀌어도 산업·안보의 큰 축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문제는 체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을 정권의 소유로 볼 것인가 사회의 자산으로 볼 것인가다.

반대로 우리는 어떤가.

5년짜리 정부가 출범하면 국가 전략은 리셋된다. 전임 정부의 정책은 ‘적폐’가 되고, 장기 프로젝트는 정치적 상징이 된다. 선거 공약은 넘쳐나지만 5년짜리 실행 로드맵조차 일관되지 못하다. 국정은 설계가 아니라 반응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과거에 계획의 힘을 경험했다. 박정희정권 때 3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공업에서 수출로, 수출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이어지는 방향성을 가졌다. 권위주의의 그림자는 분명했지만, 최소한 국가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좌표는 있었다.

그후 5개년 계획은 1996년 제7차를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좌표가 사라진 자리에 속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는 우리 정치를 매일 싸우게 했다. 여당은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정부를 흔든다. 정책은 국가 전략이 아니라 정치 무기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구조보다 중요해졌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타국의 계획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설계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남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이제 5년이 아니라 최소 세대를 상징하는 30년을 말해야 한다. 6개 정부가 공유할 국가 전략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지 못하는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 여야 공동 참여, 재계·노동계·학계·과학기술계·청년 세대와 지역 대표가 함께하는 국가 ‘장기전략위원회’를 제도화해야 한다. 헌법기관에 준하는 위상으로 고정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가 아니라 국회 특별법으로 설치하고, 여야 3분의 2 동의 없이는 폐지·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초정권형 합의 구조로 고정해야 한다.

30년 계획은 추상이 아니라 숫자여야 한다.

인구감소 속도와 연금개혁 로드맵, AI·반도체·바이오 세계 점유율 목표, 에너지 전환 속도와 전력 믹스 비율, 국방 기술 자립률, 지방소멸 대응 지표. 목표·수단·평가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국가 교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구와 노동 문제는 생존의 영역이다. 출산율 0점대에서 병력 구조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산업 인력은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고령화 속도는 OECD 최고 수준인데 연금·의료 재정은 준비돼있는가.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계획이 없으면 붕괴 속도는 빨라진다.

에너지 전략도 그렇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와 배터리를 두고 정권마다 방향이 바뀌면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30년 설비에 5년 정책을 얹으라는 것은 모험을 강요하는 일이다. 전력 믹스와 탄소 감축 경로를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은 투자 신뢰의 전제다.

교육과 과학기술은 더 심각하다. 노벨상 숫자가 목표가 아니다. 기초과학 투자 비율, 연구 생태계 안정성, 인재 유출 방지 구조가 설계돼야 한다. 혁신은 이벤트가 아니라 축적이다. 계획 없는 혁신은 유행으로 끝난다.

군사·외교도 마찬가지다. 동맹, 방위산업, 통상 전략을 초당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국제 질서는 선거 일정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면 전략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외교는 협상력을 잃는다.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이기는 기술이어야 한다. 2100년을 말하는 나라와 1년도 완성하지 못하는 나라의 차이는 결국 세대 단위의 격차로 나타난다. 국가 경쟁력은 GDP가 아니라 시간 설계 능력에서 나온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은 공장을 세운 것이 아니라 체계를 세웠다. 수출을 늘린 것이 아니라 역량을 축적했다.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 운영의 일관성이 오늘의 힘을 만들었다.

유효기간 5년짜리 정부 계획이 30년짜리 기업과 연구소 전략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가분수 국가다. 정권의 시계가 산업의 시계를 압도하면 연구는 끊기고 투자는 멈춘다. 국가는 방향을 제시해야지, 현장의 시간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그 위험선 위에 서 있다.

국가는 우연히 강해지지 않는다. 계획하고, 합의하고, 축적할 때 강해진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5년 정치에 갇혀 30년 전략을 만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에너지·안보 구조는 우리의 설계가 아니라 타국의 설계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설계하지 않는 국가는 설계당한다. 정권의 시계에 갇힌 국가는 정권의 수명만큼만 성장하고, 그 이후의 비용은 다음 세대가 치른다. 역사는 준비한 국가만을 살아남게 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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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