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메시지의 경쟁이자 속도의 경쟁이다. 누가 먼저 말하느냐, 어떤 문장이 더 널리 퍼지느냐, 어떤 장면이 오래 남느냐가 정치의 체급을 결정한다. 과거에는 연설문이 기록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타임라인이 역사를 만든다.
정치는 이제 화면에서 먼저 판단되고, 여론은 클릭의 속도로 굳어진다.
지난 7일 오후,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상공회의소의 ‘고액 자산가 탈한국’ 보도자료를 고의적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사익을 위한 왜곡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강한 경고도 뒤따랐다. 약 4시간 후 대한상의가 통계 검증이 부족했다며 공식 사과문을 냈지만, 이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고 질타한 지 하루 만인 8일 정부는 대한상의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 절차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정치의 무대를 먼저 봐야 한다. 그는 기자회견보다 휴대전화 화면에 먼저 등장하는 지도자다. 발표보다 게시가 빠르고 브리핑보다 문장이 앞선다. 정치가 플랫폼 위에서 실시간으로 형성되는 시대, 그는 그 중심을 점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말의 타이밍 자체가 리더십이 된다.
과거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떠올리면 낯선 장면은 아니다. 정치 입문 초기에 그는 직설적인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복잡한 설명 대신 한 문장으로 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키웠지만 존재감을 넓히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 기억 때문에 오늘의 SNS 메시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SNS는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미 통치 방식의 일부로 기능한다.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며 반대의 프레임을 정면 돌파한다. 언론이라는 중간 과정을 우회해 직접 도달하는 느낌을 만든다. 그만큼 메시지의 체감 온도는 높아진다.
정치가 전달이 아니라 즉시 반응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이 방식은 강력한 해방감을 준다. 기다림 없이 반응이 나오고 복잡한 해설 없이 방향이 제시된다. 싸워야 할 대상이 또렷해진다. 정치적 에너지는 빠르게 한곳으로 모인다.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 역시 극대화된다.
최근 이 대통령의 이른바 ‘사이다 SNS’가 보여주듯 지도자와 같은 전선에 서 있다는 심리적 거리의 축소가 만들어진다.
이 대동령이 SNS에 올린 부동산·금융·외교 관련 메시지는 단호한 문장으로 하루의 의제를 다시 배열하는 힘을 보여줬다. 게시물이 올라오는 순간 무엇을 먼저 논의해야 하는지가 재정렬되고, 정치의 우선순위가 빠르게 이동한다.
임기 초 SNS에 올라온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 망신”이라는 표현도 경고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파장은 컸다. 관련 집단은 즉각 긴장했고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몇 줄의 문장이 투자 심리와 관망의 분위기를 빠르게 재편했다.
지도자의 의지는 압축된 형태로 명확히 전달됐고, 정책 당국이 어디를 주시하는지도 분명해졌다.
특히 부동산을 둘러싼 메시지는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반복돼 왔고, 올해 연초 들어 더욱 집중됐다.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조될수록 정책 방향은 한층 선명해졌다.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공유되자 시장은 규제 강도를 먼저 계산하기 시작했다.
매수와 매도의 판단이 미뤄지는 사이 일부 지역에서는 매물을 내놓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강남권을 중심으로 호가를 낮춘 매물이 등장했다는 신호도 감지됐다.
대외 관계를 다루는 메시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예컨대 캄보디아를 언급하며 한국을 건드리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경고가 나왔을 때, 그 메시지는 국가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에게 든든함을 주며 결속을 강화했다.
동시에 국제사회에는 한국이 스스로의 이익과 안전을 지킬 준비가 돼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이들 사례는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SNS 글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을 부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시장은 거래 속도를 조절하고, 부동산시장은 관망에 들어가며, 외교 당국은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따져 본다.
글이 올라오는 순간 관련된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진다. 온라인에 적힌 말이 현실에서 움직이는 순서를 바꾸는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린다. 직접 말하고 즉각 반응하며 지지자와 직거래하는 방식이 닮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전투의 무대로 삼는 이 리더십은 결단력과 속도를 증명하는 강점을 갖지만, 숙성과 조정의 공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불안 또한 함께 키운다.
힘이 빠르게 모이는 만큼, 그 반대편의 저항도 같은 속도로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의 발언이 상징적 충돌이나 정치적 퍼포먼스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에서는 훨씬 구체적인 행정 신호로 읽힌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순간 부처는 대응을 준비하고 시장은 위험을 계산하며 이해관계자들은 손익을 따지기 시작한다.
게시물 하나가 정책의 예고편처럼 받아들여지는 환경이 형성돼있다는 게 미국과 다르다.
SNS 정치의 장점은 분명하다. 의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할 수 있고, 논쟁의 출발점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지지층의 결집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온라인의 에너지가 현실 정치로 곧바로 이어진다. 지도자는 매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
속도를 쥔 쪽이 결국 국면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단점 역시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번 공개된 메시지는 기록으로 남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수정하기 어렵다. 상황이 달라져도 톤을 낮추는 순간 그 변화는 입장 후퇴로 읽히기 쉽다. 협상의 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선택지는 눈에 띄게 제한된다.
정치가 스스로 숨을 고를 수 있는 회색지대가 빠르게 사라진다. 유연성이 줄어들수록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 커진다.
지난 8일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연이은 SNS 정치를 두고 “국정은 임의로 지웠다가 남길 수 있는 일기장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게시와 삭제가 반복되는 소통 방식이 기록 관리 원칙을 흐리고, 비공개 메신저 중심의 논의는 검증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면을 장악하는 정치가 자칫 휘발성 통치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치가 빨라질수록 숙성의 시간은 얇아진다. 정책은 본래 복잡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SNS는 긴 설명 대신 즉각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선과 악, 찬성과 반대가 순식간에 갈리며 협상과 타협은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표현은 늘 결단처럼 들리고 기대는 빠르게 높아지지만 준비와 수정의 시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간극이 커질수록 실망과 비용 또한 함께 자라난다.
끊임없는 발신의 압박 속에서 정치는 숨을 고르기 어려워진다. 하나의 이슈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의제가 밀려오고, 사회는 매일 결집과 반발을 반복한다. 진영은 단단해지지만 유연성은 줄어든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서로를 확인하는 정치가 익숙해진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동체의 체력은 더 빨리 소모되고, 피로는 구조처럼 누적된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SNS에 얼마나 많은 문장을 남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느냐다. 조회 수와 박수는 흘러가지만 제도와 결과는 오래 남는다. 타임라인은 지나가도 삶 속의 변화는 기록으로 축적된다. 정치의 평가는 언제나 그 자리로 되돌아오며, 진짜 결론은 화면이 아니라 시간 위에 쓰인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속도가 리더십을 증명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용기도 함께 보여주기를 바란다. 빠른 문장이 지지를 모을 수는 있지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조정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화면을 장악한 지도자로 기억되기보다 시간을 통과한 변화로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속도는 권력을 만들지만, 지속은 신뢰가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