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K-pop 다음 K-mark 준비하라

음악으로 연 K-culture, 이제 미술로 증명할 차례다

며칠 전,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딸을 둔 모 기업 회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이가 실기우수상과 개근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축하 인사를 전하며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음악이 대세지만, 앞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처럼 미술의 인기가 음악을 앞지를 겁니다” 잠시 후 한 문장을 더 보냈다.

“앞으로 따님이 BTS보다 더 날릴 겁니다.” 축하의 뜻으로 가볍게 보낸 메시지였으나, 문화의 방향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문화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소리가 문을 열면 그림이 문명을 세운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미술은 그 감정을 구조로 고정시킨다. K-pop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은 이제 무엇을 불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바로 K-mark다.

한국 미술은 흔히 ‘K-painting’이나 ‘K-picture’로 불린다. 그러나 이는 장르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왜 남는지까지 말해주지는 못한다. 반면 K-mark는 미술을 문명이 남기는 흔적으로 격상시킨다. 미술은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구조다. 한국 미술을 K-mark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이미지가 세계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문명적 좌표를 뜻한다.

소리는 먼저 오고, 그림은 나중에 남는다

예술의 역사에서 음악은 언제나 가장 먼저 등장했다. 인간은 생각하기 전에 소리를 냈고, 언어보다 먼저 리듬으로 서로를 인식했다. 음악은 집단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묶는 힘을 가졌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불안과 환희, 두려움과 기대는 말보다 소리로 먼저 전달되었고, 박자와 음성은 집단의 심박수를 하나로 맞췄다.


그러나 음악의 힘은 강한 만큼 짧다. 울리고 사라지며, 기억에 의존한다. 기록 기술이 없던 시대의 음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 같은 시대에 그려진 그림과 벽화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차이는 예술의 우열이 아니라, 지속 방식의 차이다. 소리는 순간을 지배하지만, 이미지는 시간을 견디며 문명의 시간 속에 고정된다.

인류의 문명이 성숙할 때 예술의 중심도 이동해 왔다. 반응에서 해석으로, 소리에서 이미지로 이동했다. 음악은 늘 앞에서 길을 닦았지만, 그림은 뒤에서 그 길을 굳혔다. 음악이 즉각적인 결속을 만들어냈다면, 미술은 사유와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남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흔적이다. 문명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가장 신뢰한 표현은 이미지였다.

그림은 늦게 시작해 문명 붙잡아

미술은 음악보다 늦게 자리 잡은 예술이다. 소리처럼 즉각 반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과 선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고,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릴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미술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사고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이 지점에서 미술은 본능의 영역을 벗어나 문명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 때문에 미술은 늘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다. 쉬운 예술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어려운 예술은 반복해서 읽힌다. 미술은 즉각적인 감동보다 지속적인 해석을 요구하며, 해석이 축적될수록 의미가 더 깊어진다. 문명이 성숙할수록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이유다.

미술은 소리처럼 순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견딘다. 한 번 보고 끝나는 대상이 아니라, 다시 보고 다시 해석되는 구조로 남는다. 해석이 쌓일수록 그 축적은 문명의 기억이 된다. 문명이 스스로를 남기려 할 때 마지막까지 붙잡는 형식은 바로 이미지였다. 늦게 시작한 예술이 가장 오래 남는 이유다.

벽화는 역사 품고, 노래는 기억에 남아


이 지속의 성격은 인류가 무엇을 남겼는지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림이다. 동굴 벽화에는 사냥의 장면뿐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세계관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당시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숭배했는지를 읽는다. 생존의 기술과 믿음의 구조가 하나의 이미지 안에 겹쳐지며,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남기는’ 존재가 되었다.

반면 그 시대의 음악은 거의 알 수 없다. 소리는 사라졌고, 기억은 끊겼다. 악보가 등장한 이후에도 음악은 시대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주되고 해석된다. 같은 곡이라도 의미는 끊임없이 바뀐다. 음악은 현재형으로 존재하며, 그 순간의 청중과 공간에 의존한다. 그래서 음악은 시대를 반영하지만, 시대를 고정하지는 못한다. 역사는 음악을 기억하지 않고, 음악은 역사를 붙잡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자료는 미술이다. 그림에는 정치와 종교, 계급과 권력이 동시에 들어 있다. 미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의 기록이다. 권력은 어떤 이미지를 남기려 했는지, 종교는 무엇을 신성화했는지, 사회는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냈는지가 그림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것은 예술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문명이 작동해 온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할수록 정적으로 변해

실제로 인간 사회의 진화는 이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원시의 인간은 즉각 반응했지만,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멈추는 법을 배웠다. 관찰하고, 판단하고, 축적하는 능력이 생존의 조건이 됐다. 본능적인 반응만으로는 집단을 유지할 수 없었고, 행동 이전에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멈춤은 나약함이 아니라, 문명으로 가는 첫 단계였다.

이 변화는 예술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소리 중심의 문화에서 문자와 이미지 중심의 문화로 이동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진화의 결과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정적인 기록이 필요해진다. 기억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오래 갈 수 없었고, 남겨진 흔적이 권력과 질서를 가능하게 했다. 예술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에서, 구조를 유지하는 장치로 변해갔다.

지금 우리가 이미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인간은 더 이상 빠른 자극이나 즉각적인 반응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속도보다 구조를 자극보다 의미를 요구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의 끝에는 미술이 있다. 이미지는 시간을 늦추고 사유를 호출하며, 무엇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가장 원시적으로 시작된 예술이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중심에 서고 있다.

K-pop은 시작이었고, 끝은 아냐

K-pop은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음악, 산업, 훈련 시스템이 결합해 하나의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K-pop은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성공적인 첫 사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성공 이후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세계는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 어떤 세계관을 그릴 것인가를 묻는다. 음악으로 얻은 신뢰는 미술로 검증된다. 소리는 감동을 주지만, 이미지는 기억을 만든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리듬을 넘어 한국이 바라보는 세계의 형상을 보고 싶어 한다. 그 형상은 유행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축적해 온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여야 한다.

K-pop 이후의 한국 문화는 미술로 향할 것이다. 이는 유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모든 문명은 음악으로 문을 열고, 이미지로 고정해 왔다. 그래서 문화의 중심이 이동하는 방식은 낯선 일이 아니다. 강한 음악 산업으로 세계를 장악했던 나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지를 통해 문명의 깊이를 증명해 왔다. 이제 한국 역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미국 문화의 축, 음악서 이미지로 이동


1970년대 이후 세계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힘의 중심에는 미국 음악이 있었다. 케이블과 위성, 뮤직비디오와 스타 시스템이 결합하며 리듬과 스타일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됐다. 거리의 패션과 청춘의 감정, 소비의 코드까지 음악이 설계했다. 소리는 곧 영향력이었고, 미국은 그 파동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 흐름은 조금씩 달라졌다. 문화의 무게추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와 컬렉터 네트워크가 세계 문화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이미지는 더 오래 남았고, 도시의 브랜드와 국가의 품격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문화 패권은 히트곡의 수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축적했는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은 음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통과하고 있다. BTS가 보여준 성취는 이미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정점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요구한다. 미국이 그랬듯, 이제 우리는 소리 이후에 남을 구조를 준비해야 한다. 세계는 한국의 음악을 듣고 있지만, 다시 한국의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의 변화에 먼저 답하는 나라만이 미래의 기준이 된다.

이미 미래를 살았던 조선 화가들

조선의 화가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 권력과 윤리를 동시에 사유한 지식인이었다. 그림은 그들의 사고 방식이자 세계관이었다. 붓질 하나에는 학문과 정치, 도덕에 대한 태도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림은 장식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유를 정리하는 또 하나의 문화였다. 그래서 조선의 회화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읽고 해석해야 할 사유의 텍스트에 가깝다.

산수화 한 폭에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의 위치가 담겨 있다. 화려함 대신 절제를 택했고, 채움보다 비움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결핍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공존의 질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워낸 공간은 침묵이 아니라, 보는 이의 사유가 들어올 여백이었다. 그 여백 속에서 관람자는 세계 안으로 초대된 존재가 된다.


겸재 정선은 산을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이는 자연을 관념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과 글씨는 형태보다 사유의 구조를 앞세웠고, 김홍도는 인물의 표정보다 삶의 장면과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려 했다. 이들은 그림을 꾸미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사상가에 가까웠다.

이 미학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다시 도달하려는 지점이다. 한국 미술은 낙후된 전통이 아니라, 한 번 미래를 앞서 살았던 경험이다. 속도와 과잉의 시대가 지나면서, 세계는 다시 절제와 여백의 가치를 찾고 있다. 조선의 그림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아직 다 소진되지 않은 사유의 자산이다. 지금 우리가 그 가치를 다시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회귀가 아니라 재도약에 가깝다.

미술이 강했던 시대의 조건

미술이 융성했던 시대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미술이 장식이 아니라 사고의 도구였고, 화가가 기술자가 아니라 사상가였다. 그림은 권력의 취향을 꾸미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화가는 손보다 머리를 먼저 쓰는 존재였고, 붓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미술은 시대의 표면이 아니라, 시대의 깊이를 드러냈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에서 미술은 종교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는 학문이었다. 화가는 장인이 아니라 철학자에 가까웠고, 그림은 신과 인간, 자연의 질서를 사유하는 도구였다. 송대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인화는 기술보다 인품과 사유를 중시했고, 그림은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이 시기 미술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감각이 아니라 세계관을 남겼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송대 중국, 조선 전기가 모두 그러했다. 이 시대들의 미술은 지금도 살아 있다. 반복해서 해석되고,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당대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그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미술이 특정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구조와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미술은 언제나 미래의 독자를 전제로 한다.

반대로 미술이 약해진 시대는 늘 음악이 지배한 시대였다. 당시 문화는 활발했지만 남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다시 그 선택의 지점에 서 있다. 즉각적인 반응과 소비를 택할 것인지, 느리더라도 남는 구조를 만들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소리가 문화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문명을 남기지는 못한다. 어떤 예술에 중심을 둘 것인지가 곧 어떤 시대가 될 것인지를 결정한다.

K-mark, 한국이 남길 문명의 흔적

K-mark는 장르가 아니다. 스타일도 아니다. 그것은 태도이며 질문이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흔적을 남겼는가를 묻는다. 결과의 외형보다 과정의 밀도를 중요하게 본다. 눈에 보이는 완성도보다,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선택과 망설임을 기록한다. K-mark는 작품이 아니라, 사유가 지나간 자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한국 미술의 힘은 완성보다 과정, 결과보다 반복에 있다. 긋고, 덮고, 지우는 행위 속에 시간이 쌓인다. 이 축적된 흔적이 바로 K-mark다.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고, 수정과 후퇴를 감내하는 태도가 미학이 된다. 실패와 망설임까지 포함한 시간이 화면 위에 겹겹이 남는다. 이 반복의 역사가 한국 미술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다.

K-pop이 소리로 문을 열었다면, K-mark는 그 문 안에 문명을 남겨야 한다. 소리는 지나가지만, 흔적은 남는다. 그리고 문명은 언제나 남은 것 위에 세워진다. 세계는 이제 한국의 리듬이 아니라, 한국의 흔적을 읽기 원한다. 한국이 무엇을 소비했는가보다 무엇을 남겼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K-mark는 그 기준 위에서 한국 미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미술은 재능 아닌 시스템서 완성

오늘날 세계 미술 시장은 연간 수십조원 규모로 움직이고 있다. 뉴욕·런던·파리·홍콩에는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갤러리와 컬렉터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한 나라의 미술은 이 구조 안에서 평가되고 유통된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세계에 진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작가는 갤러리, 비평, 전시, 컬렉션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국동과 삼청동을 중심으로 갤러리 밀집 지역이 형성돼 있지만,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는 세계 주요 미술 도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인 작가의 역량은 충분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키워낼 제도와 시장은 아직 탄탄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능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보호하고 축적할 구조가 부족한 셈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한국 미술은 반복해서 개인의 열정만 소진시키는 구조에 머물게 된다. 세계 무대는 개인의 천재성을 발견해 주는 곳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곳이다. 미술이 개인의 재능을 넘어 제도의 예술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능이 아니라, 그 재능이 오래 살아남을 구조다.

제2의 BTS 만드는 방식은 달라

지금 예원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 기업 회장의 딸 역시, 10년 뒤 BTS처럼 세계를 누비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BTS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탄생하지 않았듯, 다음 세대의 한국 미술가 역시 사회와 국가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 될 것이다. 문화는 개인이 시작하지만, 세계로 나아가는 순간부터는 국가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전 투자다. 음악 산업이 체계적 훈련과 인프라, 글로벌 유통을 통해 K-pop을 만들었듯, 미술 역시 같은 수준의 국가적 안목이 필요하다. 한 명의 천재를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수백 명의 가능성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문화 강국의 조건이다. 미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예술인 만큼, 지원은 더 일찍 시작돼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시간을 이긴 이미지가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는 여전히 그 얼굴을 통해 한국을 읽는다. 완성도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가 남았기 때문이다. K-mark는 새로 만드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의 현대적 이름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언젠가 ‘아이돌 굿즈’처럼 K-mark 작가의 그림이 세계 젊은 세대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K-pop이 한국을 알렸다면, K-mark는 한국을 남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세계의 박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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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