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내고 싶지 않은 안성기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6.01.12 11:23:48
  • 호수 1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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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천의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에서 안성기 배우가 한 말이다. 그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구설 없는 자기 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국민 배우’라는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지켜냈다. 한국 영화계의 권익이 침해받을 때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문화 주권을 지켰고,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영화계
버팀목

대한민국 영화사 그 자체였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같은 해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그는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이듬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복귀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해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각종 외부 활동 및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투병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은은히 웃는 얼굴을 한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고인과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박중훈은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눈물 지었다.

고인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제가 지금 투어 중이라 입술도 부르트고 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고 해서 왔다”며 “지난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찾았고,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잘 퇴원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을 텐데, 이겨내지 못했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외에도 배우 김형일, 김동현, 이덕화, 정진영, 강우석 감독,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등 대중문화계 다양한 인사들이 조문에 나서 고인을 배웅했다. 소속사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빈소를 지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및 우원식 국회의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러 정치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조국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선생님 영화를 보고 자랐다. 선생님 자체가 한국의 영화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등도 개인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추모의 뜻이 전달됐다.

5세 데뷔 후 69년 연기 인생
장르 가리지 않는 만능 배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 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계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인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인연이 있는 가수 김수철은 고인을 친형 같았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슬퍼했다.

김수철은 “마음의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형은 ‘난 사람(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된 사람(인품도 훌륭한 사람)’ 었다. 인간미가 아주 깊은 분이자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거목은 그가 생전 독실하게 몸담았던 신앙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배우 안성기의 영결 미사가 거행됐다. 5일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많은 걸작을 함께한 배창호 감독과 후배 배우 정우성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의 고결했던 생애를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뒤 이어진 운구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참여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든든하게 배웅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장남 안다빈 작가는 생전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추모에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은 영결식 엄수 후 장지인 경기 양평군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배우 안성기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절친했던 김기영 감독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제작 당시 마땅한 아역을 찾지 못하자 안씨의 둘째 아들인 안성기를 불러들였다. 다섯살 소년은 놀라운 몰입도로 배역을 소화했고, 이는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얄개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출연한 작품만 70여편이었다. 하지만 동성고 진학 후 학업을 위해 돌연 영화계를 떠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졸업 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안성기의 본래 꿈은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발길을 다시 충무로로 돌려놨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거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 역을 맡으며 비로소 존재감을 증명했다.

된 사람
난사람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 신인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배우를 소위 ‘딴따라’로 낮잡아 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골랐다. 자극적인 베드신을 거절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이나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자처하는 등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스스로 높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만다라>부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꿰뚫는 걸작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는 1990년 <남부군>부터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변주로 스크린을 누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 최다 주연 배우를 도맡던 그는 2001년 <무사>에서 최초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때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는 1968년 창설된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지옥 훈련을 견뎠으나,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버려진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종 관객수 1108만1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안성기는 <실미도>의 대성공으로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을 했다.

이 작품의 대흥행 이후 그는 영화계의 어른으로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더욱 앞장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극장이 1년 중 일정 일수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보호막(쿼터)이 사라지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밀려 한국 영화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안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쿼터 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하거나,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현장을 직접 지켰다.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그가 앞장서자 국민적 지지가 모였고, 스크린 쿼터제는 문화 주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승화됐다.

정치권
러브콜도

결국 2006년에 이르러 상영 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축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다져진 영화인들의 결속력과 대중의 관심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안성기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따뜻함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88년 가수왕이었으나 지금은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전성기부터 20년째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극중 비 오는 날 최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은 안성기의 즉석 제안으로 탄생했다. 시나리오상에는 박중훈의 얼굴로 끝나는 설정이었으나, 안성기가 제안한 이 연출은 영화의 주제인 ‘동행’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단짝 박중훈은 저서에서 그를 두고 “따뜻한 온도의 물 같은 사람”이라 회고했다. 그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선배를 넘어,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회적 양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안성기는 2010년대에도 멈추지 않는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2012년 <부러진 화살>과 인생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화장>은 베테랑 배우로서 그의 관록이 가장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 차원의 대규모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며 책임감을 느낀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건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그렇게 영화 한 우물을 파 온 데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업계에 따르면 모범적인 이미지로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영화 연기를 가장 우선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인과 얽힌 영입 비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모했다. 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김 전 대통령은 안성기의 대중적 신망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정계에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답변은 단호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만, 나는 영화배우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며 정치권의 부름을 사양했다.

넘쳐 흐르는 미담들
금관문화훈장 영예

데뷔 이후 69년간 1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대(代)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또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과 1992년 <하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며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연기력만큼이나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고인은 1983년부터 무려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Maxim)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하며, 시대를 상징하는 ‘신사’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페이지는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장식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어영담 역을 맡은 고인은 투병 중임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진정한 배우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1952년 1월1일에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안성기는 아내 오소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다.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참석 대신 보낸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 소식이 알려지며 그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훈훈한 일화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시설 관리자 커뮤니티 등에는 고인이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매년 살뜰히 챙겼다는 미담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에 따르면 안성기는 1년에 한 번씩 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단순히 자리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고인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 오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직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직원 한 명 한 명과 정성껏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자한 미소의 ‘국민 배우’였고, 전 세계 어린이에게는 든든한 ‘희망의 버팀목’이었던 안성기 친선대사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어린이 곁을 지켜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친선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훈훈한 일화
인자한 미소

안성기가 남긴 것은 수많은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했던 그의 신사다움은 삭막한 연예계의 등불과 같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긴 수많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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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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