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내고 싶지 않은 안성기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6.01.12 11:23:48
  • 호수 1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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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천의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에서 안성기 배우가 한 말이다. 그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구설 없는 자기 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국민 배우’라는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지켜냈다. 한국 영화계의 권익이 침해받을 때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문화 주권을 지켰고,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영화계
버팀목

대한민국 영화사 그 자체였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같은 해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그는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이듬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복귀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해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각종 외부 활동 및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투병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은은히 웃는 얼굴을 한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고인과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박중훈은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눈물 지었다.

고인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제가 지금 투어 중이라 입술도 부르트고 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고 해서 왔다”며 “지난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찾았고,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잘 퇴원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을 텐데, 이겨내지 못했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외에도 배우 김형일, 김동현, 이덕화, 정진영, 강우석 감독,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등 대중문화계 다양한 인사들이 조문에 나서 고인을 배웅했다. 소속사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빈소를 지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및 우원식 국회의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러 정치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조국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선생님 영화를 보고 자랐다. 선생님 자체가 한국의 영화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등도 개인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추모의 뜻이 전달됐다.

5세 데뷔 후 69년 연기 인생
장르 가리지 않는 만능 배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 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계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인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인연이 있는 가수 김수철은 고인을 친형 같았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슬퍼했다.

김수철은 “마음의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형은 ‘난 사람(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된 사람(인품도 훌륭한 사람)’ 었다. 인간미가 아주 깊은 분이자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거목은 그가 생전 독실하게 몸담았던 신앙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배우 안성기의 영결 미사가 거행됐다. 5일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많은 걸작을 함께한 배창호 감독과 후배 배우 정우성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의 고결했던 생애를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뒤 이어진 운구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참여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든든하게 배웅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장남 안다빈 작가는 생전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추모에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은 영결식 엄수 후 장지인 경기 양평군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배우 안성기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절친했던 김기영 감독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제작 당시 마땅한 아역을 찾지 못하자 안씨의 둘째 아들인 안성기를 불러들였다. 다섯살 소년은 놀라운 몰입도로 배역을 소화했고, 이는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얄개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출연한 작품만 70여편이었다. 하지만 동성고 진학 후 학업을 위해 돌연 영화계를 떠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졸업 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안성기의 본래 꿈은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발길을 다시 충무로로 돌려놨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거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 역을 맡으며 비로소 존재감을 증명했다.

된 사람
난사람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 신인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배우를 소위 ‘딴따라’로 낮잡아 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골랐다. 자극적인 베드신을 거절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이나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자처하는 등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스스로 높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만다라>부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꿰뚫는 걸작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는 1990년 <남부군>부터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변주로 스크린을 누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 최다 주연 배우를 도맡던 그는 2001년 <무사>에서 최초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때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는 1968년 창설된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지옥 훈련을 견뎠으나,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버려진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종 관객수 1108만1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안성기는 <실미도>의 대성공으로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을 했다.

이 작품의 대흥행 이후 그는 영화계의 어른으로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더욱 앞장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극장이 1년 중 일정 일수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보호막(쿼터)이 사라지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밀려 한국 영화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안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쿼터 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하거나,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현장을 직접 지켰다.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그가 앞장서자 국민적 지지가 모였고, 스크린 쿼터제는 문화 주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승화됐다.

정치권
러브콜도

결국 2006년에 이르러 상영 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축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다져진 영화인들의 결속력과 대중의 관심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안성기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따뜻함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88년 가수왕이었으나 지금은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전성기부터 20년째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극중 비 오는 날 최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은 안성기의 즉석 제안으로 탄생했다. 시나리오상에는 박중훈의 얼굴로 끝나는 설정이었으나, 안성기가 제안한 이 연출은 영화의 주제인 ‘동행’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단짝 박중훈은 저서에서 그를 두고 “따뜻한 온도의 물 같은 사람”이라 회고했다. 그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선배를 넘어,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회적 양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안성기는 2010년대에도 멈추지 않는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2012년 <부러진 화살>과 인생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화장>은 베테랑 배우로서 그의 관록이 가장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 차원의 대규모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며 책임감을 느낀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건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그렇게 영화 한 우물을 파 온 데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업계에 따르면 모범적인 이미지로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영화 연기를 가장 우선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인과 얽힌 영입 비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모했다. 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김 전 대통령은 안성기의 대중적 신망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정계에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답변은 단호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만, 나는 영화배우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며 정치권의 부름을 사양했다.

넘쳐 흐르는 미담들
금관문화훈장 영예

데뷔 이후 69년간 1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대(代)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또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과 1992년 <하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며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연기력만큼이나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고인은 1983년부터 무려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Maxim)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하며, 시대를 상징하는 ‘신사’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페이지는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장식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어영담 역을 맡은 고인은 투병 중임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진정한 배우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1952년 1월1일에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안성기는 아내 오소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다.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참석 대신 보낸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 소식이 알려지며 그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훈훈한 일화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시설 관리자 커뮤니티 등에는 고인이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매년 살뜰히 챙겼다는 미담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에 따르면 안성기는 1년에 한 번씩 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단순히 자리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고인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 오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직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직원 한 명 한 명과 정성껏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자한 미소의 ‘국민 배우’였고, 전 세계 어린이에게는 든든한 ‘희망의 버팀목’이었던 안성기 친선대사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어린이 곁을 지켜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친선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훈훈한 일화
인자한 미소

안성기가 남긴 것은 수많은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했던 그의 신사다움은 삭막한 연예계의 등불과 같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긴 수많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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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