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내고 싶지 않은 안성기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6.01.12 11:23:48
  • 호수 1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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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천의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에서 안성기 배우가 한 말이다. 그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구설 없는 자기 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국민 배우’라는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지켜냈다. 한국 영화계의 권익이 침해받을 때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문화 주권을 지켰고,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영화계
버팀목

대한민국 영화사 그 자체였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같은 해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그는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이듬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복귀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해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각종 외부 활동 및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투병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은은히 웃는 얼굴을 한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고인과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박중훈은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눈물 지었다.

고인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제가 지금 투어 중이라 입술도 부르트고 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고 해서 왔다”며 “지난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찾았고,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잘 퇴원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을 텐데, 이겨내지 못했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외에도 배우 김형일, 김동현, 이덕화, 정진영, 강우석 감독,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등 대중문화계 다양한 인사들이 조문에 나서 고인을 배웅했다. 소속사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빈소를 지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및 우원식 국회의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러 정치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조국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선생님 영화를 보고 자랐다. 선생님 자체가 한국의 영화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등도 개인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추모의 뜻이 전달됐다.

5세 데뷔 후 69년 연기 인생
장르 가리지 않는 만능 배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 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계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인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인연이 있는 가수 김수철은 고인을 친형 같았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슬퍼했다.

김수철은 “마음의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형은 ‘난 사람(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된 사람(인품도 훌륭한 사람)’ 었다. 인간미가 아주 깊은 분이자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거목은 그가 생전 독실하게 몸담았던 신앙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배우 안성기의 영결 미사가 거행됐다. 5일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많은 걸작을 함께한 배창호 감독과 후배 배우 정우성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의 고결했던 생애를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뒤 이어진 운구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참여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든든하게 배웅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장남 안다빈 작가는 생전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추모에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은 영결식 엄수 후 장지인 경기 양평군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배우 안성기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절친했던 김기영 감독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제작 당시 마땅한 아역을 찾지 못하자 안씨의 둘째 아들인 안성기를 불러들였다. 다섯살 소년은 놀라운 몰입도로 배역을 소화했고, 이는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얄개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출연한 작품만 70여편이었다. 하지만 동성고 진학 후 학업을 위해 돌연 영화계를 떠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졸업 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안성기의 본래 꿈은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발길을 다시 충무로로 돌려놨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거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 역을 맡으며 비로소 존재감을 증명했다.

된 사람
난사람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 신인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배우를 소위 ‘딴따라’로 낮잡아 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골랐다. 자극적인 베드신을 거절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이나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자처하는 등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스스로 높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만다라>부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꿰뚫는 걸작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는 1990년 <남부군>부터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변주로 스크린을 누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 최다 주연 배우를 도맡던 그는 2001년 <무사>에서 최초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때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는 1968년 창설된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지옥 훈련을 견뎠으나,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버려진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종 관객수 1108만1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안성기는 <실미도>의 대성공으로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을 했다.

이 작품의 대흥행 이후 그는 영화계의 어른으로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더욱 앞장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극장이 1년 중 일정 일수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보호막(쿼터)이 사라지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밀려 한국 영화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안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쿼터 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하거나,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현장을 직접 지켰다.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그가 앞장서자 국민적 지지가 모였고, 스크린 쿼터제는 문화 주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승화됐다.

정치권
러브콜도

결국 2006년에 이르러 상영 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축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다져진 영화인들의 결속력과 대중의 관심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안성기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따뜻함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88년 가수왕이었으나 지금은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전성기부터 20년째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극중 비 오는 날 최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은 안성기의 즉석 제안으로 탄생했다. 시나리오상에는 박중훈의 얼굴로 끝나는 설정이었으나, 안성기가 제안한 이 연출은 영화의 주제인 ‘동행’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단짝 박중훈은 저서에서 그를 두고 “따뜻한 온도의 물 같은 사람”이라 회고했다. 그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선배를 넘어,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회적 양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안성기는 2010년대에도 멈추지 않는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2012년 <부러진 화살>과 인생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화장>은 베테랑 배우로서 그의 관록이 가장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 차원의 대규모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며 책임감을 느낀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건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그렇게 영화 한 우물을 파 온 데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업계에 따르면 모범적인 이미지로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영화 연기를 가장 우선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인과 얽힌 영입 비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모했다. 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김 전 대통령은 안성기의 대중적 신망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정계에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답변은 단호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만, 나는 영화배우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며 정치권의 부름을 사양했다.

넘쳐 흐르는 미담들
금관문화훈장 영예

데뷔 이후 69년간 1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대(代)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또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과 1992년 <하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며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연기력만큼이나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고인은 1983년부터 무려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Maxim)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하며, 시대를 상징하는 ‘신사’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페이지는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장식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어영담 역을 맡은 고인은 투병 중임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진정한 배우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1952년 1월1일에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안성기는 아내 오소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다.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참석 대신 보낸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 소식이 알려지며 그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훈훈한 일화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시설 관리자 커뮤니티 등에는 고인이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매년 살뜰히 챙겼다는 미담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에 따르면 안성기는 1년에 한 번씩 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단순히 자리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고인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 오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직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직원 한 명 한 명과 정성껏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자한 미소의 ‘국민 배우’였고, 전 세계 어린이에게는 든든한 ‘희망의 버팀목’이었던 안성기 친선대사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어린이 곁을 지켜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친선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훈훈한 일화
인자한 미소

안성기가 남긴 것은 수많은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했던 그의 신사다움은 삭막한 연예계의 등불과 같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긴 수많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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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