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늘 새 출발을 말한다. 새 정부, 새 여당, 새 국정 기조라는 언어는 정권 교체기의 필수 문장처럼 반복된다. 출범 초기의 메시지는 강하다. 과거와의 단절과 전 정부와 다른 방식, 국민 체감 중심의 국정 운영이 약속된다. 새로운 권력은 언제나 “이번은 다르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다.
6개월 전 출범한 이재명정부와 여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국민이 체감하는 장면은 묘하게도 낯설지 않다. 언어는 달라졌지만, 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전 정부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움의 선언 뒤에서 반복되는 대응 구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낯익음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실패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 즉 같은 대응을 반복하며 누적되는 불신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를 설명하는 데 수학의 개념 하나가 유용하다. 바로 ‘레퓨닛 수(repunit)’다.
반복은 작게 시작…‘1’로 보이는 정치의 착시
수학에서 레퓨닛 수는 숫자 1이 반복되어 만들어지는 수다. 1, 11, 111, 1111처럼 구조는 단순하다. 그러나 자리수가 늘어날수록 그 크기와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반복은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되지만, 누적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만든다.
정치의 반복도 마찬가지다. 정부 출범 이후 몇 차례의 인사 논란과 정책 혼선은 각각만 놓고 보면 관리 가능한 사건처럼 보였다. 특정 인사의 도덕성 논란, 검증 과정의 허점, 정책 발표 이후 드러난 준비 부족은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있었던 장면이다.
문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첫 번째 ‘1’은 늘 작아 보인다. 그러나 같은 방식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숫자는 이미 11로 커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정치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태도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절차 문제없다”의 정치, 합법과 설득의 엇갈림
윤석열정부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설명 중 하나는 “법과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는 문장이었다. 합법성은 강조됐지만, 왜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설명은 뒤로 밀렸다. 법률 언어가 설득을 대신했다. 그 결과 정치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판결문을 읽는 화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정부와 여당 역시 6개월 동안 인사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판이 제기될 때 “절차는 지켰다”는 해명을 먼저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설명은 빠르지만, 설득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같은 문장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합법성보다 설명의 부재를 먼저 체감한다.
합법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는 합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절차를 반복해서 방패로 사용할수록 정치는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구조에 들어간다. 레퓨닛 수처럼 ‘1’은 늘어나고, 설득은 줄어든다. 결국 남는 것은 ‘문제없다’는 말의 반복과, 납득되지 않는 결과뿐이다.
사법 독립과 정치 책임 사이의 공백
윤정부는 법적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을 앞세워 정치적 책임과 거리를 두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원칙 그 자체는 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이 설명이 누적되면서 국민이 체감한 것은 독립성의 존중이 아니라 책임이 설명 뒤로 밀려났다는 인식이었다.
이정부와 여당은 다른 방향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하고 있다. 최근 사법부의 판단과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강화하며, 이는 윤정부식 ‘거리두기’와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정치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사법부를 존중한다는 말이 반복되든, 사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든 핵심은 같다. 정치가 직접 책임져야 할 판단을 사법의 판단으로 돌리는 순간 정치적 책임은 흐려지고, 그 흐름이 반복될수록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책임이 작동하지 않는 정치와 함께 불신이다.
속도의 정치, 시행령과 다수 의석의 닮은꼴
국정 운영의 속도에서도 대칭 구조는 분명하다. 윤정부는 시행령과 행정 권한을 통해 속도를 확보하려 했고, 이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다수를 바탕으로 입법 속도를 강조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윤석열식 시행령 정치’와 ‘이재명식 다수 의석 정치’가 별 차이 없다고 느낀다.
수단은 다르지만,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느끼는 체감은 동일하다. “밀어붙인다”는 인식이다. 이는 정책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는 결과 이전에 과정으로 평가받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되면 설득은 사라지고, 설득이 없는 정책은 언제나 강행으로 읽힌다.
속도는 국정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반복될 경우 민주주의의 마찰음을 키운다. 속도만 남고 설명이 사라질 때, 정치는 또 하나의 레퓨닛 자릿수를 추가한다. 그 숫자가 커질수록 되돌리는 데 필요한 정치적 비용도 함께 커진다.
비판 대응 방식의 반복, 공세와 저항의 프레임
윤정부는 비판을 종종 정치 공세로 단순화했다. 이정부 역시 비판을 개혁 저항으로 일괄 규정했다. 정권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그대로 반복됐다. 토론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았다. 비판은 반론이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 됐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비판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바뀌지 않았다는 인식이 이 지점에서 굳어진다.
비판은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아니라 안전장치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적대화될 경우, 정치는 스스로 귀를 닫는다. 설명은 줄어들고, 동원만 남는다. 이때 권력은 설득을 멈추고 충성의 크기를 재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토론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빠르게 메말라간다.
이 장면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더 이상 사안의 내용을 보지 않는다. “또 이 방식이구나”라는 판단이 먼저 작동한다. 레퓨닛 수가 커지는 지점이다. 사실의 옳고 그름보다 대응의 익숙함이 기억에 남는다. 정치가 신뢰를 잃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다.
정권 바뀌어도 반복되는 이유, 과거 정부의 데자뷔
이런 장면은 비단 이정부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거 정부 역시 논란 앞에서 절차를 강조하고, 사법부 탓으로 돌리고, 속도와 명분을 앞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반복됐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응의 언어와 태도는 다시 익숙한 궤도로 돌아왔다. 해명은 많아지고, 메시지는 정교해졌지만, 책임이 작동하는 장면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정치의 습관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반복은 개인의 성향이나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위기를 대할 때 선택하는 가장 쉬운 경로가 반복적으로 선택된 결과다. 그래서 국민이 느끼는 피로는 특정 정부를 넘어 정치 전체로 향한다. 레퓨닛 수처럼 같은 숫자가 자리를 옮겨가며 커져온 이유다.
맥락은 많았지만, 책임은 분산
지난 6개월 동안 이정부와 민주당이 마주한 현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책임의 분산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종종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그 차이는 갈등처럼 비쳤다. 그 결과 판단의 주체는 둘로 갈라진 듯 보였다. 정부는 제도를, 여당은 정치적 부담을 말했고, 책임은 공중에 떴다.
윤정부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책임을 구조 속에 흩어놨다. 맥락은 풍부했지만, 책임이 작동하는 장면은 희미했다. 반복될수록 국민은 맥락보다 결단의 부재를 본다. 정치는 설명의 총량이 아니라 책임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평가된다. 그 순간이 반복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 숫자는 다시 늘어난다.
설명은 쌓이지만 신뢰는 축적되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말이 아니라 결단의 부재로 기억된다.
분노보다 위험한 것, 정치적 피로의 누적
이 반복의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분노가 아니다. 피로다. 같은 방식의 해명과 같은 결론을 여러 번 경험한 국민은 점차 반응하지 않게 된다. 비판은 줄어들지만, 신뢰도 함께 줄어든다. 정치는 그 침묵을 안정으로 착각하는 순간 가장 깊은 위기에 들어선다.
이는 여론조사 수치보다 더 위험한 신호다. 민주주의는 지지율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기대가 사라질 때, 정치의 기반도 함께 약해진다. 정치는 지지를 잃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잃은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으로 굳어진다.
레퓨닛 수는 조용히 커진다. 불신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폭발 없이 숫자만 늘어난다. 그래서 위험은 늦게 감지되고, 문제는 커진 뒤에야 인식된다. 정치가 체감하는 위기는 대부분 국민이 이미 지나온 뒤에 도착한다. 지금 이정부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반복 끊지 못하는 정치의 한계
필자는 이 지점에서 묻는다. 왜 정권은 바뀌어도 반복은 끊기지 않는가? 왜 새로운 설명은 나오지만, 대응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가? 왜 사과와 해명은 반복되지만, 구조적 수정은 뒤따르지 않는가? 정치는 왜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숫자를 다시 세기 시작하는가?
레퓨닛 수를 줄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숫자를 더 붙이지 않는 것이다. 정치로 치면, 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책임을 분산시키는 대신 집중시키고, 속도를 앞세우는 대신 설득을 쌓아야 한다.
정치는 늘 새로움을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새로움보다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그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반복을 멈추는 실천에서 회복된다. 국민이 더 이상 111111이라는 숫자를 보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정치가 풀어야 할 가장 오래되고도 현실적인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