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구 요양병원 환자 사망 미스터리

팔 부러뜨리고 방치…결국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수년 전 쓰러진 이후 의식을 찾지 못했기에 ‘언젠가’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유족은 고인이 입소해있던 요양병원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그날, 요양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구에서 학원 강사 일을 하던 송경희씨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진 건 2021년 12월8일. 당시 경희씨는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약을 먹었는데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시 38세였던 경희씨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2~3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경희씨는 재활병원에서 2년을 지내다 요양병원에 입소했다. 지주막하출혈로 뇌가 손상돼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사망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대구의 C 요양병원에 입소한 시기는 지난해 4월이다. 경희씨의 어머니가 막내딸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를 원해 집 근처로 정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의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는 없었지만 죽음이 임박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희씨는 지난 6일 오전 4시경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C 요양병원에서 상급병원인 N 병원으로 옮겨지고 10일째 되던 날이었다.

향년 43세,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이었다.


갑작스럽게 딸이자 동생을 잃은 유족은 C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경희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경희씨의 팔이 골절됐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유족에게 뒤늦게야 알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C 요양병원이 팔이 부러진 경희씨를 방치하는 사이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대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경희씨의 언니 송모씨는 “그 일(골절)이 없었다면 동생은 지금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진단서와 소견서, 사망진단서 등을 꺼내 보였다. 그와 함께 경희씨가 사망하기 전 상황을 적은 기록도 내밀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동생의 죽음이 미심쩍어 이리저리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송씨가 전원 직후 N 병원에서 뗀 진단서에 따르면 경희씨는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긴 뼈)이 부러졌다. 폐쇄성 골절로 뼈가 부러졌지만 피부나 점막은 찢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N 병원 의사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함”이라고 진단했다.

경희씨의 팔이 부러진 시기는 지난달 23~24일로 추정된다. C 요양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골절이 확인된 건 지난달 24일이다.

지주막하출혈로 의식 없이 4년
큰 병원 옮기고 열흘 만에 숨져

하지만 C 요양병원 병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골절이 일어난 시기와 원인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경희씨의 팔에 수액을 놓으려다가 골절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원인으로는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족은 지난달 23일에 경희씨의 팔이 부러졌다고 주장했다. 의료진이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경희씨의 팔을 세게 잡아당겨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송씨는 “간병인인지, 간호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면회 갔다가 팔에서 ‘뚝’ 소리가 난 뒤에 동생 얼굴이 벌게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족이 문제 삼은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전원 시기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지난달 28일로, 팔 골절이 확인된 때(지난달 24일)와 닷새나 차이가 있다. 유족의 주장대로 지난달 23일에 팔이 부러졌다면 6일 만에야 상급병원으로 이송된 셈이다. C 요양병원의 환자 방치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송씨는 “우리가 화가 나는 건 팔이 부러진 것도 그렇지만 C 요양병원의 후속 조치다. 팔이 부러진 게 확인된 직후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옮겼으면 분명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가 N 병원에 옮겨져 검사한 결과 염증 수치와 간 수치가 높아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송씨는 “(7월)24일에 동생 팔이 골절됐으니 병원에 와서 (의사와) 면담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25일에 엄마가 찾아갔더니 주치의가 점심 먹으러 갔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돌아왔고, 26일에는 주치의가 쉬는 날이라고 해서 만나지도 못했다. 골절됐다는 사실만 알았지, 동생의 상태가 심각한지 어떤지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 그러다 월요일인 28일에야 그것도 사무국장이 (주치의에게) 바꿔준 전화로 동생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허탈해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송씨와 사무국장, 주치의 등 3자간 통화는 28일 오후에 이뤄졌다. 주치의는 송씨가 “(동생의 팔 골절이) 실금 정도인지”를 묻자 “폐쇄성 골절”이라면서 “그대로 두면 뼈 끝이 신경도 찌르고 혈관도 찌르고 근육도 찌르기 때문에 일단 응급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또 “수술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송씨의 질문에는 “이런 경우에는 수술해야 하는데 송경희씨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기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고 그다음에 수술하든지, 수술은 위험하다든지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유족이 경희씨의 상태와 의료적 조치의 필요성을 주치의에게서 처음 들은 순간이다.

실제 송씨는 “그 얘기를 왜 오늘에서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주치의는 “여태까지 보호자를 만나려고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보호자가 안 와서 내가 말을 못했지” “저는 만나려고 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했을 뿐”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후 송씨가 경희씨의 전원을 결정하고 사무국장이 병원을 수배하겠다고 했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28일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골절 닷새 만에 자세한 설명
관리 부실로 ‘욕창’ 심해져

C 요양병원 병원장은 “병원과 송경희님 보호자 사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일 처리나 진행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송경희님의 (팔) 골절이 원내에서 발생한 건 맞다. 우리가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송경희님의 강직 상태가 굉장히 심해서 간병이나 의료적 처치를 하다가 골절될 수도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경희님의 팔이 부러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건 육안상으로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고, 송경희님처럼 거동이 어려운 분들은 골절이 발생해도 수술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 경우 보호자가 그냥 있겠다고 결정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경희씨의 죽음이 골절과 관계 있다는 유족의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의 마음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골절과 사망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이 골절되기 전에도 경희씨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장은 “우리 병원에 입소한 뒤에도 폐렴과 패혈증으로 한두 번은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컨디션이 계속 안 좋았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학대 의혹도 제기했다. 송씨는 “동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병인,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에 팔이 부러진 것처럼 동생을 함부로 다룬 게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N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로부터 ‘욕창이 너무 심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병원장은 “(송경희님이) 강직이 심하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의학적으로 필요한 처치를 하거나 간병할 때 골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거듭 말하면서 “(학대는) 절대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코로나19 이후 면회가 자유로워지면서 병실에 보호자가 왔다 갔다 하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욕창에 대해서도 “입소할 때부터 욕창이 있었고 강직이 심해 체위 변경도 어려워 좀 더 진행됐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송씨는 “동생이 죽고 병원에 여러 번 연락했는데 답이 없었다. 심지어 장례 첫날 상복을 입고 찾아갔을 때도 병원 관계자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니 이제야 계속 만나자고 전화가 온다.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찾아와서 병원 과실을 인정하고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말했으면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소통 오류”


그러면서 “동생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강직도 심해서 자세도 뒤틀린 상태였고. 그런데 입관할 때 보니까 장례지도사님이 곱게 화장도 해주고 자세도 바르게 펴주셨다. 쓰러지기 전 얼굴이 보이더라. 동생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면서 “지금은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 놓아버린 느낌”이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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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