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이그룹 최초 커밍아웃 배인

당당히 흔든 무지개 깃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때 성 정체성에 대해 숨죽였던 아이돌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당당히 나서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두가 이성애자임을 전제하고 침묵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외치며 목소리를 낸다.

그룹 저스트비(JUST B)의 멤버 배인이 커밍아웃을 하며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저스트비는 2021년 데뷔한 6인 보이그룹이다. 지난 3월 디지털 앨범 ‘저스트 오드’를 발매했으며, 현재는 월드투어 중에 있다. 지난 4월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저스트비 월드투어 ‘저스트 오드(JUST ODD)’ 공연 무대에서 배인은 “나는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LGBTQ
일원이다”

LGBTQ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약어로서 성소수자를 의미한다. 이 발언과 함께 배인은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고, 미국 팝스타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를 열창하며 무대를 이어갔다. 팬들은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환호로 응답했다.

‘본 디스 웨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성별, 인종,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와 포용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있다. 콘서트 이후 배인의 커밍아웃이 각종 SNS와 팬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배인의 커밍아웃은 K팝 남자 아이돌 중 최초다. 앞서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가 양성애자임을,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으나, 한국 국적의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인은 이후 SNS를 통해 “게이로서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임이 자랑스럽다”고 다시 한번 밝히며, “레이디 가가는 내게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이며 진심을 전했다.

커밍아웃 이후 배인은 홍석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배인은 홍석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선배님의 따뜻한 응원과 마음 깊은 조언을 기사로 접하고 큰 울림을 느꼈다”며 “선배님께서 25년 전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주셨기에 저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가는 길에도 두려움이 있지만, 선배님이 등대처럼 앞에서 빛을 밝혀준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저도 선배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홍석천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메시지를 공개하며 “축하하고 응원할게”라고 화답했다.

저스트비 월드투어 미국서 중 깜짝 고백
“나는 자랑스러운 성소수자” 뜨거운 환호

한국서 ‘동성애자’라고 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홍석천이다. 당시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 성소수자 연예인이 당당히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홍석천의 노력이 있었다.

홍석천은 2000년 커밍아웃 이후 방송 활동이 중단됐고, 약 2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당시 그는 방송 녹화 중 성소수자임을 밝혔고, 이후 <여성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 커밍아웃했다. 하지만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며 불나방처럼 달려들었고, 가족과 주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간스포츠>는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내보냈다. 홍석천은 시드니 올림픽 응원단으로 출국하던 중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며 커밍아웃이 일파만파 퍼졌다. 그는 “기자들이 호텔 방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숨겨놓고 접근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홍석천은 현재 방송에서 당당히 스스로 성소수자의 아이콘임을 밝히며 밝은 모습으로 당당히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있지만, 이 자리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홍석천은 과거 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해, 2000년 커밍아웃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그 때가 서른이었다. 사람들이 왜 잘 나가는데 굳이 커밍아웃을 하냐고 했고, 저를 협박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숨기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3년 사귄 친구와 이별한 뒤, 평생 진실되게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석천
그때는…

이어 “커밍아웃을 결심했을 때, 서울에 와서 나와 같은 친구들을 찾으려 탑골공원까지 비를 맞으며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며 학창시절부터 느껴온 다른 정체성에 대한 고립감을 털어놓았다.

홍석천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다르다는 걸 느꼈고, “내가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인과 스킨십이 없었다. 나름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홍석천은 ‘숨기며 사는 삶’에 대한 절망감과 진실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간절함 속에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을 했지만, 당시 프로그램 담당 PD가 제 미래를 걱정해 방송분을 편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녹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소문이 퍼졌고, 한 기자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후 한 월간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이 알려졌다.

가족들과의 갈등도 깊었다. 홍석천은 “부모님은 커밍아웃 사실을 듣고 너무 놀라셨고, 같이 농약을 먹고 죽자고 하셨다. 그 시절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지금보다 심했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누나들에게는 3년 전에 먼저 고백했지만, 큰 누나는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홍석천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순간도 밝혔다.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누나와 싸우고 자살하려고 했었다. 죽기 전에 전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세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겠다는 전 애인의 말이 웃기게 들리면서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멤버들에게
2년 전 고백

이후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이 맛있는 걸 두고 왜 죽으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고 회상했다.

또, 홍석천은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도 커밍아웃 이후 겪었던 심리적 부담과 불면증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SNS를 통해 동료 LGBTQ+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하루에 100건 넘는 연락을 받기도 했고,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까지 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짧게 답장하거나 답장 속도가 느리면 “저는 살 의미가 없어요”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심리적 고통을 털어놨다. 당시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이를 듣고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가 아니면 상담을 멈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석천은 가족들에게서 진정한 인정을 받지 못한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커밍아웃 후 15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인정받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부모님이 “선 한번 볼래?”라고 물었고, 홍석천이 “누가 저 같은 사람한테 딸을 주겠냐”고 하자 “네가 어디가 어때서?”라며 화를 냈던 일을 꺼냈다.


홍석천은 이때 “나는 아직도 가족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구나”라는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홍석천은 지난 25일 <엑스포츠>와의 인터뷰서 “연예계 후배 중 커밍아웃 사례가 나온 건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자 반가운 소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본인을 ‘게이 선배’라고 칭하며 “배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커밍아웃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지 공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홍석천은 “커밍아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이후 버텨내는 시간은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며 “나 역시 2000년 커밍아웃 이후 전국민의 99%가 등을 돌린 듯한 상황을 겪었지만, 끝내 버텨냈다”고 돌아봤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보석함>에 배인을 초대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빛·길이 되어준 선배”
홍석천에 감사 메시지

홍석천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다 못 나눌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배인과 나의 커밍아웃에는 25년의 간극이 있지만,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무게는 여전히 비슷하다”며 “다만 사회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기에, 본인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배인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배인은 영국 패션매거진 <Dazed>와의 인터뷰서 “처음에는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고민하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내 삶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커밍아웃은 감정이 가장 진솔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 용기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저스트비 멤버들과 소속사에는 이미 2년 전 커밍아웃을 했으며, 멤버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솔직한 고백을 나눴다고도 밝혔다. 베인은 처음에 멤버 지오누에게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후 멤버들이 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9년 지기 친구 지민이 “동성애자냐”고 물으며, “만약 그렇다면 굳이 숨길 필요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인은 당시 멤버들에게 커밍아웃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민의 말에 용기를 내 고백했다.

배인은 “멤버들은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고 따뜻하게 저를 맞아줬고,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며 “내 앞에서 놀란 기색을 감추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됐다”고 전했다. 회사 대표도 “앞으로 다양한 길이 열릴 것”이라며 지지를 보냈다.

배인은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K팝 업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그저 내 진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배인은 앨범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 “저스트비의 솔직하고 대담한 앨범 ‘저스트 오드’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솔로 무대에서 ‘Born This Way’를 선택한 이유도 그 메시지와 진심이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인은 “팬들의 사랑이 진짜 나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줬다. 마지막 LA 공연에서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용기의 원천
팬들의 사랑

한편, 소속사 블루닷엔터테인먼트는 “개인 사생활”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공연 직후 같은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시우는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병희 멋지더라. 용기에 박수. 나도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데 눈물 나오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많이 어렵고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 눈물 났다. 병희 이미 안아줬지, 너무 행복한 투어였다”고 덧붙였다.

팀 내 멤버들의 지지는 배인이 더욱 큰 용기를 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배인은 “내 커밍아웃은 나 혼자만의 결단이 아니었다. 함께 해준 이들의 믿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아이돌 양성애 고백

과거 커밍아웃은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아이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아이돌들이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선언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걸그룹 와썹 출신 지애는 2021년 SNS를 통해 양성애자임을 고백했다.

그는 “나는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며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생겨 행복하다”고 당당히 밝혔다.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라라가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했다.

라라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가족에게 먼저 커밍아웃했음을 전했고, 유색 인종으로서 느꼈던 이중의 부담감도 털어놨다.

그는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팬들의 지지에 감사하다”며 “내 성 정체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라라는 과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성 정체성이 데뷔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두려웠던 심경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성소수자 아이돌들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연예계 내 다양성과 포용성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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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