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십자포화 맞은 백종원

탈탈 털리는 ‘장사의 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국내 대표 외식업체 ‘더본코리아’가 연이은 논란에 휩싸이며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믿고 먹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던 기업이 식품 위생 문제부터 직원 관리 논란까지 다양한 이슈로 도마 위에 올랐다. 백종원 대표가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더본코리아에는 치명적인 오점이 남았다.

최근 출시된 ‘빽햄’의 가격 및 품질 논란을 시작으로 식품 위생 문제, 원산지 표시 위반 혐의, 직원 관리 논란 등이 연달아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서 이번 논란들이 브랜드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백선생의
양파 까기

논란은 더본코리아의 신제품 ‘빽햄’의 품질 문제를 필두로 시작됐다. 설 명절을 앞두고 더본코리아는 빽햄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빽햄은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부대찌개 브랜드인 ‘백’s 부대찌개’서 사용하던 햄을 가정서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으로,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출시 이후, 제품의 성분과 가격이 공개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은 급격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더본코리아는 빽햄을 정가 5만1900원에서 2만8500원으로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며 가성비를 강조했지만, 돼지고기 함량이 주요 경쟁 제품인 ‘스팸’보다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빽햄의 돼지고기 함량은 85.4%로, 스팸의 함량 91.3%보다 낮았다.


햄 제품은 보통 고기 함량이 높을수록 품질이 좋다고 평가되는데, 빽햄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은 “고기 함량이 낮은데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백 대표는 “빽햄은 부대찌개용으로 특화된 제품이라 일반 햄과 비교하기 어렵다. 조미가 추가돼 고기 함량이 낮아졌지만, 조리 시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빽햄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과거 ‘사과당’에 대한 그의 비판도 재조명 됐다. 백 대표가 2023년 충청남도 예산시장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였다. 예산시장은 충남지역 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지만, 상권이 쇠퇴한 이후 백 대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심을 끌었다.

백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예산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당시 백 대표는 예산시장 근처에 새로 입점한 사과파이 전문점 사과당을 언급하며 “가격이 비싸다” “내 이름을 이용한 홍보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과당은 지역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고급 사과파이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며, 한 개당 약 5000~6000원 정도의 가격이 책정돼있었다. 이 발언 이후 사과당은 소비자들 사이서 논란이 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가격이 낮아야 하는데, 너무 비싸게 책정됐다”며 백 대표의 의견에 동조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후, 더본코리아는 예산시장 내에 자체적인 사과파이 전문점 ‘애플양과점’을 오픈했다. 백 대표의 브랜드서 만든 사과파이는 한 개당 2500원으로, 사과당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이로 인해 ‘사과당 죽이기’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소비자들과 상인들은 “백종원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존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작은 가게를 밀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빽햄부터 예산시장까지…줄줄이 도마에
‘가성비’ 강조하던 백선생 품질 논란도

일부 누리꾼들은 이번 빽햄 논란에 백종원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사과당 가격이 비싸다고 지적하던 백종원이 정작 본인이 비싼 제품을 팔고 있다”며 “자기 기준으로 남을 평가해놓고 자기 제품은 예외라는 태도가 문제”라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 대표가 충청남도 예산군서 진행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된 된장 공장이 농업진흥구역 내에서 불법 운영됐으며, 이 과정서 수입산 원료를 사용한 된장을 생산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예산시장은 백 대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수년간 공들인 프로젝트의 중심지였으나, 이번 논란으로 인해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명분과 실제 사업 운영이 충돌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예산군은 백 대표의 고향이자, 그가 직접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다. 2022년부터 시작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백 대표가 개인적으로 추진한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으로 ▲예산시장의 음식점 및 전통시장 환경 개선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 입점 및 신메뉴 개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식품 개발 및 판매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백 대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며 “국내산 농산물을 적극 활용해 지역 농가와 상생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그의 이러한 발언과 사업 운영 방식이 충돌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더본코리아는 예산군에 ‘백석공장’을 설립했다. 백석공장은 예산시장서 판매되는 일부 식품의 가공 및 유통을 담당하는 곳으로, 된장, 간장 등 장류 제품을 생산하며 지역 특산물과 연계된 식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백석공장이 위치한 부지가 농업진흥구역이라는 점이다.

농업진흥구역은 농업 활동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구역으로, 해당 지역 내에서는 비농업용 건축물의 신축 및 변경이 엄격히 제한된다. 백석공장은 이 구역 내에서 농업 관련 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서 불법 운영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은 “농업진흥구역서 식품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며 “백 대표가 예산시장 활성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역 농업 보호 원칙을 어긴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비싸다더니
비싸게 팔아

더본코리아는 일부 제품이 원산지 표기법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 입건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더본코리아는 특정 제품의 원재료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표기했으나, 실제로는 수입산 원료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원산지 표기법에 따르면, 식품의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오인할 수 있도록 표기하는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강조해 온 백 대표의 브랜드서 이 같은 위반 사례가 발생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번 원산지 문제가 더욱 논란이 된 것은, 백 대표가 그동안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서 ‘국내산 원재료 사용’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영업자들에게 “국내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상생을 강조했던 데 반해, 더본코리아가 정작 자사 제품의 원산지를 허위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된장 공장 운영 논란과 함께 백석공장 부지 내 비닐하우스를 창고로 불법 사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비닐하우스는 원래 농산물 재배 목적으로 사용돼야 하지만 더본코리아는 이를 제품 보관 창고로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농업진흥구역에서는 비농업적 용도로 비닐하우스를 사용할 경우 위법에 해당하며, 해당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원상복구 명령 및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본코리아는 “비닐하우스를 원상 복구했으며, 더 이상의 위법 사항은 없다”고 해명했다. 농업 관계자들은 “소상공인이나 개인 농민들은 농지법을 어길 경우 강력한 제재를 받는데, 대기업이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더본코리아의 공식 유튜브 채널서 공개된 영상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왔다. 문제의 영상에서는 직원이 농약 분무기에 넣은 사과주스를 바비큐용 고기에 뿌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이 장면이 공개되자 소비자들은 위생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설마 실제로 농약을 담았던 분무기를 재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본코리아는 공식 입장을 내고 “해당 장비는 농업용이 아니라 식품 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식품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이런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철저히 관리했어야 한다”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식품 기업이 조리 도구를 사용할 때는 위생 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기업의 내부 관리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닐하우스
불법 사용

이와 함께 바비큐 조리에 사용된 그릴이 공사장서 사용되는 철재 자재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비자들은 “전문적인 식재료와 식기 관리가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하며, 외식업체로서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빽다방’서도 식품 안전 논란이 발생했다. 일부 매장서 플라스틱(PET) 용기에 담긴 제품을 전자레인지에 가열해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PET는 높은 온도서 변형될 가능성이 크며 특정 화학물질이 용출될 가능성도 있어, 식품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자레인지 가열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사실은 한 소비자가 SNS를 통해 제보하면서 확산됐다.

한 소비자는 빽다방서 PET 용기에 담긴 ‘크림빵’ 제품을 주문했는데, 직원이 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비자는 해당 장면을 촬영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용기인지 걱정된다. 식품 업체라면 기본적인 안전 기준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용기에서 유해 물질이 나올 수도 있는데,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이렇게 제공하는 게 맞는 거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글이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다른 소비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추가 제보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더본코리아 식품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으며, 소비자들은 “안전 기준조차 모르는 직원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더본코리아 측은 해당 사례가 ‘신입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빽다방에서는 PET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도록 교육한 적이 없으며, 이번 사례는 직원이 실수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국 모든 매장에 해당 내용을 공유하고, 직원 교육을 강화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더본코리아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새마을식당도 ‘직원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내부 직원들의 제보에 따르면, 더본코리아가 특정 직원들의 명단을 공유하며 채용에 제한을 뒀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마을식당 가맹점주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비공개 온라인 카페서 ‘직원 블랙리스트’ 라는 게시판이 운영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게시판은 2022년경 개설됐으며, 점주들 간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위기의 더본, 하다 하다…
원산지 표기법 위반 입건

게시판 운영 방식에 대한 제보에 따르면, 특정 직원이 퇴사한 후 점주들이 해당 직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공유하며 성격, 태도, 업무 능력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새로 채용할 점주들에게 참고 자료로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직원들은 해당 게시판에 기록된 후 더본코리아 계열 매장 재취업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더본코리아가 본사 차원서 직원 관리를 위한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에 더본코리아는 “본사는 블랙리스트를 운영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가맹점주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서 직원 관련 정보를 공유한 것은 맞지만, 본사 차원서 이를 관리하거나 개입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해당 게시판은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점주들에게도 공정한 고용 관행을 준수하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부 가맹점 관계자들은 본사와 무관하다는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본사가 운영하지 않았다면 왜 블랙리스트가 특정 계열 매장에서만 적용됐는지, 점주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것이라지만 본사와 연결된 직원 평가가 공유된 것은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 추가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본코리아는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더본코리아의 기업 이미지도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브랜드들은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백종원을 광고모델서 제외하기 시작했으며, 더본코리아는 주가가 급락했다. 상장 이후 최저가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된 논란에 백종원 대표는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법규를 철저히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상장사로서 주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사적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사과문에 누리꾼들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냐”며 비난을 이었다.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백 대표는 2차 사과문을 발표하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백 대표는 “최근 발생한 논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내부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더본코리아는 고객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보다 나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거듭된 사과문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2차 사과문조차 “형식적인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며 “구체적인 개선책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논란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깊이 반성”
재차 고개 숙여

연이은 논란과 법적 문제, 소비자 신뢰 하락이 겹치면서 더본코리아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때 ‘장사의 신’ ‘골목식당 해결사’로 불렸던 백 대표가 연이은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원산지 문제는 소비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라며, “이 같은 사안으로 기업의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