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임 헌법재판관 정계선·조한창

빨리 도는 탄핵 시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계선 전 남부지법원장과 조한창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업무에 돌입했다. 아직 9인 체제가 완성되진 않았으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심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두 사람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무리 없이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헌법재판소 ‘8인 체제’가 됐다. 헌법재판소법의 ‘7인 이상 심리’ 규정을 충족하게 된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특히 최선임인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이 퇴임하는 오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8인 체제
결판낸다

지난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8인 체제로 선고됐다. 당시 헌재는 “8인의 재판관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탄핵 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8인 체제를 갖춘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제 막 업무를 시작한 조·정 재판관은 지난 2일 헌재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한 뒤 이 사건을 심리 중인 전원재판부에 합류하고, 예정된 재판관 회의에 참여했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을 논의하는 재판관 회의는 매주 1회씩 열리는데, 재판관이 충원된 만큼 주 2회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할 일이 워낙 많아 신임 재판관들도 곧바로 업무에 착수할 것이다. 심리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이달 중순 정식 변론기일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오는 4월 중 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이 재판관이 오는 4월18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 재판관 충원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기에 그전에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접수 63일 만에,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91일 만에 선고된 것을 고려하면 2~3월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판관들도 대부분 “신속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로 합류하는 조 재판관은 후보자 시절, 탄핵 심판 기간에 대해 “신속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면서도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충실하게 심리하는 것이 요구돼, 적정한 심리 기간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탄핵 심판 선고 시기의 가장 큰 변수는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변론 태도다. 윤 대통령은 노·박 전 대통령과 달리 공개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으로 다투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증인 수십명을 신청하고, 송달 절차 등을 문제 삼으면 심판이 지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이 탄핵이 소추된 직후 관련 서류를 수령하지 않자 헌재는 우편으로 보내고 송달된 것으로 간주해 처리했다.

조·정 재판관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등 다른 탄핵 사건 9건에도 투입된다. 헌재에 역대 가장 많은 탄핵 사건(10건)이 몰려있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제외한 기존 재판관 5명은 1인당 1~4건씩 탄핵심판 주심을 맡고 있다.

박근혜 탄핵 때처럼…걸림돌 제거
윤 심리 속도 4월 이전 결론 목표

최근 접수된 탄핵 사건 주심을 새 재판관들에게 재배당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재판관들의 사건 처리 부담을 나누고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조 재판관은 서울 상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8기. 육군 법무관을 거쳐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서 법복을 입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해 상고심 보조 경험이 있고, 사법연수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평택지원장과 두 차례 수석부장으로 발탁돼 사법행정 경험도 있다.

조 재판관은 양승태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을 받았다. 사법 농단은 2011년 9월~2017년 9월 당시 법원행정처가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에 개입하거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등 사법부와 판사의 독립을 침해한 여러 갈래의 사건을 일컫는다.

그는 2015년 5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일하던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직 상실 무효’ 행정소송과 관련해 ‘각하(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갖추지 못해 사건을 종결하는 것)는 부적절하다’는, 일종의 재판 가이드라인이 담긴 문건을 법원행정처 인사로부터 전달받았다.

조 재판관은 문건을 파쇄하면서도 담당 부장판사에게 ‘각하에 대해 법리적으로 검토하는 게 어떻겠냐’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조 재판관에 대해 “헌법 질서 수호가 긴요한 시점서 재판 개입 등에 협력한 반헌법적 이력이 있는 그가 헌법재판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4일 인사청문회서 이 주제는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 재판관의 인사청문회까지 불참한 탓에 청문회는 좌석 절반이 빈 상태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야당 단독으로 진행한 청문회서 첫 질의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사법 농단 의혹부터 꺼내들었다.

조 재판관은 해명을 하려다 “깔끔하게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는 민 의원의 질타를 받고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관련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할 건 사과”
거듭 고개 숙여

그가 또 다른 재판 독립 침해 사건에 연루됐던 사실도 청문회서 언급됐다. 같은 당 김한규 의원은 2008~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태’를 지적했다. 신 전 대법관 재판 개입 사태는 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하고 사건 처리 방향을 제시한 사건을 말한다.

조 재판관은 당시 관련 형사사건을 집중 배당받았던 형사13단독 판사로, 재판 전제가 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이 논란되는 상황 속에서도 지체 없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질의에 나선 김 의원은 “왜 상당수 사건이 본인에게 배당됐다고 생각하는가?” “신 전 대법관이 특별히 부탁하면서 배당했나?” “(윗선의)어떤 부탁이나 압박도 없었는가?”라며 조 재판관을 압박했다. 조 재판관은 당시 재판 관련해 아무런 부탁도, 압박도 받지 않았다며 “제가 부당한 지시에 맞춰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조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12·3 불법 계엄’을 명분으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부정선거와 관련해 대법원에 여러 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 충분히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 재판관은 특히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을 두고 “저희가 생각하는 전쟁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문헌상 나오는 ‘사변’이라는 사태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을 때) 황당한 느낌이었다”며 “그때 상황과 나타난 자막의 내용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부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한덕수(전) 권한대행이 ‘야당이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한 것이 위헌적’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동의하는가”라는 민주당 박희승 의원의 질문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이행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헌재는 2019년 “특검 후보자의 추천권을 누구에게 부여할지는 국회서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결정했다.

조 재판관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헌재서 열린 취임식서 “우리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헌법적 가치는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는 법치주의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영역서 해결돼야 할 다수의 문제가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기관들의 합의를 통해 해결되지 못한 채 사건화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 등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배려와 공감을 기본으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재판관은 1969년 8월2일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서 태어났다. 1987년 충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인권 변호사인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진로 변경을 결심해, 이듬해인 1988년 재수를 통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진학해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시 수석 합격자들은 신문에 크게 인터뷰가 실리던 시절이었다. 정 재판관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법조계가 너무 정치 편향적이다. 검찰의 5·18 관련자 불기소와 미지근한 6공 비자금 문제 처리 등에서 볼 수 있듯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법대로라면 전직 대통령의 불법 행위도 당연히 사법 처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의대·법대
동시 합격

1998년에 사법연수원을 제27기로 수료한 후, 서울지방법원(현 중앙지법)서 예비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서울행정법원,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등 여러 곳에서 일했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연수를 다녀왔다.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2년간 헌법연구관을 지냈고, 법원으로 돌아와 서울고등법원서 1년간 항소심 사건을 다루다가 2013년 지법부장으로 울산지방법원에 전보됐다. 당시 울산지법의 첫 여성 형사합의부장을 맡아 2013년 울산 계모 살인사건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계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전보돼, 여성으로는 최초로 공직비리 뇌물 등 부패사건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7부 재판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맡았던 유명한 재판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이다. 검찰서 징역 20년·벌금 150억원·추징금 111억4131만7383원을 구형했고, 법원에서는 징역 15년·벌금 130억원·추징금 약 82억7000여만원을 판결했다.

판결 배경에 대해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이 전 대통령의 행위는 직무 공정성과 청렴성 훼손에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2019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임 시 비트코인을 재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전자정보로서 재산범죄의 객체가 된다고 처음으로 판단한 판결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과 여성, 아동, 난민, 이주민, 소수자 등 인권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활성화하고, 법원 내·외부의 성평등 의식 확산과 제도 보완, 성범죄 사건 심리 절차 및 판단 방법의 개선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 재판관은 대법원 산하 커뮤니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서 활동했다. 초대 회장인 오경미 대법관에 이어 2023년 후임 회장(2대)으로 뽑혔다.

2023년 3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선애,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유력했으나,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이력 때문에 헌법재판관 추천위서 위원들 간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사법부 양대 최고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포진한 상황서, 특정 출신 독식으로 갈등 해결 기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 재판관은 최종 후보에 들지 못했고, 여성 법관으로는 정정미 판사가 헌법재판관 지명을 받았다.

조, 사법농단 연루 의혹 사과…합리적 평가
정, 법조계 “실력 최고…이제야 날개 달아”

2023년 7월 임기가 만료되는 조재연, 박정화 전 대법관 후임 최종 후보 8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여성 법관으로 신숙희, 박순영 판사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 임기가 끝나는 박정화 대법관이 여성이기도 하고,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대법관을 뽑는 인사기 때문에 사실상 신숙희, 박순영, 정계선 셋 중 하나는 대법관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 거부권 행사 논란 끝에 아무도 지명되지 못했다.

차기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으로 유력했으나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연구회에 몸담고 있었다는 배경으로 최근 연이어 낙마했다. 법원 안팎에선 정 재판관이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판사로 분류되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실력 측면에선 최고의 판사”라며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모습이 강성으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최근 취임사에서 끊임없는 소통과 도움을 언급하며 헌법재판소의 정신을 되새겼다.

정 재판관은 “우리는 지금 격랑 한가운데 떠 있다”며 “연이은 초유의 사태와 사건이 파도처럼 몰려와도 침착하게 중심을 잡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기대어 신속하게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헌재의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며 “헌재 구성원분들이 계셔서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출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받치는 지혜의 한 기둥이자 국민의 신뢰를 받는 든든한 헌법재판소의 한 구성원으로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나아가는 믿음직한 동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최 대행은 및 지난달 31일 국회 추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정계선·조한창)만 임명하고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최 권한대행은 마 후보자에 대해 “여야가 다시 임명에 협의해 달라”고 언급했다.

최 권한대행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반헌법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서 “최 부총리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즉각 임명하라”며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선별적으로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삼권분립 침해이자 위헌 행위”라고 비판했다.

무의미한
정치 성향

최 권한대행이 주장한 ‘여야 협의 요구’는 거짓 논란마저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야가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민주당 2명, 국민의힘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우 의장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절충할 문제가 아니다”며 “국회가 선출한 3인의 헌법재판관 후보는 여야 합의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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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