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법원 독립성·검찰 중립성 논란

정치냐? 사법이냐?

갈수록 정치와 사법이 뒤엉켜 국가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헌법과 법률에서 법원의 독립성과 검찰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법적 판단에 정치가 개입하는 ‘사법의 정치화’, 정치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는 ‘정치의 사법화’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의 희비가 엇갈린 판결로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치권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논쟁이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를 정치화시키려는 정치세력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사법부
정치화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한다면, 사법은 법적 구속력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가린다. 또, 사법부는 대한민국의 정의구현이라는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의롭고 공정한 독립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정치권에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을 앞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경향이 크다. 반면, 사법부는 법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상을 강조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상의 삼권분립 원칙은 입법과 사법의 대등성을 전제로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다.

한국 정치의 굵직한 흐름이 사법부 결정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전직 대통령 대다수가 사법적 문제로 감옥에 가거나 탄핵당했다. 한국 정치에서는 정치와 사법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가 맞는 후보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일이 일상화돼 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는 민주주의의 영역이고, 사법은 법치주의의 영역이다. 양자는 밀접하게 연결돼있지만 각자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가운데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법치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다수결을 앞세운 포퓰리즘으로부터 근본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도 사법도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상호 존중이 사라지고, 여야의 진영 전쟁과 유사한 일이 정치와 사법 사이에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재판을 둘러싼 여야의 법원에 대한 압력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는 사법부다. 어느 시대건, 권력자는 사법부를 권력자의 입맛대로 구성해 마음껏 주무르려 했다. 하지만 앞서 법복을 입었던 대다수 법관은 민주국가에서 법원이 무너지면 독재가 횡행하고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치권과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국회와 법원 뒤엉켜 국가적 혼란
재판 결과 따라 우려하는 목소리

그러나 정치가 본질을 잃고 사법적 판단으로 결정된 사안에 일희일비하는 작금의 현실은 모순적인 정치세력의 후진 정치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치세력은 법을 만들어서, 또는 법을 해석하고 판결하는 법원을 압박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현대 민주주의 체계가 확립된 이후 과거 왕정이나 황제정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압박해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점점 심화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인들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그 결정을 법원에 떠넘기면서 나타나는 문제고,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에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가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사법의 정치화는 매우 위험하다. 사법적 판단은 모두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는다면, 소위 외부의 지령을 받아 판결한다면 그 패악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이 마땅히 합의로 해결해야 할 갈등을 민·형사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현상을 가리키고,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권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며 법원이나 헌재를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려는 현상을 말한다.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기에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또, 일부 정치세력의 소위 ‘법 악용 사태’가 사법을 제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민주’라는 미명의 파쇼적 정치행태가 나타나고 급기야 비극적 독재를 낳게 된다. 결국 사법의 정치화는 공정한 재판을 본질로 하는 사법이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입맛대로
주무르려

공정한 재판은 사법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을 전제한다. 정치화된 사법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법원은 정치인 특히 야권 정치인이 관련된 정치 재판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심리를 지연하거나 판결을 미뤄왔다.

혹여 판결을 선고한다 해도 법 논리에 맞지 않는 판결을 선고하며 국민의 비난을 자초해 왔다.

이는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사법의 정치화’ 행태로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법원 스스로가 떨어뜨리는 자해 행위다. 사법부가 정치의 시녀가 되고 노예가 되는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 양극화의 극단화에 따른 정치의 사법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사법의 정치화 또한 심화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는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친인척, 측근, 참모, 여야 의원들까지 모두 사법적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늘어 최근 들어 정치의 사법화 범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잠재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치와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충성’을 담보하는 대법관을 임명할 동기도 함께 늘어난다. 후보의 중립성이나 전문성보다는 이념적 선명성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듯하다.

잠재적 대법관 후보들 처지에서는 특정 진영에 줄을 서 선명성 경쟁을 벌일 동기가 커진다. 자신이 줄 선 진영의 정부가 들어왔을 때 운이 맞으면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반면 이런 환경에서는 중도를 지향하는 법관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

분명한 건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막중한 사명을 완수하는 길은 헌법과 법률로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것이다. 권력이나 여론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방의 칭찬과 비방에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정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기존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상상을 해야 하고, 서로 다른 세력 간에 합의도 해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하고 타협도 해야 하고 이것이 정치라고 보는데 사법은 결코 그럴 수 없다. 사법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현실을 뛰어넘는 판단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본질 잃고 일희일비 현실
중립성보다 이념적 선명성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정치가 해야 할 고유한 기능을 사법부에 맡기고 판단을 의뢰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설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여와 야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모순적 행태가 문제다.

정치는 많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사법 앞에서는 멈춰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현재 진행 과정에 있어서 올바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직 의원들이 사법부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이제 거의 모든 정치 의제와 사안, 절차와 과정이 사법화 및 검찰화하고 있다. 마치 국정과 국민 의사의 최후 심급으로서 그들의 최종 판정을 받아야만 정치적으로도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심각한 진영 갈등을 초래한 주요 정치·사회·경제·인권·외교 의제와 사안 중 검찰·사법·헌재에 물어보지 않은 것은 드물다.

다수 국민 대표의 결정조차 극소수 수사 검찰과 담당 판사·재판관들의 판정에 합당과 부당, 합법과 불법 여부가 맡겨지고 있다. ​그것은 의회의 의안 통과 과정과 입법 내용부터 정부 정책 결정의 절차와 세부 사항에까지 이른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와 정부, 의회와 정당으로서 중대한 직무 유기이자 궤도 이탈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 대북 송금 특검, 대통령 후보(이명박)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을 계기로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할 때 주목한 정치인들은 없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그 자체가 정치의 사법화였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 원인은 ‘모 아니면 도’ ‘win or nothing’의 대통령제에 있다. 대통령제 시스템은 각 당이 단일대오로 결집하고 상대 당을 와해시켜야 할 동기를 준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지지부진한 대화를 종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깔끔한 대안 같지만, 당사자 모두에게 시간적·정신적·금전적 비용을 남긴다.

사법에서 벗어난 정치, 깎아내리기에서 벗어난 정치를 위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 내각제는 다당제를 촉진하며, 다당제 아래에서는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다른 정당과 연합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연합정부(연정)가 형성되면 권력은 자연스럽게 분산되며, 승자독식서 비롯되는 정치의 사법화 수위를 낮출 수 있다. 내각제를 통해 다당제가 활성화되면, 합의와 협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즉 숙의민주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면이무치(免而無恥). “정책으로 이끌고 형벌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면피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2500년 전 정책과 법률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법가(法家)의 주장에 대한 공자의 비판이다. 법이라는 수단과 장치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 협력을 유도하는 정치 환경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날 누구도 한국 사회를 민주국가로 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별히 삼권분립, 주기적 선거, 복수정당제, 언론 자유가 헌법과 제도상으로 보장되는 한 한국을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국가로 의심한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연정의
필요성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 보면 이 민주공화국이 중대한 파열과 침식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의회정치, 나아가 정치, 더 나아가 국정의 사법화·검찰화·형사화를 말한다.

​민주주의서 사법과 검찰의 독립은 중요하다. 법치의 보루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을 넘어 검찰·사법의 논리가 정치·의회·국정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법은 본시 이중적이다. 근본 출발 원리는 인권 존중, 정의 실현, 법치, 약자 보호, 형평과 저울의 역할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승패 판정, 유죄-무죄, 흑백논리, 합법-불법의 양자택일 지반 위에 움직인다.

둘 다 법의 본질이다. 따라서 다수주의, 다수결과 소수 존중, 대화와 타협을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와는 자주 충돌한다. 법이 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법치를 위한 역할에 그쳐야 하는 이유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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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