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법원 독립성·검찰 중립성 논란

정치냐? 사법이냐?

갈수록 정치와 사법이 뒤엉켜 국가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헌법과 법률에서 법원의 독립성과 검찰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법적 판단에 정치가 개입하는 ‘사법의 정치화’, 정치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는 ‘정치의 사법화’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의 희비가 엇갈린 판결로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치권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논쟁이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를 정치화시키려는 정치세력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사법부
정치화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한다면, 사법은 법적 구속력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가린다. 또, 사법부는 대한민국의 정의구현이라는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의롭고 공정한 독립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정치권에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을 앞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경향이 크다. 반면, 사법부는 법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상을 강조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상의 삼권분립 원칙은 입법과 사법의 대등성을 전제로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다.

한국 정치의 굵직한 흐름이 사법부 결정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전직 대통령 대다수가 사법적 문제로 감옥에 가거나 탄핵당했다. 한국 정치에서는 정치와 사법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가 맞는 후보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일이 일상화돼 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는 민주주의의 영역이고, 사법은 법치주의의 영역이다. 양자는 밀접하게 연결돼있지만 각자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가운데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법치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다수결을 앞세운 포퓰리즘으로부터 근본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도 사법도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상호 존중이 사라지고, 여야의 진영 전쟁과 유사한 일이 정치와 사법 사이에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재판을 둘러싼 여야의 법원에 대한 압력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는 사법부다. 어느 시대건, 권력자는 사법부를 권력자의 입맛대로 구성해 마음껏 주무르려 했다. 하지만 앞서 법복을 입었던 대다수 법관은 민주국가에서 법원이 무너지면 독재가 횡행하고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치권과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국회와 법원 뒤엉켜 국가적 혼란
재판 결과 따라 우려하는 목소리

그러나 정치가 본질을 잃고 사법적 판단으로 결정된 사안에 일희일비하는 작금의 현실은 모순적인 정치세력의 후진 정치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치세력은 법을 만들어서, 또는 법을 해석하고 판결하는 법원을 압박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현대 민주주의 체계가 확립된 이후 과거 왕정이나 황제정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압박해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점점 심화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인들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그 결정을 법원에 떠넘기면서 나타나는 문제고,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에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가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사법의 정치화는 매우 위험하다. 사법적 판단은 모두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는다면, 소위 외부의 지령을 받아 판결한다면 그 패악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이 마땅히 합의로 해결해야 할 갈등을 민·형사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현상을 가리키고,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권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며 법원이나 헌재를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려는 현상을 말한다.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기에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또, 일부 정치세력의 소위 ‘법 악용 사태’가 사법을 제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민주’라는 미명의 파쇼적 정치행태가 나타나고 급기야 비극적 독재를 낳게 된다. 결국 사법의 정치화는 공정한 재판을 본질로 하는 사법이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입맛대로
주무르려

공정한 재판은 사법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을 전제한다. 정치화된 사법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법원은 정치인 특히 야권 정치인이 관련된 정치 재판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심리를 지연하거나 판결을 미뤄왔다.

혹여 판결을 선고한다 해도 법 논리에 맞지 않는 판결을 선고하며 국민의 비난을 자초해 왔다.

이는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사법의 정치화’ 행태로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법원 스스로가 떨어뜨리는 자해 행위다. 사법부가 정치의 시녀가 되고 노예가 되는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 양극화의 극단화에 따른 정치의 사법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사법의 정치화 또한 심화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는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친인척, 측근, 참모, 여야 의원들까지 모두 사법적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늘어 최근 들어 정치의 사법화 범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잠재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치와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충성’을 담보하는 대법관을 임명할 동기도 함께 늘어난다. 후보의 중립성이나 전문성보다는 이념적 선명성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듯하다.

잠재적 대법관 후보들 처지에서는 특정 진영에 줄을 서 선명성 경쟁을 벌일 동기가 커진다. 자신이 줄 선 진영의 정부가 들어왔을 때 운이 맞으면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반면 이런 환경에서는 중도를 지향하는 법관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


분명한 건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막중한 사명을 완수하는 길은 헌법과 법률로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것이다. 권력이나 여론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방의 칭찬과 비방에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정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기존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상상을 해야 하고, 서로 다른 세력 간에 합의도 해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하고 타협도 해야 하고 이것이 정치라고 보는데 사법은 결코 그럴 수 없다. 사법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현실을 뛰어넘는 판단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본질 잃고 일희일비 현실
중립성보다 이념적 선명성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정치가 해야 할 고유한 기능을 사법부에 맡기고 판단을 의뢰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설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여와 야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모순적 행태가 문제다.

정치는 많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사법 앞에서는 멈춰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현재 진행 과정에 있어서 올바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직 의원들이 사법부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이제 거의 모든 정치 의제와 사안, 절차와 과정이 사법화 및 검찰화하고 있다. 마치 국정과 국민 의사의 최후 심급으로서 그들의 최종 판정을 받아야만 정치적으로도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심각한 진영 갈등을 초래한 주요 정치·사회·경제·인권·외교 의제와 사안 중 검찰·사법·헌재에 물어보지 않은 것은 드물다.


다수 국민 대표의 결정조차 극소수 수사 검찰과 담당 판사·재판관들의 판정에 합당과 부당, 합법과 불법 여부가 맡겨지고 있다. ​그것은 의회의 의안 통과 과정과 입법 내용부터 정부 정책 결정의 절차와 세부 사항에까지 이른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와 정부, 의회와 정당으로서 중대한 직무 유기이자 궤도 이탈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 대북 송금 특검, 대통령 후보(이명박)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을 계기로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할 때 주목한 정치인들은 없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그 자체가 정치의 사법화였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 원인은 ‘모 아니면 도’ ‘win or nothing’의 대통령제에 있다. 대통령제 시스템은 각 당이 단일대오로 결집하고 상대 당을 와해시켜야 할 동기를 준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지지부진한 대화를 종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깔끔한 대안 같지만, 당사자 모두에게 시간적·정신적·금전적 비용을 남긴다.

사법에서 벗어난 정치, 깎아내리기에서 벗어난 정치를 위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 내각제는 다당제를 촉진하며, 다당제 아래에서는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다른 정당과 연합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연합정부(연정)가 형성되면 권력은 자연스럽게 분산되며, 승자독식서 비롯되는 정치의 사법화 수위를 낮출 수 있다. 내각제를 통해 다당제가 활성화되면, 합의와 협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즉 숙의민주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면이무치(免而無恥). “정책으로 이끌고 형벌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면피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2500년 전 정책과 법률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법가(法家)의 주장에 대한 공자의 비판이다. 법이라는 수단과 장치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 협력을 유도하는 정치 환경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날 누구도 한국 사회를 민주국가로 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별히 삼권분립, 주기적 선거, 복수정당제, 언론 자유가 헌법과 제도상으로 보장되는 한 한국을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국가로 의심한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연정의
필요성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 보면 이 민주공화국이 중대한 파열과 침식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의회정치, 나아가 정치, 더 나아가 국정의 사법화·검찰화·형사화를 말한다.

​민주주의서 사법과 검찰의 독립은 중요하다. 법치의 보루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을 넘어 검찰·사법의 논리가 정치·의회·국정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법은 본시 이중적이다. 근본 출발 원리는 인권 존중, 정의 실현, 법치, 약자 보호, 형평과 저울의 역할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승패 판정, 유죄-무죄, 흑백논리, 합법-불법의 양자택일 지반 위에 움직인다.

둘 다 법의 본질이다. 따라서 다수주의, 다수결과 소수 존중, 대화와 타협을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와는 자주 충돌한다. 법이 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법치를 위한 역할에 그쳐야 하는 이유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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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