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④도이치 주가조작 사건

이제 빠져나갈 구멍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김건희 여사를 따라다니는 의혹 중 가장 긴 ‘꼬리표’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검찰까지 김 여사의 연루 의혹에 꽁꽁 묶여 있는 상황이다. 특히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김 여사에 대한 향후 사법처분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지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된 이후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김건희 여사의 지위는 검찰총장의 부인서 영부인으로 격상됐다. 사건 관련자는 기소돼 재판장서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치권과 법원의 눈은 당시 사건서 김 여사가 한 ‘역할’에 쏠려 있다. 

지위 격상
의혹 여전

지난달 12일 서울고법 형사5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 격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시세조종 행위를 주도적으로 실행한 혐의를 받는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주가조작을 총괄기획한 ‘주포’ 김모씨, 돈을 댄 ‘전주’ 손모씨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2009~2012년 차명계좌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통정매매 등 시장서 금지된 부정한 수단을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2021년 10월 기소됐다. 이 사건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김 여사가 시세조종에 돈을 대는 전주 역할을 했거나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시기에 거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에 연루돼있어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권 전 회장은 상장회사 최대주주 겸 대표이사 지위에 있지만 책임을 도외시한 채 자기 회사의 시세조종 행위를 도모했다”며 “범행으로 유무형의 이익을 얻었고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도이치모터스의 초기 안정적 성장에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1심보다 늘어난 형량이다.

이 대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4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수사하는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또 재판부는 주포 김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전주’ 손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손씨는 주가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된 방조 혐의가 인정되면서 유죄로 뒤집혔다. 시세조종에 계좌가 동원된 경우를 두고 재판부가 일부지만 유죄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다른 피고인들이 인위적으로 시세를 부양하기 위해 매매 성황 오인·매매 유인 목적으로 시세조종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았던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손씨는 단순히 피고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전주가 아니라 피고인들이 시세조종 행위를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편승했다”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한 뒤 주가 부양에 도움을 주는 등 정범의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뒤집힌 ‘쩐주’ 판결
검찰 처분 영향 미칠 가능성↑

손씨에 대한 판결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의 역할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서  김 여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이들은 권 전 회장 등 9명이다. 이들은 91명의 계좌 157개를 동원해 서로 짜고 주식을 매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세를 조종해 2000원대 후반에 머물던 주가를 8000원대까지 띄웠다는 의혹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손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그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관해 이른바 작전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정범(범죄를 실행한 사람)이 범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직‧간접 행위는 방조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항소심서 공소장 변경을 통해 손씨에게 ‘방조’ 혐의를 추가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손씨의 방조 혐의를 유죄로 보면서 김 여사의 계좌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활용된 계좌 중 3개가 김 여사 명의다. 최근 김 여사가 검찰 조사에서 대신증권 계좌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지 않고 직접 운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계좌는 김 여사 명의 계좌 3개 중 하나다. 

김 여사는 지난 7월 검찰 대면조사에서 주가조작에 연루된 사람들의 지시나 관여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주식을 거래했고, 따라서 서로 짜고치는 통정매매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1‧2심 재판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나온 셈이다. 재판부는 해당 계좌 거래를 통정매매에 이용된 것으로 봤다. 

이 계좌에서는 2010년 11월1일 도이치모터스 주식 8만주를 주당 3300원에 매도하는 주문이 제출돼 체결됐다. 당시 매도 주문은 주가조작 가담자 민모씨와 ‘주포’ 김씨가 문자메시지로 “12시에 3300에 8만개 때려달라 해주셈” “준비시킬게요” “매도하라 하셈”이라는 대화를 주고받은 뒤 7초 만에 제출됐다.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한 녹취록을 토대로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됐다고 판단했다. 

해명에도
의심 커져

반면 김 여사 측은 매도 결정은 김씨 등이 서로 나눈 문자메시지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검찰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누군가의 매도 요청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김 여사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하는 방식으로 주식을 거래했다는 점에서 7초 만에 이를 실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에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서 재판부의 판단과 배치되는 진술이 나온 점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특히 김 여사는 검찰 진술서 ‘2010년 5월 이후로는 계좌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지 않고 직접 주식매매를 결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시기를 특정했다.

이는 공소시효를 염두에 둔 진술로 보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MW 공식 딜러였던 도이치모터스는 2009년 1월 코스닥에 우회상장했다. 상장 당시 9000원에 이르던 주가가 같은 해 3월 2000원대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던 도이치모터스 주가는 2009년 12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2011년 3월에는 7940원까지 올랐다.

주가조작 의심이 제기되면서 2013년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지만 무혐의로 종결됐다. 하지만 2020년 4월 당시 열린민주당 최강욱·황희석·조대진 비례대표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에 김 여사를 주가조작 및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권 전 회장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과정에 김 여사가 전주로 참여했다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10월 이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주가조작 핵심 선수로 꼽히는 이모씨가 검거됐고 권 전 회장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수사가 김 여사의 턱밑까지 겨누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대선 기간 내내 윤 대통령의 ‘리스크’로 작용했다.

검찰과 피고인 사이서 쟁점이 됐던 부분은 공소시효를 결정하는 범행 기간이다. 검찰은 2021년 10월 권 전 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범죄 기간을 2009년 12월23일부터 2012년 12월7일로 적시했다. 이 기간에 있던 5단계의 시세조종 행위를 3년 동안 이어진 ‘하나의 범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해석대로면 10년에 이르는 자본시장법 공소시효는 마지막 범행이 끝나는 시점부터 따져서 2022년 12월7일로 만료된다. 형사소송법에서는 공범 중 1명만 재판에 넘겨져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면 권 전 회장과 공범 혐의를 받는다.

대법원서
가려진다

상황에 따라 김 여사의 죄를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권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은 설령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단계별로 떼어내 범죄 행위를 각각 따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통상 시세조종이 6개월 미만 단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변수가 많은 만큼 3년 동안 시세를 조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피고인 측 주장대로면 1단계(2009년 12월~2010년 9월), 2단계(2010년 9월~2011년 4월), 3단계(2011년 4~10월)에 해당하는 범행의 공소시효는 검찰이 기소한 시점(2021년 10월)에 이미 완료된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1~2단계(2009년 12월~2011년 4월) 시기에 집중돼있다. 

재판부가 범죄 기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김 여사의 공소시효 완료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전체 주가조작 기간 중 1차 작전 시기(2009년 12월23일~2010년 10월20일)와 2차 작전 시기(2010년 10월21일~2012년 12월7일)를 나눠서 판단했다. 두 시기 시세조작 행위를 주도한 ‘주포’가 다르고 범행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시 재판부는 1차 작전 시기는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 판결했고 나머지 2차 작전 시기에 대해서만 유‧무죄 여부를 판단했다. 피고인 측이 주장한 단계별로 보면 1단계 시세조종 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고, 2010~2012년 이뤄진 2~5단계 시세조종은 일부 유죄로 본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권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주가조작 핵심 선수로 꼽혔던 이씨는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처벌을 피했지만 별도 법인인 아리온테크놀로지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2년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또 이종호 대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6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두고 ‘실패한 시세조종’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도이치모터스의 주가 변동이 크지 않고 피고인들이 큰 시세차익을 보지 못했으며 일부는 손해까지 봤다는 것이다.

야권 특검법으로 파상공세
힘 잃어가는 대통령 거부권

재판부는 “시세조종의 동기와 목적은 있었겠지만 시세차익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이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시세조종으로 평가된다”면서 “일반투자자가 손해를 입거나 시장질서에 상당한 정도의 교란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전주 손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과 2심 판결이 일부 엇갈리면서 최종 판단은 대법원서 날 것으로 보인다. 전주 손씨 등 피고인 9명 가운데 일부가 항소심 판결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손씨의 유죄 여부가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앞둔 검찰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 언론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2차 시기 주포 김씨가 김 여사를 ‘BP패밀리’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김씨가 과거 검찰 조사에서 “BP패밀리가 있다”며 “거기에는 권오수(전 회장), 이종호(대표), 김모씨, 김건희씨, 이모씨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진술한 것이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BP패밀리는 이 대표가 운영한 블랙펄인베스트의 약자인 BP를 딴 것으로 추정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과 김 여사가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실이 확인되면 전주에 불과했다는 그동안의 해명은 모두 깨지게 된다. 김 여사 처지에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점차 작아지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방어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마저도 국민 여론 악화에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야권은 말 그대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인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첫머리에 올라와 있다. 민주당은 ‘될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기세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바로 재표결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김건희 리스크’가 ‘윤석열 리스크’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박스권에 갇혀 있다. 국정지지율 20%대가 무너지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패배로 언급되기 시작한 ‘레임덕’ 가능성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언제까지
버틸까

야당의 총공세에 거부권이라는 기름을 끼얹는 순간 정국 자체가 ‘김건희 블랙홀’에 빠질 수도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물론 산적해 있는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내부의 목소리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권 내부 균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김건희 리스크의 도화선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이제 폭발을 앞두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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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속내는 담화문서 깨알같이 발견되는 두 글자로 확인할 수 있다. 꼭꼭 숨기려고 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두 글자 ‘특검’. 과연 그 두 글자가 군을 동원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비상계엄 선포 사유는 ▲야권의 정부 관료 탄핵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제1심 선고 전 대규모 시위(판사 겁박) ▲야권의 검사 탄핵(사법 업무 마비) ▲야권의 특활비 삭감(국가의 본질적 기능 훼손) ▲야권의 민생 예산 삭감(대한민국 국가 재정 농락) 등이다. 모르고? 알면서? 이 사유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국을 ‘범죄자 집단 소굴의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 기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범죄자 집단 소굴로 규정된 야권은 곧바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일컬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에 마무리됐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의 국회 통제에 담을 넘어 진입해 의원들의 긴급 소집을 발동했고, 야권 의원들 및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0시29분 본회의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9분이 지난 3일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약속했다. “야권과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이라는 결말은 이때 이미 예측됐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는 가운데, 의원들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1분 후 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계엄 선포 후 약 2시간35분이 지나 가결된 것이다. 행정부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을 권한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때 사실상 마감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약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통령의 계엄 해제가 있을 때까지 계엄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6분 제2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고, 오전 5시4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약 6시간37분 동안 진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마무리됐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과 공포 해제 의결에 적극 가담한 친한계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군사상 필요·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가 있을 때 한정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사유들이 과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 요건을 떠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선포 당시 열거한 이유로부터 큰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 출범 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22년 12월11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해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23년 2월 이 장관을 탄핵심판으로 넘겼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같은 해 7월25일 만장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야권의 탄핵소추는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어졌고, 직무대행을 맡던 이상인 전 부위원장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이 전 위원장·김 전 위원장·이 전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퇴로 인해 폐기됐다. 사퇴하지 않았던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돼 현재 헌재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이후 윤 대통령과 줄곧 가까웠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당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이 전 부위원장도 BBK 특검보를 지냈고, 윤 대통령은 당시 파견검사였다. 이후엔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탄핵 소추됐다. 손준성·이정섭·강백신·김영철·엄희준·이창수·최재훈·조상원 등 탄핵 소추된 검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근무연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강백신·김영철·조상원 검사는 윤 대통령이 ‘스타’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최순실 특검’에 함께 파견됐다. 손 검사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임 당시 핵심 요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고, 이정섭 검사는 윤 대통령의 대검 중수2과장 재직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다. 엄 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임 중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요직 배치를 요구했다. 이창수 검사는 윤 대통령의 총장 재직 당시 대변인이었고, 최 검사는 정보관리담당관이었다. 이들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는 윤 대통령의 기분을 대변하는 옛 드라마 대사가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한성별곡-정>의 임금은 수도 이전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독살당했다. 독살당하는 순간, 임금은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 나간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에게 그들은 ‘소중한 인재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죽어 나가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특활비 삭감 표면적 이유 자신의 국정운영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민과 야권의 비판은 ‘나를 탓하기에 바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은 세자에게 양위한 후 자신은 수원 화성으로 옮겨 친위부대 장용영을 끼고 한양을 압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금은 “반대하는 신하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라는 자기반성도 잊지 않았다. 측근 탄핵 못지않게 큰 위기감을 느꼈을 사안은 예산안이었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8일 2025년도 검찰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80억9000만원과 특정업무경비(이하 특경비) 506억9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이렇게 성역과 예외와 특혜가 많은 부처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경찰 특활비 약 31억 원 ▲감사원 특활비·특경비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서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특활비는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17년 4월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의 휘하에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1인당 100만원 상당 돈 봉투를 건넨 정황이 밝혀져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돈의 출처는 특활비였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사용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이어 큰 파문이 발생했다. 원래 밀봉해 보관해야 할 특활비 자료 중 사라진 명세들이 다수 확인됐고, 특활비가 기밀수사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확인됐다. 큰 수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이 있었다는 것을 토대로 “포상금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무단 사용한 정황과 별도 계좌·이중 장부가 사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활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 처리에 대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성토했던 것은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삭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삭감 ▲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 삭감 ▲군 간부 처우 개선비 제동 등이었다. 표적은 민주당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서 “역대 정부서 예비비는 1조5000억원 이상 사용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예산안심사소위 위원들도 지난 2일, 아이 돌봄 지원 수당·청년 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해 “여야가 이미 감액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94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1년을 제외하고 약 26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윤 대통령도 특활비가 친숙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담화 중 특활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즉위하기 전엔 많은 땅을 거느린 ‘땅 부자’였다. 그를 즉위시킨 이성계 세력은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정도전은 가족 수에 따라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경기도 내 토지에 한정해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하고, 다른 지역 토지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전법을 주장했다. 두 안 모두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고려의 모든 사전(私田)을 빼앗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고려에선 많은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서 공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져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나눠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땅 하나에 2명 이상의 주인이 각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백성으로부터 반복해서 세금과 소작료를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성계 세력에 반대했던 보수파 이색도 최소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전일주제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수파엔 정예 사병 가별초 2000여명을 거느린 이성계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최영은 위화도회군 이후 축출됐다. 이성계를 견제하던 조민수와 변안열도 위화도회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정도전과 조준은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토지 몰수를 시도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과전법이었다. 과전법이 발표돼 많은 백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공양왕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개인 소유 토지가 모두 몰수됐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유로 특활비 삭감을 내걸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특활비가 삭감돼 민생 치안 공황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혹시 ‘윤석열 검사의 특활비’는 ‘공양왕의 개인 소유 토지’와 비슷한 의미였던 걸까? 고려 멸망 공민왕·공양왕 윤 대통령도 같은 길 걷나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선택을 하게 된 진짜 역린은 두 글자 안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두 글자는 ‘특검’이다. 특검은 딱 1번 언급됐다. 꾹 참고 숨기려다가 참다못해 터져 나왔던 1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야권이 끈질기게 발의했던 특검의 대상자는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다. 이 중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돌아와 오는 10일 재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일, 본회의서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담화 중 언급된 특검은 김건희 특검법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 10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갈무리 사진 1장을 올렸다. 김 여사와의 대화였다. 김 여사는 대화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달라”며 “무식하면 원래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사과드린다”며 “오빠가 이해 안 간다, 지가 뭘 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 ‘오빠’를 두고 “김 여사의 친오빠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명씨는 “내가 김 여사의 친오빠와 토론했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다수설은 여전히 윤 대통령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수설대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한 반복적인 특검법 발의에 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부부의 굳건한 잉꼬 금슬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취임 기념 만찬서 윤 대통령의 샴페인 음주를 눈짓으로 막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과 명씨가 공개한 카톡에 대한 다수설을 조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울러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했던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부의 금슬에 비견할 수 있는 부부로는 고려 공민왕·노국공주 부부가 확인된다. 공민왕은 즉위 후 아내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려를 통치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또 원나라 공주라는 신분을 반대파 압박에 사용했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민왕은 아내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친원파를 숙청했고,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측근 김용의 반란 당시 공민왕을 지킨 사람도 노국공주였다. 그런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에게 국정 일체를 맡기고, 자신은 아내의 영전 공사에 몰두하는 등 기이한 행각을 일삼다가 암살당했다. 윤 대통령의 아내 사랑에 대해선 2개의 반응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14일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국민들 막았다 하지만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14일 <폴리뉴스> 칼럼서 “자식을 사랑했기에 자식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속죄의 기회를 마련해줬던 YS(고 김영삼 대통령)·DJ(고 김대중 대통령)·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의존했던 공민왕은 고려의 문을 닫았다. 반대로 가혹하게 처남들을 숙청했던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 500년 기반을 닦았다. 따뜻한 남편의 길과 훌륭한 대통령의 길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아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분노가 군을 동원한 진짜 이유였을까? 공민왕과 고려의 몰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