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의료 붕괴, 데드라인 10년”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는 ‘본질을 봐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7개월간의 의정 갈등은 이른바 ‘트리거’였을 뿐 의료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암울한 진단과 함께였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벽돌 하나만큼의 공백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년,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남은 시간은 그 정도뿐이다.

지난 2월6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3028명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린다는 내용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했다.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린다는 취지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자체에 반발해 사직 등의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의정 갈등’의 시작이다. 

7개월째
평행선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정부는 법원 판결을 동력 삼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내년도 전국 40대 대학의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된 이후 27년 만이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어든 뒤로는 19년 만이다.

윤석열정부는 초기 발표 때의 2000명에는 못 미쳤지만 이전 정부서 번번이 무산됐던 의대 증원을 이뤄냈다고 자찬했다. 문제는 의료계와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선봉에 섰던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 역시 정부와 학교의 회유책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의료 현장의 주축과 미래 자산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면서 대형병원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글은 누리꾼 사이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응급실에 와도 처치할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니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의료 현장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와 교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일요시사>는 7개월째에 접어든 의정 갈등에 대해 묻기 위해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 교수는 의대 증원이나 전공의 복귀 등 의정 갈등 관련 이슈보다는 ‘의료 붕괴’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의료 붕괴는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이번 의정 갈등은 그 속도를 높이는 이른바 ‘촉매’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의료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방식의 의료체계와 유럽·영국식인 사회주의 방식, 그리고 정부와 의사, 환자의 3각 관계를 설명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방식은 비싸다. 돈이 많은 환자는 질 좋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의료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유럽·영국식 사회주의 방식은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대신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의 장점이 혼합된 형태다. 다시 말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에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어 조 교수는 의사 개인과 의사 집단 전체, 그리고 특정 환자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뒤 환자와 국민·의사와 병원·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서비스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크게 셋으로 분류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3자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올 초부터 의료계 이슈 펑펑
이재명 피습·의대 정원 증원

조 교수가 제시한 대전제를 두고 현재 상황을 바라보면 7개월의 의정 갈등은 오랜 시간 곪아 있던 의료계의 모순점을 수면 위로 올린 ‘트리거(방아쇠)’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조 교수는 이를 ‘레고 블록 쌓기’ ‘성냥 쌓기’ 등으로 표현했다.


한순간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블록과 성냥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이 그 ‘삐끗한 순간’이었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질 높고 신속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전공의다. 수십년간 전공의가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서 쌓여온 모순점이 의대 증원 정책과 동시에 터져 나온 게 현재 상황이다. 전공의는 자신들의 미래에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조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식 의료체계서 의료서비스의 생산자는 의사와 병원, 구매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즉 정부가 된다. 환자와 국민은 국가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배급’받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환자와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동시에 짊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과정서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악마화’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주의식으로 하려면 국민 전체가 사회주의 의료체계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식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을 막 섞어 놓으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방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섞다 보니 엉망이 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현재 의료계 상황을 ‘불난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활 타고 있는 불은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불이 꺼진 후에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불이 난 이유를 파악하고 불이 다시 나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지은 집은 금방 다시 불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희생 위
쌓인 성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의료 붕괴’를 언급했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전공의 이탈 등의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문을 닫는 대학병원이 1~2년 내로 생겨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의료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중반에 건강보험체계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이 (정부로부터)돈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나. ‘보험 환자 못 받겠다’하고 나가떨어지는 거지. 그때가 되면 정말 돈 있는 사람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식 의료체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포함돼있던 공공성이 망가진다고 보면 된다.”

조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식 의료체계는 경제 수준이 중간 정도인 중산층에 타격을 입힌다. 빈곤층은 정부의 우산 아래 있고 상류층은 돈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값비싼 의료서비스에 좌절하듯 우리나라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의료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에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과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을 뿐 이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는 주장이다. 촉매의 역할이 반응속도의 변화듯,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환자, 그리고 의사가 모두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환자는 의정 갈등서 피해자 포지션으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상황에 환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진료권을 벗어나 경증이어도 빅5 병원으로 향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없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이 대표의 피습사건 때 의료계는 분노했지만 국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점을 언급했다. 당시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을 시찰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한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뒤 수술을 받았다.

전원 과정, 닥터 헬기 이용 등을 두고 의사회는 성명을 내는 등 비판을 제기했다.

지방 의료를 살리자던 야당의 대표가 닥터 헬기까지 이용해 부산서 서울로 이동한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교수는 “이 대표 사건은 문제를 표면화시켰을 뿐 이미 지방의 환자는 모두 KTX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약이
무효하다

필수 의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오랜 시간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해 온 환자는 현 상황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고 정부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료 수가를 조정하지 못하면서 ‘기피과’가 생겼다. 또 비급여 등의 항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비필수 의료 쪽으로 빠졌다. 

조 교수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건을 거론했다. 지난달 22일 김 전 위원장은 오른쪽 이마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새벽에 잘못하다 넘어져 이마가 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에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응급실서 이마 약 8㎝를 꿰맸다. 

조 교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에 널리고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찢어진 이마 상처를 꿰매줄 성형외과는 없다. 비필수 의료를 하는 성형외과는 많지만 필수 의료를 해줄 성형외과는 없는 상황이다. 의사를 늘린다고 필수 의료가 살아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본질은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돈을 쫓는 것을 굉장히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덜 힘들고 돈을 더 버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의사에게만 더 힘들고 덜 버는 삶을 살라고 강요할 순 없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어떤 형태든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빈약한 철학·마구잡이식 체계
정부·환자·의사 서로 포기해야

조 교수는 의대 정원 역시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배치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작정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를 할 수 있게 정부와 환자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왕’ ‘환자가 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환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후자 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그 대신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환자에 한해 진료권역을 지키도록 제한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조 교수는 환자와 정부, 의사의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당초 의료체계를 만들 때 부족했던 철학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외국서 의료체계를 베껴 올 때 그 철학을 외면하고 가져오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섞이고 빠지고 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고 한탄했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여론에 휩쓸려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손님은 왕이에요’라는 말만 했지 ‘갑질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상황에 대한 암울한 진단도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 복귀 문제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 내년 3월에 인턴 자체가 안 들어올 것이고 레지던트는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불투명하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인력 문제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갑갑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응급의학과뿐만 아니라 각 과 교수들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 특히 응급실은 병원서 보던 환자가 아니면 안 본다든지, 온갖 사유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악화되면 대학병원의 진료 능력 자체가 악화될 것이다. 그나마 내년 3월이 레지던트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때 수급이 안 되면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이날 인터뷰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철학과 기본 개념이 부족한 상황서 생각나는 대로 지은 집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도 했다. 그나마도 현재 불타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3월
고비될까

“각 나라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고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먼저 정한 뒤 각자가 포기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환자와 의사, 그리고 정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 짜 맞춰가야 한다. 하지만 3자 모두 그걸 이해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타깝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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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