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의료 대란 막전막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26 11:33:26
  • 호수 1468호
  • 댓글 0개

정부는 의사 버렸고 의사는 환자 버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는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로, 의사가 지켜야 하는 윤리를 말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이 선서를 낭독하고 의사가 되지만, 이를 기억하는 의사는 사라졌고, 갈 곳 잃은 환자만 남았다. 

지난 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서 19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풀고, 2025년까지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까지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되어, 2035년까지 최대 1만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강
피해는… 

이날 조 장관은 “2006년부터 19년 동안 묶여있던 의대 정원도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이룩한 우리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10월26일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 역량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는 등 현장 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

또 의사들이 지역과 필수 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민생토론회서 ▲의료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지금이 의료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다양한 분야서의 개혁 과제를 발굴해 정진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정부와 새로운 의료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고 그 여파로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7813명이 병원을 떠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8816명에 달했다.

그 결과 병원이 마비됐다. 그 여파로 피해를 받는 것은 국민이다. 응급환자가 아니면 아무리 중증환자라도 병원에 갈 수 없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병원서 응급환자가 아니라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집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응급 이송돼 뇌출혈 증상 진단을 받고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간 대학병원은 A씨에게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기기가 없다. 다른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급한 마음으로 또 다른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병원은 A씨에게 “응급환자가 아니라서 치료 날짜를 바로 잡지 못한다. 집에서 기다리면 연락을 주겠다”고 전했다.

뇌 손상은 빨리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A씨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다. A씨 가족이 “‘입원해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병원 측은 ‘수술 환자가 아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80세 B씨는 지난 7일 전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B씨가 이송된 지역 2차 병원 측은 그가 나이가 많은 데다 후두암, 심근경색 등의 기저질환이 있어 3차 병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19년 만에 2000명 증원한다고…
줄줄이 사직서 던지는 전공의들

이후 B씨의 딸이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서울대·한양대·경희대 등 대학병원에 문의했으나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딸은 요양병원까지 알아봤으나, 수술이 끝난 후 뼈가 붙은 상태의 환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B씨 가족이 찾은 병원은 군 병원이다. B씨는 “오늘 아침에 TV 뉴스를 보는데, 군 병원이 환자를 받는다고 해서 (수도병원에)전화했다. 수도병원에선 ‘알아보겠다’고 말하더니 곧 ‘바로 오라’고 전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B씨 딸은 “그 전에 통화한 대학병원에선 아버지가 연세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어 수술이 어렵다고만 말했는데, 여기선 만나자마자 ‘무조건 수술하겠다’고 말해주니 안도감이 들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고 밝혔다.

혈액암을 앓는 두 살된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C씨는 “당장 수술이나 치료가 밀린 건 없다. 그런데 의료 파업이 몇 주 동안 지속하면 수술이나 치료가 지체될까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과 난치 질환자들은 치료 기간이 밀리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 항암 치료에는 순서가 있는데 치료가 늦어지면 전이 위험도 있고,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문의 등 전공의 외 다른 의사들은 업무시간을 최대한 조정해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며 “실제 사직서를 낸 인원과 업무를 중단하는 인원의 수가 다를 가능성도 있기에 상황을 보고 세부 대응 방침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소속 한 교수는 “지난 13일만 해도 이런 파업 얘기는 전혀 몰랐다. 환자들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전혀 아닌데 급작스레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 전공의 없이 가능한 수술을 수행하고 인력, 일정 등을 조율하면서 다들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대표들이 모여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총회에는 박단 대전협 회장을 포함해 150여명의 전공의가 참석했다. 각 병원 전공의 대표뿐만 아니라 일반 전공의 10여명도 모니터링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학병원
사실상 스톱

대전협은 의협 대강당 벽면에 “의대 정원 졸속 확대 의료체계 붕괴한다” “비과학적 수요조사 즉각 폐기” 등 윤석열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걸려 있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진료 유지 명령’을 전격 발동했다. 현재의 의료행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상황이 악화하면 의원급 재진만 허용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를 일시적으로 전면 허용하고, 공공병원도 일반환자들에게 개방하는 의료공백 장기화 대책까지 꺼내 들었다.


이는 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에 대응하면서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또 2000명 증원 방침에 타협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등에 법적 대응을 경고한 상황서 이날 경찰청이 사태 주도자에 대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 일각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데 대해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의 관점서 국방이나 치안과 다름없이 위중한 문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같은 발언은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으로부터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돌입 등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나왔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져도 2~3주가량은 해당 병원 소속 교수나 전임의, 입원이나 중환자실 전담의 등 전공의 외 인력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 기간이 지나면 의료진 피로도 증가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군의관이나 공보의 등을 전격 투입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과 관련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하게 다스린다는 방침을 여러 번 재확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경찰 출석에 불응하는 의료인에게는 체포영장, 주동자는 검찰과 협의를 통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관련한 수사는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윤 청장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고발장이 접수되는 그날 즉시 문자메시지나 등기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낼 것”이라며 “출석 일자도 2~3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출석하지 않으면 소재 수사를 포함해 제대로 출석요구서가 전달됐는지, 출석 의사가 없는지 확인하겠다”며 “불출석 의사가 확인되면 이른 시일 안에 체포영장을 신청하겠다.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은 그보다 강한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나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고 있는 것일까? 바로 간호사다.

지난 20일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진료 중단으로 생긴 의료공백을 간호사에게 메우게 하는 등 ‘불법 의료’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해 불법 의료를 조장하고 있고,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 시간 변경동의서를 받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전가된 책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안고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고,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 인력에 연차 사용을 권하는 등 긴급한 스케줄 조정까지 종용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7월 부산대병원 의사들이 간호사들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던 대자보가 재조명받고 있다. 부산대학교 병원에는 ‘부산대학교병원의 동료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원내 곳곳에 붙이며 간호사의 복귀를 촉구했던 바 있다.

간호사들이 주축인 전국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선언하고, 부산대병원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며 파업을 벌일 때였다. 당시 대자보에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함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수많은 환자분이 수술, 시술 및 항암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우리 부산대학교 병원은 동남권 환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선천성 기형, 암, 희소 질환 등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받으시는 분들의 희망이다. 하루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진료와 치료를 간절하게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갈 데까지 가 버린 파업 사태
치료도 못 받고 ‘발만 동동’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 같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꼴’ ‘의사라면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외국에선 의대 정원 확대를 해도 조용하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파업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4만3000여명 가량 의사를 증원해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의사들의 반발은 없다. 우선 우리와는 다르게 ‘지역 정원제’를 실시한다. 지역 정원제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지역 의대에 진학하고, 해당 지역의료기관서 의무적으로 9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지역 정원제와 관련한 일반 의사들의 불만도 없다. 지역 정원제를 일반 의사와는 다른 트랙으로 선발하고 입학 합격점도 더 낮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 보조금 삭감 등의 패널티를 발 빠르게 부여한다.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을 연 5000명씩 늘리기로 했다. 이에 독일 최대 의사 노동조합 ‘마부르크분트’는 오히려 의대 정원 증가를 위해 정부가 당장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은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과와 관계없이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치료비 적용을 받는 과(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그렇지 않은 과(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나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개원의도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30대 중반 전문의가 받는 연봉 수준을 공개하면서 의료 대란 해결책에 대해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된다”고 제안했다.

누가 이기나
결국은 ‘돈’

김 교수는 “2019년에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월급 의사 연봉이 최근에 3억~4억원까지 올랐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서 전공의들이 8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은 PA라는 간호사 위주의 진료 보조 인력만 2만명이다.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