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의료 대란 막전막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26 11:33:26
  • 호수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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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사 버렸고 의사는 환자 버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는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로, 의사가 지켜야 하는 윤리를 말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이 선서를 낭독하고 의사가 되지만, 이를 기억하는 의사는 사라졌고, 갈 곳 잃은 환자만 남았다. 

지난 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서 19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풀고, 2025년까지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까지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되어, 2035년까지 최대 1만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강
피해는… 

이날 조 장관은 “2006년부터 19년 동안 묶여있던 의대 정원도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이룩한 우리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10월26일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 역량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는 등 현장 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

또 의사들이 지역과 필수 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민생토론회서 ▲의료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지금이 의료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다양한 분야서의 개혁 과제를 발굴해 정진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정부와 새로운 의료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고 그 여파로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7813명이 병원을 떠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8816명에 달했다.

그 결과 병원이 마비됐다. 그 여파로 피해를 받는 것은 국민이다. 응급환자가 아니면 아무리 중증환자라도 병원에 갈 수 없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병원서 응급환자가 아니라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집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응급 이송돼 뇌출혈 증상 진단을 받고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간 대학병원은 A씨에게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기기가 없다. 다른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급한 마음으로 또 다른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병원은 A씨에게 “응급환자가 아니라서 치료 날짜를 바로 잡지 못한다. 집에서 기다리면 연락을 주겠다”고 전했다.

뇌 손상은 빨리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A씨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다. A씨 가족이 “‘입원해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병원 측은 ‘수술 환자가 아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80세 B씨는 지난 7일 전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B씨가 이송된 지역 2차 병원 측은 그가 나이가 많은 데다 후두암, 심근경색 등의 기저질환이 있어 3차 병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19년 만에 2000명 증원한다고…
줄줄이 사직서 던지는 전공의들

이후 B씨의 딸이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서울대·한양대·경희대 등 대학병원에 문의했으나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딸은 요양병원까지 알아봤으나, 수술이 끝난 후 뼈가 붙은 상태의 환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B씨 가족이 찾은 병원은 군 병원이다. B씨는 “오늘 아침에 TV 뉴스를 보는데, 군 병원이 환자를 받는다고 해서 (수도병원에)전화했다. 수도병원에선 ‘알아보겠다’고 말하더니 곧 ‘바로 오라’고 전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B씨 딸은 “그 전에 통화한 대학병원에선 아버지가 연세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어 수술이 어렵다고만 말했는데, 여기선 만나자마자 ‘무조건 수술하겠다’고 말해주니 안도감이 들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고 밝혔다.

혈액암을 앓는 두 살된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C씨는 “당장 수술이나 치료가 밀린 건 없다. 그런데 의료 파업이 몇 주 동안 지속하면 수술이나 치료가 지체될까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과 난치 질환자들은 치료 기간이 밀리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 항암 치료에는 순서가 있는데 치료가 늦어지면 전이 위험도 있고,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문의 등 전공의 외 다른 의사들은 업무시간을 최대한 조정해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며 “실제 사직서를 낸 인원과 업무를 중단하는 인원의 수가 다를 가능성도 있기에 상황을 보고 세부 대응 방침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소속 한 교수는 “지난 13일만 해도 이런 파업 얘기는 전혀 몰랐다. 환자들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전혀 아닌데 급작스레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 전공의 없이 가능한 수술을 수행하고 인력, 일정 등을 조율하면서 다들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대표들이 모여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총회에는 박단 대전협 회장을 포함해 150여명의 전공의가 참석했다. 각 병원 전공의 대표뿐만 아니라 일반 전공의 10여명도 모니터링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학병원
사실상 스톱

대전협은 의협 대강당 벽면에 “의대 정원 졸속 확대 의료체계 붕괴한다” “비과학적 수요조사 즉각 폐기” 등 윤석열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걸려 있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진료 유지 명령’을 전격 발동했다. 현재의 의료행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상황이 악화하면 의원급 재진만 허용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를 일시적으로 전면 허용하고, 공공병원도 일반환자들에게 개방하는 의료공백 장기화 대책까지 꺼내 들었다.

이는 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에 대응하면서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또 2000명 증원 방침에 타협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등에 법적 대응을 경고한 상황서 이날 경찰청이 사태 주도자에 대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 일각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데 대해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의 관점서 국방이나 치안과 다름없이 위중한 문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같은 발언은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으로부터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돌입 등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나왔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져도 2~3주가량은 해당 병원 소속 교수나 전임의, 입원이나 중환자실 전담의 등 전공의 외 인력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 기간이 지나면 의료진 피로도 증가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군의관이나 공보의 등을 전격 투입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과 관련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하게 다스린다는 방침을 여러 번 재확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경찰 출석에 불응하는 의료인에게는 체포영장, 주동자는 검찰과 협의를 통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관련한 수사는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윤 청장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고발장이 접수되는 그날 즉시 문자메시지나 등기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낼 것”이라며 “출석 일자도 2~3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출석하지 않으면 소재 수사를 포함해 제대로 출석요구서가 전달됐는지, 출석 의사가 없는지 확인하겠다”며 “불출석 의사가 확인되면 이른 시일 안에 체포영장을 신청하겠다.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은 그보다 강한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나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고 있는 것일까? 바로 간호사다.

지난 20일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진료 중단으로 생긴 의료공백을 간호사에게 메우게 하는 등 ‘불법 의료’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해 불법 의료를 조장하고 있고,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 시간 변경동의서를 받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전가된 책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안고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고,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 인력에 연차 사용을 권하는 등 긴급한 스케줄 조정까지 종용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7월 부산대병원 의사들이 간호사들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던 대자보가 재조명받고 있다. 부산대학교 병원에는 ‘부산대학교병원의 동료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원내 곳곳에 붙이며 간호사의 복귀를 촉구했던 바 있다.

간호사들이 주축인 전국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선언하고, 부산대병원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며 파업을 벌일 때였다. 당시 대자보에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함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수많은 환자분이 수술, 시술 및 항암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우리 부산대학교 병원은 동남권 환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선천성 기형, 암, 희소 질환 등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받으시는 분들의 희망이다. 하루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진료와 치료를 간절하게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갈 데까지 가 버린 파업 사태
치료도 못 받고 ‘발만 동동’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 같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꼴’ ‘의사라면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외국에선 의대 정원 확대를 해도 조용하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파업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4만3000여명 가량 의사를 증원해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의사들의 반발은 없다. 우선 우리와는 다르게 ‘지역 정원제’를 실시한다. 지역 정원제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지역 의대에 진학하고, 해당 지역의료기관서 의무적으로 9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지역 정원제와 관련한 일반 의사들의 불만도 없다. 지역 정원제를 일반 의사와는 다른 트랙으로 선발하고 입학 합격점도 더 낮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 보조금 삭감 등의 패널티를 발 빠르게 부여한다.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을 연 5000명씩 늘리기로 했다. 이에 독일 최대 의사 노동조합 ‘마부르크분트’는 오히려 의대 정원 증가를 위해 정부가 당장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은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과와 관계없이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치료비 적용을 받는 과(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그렇지 않은 과(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나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개원의도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30대 중반 전문의가 받는 연봉 수준을 공개하면서 의료 대란 해결책에 대해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된다”고 제안했다.

누가 이기나
결국은 ‘돈’

김 교수는 “2019년에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월급 의사 연봉이 최근에 3억~4억원까지 올랐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서 전공의들이 8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은 PA라는 간호사 위주의 진료 보조 인력만 2만명이다.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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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