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윤석열의 남자’ 심우정

‘배신의 칼’ 넣고 ‘충성의 칼’ 빼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심우정 법무부 차관이 지명되면서 내달 3일 열리는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검사 임관 전의 과거 음주 운전을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수통 후보들 대신 기획통인 심 후보자를 선택한 가운데 검찰에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가 검사로 임관하기 전 음주 운전 사실이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국회에 제출된 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심 후보자는 사법연수원생 신분이던 지난 1995년 5월 음주 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같은 해 8월 서울중앙지법원서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며 그대로 확정됐다. 

면허정지?
벌금 70만원

당시 벌금 수준으로 볼 때 심 후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2019년 개정되기 전 도로교통법은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 0.1% 미만일 때 6개월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심 후보자는 같은 해 12월2일 김영삼 대통령이 ‘일반 사면령’을 공포하면서 도로교통법 위반죄를 사면받았고, 이후 2000년 검사로 임관했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국회 동의를 얻어 1995년 8월10일 이전에 도로교통법 위반 등 35개의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일반 사면령’을 내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통해 “검사 임관 이전인 약 30년 전에 음주 운전으로 적발됐다가 일반사면을 받은 사실이 있다”며 “비록 일반사면을 받았고 검사 임관 이전의 일이긴 하지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 이후 지금까지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공직자로서 처신에 더욱 주의하겠다”고 사과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심 후보자는 본인과 배우자, 자녀 명의의 재산으로 총 108억8800만원을 신고했는데, 대부분 배우자 몫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 자료에 따르면, 심 후보자 본인 명의의 재산은 14억2200만원이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아파트(177.15㎡) 절반(10억3000만원)과 2017년식 제네시스 G80 승용차(예금 3억6300만원), 증권(420만원) 등이다. 

배우자 명의의 재산은 92억7928만원이다. 배우자는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지분 나머지 50%를 비롯해 부산, 대전, 경남 거창 등지에 약 23억원 규모의 토지와 건물, 상가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금 32억1106만원과 증권 26억3723만원, 2017년식 제네시스 G80 승용차, 4600만원 상당의 골프 회원권도 재산으로 신고했다. 배우자는 부동산 재산 중 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친 고 김충경 동아연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았다. 

윤,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특수통 대신 기획통 선택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심 후보자의 딸은 5582만원, 대학생인 아들은 1억2343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들이 보유한 재산은 대부분 애플·엔비디아·AMD 등 해외 등 해외 기업 주식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3일, 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서를 채택해 내달 3일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계획이다. 김건희 여사 수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등 야권 수사가 청문회의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 카카오그룹과 관련한 이해충돌이 쟁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심 후보자는 검찰총장에 취임하면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 기소된 카카오그룹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사건 공소 유지를 총괄하게 된다.

심 후보자의 동생인 심우찬 변호사가 지난 5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 책임경영위원회에 영입돼 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도 법조계에선 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명이 확정되면 이 총장의 임기 종료 이튿날인 다음 달 16일부터 총장 직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신임 총장의 임기는 오는 2026년 9월까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차기 검찰총장에 심우정 법무부 차관을 지명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서 윤 대통령이 박성재 법무부 장관 제청을 받고 새 검찰총장 후보로 심우정 법무부 차관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심 후보자는 법무검찰 주요 분야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며 “합리적 리더십으로 구성원의 신망이 두텁고 형사 절차 및 제도에 넓은 식견, 법치주의 확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향후 안정적으로 검찰 조직을 이끌고 법치주의, 헌법 수호, 국민 보호 등 검찰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문회
쟁점은?

심 후보자는 검찰 내부서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꼽힌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평가다. 

그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법무부 형사기획과장·검찰과장, 대검 과학수사기획관,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대검 차장검사 등 검찰을 지휘·감독하거나 법무 정책을 수립하고 대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보직을 주로 맡았다. 

특수통·공안통 검사가 주로 맡는 검찰총장으로 기획통을 발탁한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한상대 전 총장 이후 13년 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수통 출신들이 개별 사건에 집중해 파고든다면 기획통은 통상 검찰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국회와 법원 등 다양한 외부 기관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야권 등 정치권 공세에 검찰조직이 동요하는 상황서 법무부 소속으로 국회 대응 경험이 많은 심 후보자가 나머지 후보 중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려운 수사를 풀어내고 관리하는 데도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총장보다 기수가 높은 심 후보자가 검찰총장으로 지명되면서, 검찰조직은 당분간 큰 인사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에는 그동안 신임 총장이 임명되면 선배와 동기들이 그만두는 관례가 있어 왔다. 

하지만 심 후보자의 경우 동기인 임관혁 서울고검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후배들이어서 고위직 줄사퇴와 이에 따른 대규모 인사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또 검찰조직 운영 방향도 안정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특히 지난 5월 검찰 고위직 인사와 김 여사 수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출됐던 대통령실과 대검, 서울중앙지검 간 불협화음을 수습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심 후보자가 지명된 것은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 여사의 조사 방식을 두고 이 총장과 수사를 맡은 중앙지검이 갈등을 빚은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여사 수사팀에 속한 검사가 대검찰청의 이른바 ‘총장 패싱’ 진상 파악에 반발해 사표를 내는 등 검찰 내 갈등이 컸던 만큼 심 후보자는 조직을 추슬러야 하는 과제를 맡게 됐다.

심 후보자는 야권의 검사 탄핵과 검찰청 폐지 추진 등 공세에 대응하는 책무도 맡아야 한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검찰개혁 법안을 추진하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엔 검찰이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수사 과정서 3000여명의 통신 내역을 조회한 것을 두고 ‘사찰’로 규정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낙점한 이유
두터운 신망

심 후보자는 지난 11일 “검찰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명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앞에서 검찰총장 후보 지명자 소감 발표를 통해 “엄중한 시기에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심 후보자는 야권서 추진 중인 검사 탄핵에 대해 “검찰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검찰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검사 탄핵은 검찰이 제대로 일을 못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잘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현직 영부인들에 대한 수사 원칙에 대해 “증거와 법리를 따라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렇게 되도록 구성원을 잘 이끌겠다”고 답했다. 

이어 이원석 검찰총장이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에 ‘특혜도 성역이 없다’고 발언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의에는 “어떠한 수사에 있어서도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며 “저도 똑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검찰 구성원들이 앞으로 그런 믿음을 갖고 당당히 본인들의 일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이튿날엔 “검찰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돼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 역할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심 후보자는 이날 오후 서울고등검찰청에 꾸려진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첫 출근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우려가 있다’는 질의에 “공직자는 각자의 자리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와 해결 방안을 묻는 말에는 “결국 검찰 구성원 개개인이 사명감을 갖고 검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취임한다면)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임관 전 음주운전 적발…일반 사면
카카오 수사 이해충돌 부상 가능성

그는 첫 출근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막중한 책임감 느끼고 있고 또 국민 여러분께서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오늘 첫 출근인 만큼 앞으로 성실하게 청문회 준비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복권, 김건희 여사 수사와 관련한 검찰 내 갈등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건이 진행 중인데 공직 후보자로서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총장으로 취임하게 되면 그때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심 후보자는 전날 비슷한 취지의 질문에 대해 “검찰 구성원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바 있다. 

심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첫 출근하면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전무곤 기획조정부장을 단장으로 대검찰청 인력 중심으로 구성된다. 

총괄팀장은 장준호 대검 정책기획과장, 청문지원팀장은 김남훈 서울중앙지검 인권보호부장, 정책팀장은 문현철 대검 인권정책관, 홍보팀장은 이응철 대검 대변인이 맡는다.

심 후보자는 1971년 충남 공주서 태어나 서울 휘문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충남도지사 등을 지낸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아들이기도 하다. 충청 출신 검찰총장은 참여정부 때인 지난 2002년 충남 보령 출신 김각영 전 총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난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심 후보자는 200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해 춘천지검 강릉지청 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법무부 검찰과 검사, 대전지검 부부장검사, 주LA 총영사관 법무협력관을 지내며 수사·기획 경험을 쌓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지낸 뒤 2019년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임명,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을 보좌하는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서울동부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검 차장검사를 거쳐 지난 1월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지난 2017년 형사1부장으로 손발을 맞췄던 인연이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이었던 당시 국정 농단 방조 의혹을 받았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진경준 전 검사장의 주식 특혜 의혹을 수사하기도 했다. 

심 후보자는 박 장관뿐만 아니라 김주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도 근무한 인연이 있다. 지난 2014년 1월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김 수석을 보좌했다. 

이후 2015년 2월부터 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재직했는데, 당시 중앙지검장이 박 장관이었다. 심 후보자는 이 총장보다 한 기수 선배임에도 대검 차장으로 총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울러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후임 인선 과정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돼 장관 직무대행도 했다.

복잡한 형국
산적한 난제

지난 2018년 10월 신설된 ‘검사 선서’ 제정에 실무자로 참여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심 후보자는 검찰 조직 내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어수선한 검찰조직을 재정비해 조기 안정화를 구축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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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