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6선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추 의원은 최다선자를 우대하는 국회 관행상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였다. 많은 여론조사나 전문가들도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추미애를 꼽았다.
그런데 결과는 5선의 같은 당 우원식 의원이 승리하면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민주당 당원들은 실망하고 심하게 비토까지 했다. 일부 권리당원들은 의원들이 당원의 뜻을 무시한 결과라며 탈당까지 했다.
언론도 우 의원의 선전보단 추 의원이 패한 상황을 분석해 연일 보도했다.
추 의원은 “지지해주신 국민의 열망, 당원의 기대에 못 미쳐 송구하다”며 결과에 승복했다. 그러나 권리당원들의 주장이나 언론의 보도에 대해선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필자는 2018년 1월 호주오픈 16강전서 한국의 테니스 선수 정현에게 패한 후, 호주 모 방송에 나와 두 번의 인터뷰를 했던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2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취재진이 조코비치에게 팔꿈치 부상에 대해 묻자, “오늘 내 부상에 대해 애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정현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호주 언론은 조코비치가 한국의 신인 정현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조코비치가 고질적인 통증이 있던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유증 때문에 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조코비치는 자청해서 재 인터뷰를 요구했고, 두 번째 인터뷰서 “나는 경기에 나갈 땐 최상의 몸을 만들고 나가기 때문에, 언론서 팔꿈치 부상으로 졌다는 말은 옳지 않다”며 화난 표정으로 보도 내용을 반박했다.
이후 조코비치는 메이저 3개 대회서 연속 우승하면서 21주 동안(세계랭킹 발표 기준)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는 영광을 누렸고, 2020년대 이후 ‘황제’ 로저 페더러와 ‘흙신’ 라파엘 나달을 넘어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두 번째 인터뷰서 조코비치가 정현에게 패한 것보다 몸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경기에 임하는 ‘준비가 덜 된’ 조코비치로 평가받는 것을 훨씬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코비치가 경기서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위해 최고의 컨디션과 최고의 체력을 만드는 게 선수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인터뷰를 했을 것이다.
만약 조코비치가 호주오픈 16강전서 정현에게 패한 후 “팔꿈치 수술 때문에 패했다”는 멘트로 인터뷰에 응했다면, 조코비치는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추 의원도 조코비치처럼 불리한 상황 때문에 국회의장 후보 경선서 졌다고 말하는 당원들이나 언론에 대해 “저는 모든 선거에 철저히 준비하고 나가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핑계삼지 않는다”고 말하고, “상대인 우 의원의 승리를 깎아내리면 안 된다”고 언급해야 했다.
조코비치도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서 졌고, 추 의원도 무조건 이길 줄로 알았던 경선서 졌지만, 패배 이후 둘의 대응은 너무도 달랐다.
특히 추 의원은 민주당의 큰 자산이고 향후 민주당을 이끌어갈 역량이 충분한 의원이기에 국회의장 후보 경선 패배 이후 대응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조코비치처럼 우리도 누군가와 경쟁을 할 때, 승패보다 철저히 분석하고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둬야 한다.
또 만약 지더라도 상대의 성공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은 값진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언행도 삼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조코비치가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 교훈이다.
3주 앞으로 다가온 국민의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한동훈·원희룡·나경원·윤상현 4파전으로 전개되면서 이들의 경쟁이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재까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당선이 유력한 분위기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듯이, “한동훈 후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게 일부 언론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전 비대위원장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조코비치의 교훈처럼 어떤 상황이나 이유를 불문하고 당 대표 선거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또 선거서 승리할 경우, 겸손하게 임무를 수행하면 되고 패하더라도 진 이유에 대해 핑계대지 않고 특히 상대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
경기서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패했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서 이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는 선수는 다음 경기서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승패보다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더 중시해야 한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2027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조코비치 정신으로 무장해야 대선후보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추 의원 대세론으로 치러진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서 이변이 일어났듯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