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44명’ 밀양 성폭행 사건 재조명

그래 놓고 잘 살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년 전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사기관의 재수사나 피해자의 호소가 아닌 제3자의 목소리가 사건을 대중 앞으로 끌어냈다. 사건의 파괴력 때문일까? 이 사건은 이미 몇 차례나 회자되길 반복했다. 대중은 왜 이 사건을 놓지 못하는 걸까?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하 밀양 사건)을 둘러싸고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졌다. 법적 처분이 완료된 상태인 사건에 유튜버 등이 개입하면서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정식 절차를 밟은 게 아닌 폭로 형식으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이다. 

법은 멀고

20년 전 경남 밀양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12월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다. 가해자의 숫자와 이후 피해자에게 벌어진 일 등이 알려지면서 밀양 사건은 지속적으로 회자됐다.

최근 몇몇 유튜버가 경쟁적으로 밀양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유튜버가 영상을 게재하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누리꾼은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면서도 유튜버의 폭로에 전반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건 당시 수사기관, 밀양 주민의 태도가 꼽힌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가해자 가운데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44명 가운데 단 1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피해간 사이 피해자는 합의를 종용하는 사람을 피해 여러 학교를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해자들에게 받은 합의금을 친척들과 나눠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피해자가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일용직을 전전한다는 근황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과거 영상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2007년 방영된 <밀양 성폭행 사건, 그 후> 프로그램의 일부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 다수 게재된 것. 캡처된 장면에 따르면 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밀양 주민은 “여자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남자가 그러는 것”이라며 “꽃뱀이나 마찬가지다. 돈 딱 물고 합의 보고”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를 대하던 경찰의 태도도 입길에 올랐다. 경찰은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 “네가 먼저 꼬리친 것 아니냐”는 등의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언론에 사건 경위와 피해자의 신원을 그대로 노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밀양 사건은 영화 <한공주>로 제작되는 등 잊을 만하면 한번씩 언급됐다.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글도 간간히 올라왔다. 가해자의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당 경찰서의 게시판이 마비되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튜버가 가해자를 지목하면 누리꾼이 응징하는 형태가 되면서 직접적인 제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특히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에 여러 유튜브 채널이 뛰어들면서 경쟁을 하는 듯한 양상까지 띠고 있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이 밀양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유튜브 채널은 ‘밀양 세 번째 공개 가해자 ○○○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이름과 얼굴, 출신 학교, 직장 등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유튜브 통해 피의자 신상 공개
피해자 측 “동의한 적은 없다”

해당 영상은 업로드된 지 1일 만에 조회수 57만회(6일 기준)를 달성했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이 업로드한 ‘밀양 사건 옹호자 ○○○. 아이 2명 낳고 평범하게 사는 삶’ ‘큰일 났네 박○범’ ‘밀양 성폭행 사건 주동자 박○범. 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봐?’ 등의 영상은 200만~300만(6일 기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 역시 50만명(6일 기준)에 육박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신상이 퍼지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해당 인물이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기업은 그를 임시 발령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기사 등에 따르면 “(해당 인물이)재직 중인 것이 맞다”면서 “현재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해 임시 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또 다른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의 한 식당은 철거하면서 사과문을 내걸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사진 등에는 “먼저 잘못된 직원(○○○군은 저희 조카가 맞습니다) 채용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무허가 건물서 영업한 부분에 대해서도 죄송하게 생각하며 법적인 조치에 따르겠다”고 적었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도 직장서 해고 조치됐다. 해당 남성은 사건 후 개명하고 수입차 딜러사의 전시장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SNS를 통해 해당 인물을 해고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유튜버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인물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과정서 잘못된 지목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지나치게 과열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중이다.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채널서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가해자를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한 유튜버는 가해자 44명의 신상 공개에 앞서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유튜브 채널)가 첫 영상을 게시하기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피해자와 가족 모두 향후 가해자 44명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방향에 동의한 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측은 피해자의 일상회복, 의사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며 “○○○○○(유튜브 채널)는 피해자 가족이 동의했단 공지를 삭제하고 오인되는 상황을 즉시 바로잡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폭로는 가깝다

일각에서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튜브가 ‘심판자’로 등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밀양 사건 외에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사적 제재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결국 법적 처분이 국민의 감정과 괴리가 있기 때문에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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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