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왕회장과 귀뚜라미 승계 구도

안개 정국 후계자 대관식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떨어져 있던 귀뚜라미 회장이 지주회사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4년 만에 이뤄진 경영 복귀다. 생각지 못한 오너의 귀환은 승계 구도를 예측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후계자들의 입지 확대에 제약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귀뚜라미그룹은 지주회사인 귀뚜라미홀딩스, 사업회사인 귀뚜라미를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 지배구조는 큰 틀에서 ‘최진민 회장·귀뚜라미문화재단→귀뚜라미홀딩스→귀뚜라미 및 사업회사’ 등으로 이어진다.

현 지배구조는 2019년 11월 사업회사 3곳(귀뚜라미·귀뚜라미홈시스·나노켐)을 쪼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완성됐다. 이 무렵 이들 회사는 각각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됐고, 귀뚜라미의 투자 부문이 나머지 2개 투자 부문을 흡수해 통합 지주회사(귀뚜라미홀딩스)를 설립하는 수순이 뒤따랐다.

느닷없이…

그룹의 지배구조가 변모하는 동안 최 회장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지주사 체제 전환 전 귀뚜라미 지분 25.16%를 보유했던 최 회장은,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귀뚜라미홀딩스 지분율을 31.71%로 높였다. 여기에 귀뚜라미홀딩스 지분 16.16%를 보유한 귀뚜라미문화재단도 최 회장의 우호세력이다.

자기주식을 제외하면 최 회장의 지배력은 더욱 올라간다. 의결권이 없는 귀뚜라미홀딩스 자기주식은 전체 지분 중 18.75%에 해당하며, 이를 감안한 최 회장의 실질 지분율은 39.03%다. 여기에 귀뚜라미문화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합산하면 사실상 최 회장에게 60%에 가까운 지분이 몰리는 구조다.


이처럼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함에도 정작 최 회장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 이후 경영 일선에서 오히려 멀어졌다. 2020년 1월부터 귀뚜라미홀딩스 대표이사를 맡았던 건 그룹 경영관리본부장(CFO) 출신의 송경석 사장이고, 귀뚜라미는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을 이끌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도맡던 구도는 최근 들어 크게 바뀐 모양새다. 최 회장의 친정 체제 구축 움직임이 표면화된 덕분이다.

지난달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귀뚜라미홀딩스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는 곧 최 회장이 4년 만에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는 걸 의미했다.

4년 만에 예상치 못한 귀환 
이래저래 불명확해진 수순

귀뚜라미홀딩스 측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최 회장의 복귀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한 사업 전반의 기술적 대변화에 대응하려는 차원이라는 뜻도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이 대표이사에 복귀한 이후 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를 예측하는 건 다소 힘들어졌다. 최 회장은 슬하에 2남3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 최성환 귀뚜라미 전무와 차남 최영환 귀뚜라미 상무가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꼽힌다. 두 사람은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 영역을 확대해 왔다.

1978년생인 최 전무는 2014년 귀뚜라미 평사원으로 입사해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았고, 현재 귀뚜라미홀딩스 사내이사로 등재돼있다. 지난해 2월 귀뚜라미랜드 대표이사로 선임됐으며, 한 달 후 인서울27골프클럽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차남 최영환 상무는 2020년 1월 귀뚜라미홀딩스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7월에는 주력 계열사인 나노켐의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존재감이 한층 부각됐다.

반면 최 회장의 딸들은 주력 사업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장녀인 최수영씨는 귀뚜라미랜드의 사내이사, 삼녀인 최문경씨는 닥터로빈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최혜영씨는 별다른 보직을 맡지 않은 채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현 시점에서는 부친의 커진 존재감이 후계자들의 영역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그간 관련 업계에서는 송 사장에 이은 후임 귀뚜라미홀딩스 대표이사로 최 전무와 최 상무 중 한 명을 예상했지만, 최 회장이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향후 진행 방향을 속단하기 힘들어진 모양새다.

복잡해진 셈법

게다가 최 회장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을 장남과 차남이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넘겨받을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이다. 최 회장의 자녀 중 귀뚜라미홀딩스 지분을 보유한 건 최 전무(12.16%), 최 상무(8.40%), 최문경씨(6.67%) 등으로 국한된다. 다만 이들이 보유한 지주사 주식을 합쳐봐야 최 회장보다 지분율이 낮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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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