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설 밥상머리’ 화두

명절 술상 오를 안주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여야는 총선 승리를 위한 이슈 선점에 몰입하고 있다. 설 연휴가 가까워지자 이른바 ‘밥상머리’에 오를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상태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이번 명절에 어떤 이슈가 식탁에 오르냐에 따라 총선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정치권이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숨 쉬듯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실제 정치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온갖 것의 영향을 받는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유권자의 표심은 요동치고 정부 정책이 선거 전 예상을 완전히 뒤엎기도 한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이슈를 먼저 차지하는 쪽이 이번 선거의 승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표심 흔들
화제 잡아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 경선 과정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비리 의혹을 시작으로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선거법 위반 등 재판 중인 사건만 여러 건이다. 이 대표는 물론 당 입장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문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총선 전 선거법 위반 재판의 1심 선고 여부는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슈였다. 선거법 재판은 6개월 안에 1심 선고를 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 대표가 선거 전 낙마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맡고 있던 강규태 판사가 돌연 사표를 내면서 국면이 달라졌다. 이미 ‘6개월 규정’을 한참 어긴 상황에 판사까지 교체되면서 총선 전에 1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낮아졌다. 


피습 사건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갑작스럽게 습격을 당해 수술까지 진행했지만 부산대병원서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고 이동 당시 응급의료헬기를 이용한 것을 두고도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이 대표가 응급의료체계를 망가뜨렸다며 의료계는 분노했고 여론도 싸늘한 편이다. 

국민의힘은 영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뚫어야 한다.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지난해 김 여사가 2022년 9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무실서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의 소리>는 김 여사를 고발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 배당된 상태다. 

여·야 이슈 선점 싸움
이재명·김건희 리스크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도 큰 리스크 중 하나다. 김건희 특검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김 여사에 대한 여론도 좋지 못하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잘못된 결정’이라고 응답했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김 여사와 관련된 리스크를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영입 인재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김 여사가 국민에게 사과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역시 “(명품백 수수 논란은)심각한 사건”이라며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안고 있는 당 대표·영부인 리스크는 선거는 물론 향후 국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의 파급력이 큰 만큼 여야는 자신의 치부는 감추고 상대 진영의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물과 정책은 명절 밥상머리 이슈의 스테디셀러다. 국민의힘 유준상 상임고문은 “선거는 공천과 정책이 전부”라고 말했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우고 어떤 무기를 쥐어주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바뀐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서 가장 두드러지게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다. 윤석열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파격 인사 꼬리표를 달더니 국민의힘 당 대표로 정치에 입문했다.

누가 먼저
떨쳐내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 등 국민의힘이 어수선한 상태서 한 비대위원장이 조기 등판하면서 총선 구도가 순식간에 ‘한동훈 대 이재명’으로 개편됐다. 

한 비대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방 일정서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고 발언마다 언론보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실제 한 비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총선 구도와 결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에 혜성처럼 나타난 ‘뉴페이스’인 만큼 선거 기간 내내 이슈 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비대위원장은 인재영입위원장을 겸하면서 ‘사람 모으기’에 나선 상태다. 그러면서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귀책 보궐선거 무공천 ▲국회의원 50명 감축 ▲출판기념회 등을 통한 정치자금 수수를 금지하는 법안 추진 등 정치개혁 공약을 내놓고 있다. 

정책으로는 ‘저출생’이 총선 화두로 이미 자리 잡은 상태다. 지난 14일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올해 0.68명(전망치)으로 나타났다. 출산율과 기대수명, 국제이동 등을 중간 수준으로 가정한 중위 시나리오다.

연간 출생아 수는 50년 후인 2072년 16만명으로 내려갈 전망이다.

2026년에는 0.59명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초저출산 후폭풍은 이미 시작됐다. 노동시장은 물론 국가재정에 치명적인 타격도 동시에 시작됐다. 문제는 출산율을 반등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출산율 상승을 위해 수백조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최근 몇 년 새 단 한 차례의 반등도 없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

선거용 정책
판 뒤엎는다

유준상 상임고문은 “저출생은 청년층의 취업·주거·양육과 직결돼있는 문제다. 제대로 된 저출생 대책을 내놓는 쪽에 국민의 표심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비대위원장과 민주당 이 대표는 지난 18일 나란히 저출생 공약을 발표했다. 저출생 문제가 현재 청년 상황과 맞닿아 있는 만큼 여야서 내놓는 정책에 따라 표심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경제 상황도 변수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상황이 나쁘면 그 화살은 현 정부에 가게 마련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 차원의 경제정책이 연이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이 선거 때에 맞춰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총선용’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1대 총선이 진행된 2020년 4월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2019년 말 창궐하기 시작한 ‘역병’은 전국을 발칵 뒤집었다.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도 함께 들끓었다. 하지만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예상을 깨고 180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그 배경으로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실제 문정부는 총선 직전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를 진행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1차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급됐다. 박영수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코로나에 따른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금권선거’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한동훈 전면 내세운 국민의힘
“저출산, 경제가 선거 흔든다”

경제정책만큼이나 국민 여론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인의 ‘말실수’다. 특히 공천이 완료돼 선수가 결정된 상황서 후보자의 말실수는 선거판 전체를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크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굵직한 정책보다 후보자의 말 한마디가 선거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며 “말실수를 안일하게 처리하면 바닥 민심부터 싹 바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인 민경우 수학연구소 소장은 과거 자신이 한 노인 발언이 문제로 떠오르자 사퇴했다. 민 전 비대위원은 지난해 10월 한 보수성향 유튜브에 출연해 “지금 가장 최대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거다. 빨리빨리 돌아가셔야”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면서 대한노인회 등 노인 단체의 비판이 제기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대한노인회를 찾아 민 소장의 발언에 대해 거듭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저출생으로 인구구조가 변화하면서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노인 표는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자산 중 하나이기 때문. 민 소장의 빠른 사퇴와 한 비대위원장의 사과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는 평이 나왔다. 

정치권은 말이 선거에 끼치는 영향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특히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발언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2004년 17대 총선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비하 논란 발언이 선거 기간 내내 화제가 됐고 지난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차명진 전 의원의 세월호 유족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여야 모두
입단속 중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여야 간 네거티브가 강해지는 양상을 띠는데 그 시기 말실수는 치명적인 수준이다. 여야는 막말, 비하 발언 등 설화로 빚어질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입단속에 나섰다. 문제 발언이 나오면 발언자에게 엄중 경고하거나 직에서 사퇴시키는 방향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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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