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비박산’ 민주당 13개 계파 대해부

“네 탓” 장군 없는 오합지졸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의 ‘혁신형’ 비대위가 출범한 지 3주가량 지났다.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는 비대위 지도부는 혁신의 첫걸음을 어떻게 뗄지 고심 중이다. 최우선 과제는 당 안팎에서 지적하고 있는 ‘당내 통합’이다.

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일 “‘수박’(겉은 파랗고 안은 빨갛다는 뜻으로 ‘민주당의 배신자’란 의미)이란 단어를 못 쓰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우 위원장은 “같은 당인데 어떻게 이런 단어를 쓸 수 있나”라며 “공격적 언어들을 쓰면 안 된다. 수박 단어를 쓰시는 분들은 가만 안 둘 것”라고 언급했다.

세만 크고 
리더 없다

‘유’한 성격으로 알려진 우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강하게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계파 갈등이 요즘 민주당의 최대 골칫거리다. 우 위원장의 경고가 있기 전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는 수위 높은 공격들을 주고받으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 룰’ 변경 등 예민한 문제가 산재해 있는 현재 민주당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민주당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계파가 꽤나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요시사>가 취재 도중 들었던 계파 종류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친이재명계’ ‘친이낙연계’ ‘친문재인계’ ‘정세균계’ ‘옛 박원순계’ ‘옛 손학규계’ ‘이해찬계’ 등 거물 정치인들의 이름에서 비롯된 계파와 ‘민평련계’ ‘통합행동계’ ‘86그룹’ ‘97그룹’ 등 과거 이념과 의원들의 특징에서 비롯된 계파들, 그리고 ‘민주당 4.0’ ‘처럼회’ 같은 정치 연구모임 등이 있다.


이 중 친명계와 친문계, 친이낙연계 등이 대립 중인 민주당의 주요 세력이다. 여기에는 민평련계와 86그룹, 처럼회, 민주당 4.0에 속한 의원이 고루 포진돼있다.

개인적인 인연과 정치적 가치에 따라 복잡하게 얽힌 민주당 계파는 여의도 전문가들도 헷갈릴 만큼 대치와 협력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후 수많은 계파들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과거 어느 계파 소속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을 지지할 것인지, 혹은 이 의원을 반대할 것인지에 따라 새롭게 개편됐다. 현재 민주당 계파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이 의원을 지지하는 ‘친명’ 측과 이 의원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비명’ 측, 그리고 계파색이 옅고 새 인물을 추대하려는 ‘중립’ 측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친명 측에선 지난 대선에서 득표력을 인정받은 이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명 핵심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은 이 의원의 최측근이라 알려진 ‘7인회’와 ‘옛 박원순계’다.

7인회에는 정성호·김병욱·김영진·임종성·김남국·문진석·이규민 의원이 속해있다. 이들은 2017년 이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부터 5년간 정치적 뜻을 함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인연을 이어온 인사들도 있다. 정 의원은 이 의원과 사법시험을 함께 준비했던 사이로, 36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김병욱 의원은 이 의원이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를 때부터, 김영진 의원은 이 의원과 중앙대를 함께 다닐 때부터 함께했다. 임 의원은 2017년 대통령선거 경선 전부터 이 의원을 지지하며 선거 캠프에서 활약했다.

뭉치고
모이고

초선인 김남국 의원과 문 의원은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들로 추진력 있는 이 의원의 개인 능력을 높이 평가해 오래전부터 여의도와 이 의원 사이의 가교 역할을 도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민 의원은 지난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이 확정돼 여의도를 떠나 있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이재명 대선 경선 캠프에 곧바로 합류해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아 했다. 이 의원은 총괄선거대책부본부장으로 임명돼 본인의 지역구인 안성시를 비롯해 경기도 일대서 이 의원을 지원사격했다.

이들 7인에 더해 ‘옛 박원순계’ 또한 이 의원의 최측근이라고 평가받는다. 지난달 원내대표로 당선된 3선의 박홍근 의원과 천준호·남인순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박홍근 원내대표와 천 의원은 이 의원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 의원은 비교적 계파색이 옅어 무계파로 분류된다.

핵심을 이루고 있는 두 세력에 더해 이해찬계의 합류도 이 의원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치열했던 지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해찬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대거 이 의원 진영으로 합류했다.

이때 유입된 인물 대부분은 아직도 친명 측에 속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계’에는 김성환·이수진·이해식·이형석·조정식 의원 등이 있다. 이 중 이수진 의원은 최근 불거진 ‘이재명’ 책임론에 앞장서서 이 의원을 보호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선 참패 직후 자신의 SNS에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특정인이 지목되고, 마녀사냥이 되고 있다”며 “패배에서 오는 분노를 쏟아내기에 이보다 쉬운 게 없다.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고 적었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 참여한 조 의원도 경선 과정 내내 ‘이재명의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선거전에 나선 바 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동지”라며 “같이 호흡을 맞춘 사람으로서 도정 운영에서 많은 조언을 받을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 친명 측에 속해있는 민주당 의원은 총 41명에 달한다.

대부분 비문계 의원과 처럼회 같은 강성 개혁 성향의 초선 의원, 그리고 이 의원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다.


당초 “여의도에 세가 없다”고 평가받던 이 의원은 본인만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에 대항해 ‘친문’과 ‘이낙연계’ ‘정세균계’ 의원들이 규합하고 있다. ‘비명’이라는 대의 아래 이들은 힘을 하나로 합쳐 거대 세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친명 41명·비명 80명·중립 49명
크게 세 그룹 속 다시 나뉘는 구도

‘비명’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무산시키고 친문 진영 인물을 선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이낙연계는 총 43명으로, 홍영표·전해철·박광온 의원 등이 주류다. 이들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박 의원은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박홍근 의원과 초접전을 펼치며 당내 영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홍 의원은 최근까지도 이(재명) 의원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의원이 당이 원해 출마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내가 알기론 70~80%는 이 의원의 출마를 반대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방선거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 의원에게 출마 명분조차 없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낙연계’뿐 아니라 ‘정세균계’도 ‘이재명 책임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세균계의 대표격인 이원욱 의원은 이 의원과 갈등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왔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원팀 정신’을 강조하며 모두가 이재명 대선 캠프에 합류했을 때도 이 의원만큼은 끝까지 대선을 뛰고 있는 이(재명) 의원에게 쓴소리를 뱉으며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는 이(재명) 의원의 대표적 공약인 기본소득을 향해 “포퓰리즘 논쟁을 중지하라”며 “기본소득의 원칙에는 보편성과 정액성, 정시성 등이 있고 기본소득 문제를 거론하려면 포퓰리즘이 아닌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일침을 놓더니, 지방선거 후에는 이 의원의 극성 지지층을 “훌리건”이라 비난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라”고 조언했다.

이 의원은 ‘친이낙연계’ 의원들보다 이(재명) 의원과의 감정의 골이 더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이낙연’ ‘친정세균’에 더해 전통 ‘친문’ 세력 또한 ‘비명’계에 섰다. 친문 세력 중 핵심은 문재인정부에서 일했던 인물들이며 여기에는 윤호중·고민정·윤건영·박범계 의원 등이 포함된다.

전통 ‘친문’ 측은 지난 두 번의 패배 책임을 이 의원에게 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당내 주류 세력이 친명계로 바뀐다면 다음 총선에서 본인의 공천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비명계에 서 있는 세력은 민주당내 최다인 80명이다. 세력만큼은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권을 향해 나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세력을 규합할만한 리더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비명계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고, 당권에 도전하려는 몇몇 친문 인사들은 비명계 전체의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그룹 
개혁 1순위? 

친정세균계에서도 당 대표감으로 평가되는 인물은 없다. 한 정치 평론가는 현재 비명계를 향해 “장군 없이 몸집만 커진 군대 같다. 오합지졸 세력”이라고 평가했다.

대안 없이 이 의원을 공격하는 ‘비명’계에게 몇몇 민주당 지지자들은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계파 싸움 이골이 난 이들은 새로운 인물을 중립지대에서 찾으라 주문한다. 그동안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친문’ 세력보다는 ‘무계파’ 출신의 인물이 당내를 통합할 수 있고, 또 친명 측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판단 아래서다.

‘친명’과 ‘비명’ 모두와 거리를 둬온 민주당 의원은 총 49명이다. 그간 이 의원과 문 전 대통령, 그리고 이 전 대표와 사사로운 인연은 있었지만 비교적 계파색이 옅다고 판단되는 인사들과 양측 모두와 인연이 깊은 인사들, 그리고 정치 초년생부터 개인기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 인사들이 주축이다.

새로운 리더감으로 떠오르고 있는 97그룹(90학번·70년대생)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양 계파가 전당대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들을 최대한 많이 포섭해야 한다. ‘중립’ 세력은 다음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안민석·우상호·박병석·이상민 의원 등의 영향력 있는 중진들과 97그룹의 대표 격인 재선의 강훈식·강병원·박주민·박용진 의원 등이 ‘중립’의 주류로 꼽힌다. 여기서도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이들이 있다.

막내 라인인 97그룹에 속한 이들이다. 강병원 의원은 이미 출사표를 던졌으며, 박주민·박용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는 당내서 이미 기정사실화돼있다.

‘586용퇴론’ ‘세대교체’ 등이 개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처럼 ‘젊은’ 정치인들의 출마는 여러모로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당내 주류 싸움은 지난달 있었던 원내대표 선거였다. ‘친명’ 쪽의 박홍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1승을 챙긴 ‘친명’계는 그 기세를 전당대회까지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

대체 세력으로
분위기 반전

지방선거 책임론을 주장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비명’계는 그 전에 승부수를 띄워 이를 저지하려 한다. 양 계파 중 어느 세력이 승리할지, 혹은 두 싸움에 지친 지지자들이 새로운 인물을 ‘중립’지대에서 찾아낼지 오는 8월에 결정될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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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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