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vs 윤핵관’ 국민의힘 암투 2라운드

잔치는 끝났다 ‘여당 내전’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은 분명 6·1 지방선거를 이겼는데도 개운치 않다. 내부에서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이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탓이다. 갈등이 아니라면서도 속으로는 내 세력을 일찍부터 심어 2년 뒤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누구든 패배하면 즉시 자신은 물론 자신의 세력도 몰락하게 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다. 여러 갈등 과정이 있었지만 대표로서 대선에서 승리를 쟁취했고, 지방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들이대기란 어렵다. 

지선 잡고
자리 싸움

승리한 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최근 이 대표의 입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존재감도 예년에 비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탓에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대표는 단숨에 우크라이나로 달려갔다.

민감한 외교 사안과 직결된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방문을 밀어붙인 이유는 지방선거 이후 자신의 존재감을 재차 부각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된다. 다만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한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이제는 그의 발언대로 선거가 끝난 뒤 평시 리더십을 평가받아야 할 차례다. 


우크라이나 방문도 자신의 당 대표 역할론을 부각시켜 이번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출국 전에는 곧바로 당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쉴 틈도 없이 개혁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이 대표는 당 대표답지 않게 모든 사안에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구성원들의 불편을 사왔다. 또 선거에서 승리해 정당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인식과 정치권을 개혁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는 고집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는 말 그대로 위기에 놓여있다. 여러 사건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그려져서다. 혁신위를 띄운 이유와 우크라이나행을 택한 것도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파다하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와 윤핵관 세력 간 갈등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윤핵관 세력은 이런 점을 들어 연일 이 대표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 인사로 분류된 정진석 의원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 대표를 흔드는 중이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을 두고 “이 대표가 자기 정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비판했다. 

대선 전부터 이 대표와 정 의원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서 내려온 뒤 국민의힘 입당을 추진한 과정에서도 정 의원과 이 대표 사이에서 설전이 오갔던 바 있다.

정 의원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때도 함께 자리했으며 윤 대통령의 부친이 충청이라는 점을 들어 충청 대망론을 띄운 인물이기도 하다.


혁신위발 공천권 전쟁
중진 입지 좁아져 반감

대선에 앞서 정 의원을 만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만큼 가까웠다. 윤심으로 불리는 정 의원은 최근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를 이준석 혁신위 같다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혁신위는 공천 등 모호한 규정을 재정비하고, 예측 가능한 공천 시스템을 만들어 새로운 사람이 준비하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내 권력자의 일방적인 내려꽂기 공천과 이해할 수 없는 전략공천 등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당협위원장의 추천만 믿고 했던 깜깜이 공천을 막겠다는 취지다.

위원은 9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최재형 의원(초선, 전 감사원장)과 천하람 변호사가 맡았다. 최 의원과 천 변호사는 지방선거 당시의 공천 시스템에 문제를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황상무 전 KBS 앵커가 강원도지사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았다가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의 반발을 사 결국 경선 방식으로 바뀌었다. 황 전 앵커는 선거 때 토론팀장 등을 맡으면서 윤심에게 신뢰받는 인물이었다.

공천은 대통령의 의중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이런 의중을 과도하게 살피다 보니 단수공천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지사 후보 등 공천에 문제의식을 느낀 인사들이 혁신위를 꾸리기 위해 계획 중이었다는 것.

벌써부터 혁신위를 둘러싸고 당내에서는 정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의 시각 차가 크다. 이 대표가 혁신위를 띄운 이유는 공천 시스템에 대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나 결국 공천 관련된 인물들은 이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 설명이다. 

정 의원이 지속적으로 이 대표를 타격 중인 이유는 대표 임기 1년을 남긴 상황에서 윤핵관이 세를 다질 때 그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내년 6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공천권을 갖게 되지만 현재로서는 재출마 가능성은 낮다.

당권 잡기 
권력 투쟁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의 혁신위에 반기를 드는 인사 대부분은 중진 의원들이다. 견제받는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띄운 혁신안이 그들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공천에는 통상 관례라는 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이 대표를 곱지 않게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대편에서는 이 대표가 고삐를 강하게 쥐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성 정치인으로서 다져놓은 입지를 빼앗길 수 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는 아직 30대 정치인으로 은퇴할 사람을 견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진 의원을 견제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라며 “합리적 문제의식을 갖고 봐야 하는데 단편적, 지엽적인 것으로 담론을 덮으려 하는 옹색한 행동”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 내부에서는 혁신위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이 대표를 쳐내려는 이유가 차기 총선 공천권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대표적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 원내대표도 “혁신위가 다소 다급한 면이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앞서 권 원내대표는 대선 기간에도 장제원 의원과 함께 이 대표와 큰 갈등을 빚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대표가 부산까지 찾아가 경고하자 한발 물러나며 갈등이 봉합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두 인물이 이 대표의 비판에 나선 이유는 윤심임을 내세워 당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당권 다지기에 포석을 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표면상으로는 이 대표의 자기 정치와 다급함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내면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힘겨루기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좀처럼 갈등이 풀리지 않자, 한발 물러난 쪽은 권 원내대표와 정 의원 측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비판한지 하루 만에 “당 대표 임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옳지 않다”며 발을 뺐다.

권 원내대표도 “권력 다툼은 억측”이라는 말로 진화에 나섰다. 정 의원 측 관계자도 “단순히 이 대표의 행보에 대해 단순히 우려 입장을 전달할 것뿐”이라고 언급했다.

정 의원 역시 수위를 낮춰 이 대표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글을 올렸지만 이 대표는 심기가 불편한 모양새다. 부산 잠행과 비슷하게 정 의원의 과거 발언을 인용해 육모철퇴 게시물로 맞받아쳤다.


대세와 대표 
세력간 대결

내부 관계자는 이 대표가 쏴올린 혁신위가 실질적으론 도움이 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당장 내년에 선출될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갖게 되고 혁신위를 통해 당헌·당규를 고칠 수 있는 까닭이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대표가 혁신위를 발족한 이유는 야당보다 당 혁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어필하기 위함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이 대표 체제의 어필을 위한 안전핀이 아니라는 것.

물론 이 대표 입장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성상납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의힘 징계위원회에서 이달 말 결론이 내려질 예정인 까닭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로서는 최초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이달 말 이 대표의 소명을 듣고 징계 수위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의혹에 대한 사실을 떠나 징계를 받느냐 마느냐다. 사실상 성상납 의혹은 공소시효 5년이 지났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 증거은닉교사 의혹은 다소 구체적이다.

지난 4월 가로세로연구소 측에서 김철근 대표 정무실장이 성접대 관여를 주장한 A씨와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가세연 측은 이를 토대로 이 대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은 고사하더라도 증거은닉교사, 당의 명예 실추 등이 인정될 경우 징계위 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가 이뤄질 경우, 대표직 및 당원 자격 상실은 물론 향후 정치 행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징계위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대표의 징계 여부를 두고 당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대표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성상납 의혹 징계 여부에 운명 결정
이 대표 날아가면 국힘 위기 올 수도

성상납 의혹은 윤핵관이 이 대표를 향해 쓸 수 있는 카드로 당을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명분인 셈이다. 이 대표에게 징계 조치가 내려질 경우 조기 전당대회는 불가피하다. 당권을 노리는 주자들이 여럿 있는 만큼 징계위 결과가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새 당 대표가 선출된다고 해도 이미 친윤(친 윤석열) 세력이 당을 장악해버린 이상 차기 당 대표가 윤핵관 세력이 아닐 경우, 당 대표로서의 입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1년 여의 남은 임기만으로는 당내 세력을 다지기 힘들다.

반면 징계에 반대 인사들은 벌써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것이 자해를 넘어 자살행위라며 퇴출시키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재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50% 이상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부터 이번 지방선거까지 3번을 내리 이겼다.

승장을 아무런 이유 없이 몰아낸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대표를 쫓아낼 명분도 없고, 같이 망하자는 꼴이기 때문에 당정의 국정동력도 함께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대표의 등판 후 국민의힘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청년층 중 특히 젊은 남성층들을 기존의 꼰대 색채가 짙다는 당으로 끌어들이며 당을 젊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비판이 나와도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스스로 몸값도 높였다. 윤핵관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에서도 이 대표를 잃는다면 중도층을 잃을 수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중도층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됐다. 이 대표는 “절대로 사퇴는 없다”며 일찌감치 강력하게 사퇴설에 선을 그었다. 

이대로
밀리면 끝

해당 논란에 대해 장성철 대구카톨릭대 특임교수는 “이 대표를 당 대표직에서 빨리 내려 보내고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권을 잡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이 잘되는 것보다 기성 정치인들이 오히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데 차기 총선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위기 때문”이라며 “대중적 평가는 관심도 없고, 차기 공천권을 행사할 때 윤심에 호소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전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몸 푸는 차기 당권 주자들

국민의힘 당권을 잡기 위해 세를 다지고 나선 이들은 윤핵관뿐만 아니다.

최근 새로운 당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벌써부터 몸을 풀고 있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 방문과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면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이들도 국내에서 광폭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당갑에서 당선되며 국민의힘 원내 인사가 된 안철수 의원의 경우 포럼 형식으로 당내 세를 다질 예정이다.

벌써부터 기후 관련 포럼, 연금개혁 논의 등이 줄줄이 계획돼있다.

안 의원은 현재까지 당권 도전설에 선을 긋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출마설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또 다른 윤심으로 불리는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혁신24 새로운 미래라는 모임을 발족했다.

당내에서도 김 전 원내대표의 당권 도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에서 중재한 인물로 당내 이미지 역시 긍정적 여론이 형성돼있다.

이 밖에 원외에서는 나경원 전 대표가 대표직에 재도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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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