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씁쓸한 퇴장' 박영수 국정농단 특검

태블릿PC로 흥하고 포르쉐로 망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산업자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무상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결국 사의를 표명해 지난 4년7개월 동안의 특검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를 두고 특검 출신 내에서는 일부의 모럴 해저드로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등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산업자 김모씨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무상 제공받았다는 의혹으로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새롭게 부임하는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심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상고심을 담당하게 된다.

“책임 통감”
결국 사의

박 특검은 지난 7일 ‘사직의 변’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논란이 된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모 부장검사에게 소개해준 부분 등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며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오늘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 특검은 지난 5일 가짜 수산업자 관련 의혹에 대해 “아내의 차 구매을 위해 여러 차종을 검토하던 중 김씨가 이모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렌터카 회사 차량의 시승을 권유했다”며 “며칠간 렌트하고 차량은 반납했고, 렌트비 250만원은 이 변호사를 통해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입장문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박 특검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이모 부장검사를 김씨에게 소개해줬다는 부분은 사실”이라며 “포항지청으로 전보된 이 부장검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지역 사정 파악에 도움을 받을 인물로 김씨를 소개하며 전화번호를 주고, 김씨에게는 이 부장검사가 그 지역에 생소한 사람이니 지역에 대한 조언을 해주라는 취지로 소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특검은 “수많은 난관에도 지난 4년7개월간 혼신의 힘을 다해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게 노력했다”며 “이 같은 일로 중도 퇴직하게 돼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차 무상 제공 의혹에 무너진 공든 탑
수산업자 리스트 거론되자 사의 표명

국정 농단 특검팀은 지난 2016년 12월21일 출범했다. 박영수 특검과 양재식·박충근·이용복·이규철 특검보,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을 비롯해 파견검사 20명, 수사관 40명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구성된 특검이었다.

이들은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쳐 수사 선상에 있던 인물 5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총 징역 22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는 징역 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이라는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박 특검과 함께 특검 추천으로 임명된 특검보 2명도 같은날 사의를 표명했다. 특검 조직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점, 특검 궐위 시 특검보가 재판 등 소송행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한 조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검팀이 사법정의를 내세우며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30명을 뇌물죄 등으로 기소하고, 주요 피고인에 대해 약 80년을 구형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뇌물 소지가 있는 금품을 받은 것에 대해 “특검의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검 출신 내에서도 4년7개월간 쌓은 공이 일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내로남불’
추락한 특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특검 근무 경력의 현직 검사에 대한 감찰을 지시해, 특검의 잘못된 처신이 검찰 조직 전체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가 됐다.

경찰은 김씨가 박 특검을 연결고리로 이들과 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박 특검의 전날 사의 표명에 경찰 수사 확대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특검이 젊은 후배 검사들에게 사기꾼을 소개해줬다는 데 가장 무겁게 책임을 느꼈을 것”이라며 “4년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특검 기간에 쌓은 공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정 농단 특검팀 출신의 한 변호사도 “고급 수입차와 시계, 선물 등 가치와 대가성 여부를 떠나 특검이 잘못된 처신을 한 건 사실”이라며 “더욱이 뇌물죄 등으로 국정 농단 사건을 단죄했던 특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국민적 상실감은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박 특검이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야권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구두논평에서 “부적절한 로비 의혹의 당사자가, 법 정의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의혹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박영수 특별검사의 사의 표명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황보 수석대변인은 “박 특검이 ‘도의적 책임’을 운운했지만 고가의 수입 차량을 제공받은 것이 드러난 만큼 차제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법적 책임’의 여부도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속하라”
강력 비판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해온 박영수 특검의 이중적 행태가 드러났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박 특검에 대한 구속 수사도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수석부대변인은 “박 특검이 김모씨에게 받은 선물의 대가성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며 “만약 김모씨가 청탁을 빌미로 박 특검에게 대가성 선물을 제공하고 박 특검이 이를 수수했다면 뇌물 혐의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특검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자진사퇴가 아닌 파면이 마땅하다”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특별검사가 어떻게 이렇게도 몰지각한 작태와 오염된 공직윤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검법) 제14조 제2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검이 사망하거나 사퇴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국회에 통보하고 임명 절차에 따라 후임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 특검의 사퇴서가 수리되면 현재까지 마무리되지 않은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 관련 재판들의 공소 유지를 위한 후임 특검 임명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4년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
내로남불·모럴해저드 지적도

결국 새로 부임하는 특검은 ‘국정 농단 사건’에서 남은 재판의 공소 유지를 담당하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파기환송심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의 상고심 총 2건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파기환송심은 서울고법에서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 사건은 2017년 11월 대법원에 접수된 뒤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 외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 농단 방조 및 불법사찰 혐의 사건은 특검법 기한을 지나 기소돼 현재 검찰에서 공소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불복해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향후 특검은 이들 재판이 계속되는 기간까지는 공판에 출석하는 등 공소 유지를 담당하고,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10일 이내에 이를 대통령과 국회에 서면으로 보고한 뒤 특검법에 따라 당연 퇴직하게 된다.

남은 재판
후임 누구?

박 특검과 함께 2명의 특검보도 사퇴함에 따라 이른바 특검 ‘순장조’에는 1명의 특검과 2명의 특검보가 새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활동기간은 남아있는 재판의 ‘확정판결 시’까지여서 길어도 1년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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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