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방위 금품 살포' 의혹 수산업자 김씨

사기 친 검은돈으로 재벌 행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중견급 검사와 서장급 경찰, 유력 신문사 논설위원, 방송사 앵커. 한 사업가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인물의 면면이다. 이들에게 금품을 바친 사업가는 과거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는가 하면, 현재는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상습사기범을 둘러싼 ‘검·경·언’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나 기타 정치 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사건을 두고 게이트라고 한다. 1972년 6월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재선을 위해 비밀 공작반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되며 하야했다. 당시 ‘게이트’라는 용어는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따온 것이다. 

드러나는
유착 관계

이후 국내에서는 정치 권력과 관련돼 일어나는 대형 스캔들을 말할 때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박동선이 미국 의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진 이 사건은 ‘코리아게이트’라고 불린다. 이후에도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등 게이트라는 이름의 여러 비리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7월, 현직 부장검사와 경찰 고위 인사, 유력 언론인들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수산업자 김모(43)씨 사건이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다. 김씨는 검·경·언의 유력인사들과 유착 관계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씨가 정치권 인사들과의 인맥을 과시하며 수 백억원대 사기행각도 벌인 것으로 밝혀져 경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 영장전담검사는 지난달 서울남부지검 소속 이모 부장검사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이 수산업자 김씨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 혐의를 조사하다 김씨의 휴대전화에서 이 부장검사의 문자메시지를 발견해 증거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금품수수 정황을 뒷받침하는 물증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니 이 부장검사가 금품을 받은 정황이 뚜렷했다는 것.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검찰 내부의 목소리다. 

이 부장검사는 2019년 8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대구지검 포항지청에서 근무하면서 김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 초반에는 이 부장검사에 대한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자 명품 시계, 고가의 식품, 자녀의 학원비 등 2000~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씨가 선물했다고 밝힌 시계는 ‘IWC’로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경찰의 압수수색 이틀 뒤 고검검사급 검사(차장·부장검사) 인사에서 이 부장검사를 부부장검사로 강등 발령했다. 법무부와 대검은 경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이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부장검사는 경찰 수사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경찰이 이 부장검사가 받은 금품의 대가성을 확인한다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전환해 공수처에 이첩할 것으로 보인다. 검사의 뇌물 혐의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달리 공수처법이 규정하는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해서다.

‘뇌물 고리’ 검·경·언 강타
거물 정치인 연루설도 돌아

다만 현시점에서는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할 근거가 불명확하다. 경찰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대한 수사를 진행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경찰로서는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될 경우 성과가 공수처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첩시키지 않고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이 전 논설위원에게 고가의 골프채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논설위원은 윤 전 총장 측 대변인에 선임되고 열흘 뒤인 지난달 20일 돌연 사임했다. 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나왔다. 당시 그는 사퇴 이유를 “일신상의 이유로 직을 내려놓는다”고만 밝혔다.

현재까지 이 전 논설위원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또 엄성섭 TV조선 앵커와 일간지 기자 2명의 금품수수 혐의도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엄 앵커는 중고차를 두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이 자리는 이상목 앵커가 대신 맡아 진행했다. 그는 2017년 4월부터 전날까지 해당 방송을 해 왔다.

엄 앵커는 개인 유튜브 ‘엄튜브’ 커뮤니티에도 “오늘 방송은 쉬어가게 됐다”고만 간략히 밝혔다. MBC에 따르면 엄 앵커는 기자들의 전화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산하의 언론인이 뇌물 금품 사건에 연루된 것에 언론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이 전 논설위원과 엄 앵커의 입건 사실을 다루지 않고 있어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논평을 내고 “<조선일보> 그룹에서 언론인의 비리 사건이 5년간 3차례 있었지만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스스로 면죄부를 줘왔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다 거짓”
가짜 경력


<조선일보> 소속원들이 뇌물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송희영 주필은 기사 청탁 대가로 대우조선해양에서 금품·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표를 냈고, 이듬해 기소됐다. 2019년 언론사 간부들이 기업 로비스트인 홍보대행사 대표와 기사를 대가로 금품·향응·자녀취업 등 부정한 청탁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박수환 문자 사건’에 부장급 이상 8명이 연루됐다.

민언련은 “<조선일보>의 반복된 악의적 보도 행태를 비롯해 기자 등 언론인 일탈과 불법행위 연루 등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인 비리와 불법에 관대한 구시대적 관행이 낳은 적폐의 결과”라고 짚었다.

김씨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을 받은 건 경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품수수 관련 내사를 받던 배 총경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경찰은 증거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이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금품의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확인되면 이 부장검사에겐 뇌물수수 혐의를, 민간인인 언론인에겐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일 검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마치 자신이 1000억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고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 일대에서 어선 수십대로 사업을 하며 인근 풀빌라, 고가의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재력을 과시했다.


그는 “선박 운용사업에 투자하면 선주가 되게 해주겠다” “선동 오징어 매매사업에 투자하면 수개월 안에 3~4배로 수익을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7명의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이 116억원에 달했다. 

그는 여러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지만, 수산업체로 소개한 회사 주소는 그가 어릴 적 살았던 포항 구룡포읍 빈집으로 드러났다.

100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는 실제로 자신의 정관계 인맥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렇게 쌓은 인맥과 대외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수차례 대담한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김씨는 서울과 대구, 포항 등을 오가면서 피해자들을 만나 사기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 피해자는 김씨가 어선을 정박해놨다는 구룡포항에서 김씨를 직접 만난 뒤 투자하기도 했다. 이 피해자는 34회에 걸쳐 86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보냈다.

유령직 6개
행적 보니…

피해자 가운데는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고향인 포항 구룡포리 주민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오징어를 말려 팔던 것을 보고, 김씨가 가짜 수산물업체를 차려 사기를 친 것 같다”고 전했다.

김씨의 사기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김씨는 법률사무소 사무장 등으로 신분을 속이고 사기 행각을 벌여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17년 12월 특별사면되기도 했다.

평소 자신을 1000억원대 유산을 상속받은 재력가·사회활동가로 꾸며 정계·언론계 등 인맥을 과시한 김씨는 특정 인사와 안면을 트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다른 고위층 인사를 소개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믿음의 벨트’를 이용한 것.

김씨는 이렇게 속아 넘긴 유력인들에게 활발한 로비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이들은 검찰과 경찰, 언론 등 전방위적이다.

지난해 김씨가 3대3 농구 사업을 하는 A 사단법인 생활체육단체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여야 인사들이 축사를 보냈다. 취임식에는 이 전 논설위원과 엄 앵커도 참석했으며, 엄 앵커는 축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엄 앵커는 “김 회장 취임 이전과 김 회장 치임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감히 단언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A 법인은 지난해 5월 김씨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으나, 법인등기부등본에는 김씨가 등재돼있지 않았으며, A 단체의 활동도 미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단체의 임원은 2019년에 만들어진 이후 김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수산물 업체 대표, 인터넷언론사 부회장, 한국언론재단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상임위원, 유니세프 경북지회 후원회장, 한국다문화가족협회 대구경북후원회장, 몽골스포츠교류재단 상임부회장 등을 맡은 것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전방위 로비 ‘게이트’로 번지나
휴대폰 상납 리스트 확보 수사 중

하지만 모두 등기 임원이 아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단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한국언론재단과 유니세프, 한국다문화가족협회 관계자들은 모두 “김씨가 속했다는 관련 위원회·단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언론계·정계·체육계 등 인사들과 교류한 정황이 나오면서 금품수수 의혹이 어디까지 확산될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금품 수수 사건에 정치권에도 불똥이 튀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난감한 입장이다. 이 전 논설위원이 대변인을 맡았다가 열흘 만에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50분경 대선 출마 선언 후 첫날 일정으로 국회 소통관 기자실을 찾아 기자실마다 돌며 기자들과 인사했다. 

윤 전 총장은 기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소통관 프레스라운지(간이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약식 간담회를 통해 언론의 협조를 부탁하는 인사말을 했다. 

이날 윤 전 총장은 “이동훈 대변인이 사퇴한 배경이 부장검사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있기 때문이 아니냐, 금품 수사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를 알고 있었느냐. 이것이 사퇴의 배경이 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본인의 신상에 대한 개인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뭐 거기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본인의 신상 문제라서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겠다고 해서 서로 간에 양해했다”고 답했다.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냐” “사퇴 전에 모르셨다는 것이냐” “이 전 대변인이 사퇴 전에 이 사실을 보고했느냐” 등의 질의가 이어졌으나,  윤 전 총장은 아무런 답변하지 않은 채 프레스라운지에서 빠져나왔다. 

취재진이 재차 “사퇴할 때 이 전 대변인이 총장께 말씀드렸냐”고 물었지만 “본인의 개인 신상에 관한 거니까”라는 말만 반복하고 입을 닫았다. 취재진은 윤 전 총장을 따라다니면서 “인사 실패라는 평가는 어떻게 보느냐, 처음 열흘밖에 안 된 상태에서 그만둔 것은 인사 실패 아니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윤 전 총장은 대선 행보 첫날부터 삐끄덕했다는 평가다. 본인 의혹에 대한 질문 세례를 받았으나 속 시원히 답변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는 데 정치권의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불똥 튄 
정치권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기자회견장 브리핑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말을 전한 사람의 범죄 의혹에 대해서 무작정 몰랐다는 말로 넘어가는 것은 부족하다”며 “유력 대권주자의 인사 문제는 주요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일컬어진다. 이동훈 전 대변인의 금품수수 관련 보도로 인해 국민은 윤석열 캠프에 대한 신뢰도 의혹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